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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方廣佛華嚴經 卷第七十一
立法界品 第三十九之十二
三十六. 寂靜音海主夜神 -- 第五難勝地善知識
1. 依敎趣求
爾時에 善財童子가 於普救衆生妙德夜神所에 聞菩薩普現一切世間調伏衆生解脫門하고 了知信解하며 自在安住하야 而往寂靜音海夜神所하니라
2. 見敬諮問
頂禮其足하며 遶無數帀하고 於前合掌하야 而作是言호대 聖者여 我已先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하고 我欲依善知識하야 學菩薩行하며 入菩薩行하며 修菩薩行하며 住菩薩行하노니 唯願慈哀하사 爲我宣說하소서 菩薩이 云何學菩薩行이며 云何修菩薩道리잇고
3. 正授法界
(1) 受讚問法
時彼夜神이 告善財言하사대 善哉善哉라 善男子여 汝能依善知識하야 求菩薩行이로다 善男子야 我得菩薩念念出生廣大喜莊嚴解脫門호라 善財가 言호대 大聖하 此解脫門이 爲何事業이며 行何境界며 起何方便이며 作何觀察이니잇고
(2) 起何方便答
夜神이 言하사대 善男子야 我發起淸淨平等樂欲心하며 我發起離一切世間塵垢淸淨堅固莊嚴不可壞樂欲心하며 我發起攀緣不退轉位永不退轉心하며 我發起莊嚴功德寶山不動心하며 我發起無住處心하며 我發起普現一切衆生前救護心하며 我發起見一切佛海無厭足心하며 我發起求一切菩薩淸淨願力心하며 我發起住大智光明海心하며 我發起令一切衆生超過憂惱曠野心하며 我發起令一切衆生捨離愁憂苦惱心하며 我發起令一切衆生捨離不可意色聲香味觸法心하며 我發起令一切衆生捨離愛別離苦怨憎會苦心하며 我發起令一切衆生捨離惡緣愚癡等苦心하며 我發起與一切險難衆生作依怙心하며 我發起令一切衆生出生死苦處心하며 我發起令一切衆生捨離生老病死等苦心하며 我發起令一切衆生成就如來無上法樂心하며 我發起令一切衆生皆受喜樂心호라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七十一
立法界品 第三十九之十二
三十六. 寂靜音海主夜神 -- 第五難勝地善知識
적정음해주야신 제5 난승지 선지식
오늘 화엄경 전체 80권 중에서 71권째 그 다음 입법계품으로써는 12권째 들어가는 차롑니다. 53 선지식 중에서 36번째 해당하는 선지식 적정음해주야신寂靜音海主夜神, 이 선재동자가 선지식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우리가 꼭 염두에 새겨야 할 점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은 누구나 다 선지식이다 하는 그런 입장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신이 많이 나오는 거야 말할 것도 없고 별별 직업과 별별 종교를 가진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나오죠. 여기 적정음해주야신 이분은 제5 난승지선지식第五難勝地善知識이다, 이건 경전 안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55위 보살의 수행 점차를 가지고 배대를 하면은 부합을 시키면은 제5 난승지第五難勝地에 해당되는 선지식이다 그래요.
난승難勝 이기기 어려운 지위, 그 지위에 올라 가면은 결코 누구도 어떤 법력이라 할까 도력이라 할까 이런 것을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난승지라 하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십지 가운데 한 5번째 지위죠.
1. 依敎趣求
의교취구依敎趣求라. 앞서 선지식이 가르쳐준 거에 의지해서 나아가서 또 새로운 선지식을 구하다 그래요. 우리가 어떤 스승에게 어떤 스님에게 또는 어떤 선생에게 무엇을 배우다가 또 다른 선생을 소개를 하면은 그에 따라서 또 그 선생을 찾아가기 마련이죠.
