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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만해도 50여편 정도 추천여행지를 소개한 것 같습니다. 많은 모놀 가족들께서 격려와 감사메일을 보내주셔서 무척이나 힘이 납니다. 금년에도 좋은 여행지 많이 발굴하여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얼마전 쌍봉사 부도를 소개해 드렸지요. 그와 견줄 만한 부도가 여주의 고달사지 부도랍니다. 도굴을 당해 몇몇 부위가 훼손되었지만 변함없이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새해 첫 추천여행지로 고달사지를 소개합니다. 참..새해 첫 답사지로 원주와 여주의 폐사지를 갈려고 합니다. 황량한 겨울의 폐사지는 또 다른 맛을 선사한답니다. 변함없는 성원 바랍니다. (거돈사지-법천사지-목아박물관- 고달사지) 우리나라 최대의 부도-고달사지부도 새벽 6시.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정수를 깨웠습니다. "정수야.아빠하고
고달사지 가자." 평소 9시가 넘어야 일어나는 정수에게는 무척이나 고역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차에 앉자마자 머리를 처박고 코를 골고 있어요. 답사때마다 거의 이런 식으로 정수를 데려 갑니다. 지난 속초여행때는 이불에 싸고 가는 바람에 신발을 가져 가지 않아 무척이나 난감했었습니다. 정수는 아빠의 답사의 말동무며 스승이기도 합니다. 가끔 순수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우리 유물을 설명해줘서 얼마나 놀랬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늘 정수와 답사 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포나루터 여주갈 때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국도길을 잡았습니다. 저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 길을 좋아한답니다. 양평을 지나니 이포나루터가 보입니다. 지금이야 이포대교가 우뚝 서있지만 옛날엔 한양과 강원도를 잇는 나루터였지요. 한때 주막과 여관이 가득했을 텐데 지금은 조용하다 못해 을씨년 스럽습니다. 그나마 지금은 천서리 막국수집들이 예전의 영화를 대신합니다. 광진나룻터에서 유배길에 오른 단종임금도 이포나루에서 잠시 내려 한양을 바라보며 회한의 눈물을 쏟아냈다고 전해지지요. 일제 때는 여주와 이천 양평땅에서 수확한 곡물을 이 곳에서 배에 가득 싣고 인천을 거쳐 일본으로 날랐다고 합니다. 아무리 풍년이 들었어도 농민들은 배를 골아야하는 슬픔을 가지고 있는 곳이지요. 골프장 8학군 고달사 가기 위해서는 또 한번 눈살을 찌푸려야하는 현장이 있답니다. 골프장을 지나쳐야 하거든요. 서민들에게 여주와 이천하면 쌀의 고장이라고 부르지만 가진자에겐 '골프장 1번지'로 더 명성이 나 있답니다. 한번은 이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주. 얼마나 살기 좋은지 몰라. 골프장도 많아서 너무 좋아... 골프장 8학군이야." 산 전체가 바리깡으로 밀어 흉물로 변한 것은 둘째치더라도 흘러 내린 농약으로 여주쌀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을 때는 서글픔이 앞선답니다. 고달사지마저 폐찰이 되어 아쉬웠는데 현대를 사는 우리가 또 하나의 흉물을 만들었으니 그저 선조들께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폐사지의 맛-고달사 전원일기에 나옴직한 농촌풍경입니다. 사이좋게 머리를 맞대고 있는 농가들이 그 넉넉함을 더해줍니다. 여느 향촌처럼 마을입구엔 커다란 보호수가 서 있습니다. 우람찬 혜목산이 절집을 한아름 품고 있어 포근하고 아늑합니다. 매번 느끼는 경험이지만 전국 어디를 가든지 절터는 참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늑하게 펼쳐진 고달사지. 이렇게 넓은 공간이 있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나뒹군 돌멩이 사이에 성한 돌을 찾아내어 마음속으로 건물을 세워 올리는 것이 폐사지를 보는 맛이랍니다. 황폐함 속에서 생명을 찾아 가는 과정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겨울에 폐사지를 찾아가면 스산함 속에 제가 해야할 일이 많답니다. 그리고 이 땅의 문화를 지켜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도 가져봅니다. '고달사(高達寺)' 도의 경지에 도달한다고 해서 '高達'인가? 실은 이 곳의 석조물은 '고달'이란 석공이 만들었기 때문에 '고달사'란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고달은 가족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불사에 혼을 바쳤고 스스로 머리를 깍았고 훗날 유명한 고승이 될 정도로 불심이 깊었지요. 고려 때 사방 30리가 사찰의 대지였을 정도라니 고달사의 위용이 느껴집니다. 고달사 앞 500m지점 논가운데 작은 봉우리가 보입니다. 이는 고달사 승려들이 절에 오르다 쉬면서 신을 털어 야트마한 산을 만들었기에 그 산을 '신털이봉'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석불대좌(보물 8호) 먼저 탐승객을 흥분시키는 것이 바로 석불대좌랍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크고 가장 잘 생긴 대좌랍니다. 보통 원형이나 팔각모양인데 이 곳은 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높이만 1.5미터가 넘습니다. 부처님은 그 넓은 곳에 앉아서 여주의 비단들녁을 바라보고 계셨을 겁니다. 하대석엔 안상(코끼리 눈)이 4개씩 조각되어 있습니다. 그 위에 연꽃이 둘러쳐 있는데 이것이 참 명작입니다. 조각의 입체감이 뚜렷하고, 가지처럼 늘어진 것이 부처님의 자비가 너울너울 분출하는 느낌을 받는답니다. 상대석에는 위로 새겨진 연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하대석에 새겨진 연꽃이 넘치는 자비라면 이 곳은 부처님의 영광을 말해주는 불꽃입니다. 수 천년간 멈추지 않고 타오르는 화신입니다. 지긋이 눈을 감고 손을 대었습니다. 1천년 전 석공의 망치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원종대사 부도비와 이수(보물 6호) 이 느낌은 정수의 입을 통해 들어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아이의 순수한 시각으로 바라본 느낌은 다르답니다. "정수야. 고달사
