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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23구간(화방재-피재) 산행기
오늘 낯에 서울시 심의 서류를 제출했고 다른 일들도 조금 정리가 되어가고 있어서 모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행 채비를 했다. 요새는 복경에서 열리고 있는 올림픽에서 기대한 것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기 때문인지 만나는 사람들도 평소보다 즐거운 느낌이다. 이번에 우리가 가는 곳은 23-24 구간인데 8월15 공유일이어서 하루 일찍 출발해 무박1박 3일로 두 구간을 진행하기로 했다.
11시 7분 강동역을 출발했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 이대장이 휴게소에 들르지 않고 간다며 아침은 산에서 싸온 것을 먹어야 될 가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도시락을 빠뜨리고 온 것이 생각났다. 지리산 종주 산행 때 밥을 제대로 먹지 않아서 고생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위험에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기사분께 말하고 가면서 슈퍼마켓이 나타나면 잠시 세워달라고 했다. 잠시 후 상일동 편의점에 들러 김밥과 간식을 사 넣으니 안심이 되었다.
1시 20분 제천 휴게소에 도착했다. 휴게소에 들르지 않을 예정이었지만 가는 길목에 휴게소가 나타나 자연스럽게 들르게 되었다. 하지만 차에서 내리려니 밖에서 비가 많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천둥번개 소리도 요란했다. 우리 일행은 비가 오더라도 가기로 방침을 정해 두어서 비가 온다고 나서지 않을 것은 아니었지만 내심 긴장이 되었다.
산행에서 가장 염려되는 것은 젖은 신발로 걷는 일이다. 한번 물이 찬 신발은 산행을 다 마칠때까지 그대로여서 발이 부르트고 씻겨서 상처가 나기 쉽다. 그 상황대로 견디기야 하겠지만 처음부터 신발을 다 젓은 상태에서 종일 걷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산꾼 들은 특히 신발이 젓지 않게 하려고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하지만 나는 아예 그냥 감내하고자 한다.
2시 57분 화방재에 도착했다. 비가 내리고 있어서 차 안에서 산행 준비를 천천히 하고 3시 8분 밖으로 나왔다. 화방재를 지나는 길은 국도로서 대간 진행방향 좌측으로는 정선의 사북, 그리고 우측으로 태백시와 연결된다. 깊은 고을들이 그 도로도서 원활히 소통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지난번 산행을 마칠 때 의외의 활기를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비를 맞으며 진행할 방향에 서서 단체 사진을 찍고 산행을 시작했다. 숲길로 접어들 완만한 오름길을 올랐다. 이미 많이 내린 비가 여름의 무성한 나뭇잎을 흠뻑 적시어 풀섭을 스치며 걷는 일행에게 더 많은 물기를 쏟아내렸다. 앞쪽 능선너머 주변에서 개 짓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올라가다 보니 뒤에서 큰 소리로 “최진회장 있어요?" 하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없다고 하자 뒤에서 다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멈추고 뒤의 일행을 기다렸다. 잠시 후 나타났는지 ”출발“ 하는 소리가 들려 다시 걸어 나갔다. 완만한 평지 길을 걷다가 약간 경사가 급해진 내림길을 걸었다. 그리고 다시 오름길을 걸어 3시 48분 수리봉(1218M)에 도착했다.
그 봉우리 주변에는 구미 시청에서 “구미 500억불 수출”을 기원하는 종주 산행 표지가 매달려 있어서 눈에 띠었다. 다시 길을 나서 완만한 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걷다. 4시 5분 급경사 내리막길을 걸었다. 비가 와서 길이 미끄러질 염려가 잇어 랜턴을 비춰 디딜곳을 찾으며 조심스레 걸었다. 잠시 후 다시 완만해진 길에 큰 통나무가 넘어져 있어 다리를 높이 올리고 지나갔다. 계속해서 완만한 길을 가끔씩 오르락 내리락 하며 걷다보니 4시 32분 숲 사이로 함백산에서 발하는 빨간 불빛이 보였다. 먼 거리여서 낯에도 잘 보일 것 같지 않은데 야간 조명의 특성상 쉽게 가늠되었다. 걷다보니 내리던 비가 소강상태가 되어 있었다. 많은 비가 온 후 그치고 있어서 이제 날씨가 좋아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걷다보니 앞쪽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숲을 벗어나 트인 지점으로 나오니 너르게 터가 닦여 있고 좌측에 건물도 보였다. 그리고 그 앞으로 도로가 닦여 있었다. 이대장이 주위에 리본이 없자 나에게 리본을 찾아보라고 하며 자기는 다른 방향으로 가서 찾아보겠다고 했다.
