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사막 (-沙漠 Sahara Des.)
아프리카대륙 북부 일대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사막. 면적은 770만㎢ 이상이며 세계 사막면적의 약 26%를 차지한다. 그 범위는 동서방향으로 약 5000㎞, 남북 방향으로 약 2000㎞에 이른다. 즉, 동쪽은 나일강 하류부의 서쪽으로 펼쳐진 리비아사막, 나일강 중류부의 동쪽으로 펼쳐진 누비아사막에까지 이른다. 북쪽은 모로코·알제리·튀니지에 걸쳐 지중해 연안의 해안선과 나란히 펼쳐져 있고 부분적으로 해발고도 4000m를 넘는 아틀라스산맥의 암벽이 있으며 그 동쪽은 리비아·이집트에 걸쳐 지중해에 접한다. 남쪽은 서쪽에서부터 니제르강의 배수분(排水盆), 차드호의 호분(湖盆), 수단의 나일강 중부 배수분으로 경계지어진다. 사하라는 아랍어로 <평탄한 사막>을 뜻한다.
자연
사막 전체가 평균 해발고도 300m 정도의 대지(臺地)이며 중앙부에 3개의 화산성 산괴(山塊) 또는 고지(高地)가 있다. 그 서쪽의 알제리에는 아하가르산지가 있고 타하트산·아세크렘산 등이 있다. 아하가르산지 동쪽 차드 북부에 티베스티고원이 있다. 그곳에는 사하라사막 전체에서 가장 높은 에미쿠시산(3415m)이 있다. 한편 사하라사막의 가장 낮은 곳은 알제리 북동부와 튀니지에 모여 있다. 사하라사막의 지형은 바람의 작용에 따른 사구지형(砂丘地形)에 의해 모래사막으로 메워져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사막은 다양한 모습을 가지며, 사하라사막은 크게 모래사막·자갈사막·암석사막으로 나누어진다. 아라비아어로 모래사막을 에르그(erg), 자갈사막을 레그(reg), 암석사막을 하마다(hammada), 암석사막 가운데 특히 규모가 큰 것을 하드바(hadbah)라고 한다. 모래사막으로는 알제리의 대서부에르그·대동부에르그, 이집트와 리비아의 국경에 있는 리비아에르그 등이 있으며 사구의 모래가 여러 형상을 보이면서 이동한다. 암석사막의 보기는 리비아 트리폴리타니아 남부의 하마다 엘 함라이다. 이상 3가지 형태의 상호관계는 다음과 같이 이해하면 알기 쉽다. 모래나 자갈은 퇴적물이기 때문에 그 공급원이 반드시 있다. 모래와 자갈은 모암(母岩)인 암석에서 유래한다. 그런 까닭으로 사막의 각 형태의 공간적인 배열은 모래와 자갈의 공급지로서 암석사막이 중앙에 자리잡고 그 주변에 퇴적지역으로 자갈사막·모래사막이 분포한다. 이 가운데 자갈은 열에 의한 기계적 풍화나 풍식에 의해서도 만들어지는데 대부분 물의 침식에 의해 이동·퇴적된 것이기 때문에 자갈사막도 그와 같은 작용이 있었던 지역으로 제한된다. 그에 반해 모래는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일도 있고 또 물에 의한 운반작용도 받기 쉬워 보다 멀리까지 도달하는 빈도가 높다. 그렇기 때문에 한층 더 주변부에 모래사막이 분포한다. 사하라사막을 구성하는 모래사막·자갈사막의 모래와 자갈이 침식·운반·퇴적되는 작용의 요인은 와디라는 건조천의 존재에 있다. 예를 들면 아하가르산지 주변에는 타만라세트와디·타파사세트와디·이르하르하르와디 등이 있다. 이 밖에 니제르강으로 예전부터 계속 흐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아자와크와디, 차드호로 이어지는 바하르엘가잘와디, 나일강변에는 엘밀크와디 등이 있다. 사하라사막 안에 있는 와디는 연강수량 250㎜ 이하이며 대부분 50㎜ 이하인 곳이 많다. 또 그 강우도 매우 불규칙하다. 어쩌다 비가 내리면 호우가 되고 물의 흐름은 일시적이다. 그러나 와디의 곡지형으로 보아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수량을 가지고 거의 정상적으로 흘러 많은 양의 모래와 자갈을 이동·퇴적시킨 듯하다. 