가서 뭐 봤니?" 이 원종대사 부도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커다란 '귀부와 이수'랍니다. 용의 머리를 한번 보십시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인상이지요. 콧구멍이 깊숙히 패여 있고 주름까지 보이며 벌름거리고 있습니다. 무서운 얼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하얀 이빨을 내드러낸 미소가 무척이나 해학적입니다. 입에 여의주를 물지 않는 것도 특이합니다. 사실 눈알 자체가 큼직한 여의주처럼 둥그렇습니다. 여의주를 2개나 몸에 지니고 있으니 굳이 입에 넣을 필요가 없었겠지요. 거북의 등껍질을 보십시요. 얼마나 견고하고 예쁜 문양을 가지고 있는지...발톱은 마징가제트에서 나오는 적군 로봇의 흉기 같지 않습니까? 이 발톱을 땅에 쳐박고 꿈적도 하지 않습니다. 다른 돌 조형이 다 쓰러져도 이 거북상이 천년을 버틴 것도 든든한 발톱 때문이 아닐까요? 이 부도비를 보고 후대 나타난 거북선의 모습을 그려본답니다.
이무기를 나타내는 이수가 바로 정수가 말한 '상자'랍니다. 전면에 '혜목산 고달선원 국사 원종대사지비'라는 전서체의 글씨가 고즈넉하게 보인답니다. 구름과 용이 꿈틀거리면서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습니다. 자세히 보면 도깨비상도 볼 수 있습니다. 전혀 무섭지 않고 오히려 친근한 고려인의 얼굴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정수와 함께 본다는 것은 무척이나 행복한 일입니다. 저는 이수의 측면을 가장 사랑한답니다. 용의 비늘을 한번 보십시요. 꿈틀거리는 생명력 때문에 비늘이 떨어질 것 같지 않습니까? 놀라운 것은 이 거대한 귀부와 이수는 한 개의 돌로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정을 한번 잘못 때리면 헛수고로 돌아가는 돌조형에서 이렇게 완벽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감탄스러울 따름입니다. 중간에 있어야할 비는 어디 있을까요? 1915년 봄에 비신이 넘어졌는데 지금은 국립 중앙박물관에 창고에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왠만하면 보수해서 이곳에 다시 옮겨야 하지 않을까요? 유물은 원래 있는 그 자리에서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거든요.
고달사터 부도(국보 4호) 이 부도를 만나려면 조금 산길을 올라가야 합니다. 도중에 정수하고 미끄럼도 타고, 억세도 뜯어보며, 흥겹게 산길을 올랐습니다. 계단을 올랐습니다. 하얀 석물이 조금씩 자태를 보여줍니다. 빨리 보고 싶은 심정에 목을 쭉 내밀어본다. "와- 세상에 이럴 수가.." 저도 모르게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한 느낌이랄까요. 우선 그 규모에 압도당합니다. (높이 3.4미터)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그 정교함에 다시금 놀래봅니다. 이 부도는 현재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부도 중에서 가장 크다고 합니다. 지대석, 기단부 ,탑신부, 지붕돌 모두가 팔각형으로 신라양식을 이어받은 고려 초기의 작품이지요. 가장 화려하게 조각된 부분은 중대석입니다.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거북을 중심으로 4마리의 용이 구름을 뚫고 노닐고 있습니다. 돌의 양감도 풍부하여 금방이라도 돌을 깨고 튀어나올 것 같습니다. 마치 마술상자에 갇힌 용같이 보입니다. 마술이 풀리면 '펑'하고 터지면서 용이 하늘로 승천할 것 같지요. 그리고 그 위에 돌려진 연꽃문양은 천년 전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추상 조각가의 작품처럼 보인답니다. 탑신부에는 자물통이 달린 문짝과 창살문, 사천왕이 번갈아 조각되어 있지요. 이 곳에 스님의 사리와 경전 등이 들어 있으니 자물통으로 잠근다는 의미겠지요. 사천왕상은 그걸 지키는 수호신이구요. 그 몸돌에 지붕돌을 얹었습니다. 조금 큼직해서 전체적인 비례에 맞지 않는 아쉬움이 들지 모르지만 날렵하게 솟아 오른 귀꽃이 그 어색함을 덜어줍니다. 지붕 돌 밑에 숨겨진 '비천상'을 보십시요. 어떻게 이 곳에 이 비천상을 새길 생각을 했는지.... 연곡사 동부도 지붕돌 밑에도 구름문양을 보고 무릎을 쳤는데 역시 명품엔 숨어있는 비밀이 있는 모양입니다. 악기를 두드리며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세요. 이곳이 천상의 세계임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지붕돌 위엔 보개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지붕돌이 보입니다. 아마 상륜부는 더 화려했을 텐데 남아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랍니다. 얼마 전 도굴을 인해 귀꽃이 하나 떨어져 나갔답니다. 그 부위를 보니 가슴이 찢어집니다. 찬바람이 씽씽 불었고 정수가 내려가자고 보챘지만 저는 떠날 수 없었습니다. 무려 한 시간을 부도 앞에 서있었습니다. 애인과 함께 보내는 소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이지요.