앞으로 걸어가보니 리본 하나가 우측 나무에 걸려 있어서 뒤에 전달했다. 리본이 무수히 걸려 있는 곳도 있지만 그 곳처럼 한동안 보이지 않는 곳도 있는데, 무심코 지나치는 리본 하나하나가 우리의 발길을 안심하며 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약간 내리막 경사진 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횡으로 놓인 도로가 보였다. 대간 길과 만나는 곳에 장애물이 놓여 있어서 몸을 구부려 밑으로 지나갔다.
4시 38분 만항재(1330m)에 도착했다. 이 곳은 남한 구간에서 가장 높은 재인데 함백산이 툭 트여 보이는 곳이었다. 내려온 지점에서 왼쪽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보니 만항재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산장이 보이고 혜선사 입구 표지가 보였다. 다시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가니 맨 뒤에 오는 차 건축사와 이사장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하여 함께 기다렸다. 잠시 후 그들이 도착하며 랜턴 전지를 갈아 끼우고 왔다고 했다. 이번에 참가한 인테리어 회사를 하는 이사장은 집은 대포동이고 회사는 수서인데 여기 오려고 출퇴근시 청계산과 대모산을 오가며 준비했다고 했다.
4시 50분 휴식을 마치고 함백산을 향해 출발했다. 만항재에서 보이는 함백산은 마치 너른 대지에서 서서히 솟구치는 모습을 한 한라산처럼 완만해 보이는 주변 지형으로부터 솟아 보였다. 걷는 동안 비가 그치고 날씨도 밝아진 상태여서 기분도 점차 밝아지고 있었다.
포장길을 걸어가다 우측 주 능선 숲길로 접어들었다. 숲길 입구에는 키가 훌쩍 큰 개망초가 피어 있었다. 완만한 숲길을 가다 급경사 내림길을 걸었다. 다시 평평해진 길이 좌우로 에두르며 이어지고 있었다. 5시 2분 숲길에서 함백산 정상부의 불빛이 보였다. 우측 숲으로 오름길을 걸었다. 아직도 우측 먼 곳에서 천둥 번개소리가 들렸다.
숲이 별로 없는 밋밋한 곳을 지나 숲길로 접어들어 완만한 내림길을 걸었다. 그런데 숲길로 점어드니 깜깜해 다시 랜턴을 켰다. 다시 오름길을 걸으며 뒤돌아보니 지나온 산세가 운해 너머로 보였다. 이 대장이 그 너머 멀리 보이는 산이 태백산일 듯 하다고 했다. 아직 어둑하지만 비가 그쳐 있어서 운해를 이루는 구름과 산이 모두 깨끗하게 보였다. 운해 위로 드러나 보이는 산세가 그윽하고 장엄한 느낌을 주었다. 다시 진행방향을 보며 걸었다. 지나온 태백산도 장엄했지만 다가가는 함백산의 산세와 깊이감도 크게 느껴졌다. 지나는 길가에 관목군락이 많아서 고지대의 느낌이 느껴졌다.
5시 10분 우측에 묘를 보며 완만한 길을 걸어 내려갔다. 그리고 경사가 완만해진 숲길에서 개활지로 트여 나간 길을 걸었다. 숲 너머로 함백산 정상부에서 붉은 불빛이 보였다. 5시 14분 철탑 공터를 지났다. 다시 완만한 내림길을 걷다보니 좌측에서 약간 멀리 차소리가 들리고 주변 능선 너머로 마을 불빛도 보였다. 다시 길 우측에 있는 묘를 보며 지나는 동안 주변이 훤해져서 랜턴을 껐다.
