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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에 필요한 5만분의1 지형도 도엽명 : 전의 평택 금북정맥이 안성 칠장산에서 분기하여 안흥진으로 가면서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 광덕사에서 공주시 유구읍 문금리를 넘어가는 갈재고개에서 서북으로 잠시 올라간 등고선상 470m 지점인 천안시 광덕면과 아산시 송악면 그리고 공주시 유구읍의 삼면 경계지점에서 금북정맥은 서남진으로 내려가고 한줄기를 북쪽으로 분기하여 송악면과 광덕면의 경계를 따라 장군바위(571)-서귀봉(583)-석류봉(685)-廣德산(△699.3, 4.4)-장군바위-장고개(530, 1.6/6) 지나 아산시 배방면과 송악면 광덕면의 삼면 경계지점인 등고선상 570m 지점(1/7)에서 서북쪽으로 아름다운 雪華산(430, 여맥)을 떨구고 동진하여 望京산(△600, 1/8)을 지나 623번지방도로 넋티고개(210, 1.2/9.2)로 내려선다 넉시티고개에서 오른 太華산(464, 2.2/11.4)에서 배방면을 동서로 나누며 서북진하여 △290.7(2.2/13.6)-솔치고개(130, 1.8/15.4)- 排芳산(△361.0, 0.6/16)-266봉-성재(250) 지나 아산시 남동 돌장골 사거리(30, 2.2/18.2)을 지나 동네 한가운데로 도로를 타고 진행하여 아산시 신동 윗배턱거리 온양천이 곡교천을 만나는 곳(30, 3.8/22)에서 끝이나는 약22km의 산줄기를 그 산줄기중 가장 높고 잘 알려진 광덕산의 이름을 빌어 금북정맥에서 분기하여 10km 이상 30km 미만 산줄기임으로 금북광덕단맥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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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찾아가는 곳이 있다. 기차나 전철로 교통이 좋고 누군가 반길 것 같은 그곳으로 간다. 언제나 늘 그곳에 있을 것 같은 산줄
기를 따라 가는 오늘은 어느 날보다 정겨웁게 느껴진다. 먼발치에서도 쳐다보면 닿을 것 같은 광덕산이다. 민낯이나 민소매여도
좋을 것 같으리,
기차를 타고 천안역에서 분식집에 들러 아침을 먹고 해수마을행 버스(7시 30분) 버스는 한 시간 남짓 광덕사를 지나 산속으로 이어
지는 산길처럼 거스러 올라 닿은 곳 버스의 종점 해수마을 광덕산장앞에서 나는 내렸고 버스는 되돌아 나가게 된다.
아침햇살이 꽤 무덥게 느껴진다. 벚꽃이 지고 잎이 나고 있는 초여름으로 고도를 높이는 포장도로와 계곡물소리, 간간이 지나가
는 차량과 자전거리딩하는 사람들, 갈재고개로 오르는 길이다.
갈재산장을 지나 장흥사를 지난다.
무려 몇키로를 올랐을까. 해발고도 460m의 갈재고개에 자전거리딩하는 사람들이 서너명 모여있었다. 나를 앞서간 사람들이
다. 금북정맥의 갈재고개는 천안시 광덕면과 공주시 유구읍의 경계이기도 하다. 두 번째 오른 길이며 금북정맥을 진행하면서
같이 갔던 동네언니를 이곳에서 내려 보냈던 기억이 더욱 선명한 고개이기도 했었다.
산행준비를 마치고 출발하였다.
벌써 녹음이 짙은 산으로 날 반겨 주었다. 넓은 길로 이어지는 산길이 편한 듯 걸어간다. 바람결이 시원하다. 철쭉 꽃이 만
발하였다.
[단맥분기점]
너른 헬기장을 지나 이정철주가 있는 단맥분기점인 곳에 선다. 금북정맥과 광덕단맥이 갈라지는 이 지점은 천안시 광덕면과 아산
시 송악면 그리고 공주시 유구읍의 삼면 경계지점에서 금북정맥은 서남진으로 내려가고 한줄기를 북쪽으로 분기하여 송악면과 광덕
면의 경계를 따라 가게 된다.
