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장 12절은 개혁주의의 전통적 견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많이 사용되었지만, 그 본문이 아담으로부터 죄책을 직접 물려받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원죄유전설을 주장한 것은 이 본문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은 주목할 만하다. 그것을 처음 지적한 신학자는 리요네(Stanislaus Lyonnet)였다. 리요네의 설명에 따르면 아우구스티누스는 헬라어 ‘왜냐하면’(eph'hoi)을 라틴어 「벌게이트 성경」 (Latin Vulgate)에서 ‘그 안에서’(in quo)라고 잘못 번역한 제롬(Jerome)의 견해를 따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리요네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모방”(imitation)이 아닌 “유전”(propagation)을 통해 우리가 모두 죄인이라는 신학을 발전시켰다고 비판했으며, 이로부터 림보(limbo) 전통이 생겨났고, 모든 침례 받지 않은 유아들이 저주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사실 이 입장은 결국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구원되어야 한다는 만인구원설로 나가거나 아니면 타락전 선택설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전통적 칼뱅주의는 타락전 선택설 혹은 이중예정설로 나갔고, 수정 칼뱅주의자인 칼 바르트는 만인구원설을 주장한다는 의혹을 받았다.
연방설을 지지하기 위해 개혁주의가 의존하는 또 다른 성경구절은 에베소서 2장 3절인데,이 본문 역시 재고의 여지가 있다. 여기서 문제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by nature objects of wrath, NIV)라고 해석한 부분이 과연 원죄의 직접전가를 뒷받침할 만한 토대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해석에 따르면, 아담의 후손인 우리는 날 때부터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데, 이는 우리가 아담으로부터 직접 물려받은 죄책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렌즈의 설명에 따르면, “진노의 자녀”를 반드시 그렇게 해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분노라는 특징을 지니는 사람들”로 번역될 수 있다. 바우어(Walter Bauer)사전과 테이어(Joseph H. Thayer)사전에 따르면, 자녀들이라는 헬라어 ‘테크논’(teknon)은 추상명사와 함께 사용될 때 특별한 용법을 가진다. 이 경우 테크논은 분노라는 헬라어 추상명사 ‘오르게스’(orges)와 만나면서 “무엇에 의해서 특징지어지는 사람들”의 의미가 된다. 이런 용례는 “빛의 자녀”(엡 5:8), “지혜의 자녀”(마 11:19)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문맥상으로도 이 표현은 “인간의 운명”을 말한다기보다는 “인간의 행동”에 초점이 있다.
따라서 바울은 이 문장을 통해 아담의 후손에게 아담의 죄가 직접 전가되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우리의 죄악된 상태의 특징”을 설명하려 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러므로 이 본문을 죄책의 직접전가를 지지하는 토대로 삼는 것은 그 근거가 취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무디는 로마서 5장 12절과 에베소서 2장 1절이 모든 반대자들에게펠라기우스주의자라는 잘못을 씌워 억압하려는 사람들의 “병기고”에 저장되어 있다고 풍자했다. 사실 아우구스티누스주의와 개혁주의의 원죄유전설과 연방설은 결국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구원되어야 한다는 만인구원설로 나가거나 아니면 타락전 선택설 혹은 이중예정설로 나갔고, 수정 칼뱅주의자인 칼 바르트는 만인구원설을 주장한다는 의혹을 받았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24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