5시 20분 앞에 보이던 봉우리에 당도했다. 어둠이 가시고 막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뒤돌아볼 때 펼쳐지는 곳에는 운해가 깔려 있었고 그 뒤로 태백산 쪽 산세가 구름위에 솟아 보였다. 진행 방향으로는 함백산 정상이 보였다. 길가에 소중한 느낌으로 핀 노랑 마타하리꽃을 보며 숲길 내림길을 지나 포장 도로와 만났다. 우측으로 계속 내려가면 국가대표 선수촌이 있다고 했다. 태릉선수촌과 달리 이 곳은 고원지대 적응 훈련을 위해 마련한 것이었다.
5시 23분 포장길로 내려서 조금 좌측으로 걸어가 함백산이 1.9km 남은 포장 도로 삼거리에 당도했다. 좌측은 31번 국도의 영월, 상동 방향 그리고 우측은 38번 국도의 정선, 정암사 표시가 보였다. 올려다 보이는 함백산 정성 부근에는 통신 탑 등이 보였다. 바로 앞에 설치된 표지판에는 KT 함백산 중계소는 3개 중요 통신시설을 운영한다고 되어 있었다.
앞으로 걸어갈 길 우측 구름 연기처럼 좌측으로 흩어져 날리고 있었다. 그 포장도로가 정상 부근까지 나 있는 듯 했는데 소백산에서 연화봉을 올랐을 때 걸었던 곳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도로로 가다 우측으로 숲길로 접어들었다. 길가에 달맞이 꽃, 개망초, 마타하리 꽃 등이 보였다. 좌우로 임도길 횡단하는 곳을 지나 잠시 후 다시 숲길로 들어서 떡갈나무 철쭉, 소나무 숲을 지났다. 우측에 꽃잎 색깔이 붉은 동자꽃이 보였다. 뒤돌아보니 다시 태백산이 운해너머로 신령스럽게 보였다.
계속해서 함백산을 올라가는 동안 새소리가 들렸다. 완만한 길이 돌로 가지런히 깔려 있는 곳과 계단으로 되어 있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길가에 달맞이 꽃이 청초하고 애잔한 모습으로 피어 있었다. 다시 공터 숲길을 지나며 이대장이 “아! 등산로 좋다“ 고 했다.
5시 44분 점차 경사가 급해지는 오름길에 접어들었다. 길을 걷다 다시 뒤돌아보니 지나온 방향의 조망이 좋았다. 다시 급경사 오름길을 걸어 나가니 함백산 정성석이 육안으로 보였다. 태백산을 넘어온 후로 잠시 평온한 느낌을 뒤로 하고 다시 일어서는 대간의 큰 산을 오르고 있었다. 정상 가까이 오르는 길가에 구절초가 보였다.
5시 54분 함백산(1572.9M)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부분은 너르고 완만하게 되어 있지만 해발 939M인 화방재에 비해 많이 올라온 지점이었다. 정상 근처에서 사진작가들이 작품을 찍고 있었다. 그러나 아까 보이던 깨끗한 모습은 사라지고 뿌옇게 안개가 끼어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좋은 순간을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일행이 모두 모여 정성석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함백산은 평소 잘 알지 못하던 산인데 이 곳도 태백산처럼 신령한 기운이 느껴졌다. 태백산만큼 유명하지 않지만 산 고도가 더 높고 중람백, 상함백 등 인근에 펼쳐진 산세도 광대한 편이었다. 소백산, 태백산, 함백산 등 가운데 같이 백(白)자를 쓰는 것도 서로 연관이 있을 듯 했다. 그러나 함백산은 그냥 묵묵히 자리를 지키려는 듯 보였다. 마치 효령대군이 지위를 양녕에게 새자를 내주고 초연한 삶을 살다가려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전히 안개가 끼어 있어서 근처를 조망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으나, 그 상황이 되니 침묵하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힘을 느끼게 했다. 정상 주변에는 야생화가 많이 피어 있었다. 그런데 그 빛깔이 서서히 가을빛을 띠어가고 있었다. 이제 절기가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하지를 두달 가까이 지난 지금 무박산행에서 새벽을 맞을 때 시간을 보면 확실히 해가 짧아지고 있다. 야간산행에서의 동트임의 시각도 늦어질 것이다. 기온이 떨어지려면 일사 시간이 줄어든 후로도 지구가 식는 시간이 자나야 한다. 그래서 8월은 하지에 비해 일조 시각이 많이 줄어든 때이면서 더위 때문에 그런 느낌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처럼 여름은 약간 몽롱하게 지나는 계절이다.