광덕산 현위치 05-07의 구조목으로 이어진다.
[576봉]
아주 고요한 아침 '삐익삑~' 우는 새는 나무에 걸쳐 있다 내 발자욱에 하늘로 날고 이미 녹음이 짙은 산 길에 산림욕처럼 느껴진다.
초여름의 향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구조목은 광덕산의 현위치를 알리고 있는 산 길을 따라가게 된다.
큰무덤이 잔듸가 흙사이~사이 끼어진 큰무덤을 지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가 보다. 언덕을 오르자 바로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곳이
다.
일렁이는 바람결이 멈추질 않는다. 꽃사진 한 장 담으려 애를 썼지만 결국 흔들리고 말았다, 알 수 없는 꽃이름이 입술에 머뭇
대고 있었다.
한무데기 군락을 이루고 산님들이 빗겨간 그 자리에는 쓰러진 잡목이 가득하다.
[558갈림길]의 이정철주는 광덕산정상 2.3km, 설화산정상 11.5km의 거리를 알리고 있는 곳 558봉이다.
[서귀봉]에는 바위봉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바위들이 능선에 있고 광덕산정상까지 1.4km , 점점 광덕산이 가까이 오고 있는 서귀봉을 지난다. 쭈욱 늘
어선 바위옆으로 지나게 된다.
멋진 암릉을 구경삼아 걷다.
구경거리는 아니되어도 좋았다. 눈요기가 되기도 하고 옛이야기 전해지는 것처럼 누구 코에 붙이겠는가마는.
석류봉 0.5km의 이정철주를 지나고
[광덕산 정상이 보이는]
[석류봉]이다.
'흰산을 꿈꾸던 故 황규영대장 여기 잠들다' 20세의 꽃다운 나이에 설악산 동계 훈련등반에 참가하여 죽음의 계곡에서 훈련하던
중 눈사태를 맞아 세상을 떠난 산악인 천안공대 산악인의 오석비와
'故 황선덕 로체 샬 품속에 잠든 악우여!....' 2003년 한국 로체샬 원정대원으로 출정하였다가 정상직전 난코스를 만나 판상 눈사태
발생으로 약3,000미터 추락 실종된 슬픈 사연을 담은 오석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 곳, 석류봉이다.
까닭이야 어찌됐던 나도 설악산 죽음의 계곡에 있어 보지 않았던가!
백만금 주어도 바꾸지 못할 아까운 분들앞에 고개를 숙인다.
바로 윗봉우리에 선다. 광덕산이다.
정상의 표지석에 서 보았다. 두 번째 서 보는 광덕산이다.
정상석앞에는 '천지정기 우주의 원리'를 기술한 원형 우주의가 주목을 하고 있었다.
[광덕산의 현위치을 표기하고 있는 이정철주]도 있고
강당골로 내려가는 길목에 [광덕산에 올라]의 시비가 세워져 있고
'광덕산에 올라 '
가뿐 숨 가다듬고 장군바위 타고넘어
지팡이 몸을 실어 山頂에 올라보니
크고작은 산줄기 발아래 엎드리고
안개 자욱한 골에 구름이 머흘레라
태고적 신비 가슴에 묻고
마르지 않는 精氣로 마음을 다스리며
千年 歷史속에 말이 없더니
아산만 물줄기 호령하여
새時代를 열게하고
서해바다 품에 안고 기지개 켠다
이름모를 산새는 사랑을 노래하고
땀 식은 이마에 산바람이 시원하니
時人 아님에도 時心이 절로 일어
나옹선사 時 한구절 읖조려 본다.
"靑山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강당골로 내려갔던 기억을 더듬어 보게 된다.
광덕산 정상의 삼각점은 '전의 11, 1984 재설'의 삼각점 번호이다.
귀한 1등급의 삼각점을 또 하나 만나게 된다.
광덕산에 올라 눈에 들어오는 산이 있었다. '배방산'이다. 만경산을 지나 태화산을 지나 배방산으로 이어지는 단맥의 산줄기다.