무엇을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또 자꾸 선지식을 찾아 나서야 돼요. 요즘 선지식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 두루두루 다니면서 법회도 많고 절도 많고 불교학교도 많고 곳곳에 행해지는 그런 법회들을 찾아다니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찾아 다니면서 견문을 많이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이 듣다 보면은 또 자기 불성이 있으니까 얼마든지 자기 지혜 또 자기 마음으로 그런 판단이 서게 돼 있어요. 판단이 서게 돼 있어서 '아! 어떤 선생의 가르침은 또 그것이 일리가 있다 또 어떤 스님의 가르침은 또 그것이 일리가 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두루 규합을 해서 내 생활에 용해를 시켜가지고 내 살림살이로 만드는 그런 마음가짐이 꼭 필요합니다.
편식은 안 좋잖습니까. 몸에도 편식은 안 좋듯이 법문도 편식은 안 좋은 거예요. 공부도 편식은 안 좋은 거고. 골고루 다 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선재동자가 우리의 모델인데 그 모델인 선재동자의 모습을 생각하고 그가 걸어간 길을 생각하면은 우리가 '아! 우리도 선재동자처럼 살아야 되겠다' 선재동자가 만난 선지식이 처음에 문수보살인데 문수보살이 보통 분입니까.
그렇지만 그가 다른 사람을 소개를 하면 그에 따라서 또 그 사람을 찾아가고 문수보살보다 낫다 못 하다 이게 문제가 아닌 거죠. 설사 못 하다손 치더라도 거기에 가면 거기는 거기대로 공부할 것이 있고 배울 것이 있고 그런 마음 자세가 중요합니다.
'아이고 나는 누구에게 공부하니까 더 이상 배울 게 없더라' 물론 그럴수도 있어요. 그럴 수도 있지만은 그래도 마음을 확 열어놓고 어떤 사람의 누구의 이야기도 귀담아 듣고 거기에도 일리가 있다 이렇게 마음가짐을 갖는 사람이 이 화엄경을 공부한 사람이라.
그리고 선재동자를 조금이나마 닮은 사람이다 라고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괜히 헛시간 소비해 가면서 자꾸 우정 찾아 나설 필요는 없다 하지만은 인연 따라서 어느 법회에 가서 듣게 되면은 거기 간대로 '아이 들을 거 없다' 이렇게 할 것이 아니라 이왕 왔으면은 마음을 기울여서 귀담아 들으라는 거죠.
그래 여리박빙如履薄氷이라, 법문을 듣는 자세에 대해서 우리 스님들 공부하는 초발심자경문에는 그걸 이야기를 해놨어요. 마치 얇은 얼음을 밟는 거같은 그런 아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주 조심하는 마음으로 들으라.
그래서 들어서 혹 미진한 게 있으면은 뒤에라도 물을 기회가 있으면 물으라. 본인에게 묻든지 다른 사람에게 묻든지 그렇게 물어서 미진한 것을 해결하도록 하라 하는 그런 공부하는 자세 법문을 듣는 자세 이런 데에 대해서 그렇게 이야기를 해놨어요.
그리고 또 부처님이 유언처럼 말씀하신 유언이죠 뭐. 법사의法四依(依法不依人, 依智不依識, 依義不依語, 依了義經不依了義經 )라고 하는 것이 열반경에 있는데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이라 그랬어요.
어디 가서 법문을 듣는데 그가 사람이 어떻다 젊은 사람이다 늙은 사람이다 그 사람의 생김새가 어떻다 행동이 어떻다 이런 걸 따지지 말고 그가 가르치는 법을 중심으로 그렇게 들으라 그랬어요.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 법을 의지할 것이지 그 사람을 의지하지는 말라. 그 사람이 말이지 마음에 들 때는 의지하고 마음에 안 들면은 의지하지 않게 되고 그러면 곤란하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가르쳐 주는 그 법을 의지할 것이지 그 사람의 됨됨이 그 사람이 늙으면 같이 늙을 수는 없는 거 아니요. 그 사람이 아프면 같이 아플 수도 없는 거 아니요. 사람에는 관심 갖지마라 그러면서 초발심자경문에 또 이렇게 이야기 해 놨어요.