6시 5분 함백산을 하산했다. 관목지대 작은 주목이 보였다. 돌탑 안개가 자욱했다. 좌측에 안개 사이로 산세가 보였다. 그 가운데 드문드문 삶터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오래전 갔었던 삼척 정선 등지의 깊은 고을들이 떠올랐다. 태백산을 오른 후로 앞으로 남은 대간길은 모두 강원도 지역이다. 이전에 내가 강원도에 갔을 때는 설악산, 관동팔경, 통일전망대, 고성 건봉사, 오죽헌, 월정사, 신리 너와집 등 주로 답사나 관광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지역으로 갈 때는 꼭 별천지로 떠나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 이번에 연이은 구간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깊은 고을에 속하는 정선과 삼척을 접하며 지난다. 그리고 그런 만큼 강원도 특유의 산세를 느끼며 걷게 될 것 같았다. 곳곳에 새로 길을 닦아 놓았지만 강원도 특유의 체취는 여전할 것 같았다.
내림길 주변에 야생화가 많이 있었다. 우측에는 고사목이 된 주목들이 드문드문 서 있었다. 조금 내려가 차로를 건너갔다. 아까 보이던 길의 끝 부분이었다. 다시 내리막길을 걸었다. 좌측 주차장에 여러명의 사진 작가들이 구름 사이로 안 듯 비춰 보이는 지형을 행해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장면을 찍으러 밤에 올라온 것을 보면 그 쪽으로 좋은 풍광이 보일 것 같았다. 그 곳은 구름이 자욱히 끼어 있는데, 언 듯 구름 사이로 속살을 드러낼 듯 하다가 이내 감춰지고 말았다.
6시 23분 소함백을 지나 내림길을 걸었다. 다시 오름길을 걸어 6시 35분 전망대가 있는 제3쉼터(1508)를 지났다. 앞쪽에 짙은 구름때문에 숲길이 깜깜했다. 큰나무가 뉘어 있는 곳을 지나 완만한 길을 걸어가는 사이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사람이 보여 반갑게 인사했다.
6시 58분 제 2쉼터(1208m)에 도착했다. 우로 80m 지점에 물 있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다시 완완만 오름길을 걷는 동안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소리가 들렷다. 봉우리에 올라 다시 오르는 안개 낀 산죽길을 따라 걸었다. 7시 5분 봉우리를 지나 다시 내림길을 걸어갔다. 길이 완만한데다 비가 와서 더 고요한 느낌이 들었다. 7시 11분 야생화가 지천인 숲길을 걸었다.
비가 계속 내리는 가운데 오름길을 걸어 7시 14분 다시 제1쉼터를 지났다. 야생화 군락지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계속해서 완만한 길을 걸었다. 철분 섞인 돌(판석)이 길에 흩어져 있었다. 완만한 오름길을 걸어가는 동안 길가에 맷돼지가 파헤친 흔적이 보였다. 은대봉이 가까워오는 그 지 좌측에 5대 적멸보궁으로 꼽히는 정암사가 위치해 있을 것 같았다. 그 곳은 수마노탑이 유명하고 그 아래쪽으로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열목어 서식지가 있다. 그리고 이 인근에 길이가 4.5Km나 되는 정암 터널(기차선로)이 지나고 있다.
7시 35분 은대봉(상함백1442.3m)에 도착했다. 정상석에는 2006. 9 태백산 주목산우회라고 새겨 있었다. 부슬비가 내렸다. 그 곳에 너른 헬기장이 있었는데 쓰지 않는 듯 무성한 야생화 꽃밭이 되어가고 있다.
거기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7시 45분 은대봉을 출발했다. 내리막 길 끝에 시야가 트여 보였다. 주변이 트인 안부를 지나 봉우리로 오르는 오름길을 걸어 7시 58분 임도를 지났다. 그 곳을 지나는 길 가에는 온통 야생화가 가득해서 과연 천상의 화원길이라 할 만 했다. 그 부근에서 대간 길과 겹치는 임도는 경운기가 다닐만한 넓이였다. 다시 숲 속에 금대봉까지 이어지는 야생화 표지 현수막이 보였다.