배방산뒤는 영인지맥의 산줄기를 가늠해 본다. 산이 구비구비 줄비하니 어찌 아니 좋을 쏜가.
그중 광덕산이 으뜸이기에 광덕산의 이름을 빌어 쓴 산줄기의 이름, 정상에 앉아 있으려니 어째서 일까. 학창시절 자취할 때 한 방을
쓰던 친구 하나가 어느 날 연탄불에 올려 놓은 부침개가 눌러붙어 탄내가 진동했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개눈감추듯 해 치우고 비시시 응덩이을 털고 있어났다.
이정철주가 가르키는 광덕산 정상에서 장군바위 0.9km의 길을 떠나게 된다. 투벅투벅 발걸음소리가 느릿거리고 현위치 번호는
광덕산 능선길 3지점으로 이어진다.
산의 높이 만큼 나무의 크기도 크다. 거목이 늘어선 길을 걷게 되고 현위치 구조목도 광덕산 01-11로 이어간다.
[장군바위]
장군바위의 전설을 담은 사연은 이러했다.
'옛날 허약한 젊은이가 깊은 산 속을 헤매다가 허기와 갈증으로 사경에 이르렀는데 어느곳에서인지 물소리가 들려와 소리나는 곳
을 향해 가 보았더니 큰 바위밑에 물이 뚝뚝 떨어져 신기하게 여겨 손으로 물을 받아 먹어 보았더니 그 물을 먹고 얼마되지 않아 몸
이 마치 장군처럼 우람하게 변했다하여 장군바위라 칭하였다'는 사연이다.
그 물을 마셔 보고싶었지만 물은 떨어지지 않았다. 허약한 젊은이의 전설만을 마음에 담아간다.
[부용묘]의 갈림길을 지나
이정철주는 '마늘봉쉼터'를 지나
[만경산삼거리]의 이정철주는 설화산으로 가고 만경산으로 가고 광덕산으로 가는 삼거리이다. 나는 광덕산을 지나 왔으니 만경산
으로 가게 되나누,
아산시 배방면과 송악면, 광덕면의 삼면 경계지점인 570m산봉우리에서 서북쪽으로 설화산을 보내고 나는 동진하여 만경산으로 가게
된다.
[만복골갈림길]을 지나
망경산 현위치 04-03의 구조목을 지나
망경산 정상의 이정철주를 지나자 바로 정상이다.
600m의 산정, 만경산에 표지석이 있는 넓은 산에 헬기장이 있는 곳이다.
망경산의 삼각점은 '전의 302,.. 재설' 해당년도의 숫자 판독불명이다. 산객들이 모여 점심을 먹고 그것도 먹고. 먹고.
산정의 모습이 망측스럽다.
하기는 이곳에서 텐트치고 하룻밤 신세지는 일도 부지기수라더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산이 아닌가.
내려갈 산줄기는 한발 더 가까이 다가와 발아래 있는 것 같았고 속세에는 수많은 삶속에 이글대는 도시가 천안이렸으니 마음속에
품은 뜻을 펼치며 살기를 바랬던 때도 있지 않았을까.
햇빛에 찌는 뜨거움이 의기양양하다. 일만 가지 경치가 한눈에 보인다는 망경산도 그러해서 였을까.
망경산을 내려간다.
[480봉쉼터]를 지나.
망경산 현위치는 03-03을 지나고 녹음이 우거진 비탈진 산을 내려간다. 묘를 지나고 '농장 갈림길'의 이정철주를 지나고
지나온 망경산이 멀어져 갔다.
광덕면과 아산시를 잇는 넋티고개의 절개지가 보인다. 망경산의 현위치 구조목은 03-01로 끝이 나고 땅위 풀섶에 핀 노루오줌
꽃이 꽃방망이(花棒)같다. 주저앉아 핀 꽃에 주절이주절이 늘어놓고 틀어 앉았다. 넋티고개에 차량소리가 석산에 울려 더
크게 퍼진다.
내려갈 줄 모르고 있었다. 베낭은 베개되어 하늘을 보고 누웠다. 친구의 전화벨 소리에 그 반가움에 현위치를 알려주고 밀려
든 문자가 뜬다.