어떤 사람이 횃불을 들고 길을 가는데 어두운 길을 같이 갈 때는 그 횃불을 우리가 같이 받아서 길을 밝히고 가야 된다 이 말이야. 그런데 알고 보니 그 횃불 든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동네에 소문이 났다 그래서 만약에 '에이 저 나쁜 사람이 들고 가는 횃불 나는 안 받을란다 그 불빛 안 받을란다.'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어두운 길을 가다가 구렁텅이에 떨어지고 부딪치고 해서 상처 받고 다칠 수밖에 없지 않느냐. 그 사람이 나쁘지 횃불 빛이 나쁜 건 아니지 않느냐. 그러니까 횃불빛만 쫓아갈 것이지 사람을 그렇게 마음에 두고 취사선택을 해서는 절대 그게 공부하는 자세가 아니다 그랬어요. 참 좋은 말이죠. 그런 이치는.
아주 깨달은 분들이 하나하나 일러준 이야기들을 우리가 마음에 가만히 새겨보면은 참 너무나도 지당한 말이라. 부처님도 내가 이 세상에 더 오래 머물 이유도 없는 것이 지금까지 내가 설해놓은 그 가르침 속에 다 있다 이거야. 내가 더 있은들 그보다 더 다른 말이 뭐가 또 있겠는가 이런 말도 있어요. 경전에 그런 이야기가 있다고요.
결국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도 그분의 가르침인 것이지 그분의 사람을 두고 하는 게 아니다 이런 사실이죠. 그래서 참 선재동자를 우리가 생각하면은 보면은 53명중에 별별 사람이 다 있죠.
불을 섬기는 그런 외도도 있습니다. 불을 섬기는 외도. 그런 경우 같은 거 생각해보면 참 선재동자가 참 훌륭한 마음을 가진 것이 정말 우리의 모델이 되고도 남는 그런 인물이다 하는 것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작년에 한 선지식 이야기를 하고는 그 이야기가 이제서 끝나고 오늘 새로운 선지식을 이렇게 만나게 됐습니다. 적정음해주야신이라고 하는 선지식이죠. 가르침에 의지해서 나아가서 구하다.
爾時에 善財童子가 於普救衆生妙德夜神所에
이시 선재동자 어보구중생묘덕야신소
그때 선재동자가 보구중생묘덕야신普救衆生妙德夜神의 처소에서
聞菩薩普現一切世間調伏衆生解脫門하고
문보살보현일체세간조복중생해탈문
보살의 보현일체세간조복중생해탈문普現一切世間調伏衆生解脫門이라고 하는 법문을 듣고
了知信解
요지신해
요지了知, 환히 알았다. 이 요了자는요. 그냥 아는 게 아니라 환히 아는 것을 요지了知라 그래요. 알 요了자 알 지知자 확실하게 아는 거죠. 그리고 믿고 이해하게 됐다 이거야. 알고 믿고 이해하게 됐다.
自在安住
자재안주
아주 자유자재하게 그 법문에 안주安住했다 머물렀다 이 말이죠. 머물러서
而往寂靜音海夜神所하니라
이왕적정음해야신소
적정음해야신소寂靜音海夜神所에 가게 됐다, 그러니까 과거에 선지식에게서 배운 것을 그대로 다 받아들이고 아주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믿고 그리고는 그 법문에 아주 편안하게 내 몸과 마음을 머무르게 하고 그리고 나서 완전히 소화를 했다고나 할까, 과거 선지식에게서 들은 법문을 완전히 소화를 하고 그리고 다음 선지식의 처소에 나아가게 됐다
2. 見敬諮問
견경자문
견경자문見敬諮問이라, 보고 뵙고 공경하고 그리고 물었다 이런 뜻이죠.