이와 같은 상황이 일어난 가장 새로운 시대는 마지막 빙하시대가 끝난 약 1만 년 전부터 시작되어 6000∼8000년 전 무렵에 가장 습윤한 시대를 맞이한 듯하다. 그 후 다시 사하라사막은 매우 빠르게 건조화를 진행시켜왔다. 가장 습윤한 시기에는 와디에 물이 흘러 하마·악어·물고기 등이 살았으며 초목이 자라 사바나에서 스텝의 경관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산지 주변에는 지형성 강우도 있어 삼림에 가까운 형태도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나무와 풀이 있는 사하라사막에는 코끼리·기린을 비롯해 많은 동물이 살았고 사람들은 사냥을 하였다. 이러한 모습이 지금도 암벽화로 그려져 남아 있다. 이 극적인 환경의 변천은 지금의 넓은 사막의 경관으로는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런데 현재 와디의 지하에는 부분적으로 물의 흐름이 있어 오아시스가 만들어진다. 오아시스 주변에는 대추야자를 비롯해 곡물·야채·지중해성 과일이 재배되고 있다. 또 교통에서도 오아시스가 결절점이 된다. 오아시스를 빼면 와디의 강바닥 등에 겨우 아샤브(ashab)라는 건성식물경관이 보일 뿐이며 나머지는 연강수량 250㎜ 이상인 고지로 아카시아나 위성류 등이 자라고 있다. 사막기후에서는 강수량 외에 온도조건이 식물의 생육을 좌우한다. 공기가 건조하고 지표면으로부터의 열방사가 크기 때문에 기온은 50℃를 넘고 모래 위에서는 70℃ 정도에 이른다. 또한 기온의 일교차도 커 때로는 50℃가 되기도 하며 밤 동안에는 영하로 내려가는 일도 있다. 이 같은 온도조건도 식생의 번성에 방해가 된다. 한편 바람은 여러 종류의 사구지형을 만듦과 동시에 사하라사막 주변지역으로 많은 모래먼지를 일으켜 날린다. 이들 바람에는 시로코·심문·카무신·하르마탄 등의 지방 이름이 붙여져 있다.
사막화의 진행
세계의 건조지역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환경문제가 사막화이다. 국제연합환경계획(UNEP)의 보고서에 따르면 1972∼1982년의 10년 동안에 전세계에서 매년 6만㎢의 비율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사하라사막의 남쪽 가장자리 일대 수단 사헤르지역의 15개 지방에서는 매년 6∼12㎢의 농지를 잃는다고 한다. 진행되고 있는 사막화의 배경에는 지구상 전체의 기후변화도 있지만 앞으로의 연구에 의해 막을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직접적으로는 인위적 환경을 무시할 수 없으며 특히 지나친 방목, 숯·땔나무·주택건설에 쓰이는 수목의 벌채가 주목된다. 아프리카의 양이나 염소 등의 가축은 1955∼1976년 사이에 44% 증가했다고 한다. 또 사하라사막 주변은 앞에서 언급한 환경변천과 관련해서 늪과 연무, 습지에 가는 입자인 실트나 진흙, 규조토 등이 퇴적되어 있다. 이와 같은 토지는 인위적인 환경에서 나무나 풀이 없는 맨땅으로 되면 사하라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표층의 세립물질이 쉽게 움직이고 날리기 쉽다. 이와 같은 성격을 갖고 있는 토지 조건은 사막화를 촉진시키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
지하자원
사하라사막의 지하자원으로서 오래 전부터 알려진 것은 소금, 아틀라스산맥의 석탄·구리·망간 등이 있다. 이 밖에 석유는 알제리의 하시메사우드·하우엘하믈라와 지중해 연안의 부지를 잇는 파이프라인(약 660㎞), 또는 내륙의 에젤레·자르자이틴 등과 튀니지의 가베스만(灣), 라스키라를 잇는 파이프라인(약 780㎞)이 있다. 천연가스는 아틀라스산맥 남쪽의 하시르멜 등지로부터 지중해 연안의 알제 서쪽에 있는 아르주까지 파이프라인으로 이어져 있다. 이러한 자원개발도 사막화의 인위적 영향의 일부가 되는데 알제리나 리비아의 자원개발은 경제적으로 큰 의의를 갖는다.
