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제인 오스틴
모인 날: 2017. 2. 15. 수요일 11시
모인 사람: 시로샘, 신지현, 정지은, 짜장(홍연경), 블루(김인아), 정혜원, 말로
날이 많이 풀렸다.
시로샘은 봄볕을 쬘 요량이신지 모자도 안쓰고 나오셨다.
물푸레 카운터에서 요염한 자태로 책을 읽고 있는 블루,
시로샘에게 드릴 맛난 간식을 싸온 지현님,
며칠 전 삐끗한 발목에 아직 깁스를 두른 짜장,
밝은 얼굴과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는 듯이 들어서는 지은언니,
여유있는 미소를 머금은 혜원,
언제나처럼 치명적인 매력을 내뿜는 말로까지....
모두 반가운 얼굴이다.
🎶🎵🎵🎵🎶🎶🎵🎵
어제의 발렌타인을 기념하여 지은언니가 갖고 오신 산더미같은 쵸컬릿을 살살 녹이며,
영화와 영드에 대한 이야기로 모임이 시작되었다.
많이들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정주행한 모양이다.
혜원이 오랫만에 활기찬 목소리로
'영화든 드라마든 보고 싶든 사람은 다 얘기하라'고 외치는데,
그 소리통이 실로 어마어마하다....
제일 먼저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는 모습이,
무엇보다 지은언니 취향에 딱 맞는 소설인 모양이다.
그에다가 짜장, 혜원 모두 감동받은 듯하다.
(역시 목소리 크기인가....ㅜㅜ)
지은: 이 소설은 우리 나라로 치면 정조, 순조 때의 일이잖아요. (1811년 순조사망)
혜원: 저는 '제인 오스틴 북클럽'이라는 영화를 봤지 뭐예요.
여주(양여주 아님)를 꼬시는 남주가 어슐러 르귄의 '어둠의 왼손'을 추천하거든요.
자기는 SF가 더 좋다면서....
(그 소설은 SF라고 싫어했다는 여자주인공의 이야기에 살짝 웃음띈 지은언니의 눈을 나만 보았던 건가 싶다...)
지은: 소설 속 인물들이 대놓고 돈타령을 하잖아요?
이질감이 느껴져요. 우리랑 많이 다른 것 같아서.
처녀들의 결혼이 마치 돈에 팔려가는 것 같아요.
(여기서 시로샘께서 야심차게 분석한 가계도를 내미셨으나, 이야기가 많아 살짝 묻혀 버렸다..ㅜㅜ)
말로: 흠... 제 취향은 아닙니다만,
제인 오스틴이 글을 참 잘 쓴다는 건 틀림없네요.
술술 풀리는 맛이 있어요.
만약 다른 소재를 쓸 수 있는 환경에 있었더라면 또다른 좋은 작품을 썼을듯 하네요.
혜원: 각 인물에 대한 평이 참 절묘하죠.
묘사가 리얼해요.
지은: 흔히 여자들이 돈에 가치를 두고 결혼을 선택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남자 주인공도 돈과 명예, 지위에 따라 선택하는 모습이 보여요.
그런 점에서 묘사가 참 신선해요.
또 여기선 귀족의 일상이란 게 고작 남의 뒷담화를 주워 섬기거나, 세간의 소문을 나누는 게 다예요.
전혀 생산적이지 않고, 직접적으로 부를 창출하지도 못하고요.
시로: 금융의 시대로 돌입했다는 뜻입니다.
귀족 계급에게 필요한 잉여자금은 식민지 농장에서 추출되었지요.
지은: 맞아요.
에밀 졸라의 소설에서는 사실주의에 입각한 하층민들의 생활이 부각되었잖아요?
그것과 극적으로 대비해서 상류층을 묘사했어요.
블루: 여기서 질문, 여러분이라면 어떤 계급을 택하시겠어요?
(모두들 웃음~~하하하 ..)
지은: 아무래도 이런 부자 계급이 더 좋지 않을까요?
(그렇다는 의견이 어쩐지 지배적이었어요...)
이 이야기에 나는,
"다른 아무것으로도 행복해지지 못하는 경우에만 돈으로 행복해질 수 있어.
풍족한 생활을 할 능력은 주겠지만, 그 이상으로 무슨 진정한 만족을 주지는 못해."(121)
라는 메리엔의 말이 생각났다.
분위기가 살짝 전환되면서 시로샘이 말을 이으셨다.
시로: 이 시대의 영국은 시의 시대였습니다.
소설 속에도 시를 제대로(감정을 담아) 못읽는 인물이 나오지요.
풍부한 자연 묘사와 더불어 내적 열정을 반영하는 풍조였어요.
따라서 리얼리즘과는 약간 거리가 있습니다.
소설은 이런 시와 달리 사회상을 묘사할 수 있는 도구였어요.
혜원: 언니의 이성, 동생의 감성이 대비되면서 처음부터 죽 읽혔어요.
이성이란 것이 언니의 참을성(절제)과 수많은 생각들로 표현되는 것 같고요.
시로샘: 네, 엘리너라는 캐릭터를 살펴보면 이성이란 생각과 절제 뿐만 아니라,
상황 분별력과 타인의 감정까지도 섬세하게 배려하는 데에 뻗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각각 누가 메리엔과 엘리너의 편인지 얘기해 보았다.
역시 메리엔의 손을 들어준 사람들은 신지현님과 말로, 블루(되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시로샘은 엘리너가 워너비라고 하신다. 이미 상당 수준 엘리너 같이 보이는데...^^
블루: 제가 보기엔 엘리너의 배려심은 좀 과도해 보여요.
