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명검> 테마곡 - 정소추의 슬픔에 흐느끼는 목소리에 이어 테마곡이 이어집니다.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홍콩영화 뉴웨이브 바람은
서극이나 허안화와 같은 유학파 감독들에 의해 구체화 되었는데,
이전과는 다른 그들만의 선진적인 영상기법과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죠.
무협영화도 이 시기에 여러 변화를 거치게 되는데,
서극과 정소동 같이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한 젊은 감독들의 등장이 그것입니다.
82년에 제작된 서극의 <촉산>이나 정소동의 <생사결>의 경우만해도,
70년대 쇼브라더스의 거대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양산된 장철 감독의 영화나
나유, 원화평 등에 의해 만들어진 이소룡, 성룡영화와는 차별화되는 독특함이 있죠.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제가 가장 주목했던 것은,
70년대 후반부터 성룡, 홍금보, 원표를 중심으로 권법코믹영화들이 득세하던 때에
젊은 감독들은 아주 서정적인 영상미를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수간의 일대일 구도와 아주 현란한 화면움직임을 통한
세련된 영상의 검객영화를 추구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담가명 감독, 정소추 주연의 <명검, The Sword, 80년> 은
<생사결>과 더불어 많은 마니아층을 갖고 있는 영화로서
<생사결>의 감독인 정소동이 무술감독을 맡은 검객영화입니다.
- 출연진 -
정소추 ☞ 이맥연
서소강 ☞ 연 환
전 풍 ☞ 화천수
서 걸 ☞ 화영지
진기기 ☞ 언소어
위추화 ☞ 현 희
고 웅 ☞ 호위무사
유조명 ☞ 살 수
이해생 ☞ 나쁜넘
무림 최고의 검객 화천수 는 한성검 을 만든 검사 '왕십기'에게
제물검 을 보여주며 한성검과 쌍검이 될 수 있는 보검을 만들어줄 것을 요구하지만,
왕십기는 훗날 큰 화를 가져올 증오심에 가득찬 검이라며 버리라고 충고한다.
화천수는 왕십기의 충고를 듣고 제물검을 생명의 은인이자 자신을 흠모하는
현희 에게 제물검을 주고 무림에서 은거해버린다.
시간이 흘러 젊은 검객 이맥연 은 최고의 검객이 되고자 화천수를 찾아나선다.
'이맥연'역을 맡은 정소추는 70년대 TVB 드라마의 단골 주인공으로 맹위를 떨쳤고,
특히 79년작 <초류향 무화전기/최후일전>에서 자신만의 초류향을 창조해내면서
'정소추 = 초류향'이라는 공식아닌 공식을 만들어낸 배우입니다.
정소추의 큰 키와 쫙 빠진 탁월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구사하는 무협액션은
그 동작이 크고 시원시원하면서도 세련된 맛이 있지요.
이맥연은 우연히 화영지 를 위험에서 구출하게 되지만,
오히려 모멸감을 느낀 화영지로부터 뺨까지 맞는 적반하장의 경우를 당하게 된다.
허나 이맥연, 아니 정소추가 누구인가!
검지손으로 콧등 문지르며 눈빛하나로 수많은 여인네들을 사로잡은 초류향의 그가
화영지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사춘기소년의 로망 '소나기'의 한장면이었다.
이맥연은 자신의 첫사랑이자 지금은 남의 부인이 되어버린 언소어 를 찾아나서고
객잔앞 가마에서 내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넋을 잃는다.
이 장면은 81년작 TVB 드라마 <매의 후예>에서 비응(정소추) 이
빗속 가마에서 내리는 소소낭자(조아지) 를 넋을 잃고 바라보던 장면과 아주 흡사하지만,
이맥연과 비응의 눈빛은 전혀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응은 환희에 찬 기쁨의 눈빛이었다면,
이맥연의 그것은 절망과 좌절의 눈빛이었던 것이죠.
(영상) <명검>의 이맥연과 <매의 후예>의 비응
영화에서는 이 부분을 함축하고 있지만,
두 사람의 대사를 통해 이맥연이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해 정인을 남겨두고 떠났고
그 정인은 기다리다 지쳐 다른 남자와 혼인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최고의 검객이 되고자하는 주인공이라기엔 시종일관 너무나 우울한 그 눈빛은
숨은 한켠엔 이러한 큰 아픔과 희생이 뒤따르고 있었다는 데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이맥연의 첫사랑 언소어의 남편 연환 은 두 사람을 의심하여
호위무사 에게 이맥연을 급습할 것을 지시한다.
현희는 습격을 당해 부상을 입고 쓰러져있던 이맥연을 구하게 되고,
때마침 화영지가 위험에 쳐해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현희는
이맥연에게 '제물검'을 주며 화영지를 구해줄 것을 부탁한다.
결국 '화'를 자초하게 될 것이라는 제물검 은
운명적으로 화천수 --> 현희 --> 이맥연 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화영지가 그토록 찾아해맸던 화천수의 금지옥엽 딸임을 알게된 이맥연은
현희가 준 '제물검'으로 화천수에게 결투신청을 하게되고
이맥연에게 이기긴 했지만 부상을 당한 화천수는 이 때문에
음모를 꾸미던 연환일행에게 손쉬운 죽임을 당하게 되는 비극을 낳게된다.
언소어는 이 음모의 배후가 자신의 남편인 연환이라는 사실을
죽음을 불사하고 이맥연과 화영지에게 알려주고
드디어 화천수로부터 빼앗은 연환 의 한성검 과
이맥연 의 증오의 제물검 의 한판 승부가 펼쳐지게 된다.
(영상) <명검> 라스트 대결 장면
정인을 버려두고 최고의 검객을 찾아나선 이맥연의 무모함,
화천수와 대적한 후 밀려오는 이맥연의 공허함과 허탈감,
명검이지만 상극인 '한성검'과 '제물검',
각각의 검을 지니고 펼치는 이맥연과 연환의 1 vs 1 대결,
새디즘을 자극하는 유혈이 낭자한 마지막 결투씬과 최후 승리자의 허무함,
그리고 영화 전반적으로 침울한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좀 더 액션의 분량을 늘리고, 멜로적인 요소와 선악구도를 철저히 배격하여 만든
정소동의 감독데뷔작 <생사결> 과 비교하면서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