최사장의 문자는 방하나 주인없이 계약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딸래미 결혼초대장, 다른 하나는 ...
베낭에 채운 쑥은 가득하고 친구가 왔다. 넋티고개로 .. 친구따라 내려간 광덕면사무소앞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생전처음 먹어
보는 것처럼 친구가 가져온 수박을 한아름 먹었다. ' 친구가 어찌 아니 좋을 쏜가 .'
광덕산아래 친구의 사촌언니집에 가서 오이농사짓고 산비탈이 밭이고 너른 밭도 밭이다. 앞마당도 밭이다. 고저 부러운 농촌
의 정경 그 자체가 좋았다. 천안으로 와서 근사한 집에서 돈가스도 얻어먹고 염치가 없는 산아래에였다. 호호백발 하얗게 셀 때
까지 나는 가련다.
일주일 후 일요일 오후
5월 15일, 11시 16분 부산행 기차는 영등포역을 출발했다. 느긋하게 기차에 오른 일요일 차창밖으로 보이는 논에는 벌써 모내기를
한 곳도 군데군데 보였다.
늘 그러하듯 천안역에서 버스정류장으로 나와 점심을 먹고 12시 40분 640번 석산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광덕면을 지나 구불구
불 도로를 따라 넔티고개에 올라 날 내려놓고 버스는 회전하고 있었다. 문뜩 버스에 내려서야 '석산'이란 어데일까. 의문점으로
버스정류장에서 산행준비를 완료하여 명막골과 백련사의 표지석이 나란히 서 있는 큰 길따라 나섰다. 태화산정상의 등산로 입구란
안내도 있고 전신주가 나란히 백련사로 가는 길목으로 들어선다.
아카시아꽃이 피어 향이 짙다.
아마 이 산줄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깎아질 듯 산이 파여진 저 산을 '석산'이라 부르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의 궁금증
은 알 수 없었다. 그 산을 들이 밀어 보았다. 그곳이 마루금이기도 했지만 그저 오랫만에 느껴보는 산의 느낌이랄까. 그래서였
다.
백련사로 가는 너른 길이 내려가는 길이고 '태화농원'이라 쓰인 길로 따른다. 현위치구조목은 태화산 02-01로 시작된다.
광덕산 설화산 망경산이라 쓰인 코팅종이가 참나무에 걸려있고 참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이어지는 편한 등로이다.
[405봉]을 지나
태화산으로 오르는 산길은 02-3으로 표시되는 긴급구조 요청시 국가지점 번호로 119에 신고하면 빠른 조치가 되는 설치기구가 있다.
길은 뚜렷하여 지도없이도 갈 수 있는 등로이다. 태화산 오름길이다.
산을 오른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벌써 태화산정상 표지석이 있는 곳 의자도 몇 개 있다.
461m의 태화산 정상석이 있다. 아산시에서 세운 것이기에 태화산일까. 그것이 궁금하여 지난 번 친구한테 물어 본 적이 있기에
천안에서는 태학산이라 부르고 아산에서는 태화산이라 부른단다.
단지 그 이유뿐일까.
이곳에서 300m쯤 가면 삼각점이 있고 정자가 있는 산정으로 간다. 가다 베낭을 길섶에 두고 태화산에서 내려오는 분들이 바쁜
발걸음으로 눈맞춤하고
광풍중학교 갈림길을 지나
태화산 삼각점이 있는 산정 태화산 정상이다. '전의 021, 1984 재설'의 태화산이다. 정자에 어린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과
내려다 보이는 모산의 시내가 조망되는 산이다. 구름에 시내를 감춘다.
햇고사리손으로 걷을 수 있을런지.
되돌아 간다. 표지석이 있는 곳, 300미터쯤 지나온 곳으로 , 그 곳에서 카터로로 적혀있는 이정철주옆을 지나 산길로 이어지는
숲속은 참나무과 고목이 즐비하다.