8시 5분 두문동재(싸리재1268m)에 도착했다. 지명에서 두문불출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 듯 마치 은둔의 삶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문동재 밑으로는 싸리 터널이 지나고 있는데 물길이 넘지 못하는 곳을 터널을 뚫고 지나가고 있었다. 길로 내려서니 미리 약속한데로 우리가 타고 간 버스가 올라와 있었다. 일행은 거기서 식사를 하고 가기로 하고 관리소 옆 나무 밑에 자리를 폈다. 각자 배낭에서 동그랑땡, 물오징물어, 장아찌, 양파, 오이지, 고추멸치 조림, 계란말이, 김밥, 다시마, 등을 꺼내 놓고 골고루 나눠 먹었다. 그리고 라면 2개를 끓여 따뜻한 상태로 나누어 먹었다. 하지만 가끔 나뭇닢에 맺힌 물방울이 그릇안으로 떨어졌다.
점심식사를 하고 출발 준비를 했다. 출근한 관리소 직원이 서명을 하고 가라고 했다. 통제 구간이니 숲 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길로만 가라고 했다. 이대장이 싸인을 하며 대간 길 가기도 바쁜데 그럴리 있겠느냐고 하자 비가 와서 길이 미끄러울테니 조심하라고 했다. 숲길로 들어서 대덕산까지 이어지는 임도를 지났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대장이 걸려온 전화 통화를 하고 나서 서울에는 비가 인온다고 했다. 우측으로 숲 너머가 천상처럼 훤해졌다. 숲 길에 잎이 깻잎처럼 생긴 들꽃 군락이 보였다.
9시 32분 금대봉(1418.1m)에 도착했다. 안개가 끼어 주변 조망은 할 수 없었다. 좌측에 한강발원지인 검용소가 위치인데 그 인근은 모두 생태 보전지역이었다. 다시 출발해 가는 동안 쉼터에 자연석을 가지런히 배열해 놓은 것이 눈에 띠었다. 그 놓여진 돌들은 마치 고대 유적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길을 가는 동안 계속해서 보였다.
지난 구간의 태백산은 백두대간에서 또아리처럼 인식된 곳이다. 그런데 이번 구간부터 진부령까지는 비교적 곧게 북쪽으로 뻗쳐 올라가는 형국이다. 그런데 금대봉에서 매봉산은 택백시를 감아 돌아가는 형국이다. 그리고 좌로 정선 우로 태백을 지나 삼척으로 접어들어간다. 앞으로 마칠 때까지 지나는 구간은 모두 강원도 지역인데 길이가 길기만 해서 주변의 많은 고을을 지나야 한다. 또한 큰 산들의 파노라마처럼 인식되는 오지요 험지의 느낌이 든다. 그만큼 대간을 걷는 심리적 부담도 생기게 된 된다.
다시 길가에 맷돼지 흔적이 보며 내림길을 걸었다. 지도상에 나타난 천의봉을 향해 걷고 있는 동안 길은 완만하였다. 다시 길가에 맷돼지 금방 페헤친 것 같은 곳이 보였다. 버섯이 많이 자라나는 철인데 잘 눈에 띠지 않다가 모처럼 빨간 버섯이 보였다. 9시 55분 안개낀 내리막 숲길을 지났다.
10시 1256봉에 닿았다. 좌측에 검용소가 대간 길과 최단 거리로 잇는 지점인데 1.3km로 쓰여 있었다. 그 것은 아까 두문동재에서 본 사진대로, 검은 구멍에서 괄괄 쏟아져 나와 강의 시원이 되고 있 그 모습은 상상만해도 신비롭게 느껴진다. 그러나 시원의 물줄기 정체는 정확히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산지 전체가 발원지라고 해야 맞을 듯 하다.
평지처럼 밋밋한 내리막 길을 지나 10시 8분 완만한 오르막길을 걷다 잠시 후 다시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리고 다시 오름길을 걸어 10시 12분 1233.1봉에 당도했다. 또 잠시 후에는 원시림처럼 무성한 곳을 지나 10시 24분 쑤이밭령에 도착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가던 중 10시 35분 비가 와서 우비를 다시 입었다.
