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원, 그리고 부활의 완벽한 재기 - 부활 3집 기억상실(1993)
1. 소나기
2. 흑백영화
3. Loss Of Memory(기억상실)
4. 8.1.1
5. 사랑할수록
6. 별
7. 흐린비가 내리며는
8. 그리움 그리운 그림
1980년대 중반... 당시 서울 내 파고다 쪽에는 당시의 음악조류를 반영이라도 하듯...
헤비메틀을 추구하던 4개의 밴드가 있었습니다...(제 기억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시나위, 백두산, 부활, 나머지 한 팀이 헷갈리는 데...(H2O였던가?) 이렇게 4팀이 서로간의
견제도 하면서 자신들의 음악을 구축해나가기 시작합니다.
물론 리더를 제외한 나머지 파트들이 서로 다른 밴드에 있다가 가입하는 상황이 있기도 했는데요
김종서가 부활의 전신인 The End에 있었다가 시나위에 재가입하여 2집을 내기도 했었죠.
(시나위 1집 보컬리스트는 임재범이었죠...)
당시 각 밴드에 있던 인물 중에 나중에 독립해서 한국 가요계를 빛낸 사람도 꽤 있었습니다.
시나위 출신의 서태지, 김종서, 부활 2대 보컬 이승철 등등...
이런 것만 봐도 당시 파고다 4인방의 존재는 그 당시 뿐만 아니라 후대의 한국 가요계에 하나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1986년을 전후하여 위의 밴드들은 실제로 데뷔 앨범을 내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부활의 행보에 포커스를 맞추며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1986년 불후의 명곡인 '희야'와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었던 1집을 발매하면서
많은 락 매니아들의 환영을 받았던 부활.. 사실 이 때야말로 팀의 리더 김태원과 보컬을 맡은 이승철의
음악적 호흡이 최상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1987년 회상 시리즈로 유명했던 2집을 발매하였으나...
김태원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었던 이승철의 탈퇴, 그리고 대마초 사건 등으로...
부활은 6년간 활동 정지에 이르게 됩니다. (심하게 보면 해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후 김태원의 금단 현상 및 이승철의 탈퇴로 인한 방향성 상실은 꽤 심각했었고...
결국 6년 동안의 공백을 가지게 되면서 차츰 락 매니아들에게 잊혀져가는 밴드가 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태원이 대마초 금단현상을 잘 이겨내면서 몇몇 곡을 쓰고 있었고... 자연히 새 앨범을
만들기 위한 여러가지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었습니다. 일단, 보컬리스트로 당시 작은하늘 출신이었던
김재기를 영입하여 새 앨범에 삽입될 곡 작업 및 보컬 녹음을 먼저 했다고 하죠... 그런데...
보컬 녹음이 거의 끝날 무렵... 김재기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됩니다.(26의 나이에)
김태원은 또 한 번의 위기를 맞게 되나, 본 앨범을 김재기의 유작으로 발표하려는 마음을 굳히게 되고
마침 그 때 부활의 멤버였던 정준교와 김성태가 다시 합류하면서 앨범 작업을 완전히 마무리하고
1993년에 (엄청난 우여곡절 끝에) 부활의 통산 3집 앨범을 발표하게 됩니다.
앨범 자체가 부활 3집이기도 했지만 김재기의 유작이기도 했던 만큼...
앨범 전체 사운드도 그에 걸맞게 중후한 사운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전위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상당히 슬픈 느낌의 멜로디가 많이 보이는 앨범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승철이 없이도 이렇게 좋은 노래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을 볼 때 김재기의 죽음은
결국 이후 부활 보컬리스트의 앨범 마다의 교체를 초래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첫 트랙인 소나기는 황순원 씨의 단편 소설 '소나기'에 모티브를 둔 트랙으로 가사도 소나기를
연상케하는 가사입니다. 이 트랙부터 빛을 발하는 김재기의 보컬은 이승철의 공백을 완전히 날릴만한
그것이구요. 김태원이 만들어내는 멜로디 라인 또한 애절한 락 발라드의 공식 그대로입니다.