원종대사 부도(보물 7호)
아쉬움을 뒤로한 채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조금 내려가면 원종대사 부도가 서 있답니다. 한 눈에 봐도 조금 전에 보았던 고달사지 부도의 영향을 받은 것임을 알 수 있지요. 이 작품 역시 섬세하고 역동적이지만 워낙 고달사지 부도가 뛰어나다보니 상대적으로 눈길을 덜 받는 셈이지요. 고달사지부도가 팔각의 지대석을 가진 반면 이곳은 사각의 지대석을 가지고 있네요. 거북이와 용이 서로 머리를 길게 빼어 돌리고 있어 해학적인 느낌을 받는답니다. 실은 거북의 얼굴을 고달사지 부도처럼 길게 뺄려면 더 큰 돌이 필요하고 공력이 더 필요하겠지요. 그래서 거북머리가 옆을 쳐다보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원종대사 부도에서 가장 멋진 부분이 바로 사천왕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악귀를 발로 밟고 있으며 심술 굳은 얼굴을 하고 있거든요. 살이 통통히 오른 비천상도 보십시요. 지붕돌 역시 귀꽃으로 둘러쳐 있고 그 밑엔 구름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상륜부는 훼손 없이 잘 보존되어 있어요.
아쉬운 작별 아쉽게도 고달사지를 떠납니다. 비록 폐사지가 되었지만 거기에 깃든 정신세계는 참으로 넓습니다. 얼어붙은 논길에 몇 번을 넘어졌는지 모릅니다. 아빠가 넘어지는 것이 재미있어서 깔깔 웃어댑니다.. 동네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어요. 고달사의 후예들이지요. 정수가 과자를 건내 줍니다. '맞아. 나누는 기쁨이 사랑이고 행복이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로 실천하는 모습이 정겨워 보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정수가 기침을 합니다. 마스크를 사달라고 하는 것 같은데.... "아빠..감기 걸릴 때 얼굴 묶는 것 사줘."
맛있는 집 소개- 천서리 막국수집 이포대교 근처에는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천서리 막국수'집이 자리잡고 있답니다. 경기도에서 유일하게 막국수집이 촌락을 이루는 곳이 바로 천서리랍니다. '川西里' 이름 그대로 남한강 서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입니다.. 여러 집이 있지만 가장 오래되고 제 맛을 낸다는 '강계봉진막국수' 집을 찾았습니다. 다른 집은 시설도 좋고, 화려하지만 이곳은 허름한 집입니다. 그렇지만 늘 손님으로 붐비는 곳입니다. 장애인이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휠체어를 타고 가는데 주인장은 바쁜데도 불구하고 손수 휠체어를 내려주고 배웅을 합니다. 아마 경사진 길에 넘어질까 걱정이 되는 모양입니다. 이런 정성이 음식 맛에 배어있습니다. 막국수와 편육이 어찌나 맛있었는지 모릅니다. 양도 꽤 많습니다. 결국 편육은 남아 싸가지고 와서 아내와 맛있게 먹었습니다. 강계 봉진 막국수.. 천서리 막국수 촌 제일 안쪽에 있음.(031-882-8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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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몇번이나 지나치면서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이런 훌륭한 보물들이 숨어 있을 줄이야 대장님이 새해 첫날부터 소중한 유산을 보여주셔서 고맙네요
재미있으면서도 인상깊게 잘 보았읍니다. 답사를 안 가봐서 용어들이 낯설어 사전을 펴보면서 읽어내려갔답니다. 올핸 답사에 충실하는 해가 되는것도 소망해보아야 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