굳이 '내가 뒷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부러 짐을 질 필요가 있을까요?
잠시 후, 브랜던과 메리엔의 만남 장면에 대한 얘기가 이어졌다.
브랜던의 나이는 35세. 두 자매의 엄마는 40세 가까이 되고 보면,
외로운 엄마에게 구혼하는 게 더 맞지 않았을까 하는 우스개 소리부터,
'열정이 사라진 나이', 인데다가
'플란넬 조끼'를 입은 외모의 묘사까지 (53-55).
지못미 브랜던....ㅜㅜ
블루 : 저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요구하는 낭만적 사랑을 부정적으로 봐요.
필요조건이라는 전제가 부담스럽고요.
꼭 사랑이 있어야 결혼이 유지되는 걸까요?
부부 각자가 필요하면 애인도 둘 수 있고 그런 거 아닌가요?
결혼이란 건 너무 힘들어요..ㅜㅜ
지은: 낭만이라는 장식이 없다면 결혼이 슬퍼지지 않을지요?
예로부터 여성들은 교육과 전통, 문화의 영향으로
이혼을 안하고 잘 버텨 왔고요.
유한 계급의 경우에 특히 많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블루: 애인을 인정하면 이혼율은 떨어질 거라고 봐요.
사회가 이혼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수용하는 것이 합리적이잖아요.
블루와 지은언니의 대화에 모두 공감하며,
그래도 이전에 비해서 이혼한 부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부드러워지고 있다는 얘기들이 나왔다.
지은: 부모가 각자 애인을 두고도,
가족 모임을 잘 이끌어 가는 가정의 경우를 봤어요.
부부는 괜찮을지 몰라도,
정작 그 자녀들은 결혼에 대한 불신으로 결혼무용론에 이르더군요.
블루 : 아마 그 자녀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 내에서 이혼이 흔하다면
아이들이 덜 불안할 겁니다.
자기 가족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혼이라는 것이 일상적인 것으로 여겨진다면요.
짜장: 패니 대시우드 부인에게 묘하게 설득당해서,
처음의 마음과 정반대로 끌려가는 남편 이야기가 너무 재밌었어요.
훅 끌렸다고나 할까요.
패니야말로 프로페셔널한 주부의 원형이 아닌가요?
혜원: 저는 각 캐릭터에게 모두 자기 변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점이,
약간 구차한 느낌이었어요.
지은 : 그럴 수도 있겠어요.
저는 자세한 설명을 해줌으로써,
오히려 '선택은 너의 몫'이라는 것을 강조했다고 봐요.
시로샘: 인물 묘사에서 찾을 수 있는 윌러비와 메리엔의 공통점은
'취향'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 다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지요. (431)
블루 : 어떻게 보면 '취향'이란, 그것을 중요시하는 사람에게만 중요한 것 같아요.
가치관과 비슷한 개념으로 나타나기도 하고요.
시로샘: 그렇지요.
여기저기 간섭하기를 좋아하는 제닝스 부인의 행동은 취향이라기보다는 '오지랖',
넘겨짚기를 좋아하는 엄마는 '설레발',
상대를 평가하는데 오직 사냥과 관계되는 것만을 살피는 존 경은 '사냥매니아'라고 하겠어요.
일종의 편협함을 묘사했다고나 할까요.
상대적으로 작가는 엘리너와 메리엔의 예술적 안목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모습이지요.
말로: 게다가 의외로 엘리너는 메리엔의 피아노 연주에 무감한 모습을 보여서
예술 장르간의 괴리도 보이고요.
혜원: 어머, 벌써 시간이.... 이제 가야겠네요.
이번 책은 구입한 뒤 줄을 그으며 읽을 수 있어 좋았어요.
🎵🎶🎶🎵🎶🎵🎵
곧 이어진 발제문 얘기까지,
오늘은 모두들 활기찬 분위기였다.
생활 밀착형 소설이라서 더 그랬을 것이다.
짜장과 신지현님은 대화주제를 크게 제시하지 않으셔서
내용에 많은 분량이 반영되지 못했음을 사과드린다.
(말로의 발언은 사실 발화되지 않은 것들도 있으나,
기록자는 말로....ㅎㅎ)
16기 HER 는 오늘 모임으로 종료,
3/15 에 다음 기수가 시작된다.(기대만빵~~)
아...
문득,
양여주님의 얼굴이 보고싶다....^^
첫댓글 ㅋㅋㅋㅋ 제인 옷에튄... ㅋㅋㅋㅋ 참신함에 박수를 보냅니다...!
근데 위에 기록 중에서 정조의 사망년도가 1800년입니다(연도가 딱 떨어져서 기억하기 쉬운...).
순조는 생몰을 잘 모르겠는데 1811보다는 훨씬 오래 재위한 듯.
글쿤요..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간 숫자라...^^;;
@말로 제가 조선왕들 생몰을 다 꿰고 있는 건 아니고... 정조만 알고 있습니다. ㅋㅋ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는듯 그냥 음성지원 되네요 ㅋㅋ 제인 오세튄
아 참, 깜박하고 언급을 못했는데 소설 극초반에 보면 노신사 대시우드가 죽기 전에 조카(헨리 대시우드) 가족을 불러들여서 조카 며느리와 그 딸들(엘리너, 메리앤) 돌봄을 받으면서 편안하게 여생을 마무리하는데, 유산 상속 과정에서는 이 '돌봄 노동'이 전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인데도, 이게 '노동'으로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유산 상속 과정에서도 이 요소는 완전히 배제됩니다. 이렇게 도입부에서부터 오스틴은 돈타령... (이 아니라) 자신의 사실주의적이고 사회학적 관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