(이 때부터였을까요...이후 만들어지는 부활 발라드의 공식은 이 앨범의 공식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뒤를 잇는 '흑백영화'는 중반부의 리듬 체인지가 다소 뜬금없기는 하지만 첫 트랙의 분위기를
무난하게 잇고 있는 트랙입니다.
세 번째 트랙인 'Loss Of Memory(기억상실)'. 본 앨범의 타이틀과 똑같은 곡으로 약 8분 정도의
연주곡입니다. 본 앨범에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최고의 트랙으로, 헤비메틀 스타일이라기보다는
하드락 스타일의 연주를 했던 본 앨범의 전체적인 사운드 작풍을 완벽하게 제시해주는 트랙입니다.
전체적인 연주방법이나 멜로디, 사운드는 1980년대 후반에 인기있었던 락밴드인 Whitesnake를
생각나게 합니다(특히나 초반의 멜로디는 Is This Love를 듣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트랙 내에서 멜로디 및 리듬 체인지가 정확히 두 번 있구요... 분위기는 하드락과 헤비메틀의 중간?
네 번째 트랙인 '8.1.1'은 웬 여자가 김재기의 초,중,종성을 차례대로 얘기한 후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약 1분간 이뤄지는 트랙입니다... (사운드는 전혀 다르지만, 랜디 로즈의 'Dee'가 연상되는 트랙)
'사랑할수록', 김재기의 보컬리스트로의 역량을 완벽하게 알 수 있는 트랙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던 부활표 발라드의 공식을 거의 따르고 있습니다. 또한 코러스로 넘어가는 멜로디는
전위적이라고 해야할까요... 처절한 느낌이 들게하는 멜로디가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멜로디를 살리는 김재기의 약간은 허스키한 창법이 곡을 완벽히 살리고 있네요...
아! 그리고 이 노래는 1994년에 가요톱텐에서 2주간 1위를 하게 됩니다. 당시 방송에서 활동하던
보컬리스트는 김재기의 동생인 김재희였죠...김재희는 4집 활동까지 김태원과 같이 하게 됩니다.
다음 트랙인 '별'은 연주곡으로 초반부의 다소 여린듯한 기타연주가 30초부터 이어지는 비장미가
엿보이는 기타연주로 이어지면서 천천히 상승곡선을 그리는 형태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후반부에서
결말을 향해 터지는 비장미 만땅의 기타 솔로는 전율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기타리프는
3번 트랙이었던 Loss Of Memory에서 들었던 기타리프가 다시 나오게 됩니다.
'소나기', '사랑할수록'의 공식을 그대로 잇는 또 하나의 발라드 트랙인 '흐린비가 내리며는'이 지나면
네 번째 연주곡인 마지막 트랙 '그리움 그리운 그림'이 흐릅니다. 초반의 하드락 스타일의 기타리프와
헤비메틀 스타일의 메인 기타리프의 조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트랙으로, 제목 그대로 김재기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트랙으로 부활의 3집 앨범은 막을 내립니다.
결론적으로 본 앨범은 김태원이 이승철이라는 자신의 페르소나와의 결별 후, 여러 악재를 뚫고
부활의 건재를 알린 앨범으로 (약 108만 장 정도가 팔렸다고 추정되고 있죠) 1, 2집 때의 다소 덜
다듬어진 헤비메틀 사운드에서 벗어나 비장미 넘치게 잘 다듬어진 부활표 하드락+헤비메틀 사운드를
보여주고 있는 앨범입니다. 이후 부활의 음반은 3집의 공식을 기본으로 깔고 그 위에 여러가지
음악적인 시도를 계속 이어가게 됩니다.
부활의 중반기 사운드를 완벽하게 성립시켜 준 앨범이 바로 부활 3집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