오아시스와 사하라교역
사막에서 유일하게 비옥한 공간은 오아시스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교역 등을 목적으로 오아시스에서 오아시스로 이동한다. 역사적으로도 유서있는 오아시스로는 이집트의 시와·파라프라·다흘라, 리비아의 쿠프라·조프라·지라, 알제리의 비스크라·골레아·아인살라 등이다. 이들 오아시스를 잇는 교역경로는 사하라사막의 남북지역을 잇는 그물코처럼 발달하였다. 교역의 대상이 된 것은 사하라사막에 있는 염류(수산화칼륨·백반)와 서아프리카의 금·구리·주석·보석·콜라열매 등이었다. 특히 소금은 <사막의 배>라고 하는 낙타에 실어 남으로 운반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금 등이 북으로 운반되었다. 교역의 거점으로서 사하라사막의 남쪽 가장자리에는 8세기 무렵부터 가나왕국이나 송가이왕국·말리왕국 등이 세워져 14세기에는 그 중심도시 통북투에 상인뿐 아니라 학자·종교가 등이 모여 아랍의 학문과 예술·문화가 보급되었다. 유럽 여러 나라에 의한 식민지화가 격화되기 직전에 사하라사막에도 유명 탐험가가 찾아들었다. 1795∼1796년과 1805∼1806년에는 니제르강 중·상류부를 M. 파크, 1827∼1828년에는 모로코에서 사하라 서부를 남북으로 R.A. 카예, 1850∼1855년에는 사하라의 중앙부 일대와 차드호·니제르강 중류부를 H. 바르트 등이 탐험하였다. 결과적으로 이들 탐험가에 의해 알려진 아프리카 내부의 정보는 그후 유럽 여러 나라의 아프리카식민지 획득 투쟁과 아프리카의 분할을 추진하였다.
주민
사하라사막 지역에도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살았으며 각각의 언어를 썼다. 이 지역에서는 큰 환경 변천과 함께 사람들의 이동과 정착이 반복되어 왔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대륙에서도 이 사하라지역이 인류학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 가장 불분명한 점이 많은 곳이다. 미국의 언어학자 J.H. 그린버그의 분류에 따르면 사하라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크게 아프로아시아어족과 나일사하라어족으로 구분된다. 고대이집트어와 베르베르어를 포함하는 아프로아시아어족은 나일강 및 그 주변지역, 지중해 연안, 사하라사막의 서반부 일대에 분포한다. 이 어족의 대부분은 셈어군으로 아라비아어를 말한다. 단지, 내륙부의 타실리산지, 아하가르산지 일대에는 베르베르어군이 분포한다. 이 무리는 셈어군의 분포지역인 모리타니·모로코·알제리·말리·니제르의 여러 나라에 섬모양으로 분포하며 타마셰크·제나티 등으로 불리는 그룹으로 이루어진다. 한편 나일사하라어족은 사하라사막 중앙부의 티베스티고원의 남부 주변지역에 분포한다. 나일사하라어족이라도 이 지역은 사하라어군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며 니제르·나이지리아·차드·카메룬 등 여러 나라에 걸쳐 있는 카누리, 니제르의 카넴부, 니제르와 차드의 여러 나라에 걸친 다자, 차드·수단에 걸쳐 있는 자가와 등으로 불리는 어군으로 이루어진다. 사하라사막은 표면적으로는 사람들이 살 수 없는 불모지의 인상을 준다. 그러나 수천 년 이상에 걸친 자연환경의 변천과 그것에 적응하는 인간의 이동, 생활양식의 변화를 더듬어 보면 오히려 이 사막이야말로 아프리카의 자연·문화를 파악하는 데 열쇠가 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최근에는 문학이나 영상문화 혹은 학술적 연구대상으로도 사하라사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첫댓글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사만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