헬기장을 지나고 광덕산이 우뚝하여 나무들 사이로 보였다를 되풀이 하며 걷게 된다. 눈 길이 자꾸 그 산에 간다.
[광덕산]
헬기장을 지나고 또 광덕산은 여전히 나를 보라한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그 가치의 무게만큼이겠지
[376봉 쉼터]를 지나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산등성이를 지난다. 또 한 켠의 방향을 바꾸어 보면 설화산 아래 수철리저수지가 있는 시골풍경이
정겨웁다.
헬기장을 지나
광덕산은 감출 줄 모르고
쌍용정사 갈림 길을 지난다.
[설화산]아래
설화산을 아니 밟기에 더 예쁜 모습으로 조망되는 이유가 될까마는
△291.6봉
솔치고개의 카터로는 가까이 다가온다. 현위치 235봉은 0.9km의 거리이다.
바람불어 붙잡을 수 없는 꽃잎. 그래도 때죽나무 꽃을 애써 담아 보았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 애처로워.
한방울 떨어지던 비가 잦아진다. 우비를 입고 솔치고개(카터로)로 내려선다. 포장도로를 건너 노란 택시가 산길 옆에 세워져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하다.
솔티고개
배방산 오름길이다. 등산로입구란 팻말도 세워져 있었다. 아카시아꽃이 활짝 피었다. 오름길이 온통 그 향기가 짙어 콧속에
스며든다.
안내도도 있고.
고도를 높여 간다.
[배방산]이 조망되며
배방면으로 가는 도로가 휘어져 간다.
되돌아 온 산이 멋져부려!! 태화산, 망경산, 광덕산이 구름짙은 산에 아카시아꽃들이 수를 놓고 '어찌 아니 좋을쏜가"
민낯이어도, 민소매여도 좋으랴. 종종걸음 옮겼던 저 산을 되돌아 본다.
드디어 오늘의 산, 배방산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큰바위가 중심에 서 있는 듯 하고 돌탑은 수호신처럼 그 공을 세우고 삼각점은 '전의21 1984재설'의 대삼각점이다.
해발고도 361m의 높이의 산정 배방산이다.
통신시설물이 태화산을 지날때 부터 바늘처럼 보이던 시설물, 파란비닐이 하늘을 가린 평의자가 넓게 차지하고 있는 산.
소나무에 걸린 '산유화'가 있고,
'얼이 큰 사람'의 시가 참나무에 걸려 있다.
[배방산은]
윤정사가는 갈림 길을 지나 배방산성으로 내려가게 된다.
공술의 갈림길을 지나고 철탑을 지난다.
[배방산성]의 안내도 유래가 적힌 배방산성
산성의 흔적도 볼 수 있는 터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사진기에 애써 담아 보았다. 산성쉼터를 지나 크라운제과라 쓰인 이정목
을 지난다.
4번 철탑을 지나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산길을 내려선다. 성재에는 삼천리시멘트 공장이 있는 곳을 지나 도로를 따라 걷
게되는 마루금은 온양과 천안을 오가는 차량이 빵빵거리는 도로에 서게 된다. 21번국도였다.
[남동교차로]앞
엇!!, 나는 그곳에서 잘못 내려왔음을 알았다. 남동 동장골사거리에 닿아야 하는데, 그곳에서 동네 한가운데의 도로를 타고 진행
하여 신동 윗배턱거리 온양천이 곡교천을 만나는 곳에서 끝이 나는 약22km의 산줄기의 합수점에 서게 되는데...
비가 억수로 내린다. 갈 곳이 그래도 저 논두렁을 걷다 보면 끝인 것을 알면서도 비를 탓하지 않았다.
배방산과 망경산. 광덕산에도 검은구름이 뒤덮고 비를 뿌린다.
천안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 비옷을 거두고 옷을 갈아입고 버스에 오른다. 친구한테 전화를 넣었으나
신호는 가는데.
좌석이 없어 전철을 타고 집으로 상행. 나는 기억, 니은, 디귿, 리을, 미음, ~~~ 티읕~~노랫말에 우리말을 생각해 보았다.
참 어렵다.
비가 내린다. 곯아떨어지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