길 옆 나무에 용인동백점이라고 쓰여 있는 백두대간 리본이 보였다. 대간 리본 중에 그 리본이 가장 선명했는데 그렇게 뚜렷할수록 든든한 느낌을 준다. 숲길은 낯인데도 깜깜했다. 부슬비와 안개 때문에 눈이 번쩍 뜨일만한 전망도 보이지 않은 곳이어서 나 자신의 생각을 하며 걸었다.
뒤돌아보면 살아오는 동안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러 보낸 것 같은 때이다. 대체로 삶은 허겁지겁 고단한 시간들을 보내기 일쑤이다. 스스로 행복한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매 순간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를 맞으며 걷고 있는 이 순간도 역시 중요한 순간일 것 같았다.
올해도 정오가 지나듯이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여름은 더운 열기로 가득하다. 그러나 게절이 변하는 것은 태양 고도가 변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상태에서 열기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기후는 지구가 갈구워진 상태와 연관이 있다. 서서히 달구워지고 서서히 식는다. 일사가 줄어도 더위는 계속되고 일사가 많아져도 추위가 지속되는 상태에서 일조 시각과 온도와의 차이에 의해 미묘한 계절 감각이 생기게 된다. 마치 열기구처럼 공기가 달아 팽창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요새는 대기에 더운 기운이 가득하다. 지구 온난화로 그러한 기운이 점차 더 많이 쌓여 있어서 에너지의 충돌로 천둥 번개가 되어 요새 같은 이상 기후가 나타났다고 한다.
10시 47분 비단봉(1279m)에 닿았다. 비단봉 전망대라고 뒤로 지나온 산세를 찍은 사진을 부착한 표지가 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어 더 실망스러웠다. 찍으니 바로 앞으로 보이는 숲이 무성한 봉우리만 찍혔다. 다음 나타날 봉우리는 천의봉(매봉)인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궁금했다.
11시 7분 금대봉을 4.1km 지나온 표지를 지났다. 피재까지는 3.5km였다. 완만한 초원을 내려갔다. 묘목을 심어 놓았으나 풀에 파묻혀 유심히 보아야 알 수 있었다. 내려서니 좌측으로 배추밭이 보였다. 11시 42분 내려와서 안개 낀 길을 에둘러 갔다. 그 곳은 해발 1272m이며 고랭지 배추밭 면적이 40만평이나 된다고 했다. 농로로 닥인 길을 돌아서 오름길을 걸으니 앞에 정상 봉우리가 보였다. 이 대장이 대간 마루금은 좌측 물탱크라고 했다.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파란 물탱크가 보여 그것을 보고 걸어가 보니 그것은 물탱크가 아니고 차량에 실린 배추 담는 용기였다.
길을 벗어난 듯한 느낌에 트럭 기사에게 물어보니 포장길로 가다가 만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제 코스를 찾아가자고 하며 밭고랑을 지나서 앞에 보이는 산으로 걸어갔다. 이대장과 함께 올라가니 대간 리본이 보였다. 그리고 그 봉우리 정상부를 지나 다가가니 풍력 발전기가 있었다. 안개 속에서 잘 보이지 않고 소리로 인식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개만 있는 줄 알았는데 좌측에 연이어 있었다. 낚여진 길을 따라 가다 리본을 보며 좌측으로 갔다. 그러나 잠시 후 공터에서 리본이 보이지 않자 당황하게 되었다. 그 곳은 바람의 언덕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대장이 뒤돌아가 살펴보고 돌아와 찾지 못하고 아래쪽으로 걸어갔다.
안개 속에서 다가가자 풍력 발전기가 연속해서 나타났다. 8번째 보이는 풍력 발전기로 가는 길 좌측으로 담장이 조금 띠어 있는 곳을 발견했다. 내가 그쪽으로 가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하자 강 건축사 그 너머 리본이 보인다고 해서 그쪽 산길로 접어들었다.
12시 3분 천의봉 매봉 1303.1m에 도착했다. 정상석을 확인하고 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숲길을 지나 12시 27분 다시 배추밭을 지났다. 농시 짓는 사람을 만나 물어보니 8월말 출하하고 그 이후에는 심지 않는다고 했다. 비가 더 세차게 내려 시야가 잘 보이지 않았다. 다시 숲길을 지나 나타난 포장도로를 걷다보니 우측에 리본이 걸려 있었다. 이 대장이 그리 접어들며 걸어갔다. 우거진 풀숲에 이슬이 많이 맺혀 있는 곳이어서 걸어가면서 옷에 물기가 다시 흠뻑 젖었다.
