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의 관을 쓴 사람은 비록 서리(하급 관리)라도 씨를 남기지 마라.”
1170년 8월, 문신들로부터 차별을 받던 무신들의 불만이 마침내 터졌다. 무신정변으로 왕은 쫓겨났으며 문신들은 무신들의 칼날에 쓰러져갔다. 글의 지배가 막을 내리고 100년 동안 진행될 칼의 지배를 알리는 사건이었다.
칼이 지배하는 나라
문신들이 차지했던 나라의 주요 관직들은 이제 무신의 몫이 되었다. 무신들은 말과 글 대신, 칼을 이용해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려고 했다. 30년도 되지 않아 권력은 정중부에서 경대승으로, 경대승에서 이의민으로, 그리고 다시 최충헌에게 넘어갔다. 힘이 있으면 그의 나이가 25세의 청년(경대승)이든, 신분이 미천한 천민(이의민)이든 최고의 권력을 움켜쥘 수 있는 어지러운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상황 덕분에 드라마 <무신>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김준도 노비 출신의 한계를 딛고 실력을 기반으로 삼아 최고의 지위에 오를 수 있게 된다.
부족한 힘을 부처님께 구하다
무신정권의 틀은 최충헌이 마련했다. 그는 무신 지배에 필요한 여러 조직들을 체계적으로 만들어서 4대 60여 년에 걸쳐 진행될 최씨 정권의 기반을 다졌다. 하지만 최씨 정권은 나라 안과 밖에서 강력한 적을 만나게 된다. 나라 안에서는 무신정권의 수탈을 견디지 못한 백성들의 반란이 쉼 없이 일어났고, 그보다 더 큰 위협이 된 몽골의 침략이 뒤를 이었다. 1231년 3만 명의 몽골군은 소극적인 외교자세를 보였던 고려의 국경을 넘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길고, 가장 심각한 피해를 주었던 40년 동안의 시련이 시작된 것이다. 최충헌의 뒤를 이은 최우는 많은 재물을 주고 몽골과 화의를 맺었다. 하지만 몽골의 지나친 요구가 계속 이어지자, 최우는 강화도로 수도를 옮겨 몽골과 싸우기로 결정했다. 몽골군과 정면승부를 하기에 힘이 부쳤던 최씨 정권은 강화도의 요새에서 그저 버티기만 했다. 몽골군은 고려 본토를 누비며 황룡사 9층 목탑과 초조대장경을 불태웠고, 수많은 백성들을 노예로 잡아갔다.
최우가 선택한 유일한 저항방법은 불타 버린 대장경을 다시 만들어, 부처님의 힘으로 몽골의 군대를 물리치는 일이었다. 팔만대장경을 간행하는 사업에 온 나라가 힘을 모았지만, 부처님의 힘은 쉽게 고려에 찾아오지 않았다. 몽골의 침략과 약탈은 더욱 잔인하게 이어졌고, 최우의 사망 이후 약화되었던 최씨 정권도 결국 붕괴되고 말았다.
제주도에서 마감한 마지막 대몽항쟁
최씨 정권의 마지막 지배자였던 최의가 죽은 다음 해(1259), 고려의 태자는 쿠빌라이와 손을 잡고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돌아올 것을 약속했지만 김준 등 무신들이 반대하면서, 이 계획은 실패했다. 1270년 무신들의 내분을 틈타서 고려왕은 개경으로 돌아갈 것을 선언했고, 삼별초에 해산 명령을 내렸다. 삼별초는 이 명령을 거부하고, 끝까지 싸우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진도로 내려가 대몽항쟁의 새 거점을 마련했다. 삼별초는 여러 섬들에서 세력권을 넓혀 나갔으며, 일본에 사신을 보내 몽골과 함께 싸우자고 제안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1271년에 삼별초는 진도에서 여몽 연합군에게 패해서 제주도로 거점을 옮겨야 했다. 1273년 삼별초의 마지막 저항지였던 항파두성마저 여몽연합군에게 점령당하고 말았다. 결국 삼별초 최후의 지휘자였던 김통정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40년간의 대몽항쟁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민족의 혼이 담긴 팔만대장경
‘대장경’은 불교와 관련된 모든 서적을 한 번에 모은 것을 말한다. 고려는 대장경을 두 번이나 만들었다. 거란의 침입 이후에 만든 초조대장경은 몽골의 2차 침입 때 불타 버렸다. 대장경은 불교 국가 고려의 혼이자, 문화 국가 고려의 자존심이었다. 고려 사람들은 고려의 얼을 바로 세우고, 나라를 침입한 오랑캐를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을 새로 만드는 대장경에 새겨 넣었다. 이 대장경은 16년에 걸쳐 8만 1천여 매의 경판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에 ‘팔만대장경’이라고 불렸다. 근대 이전의 대장경 중에서 경판이 온전하게 남은 유일한 작품이며, 내용도 가장 정확하다. 1995년 유네스코는 해인사의 대장경과 이를 보관한 장경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관련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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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침략과 30년 항쟁 | 이이화 글, 한길사
삼별초 항쟁 가까이 | 서찬석 글, 어린른이
왜 삼별초는 최후까지 싸웠을까? | 강재광 글, 자음과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