12시 26분 대간 낙동 분기점에 도착했다. 낙동정맥은 태백시를 빙 둘러싸고 남쪽으로 뻗쳐간다. 결국 백두대간과 낙동 정맥이 태백시를 감싸고 잇는 형국이다. 낙동 정맥 분기점에서 좌측으로 내려섰다. 전라등산지소 임도가 있는 완만한 길을 걸어 내려갔다. 길가에 가축 탈출을 막기 위해 전기가 통하게 한 울타리도 있었다. 그 옆길을 따라 내려와 포장도로로 내려서 조금 걸어가니 피재가 나왔다.
12시 35분 피재에 도착했다. 한강, 낙동강, 오십천이 생성되는 지역이어서 옆 공원에는 그를 기념하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1시 20분 다시 건의령으로 출발했다. 원래 피재까인데 건의령까지 더 걸어두려는 것이었다. 남은 거리는 6.4km였다. 조형물 뒤쪽으로 들어서 숲길을 걸어갔다. 완만한 길을 오르락 내리락거리며 걸었다.
1시 52분 944.9봉을 지나 내리막 길을 걸어가자 임도가 나왔다. 게속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길을 걸어가는 동안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3회 연속 우중산행이었다. 거의 도착할 지점 좌측으로 조망이 되어 바라보니 한반도 모양처럼 생긴 지형의 영월군 서면 옹정리 선암 마을이었다. 이 마을에서 시작되는 서강이 동강을 이루기 위해 구비쳐 내려가면서 만들어 놓은 비경이라 한다. 형태도 신기하고 모처럼 시야가 트인 것이 반가워 비를 맞으며 그 모습을 스케치했다.
3시 20분 건의령(해발 851m) 도착했다. 이번에 지난 재나 령 등은 지난 구간에서 높은 산봉우리보다 더 높았다. 건의령은 태백 상사미에서 삼척 토개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건의령(巾衣嶺)이라고도 한다. 고려말 때 삼척으로 유배온 공양왕이 근덕 궁촌에서 살해되자 고려의 충신들이 이 고개를 넘으며 고갯마루에서 관모와 관복을 걸어놓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고 하며 고개넘어 태백산중으로 몸을 숨겻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고개이다. 여기서 관모와 관복을 벗어 걸어두고 갔는데 관모를 뜻하는 건과 의복을 뜻하는 의를 합펴 건의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곳은 올해 초 많은 눈이 내려서 도계읍 건의령과 삼포리 노곡면 여심리, 개산리, 주지리, 마읍리 마을에서 육군 23사단 장병 400여명과 자이를 투입 군 장병이 투입되어 진입로를 개설하는 등 제설작업을 벌였었다. 길을 따라 좌측으로 가면 동면이 나오고 동대천이 흐른다. 그리고 그 이후에 ‘어리’ 등 정감 있는 지명을 가진 마을들이 있어서 깊고 평화로움을 떠올릴 수 있다.
차에 오르니 운전기사가 쉴 곳을 찾아 둔 듯 내려갔다. 3시 50분 목욕탕 도착했다. 목욕, 빨래, 건조 시켰다. 씻고 마른 옷을 입으니 기분이 아주 맑아졋다. 몸 상태에 따라서 이렇게 기분이 달라지게 된다는 것이 특별하게 여겨졌다. 옷을 다 갈아 입고 있으니 잠시 후 식사를 하러 가자고 했다. 건물을 나서려니 게속해서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기사님이 우산을 챙겨 주었다.
4시 40분 경성 실비(순한우) 식당에 도착했다. 순수 한우만 취급하는 태백시에서 유명한 집이었다. KBS 무인지대 큐 TY방영 2005년 4월 18일이라고 쓰여 있었다. 내온 것을 보고 채총무가 고기 양이 많다고 했다. 고기 맛이 담백하고 김치 넣은 된장찌개도 맛이 있어서 편하고 즐거운 식사를 했다. 다시 숙소인 목욕탕으로 돌아갔다. 자리를 정리하고 있자니 납자 양궁 시합을 중계방송하고 있었다. 그러나 금메달을 놓쳐서 아쉬운 가운데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08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