頂禮其足하며 遶無數帀하고
정례기족 요무수잡
그 발에 정례를 하고 예배를 올리고 무수한 바퀴를 이렇게 돌았다, 이건 성인에 대한 예의의 표시로써 우리 탑돌이 하듯이 그 분이 앉아 있으면 그 주변을 이렇게 도는 거예요. 그게 공경의 표시라.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르는 거라. 무수잡無數帀이야. 무수한 바퀴를 돌고
於前合掌하야
어전합장
그 앞에 합장을 해서
而作是言호대
이작시언
이런 말을 하기를
聖者여 我已先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하고 我欲依善知識하야
성자 아이선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아욕의선지식
성자시여 나는 이미 먼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냈습니다. 그리고 나는 선지식을 의지해서
學菩薩行하며
학보살행
보살행을 배우고
入菩薩行
입보살행
보살행에 내 몸이 들어가. 배우고 그것이 이제 내가 보살행화 돼버린 거죠. 들어가고 그것을 내가 몸소 실천하는 거
修菩薩行
수보살행
또 보살행을 닦아.
住菩薩行
주보살행
보살행에 안주해. 이젠 보살행으로 살아 그만. 그렇게까지 됐다 이거야. 학學 입入 수修 주住 네 가지 조건, 처음엔 배우고 그 속에 내 몸이 푹 잠기고 입入, 그것을 몸소 실천하고 그 다음에 주보살행住菩薩行이라. 이리가나 저리 가나 이젠 보살행이야. 주보살행住菩薩行. 내가 그쯤 됐는데
唯願慈哀하사 爲我宣說하소서
유원자애 위아선설
그런데도 내가 더 공부하고 싶어한다 이거야. 그러니 공부하고 싶어하는 나를 자애慈哀하사 아주 자비롭게 생각하셔서 나를 위하여 선설宣說하소서.
菩薩이 云何學菩薩行이며 云何修菩薩道리잇고
보살 운하학보살행 운하수보살도
보살이 어떻게 하면 보살행을 배울 수 있습니까. 또 보살도를 닦을 수 있습니까. 시종일관 보살행이야. 묻는 것도 보살행이고 또 자기가 하고 있는 일도 보살행이고 궁극에 가서는 성불이 문제가 아니고 보살행이 문제다 최종목표가 보살행입니다 불교는요.
성불도 보살행 하기 위해서 실력 키우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돈을 벌면은 좋게 잘 쓰기 위해서 버는 것이 목적이지 돈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거죠. 이게 우리 불자들은 정확하게 알아야 돼요. 성불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성불한 것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나누자고 하는 거 이게 목적이다. 나누는 게 목적이다.
그러기 때문에 보살행을 배우고 들어가고 닦고 거기에 안주한다 그리고 선재동자도 어떻게 하면 보살행을 배울 수 있습니까 또 어떻게 하면 보살도를 닦을 수 있습니까 라고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불교인의 이상적인 삶을 상구보리하화중생 그러죠. 위로는 끊임없이 부처님의 깨달음을 향해서 나아가고 그 다음에 아래로는 내 힘 닿는 데까지 사람들을 이끌고 제도하는 거예요.
몸으로 이렇게 봉사활동도 좋고 경제적인 능력으로 보시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은 그러나 불자로서 가장 값진 보시 값진 보살행 값진 봉사는 뭔고 하면 결국 부처님 법을 닦을 수 있고 부처님 법을 들을 수 있고 부처님 법을 배울 수 있는 그런 봉사가 제일 값진 봉사예요. 이건 내가 부처님 앞에 가도 내가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거라.
근래에 와서 우리 불자들이 봉사활동 참 많이 하거든요. 복지회관같은 운영도 참 상당히 많이 하고 옛날에는 그런 거 없었어요. 그래서 남을 어려운 처지를 돕는 그런 활동을 상당히 많이 하는데 내가 늘 그럴 때마다 당부하는 게 부처님이라고 생각하고 부처님에게 받들듯이 그런 마음으로 받들어라.
그러면은 좀 그건 이제 불자로서 봉사활동 하는 의미가 거기에 살아난다 거기에 더해서 어떤 부처님의 제대로 된 법을 일러주는 것 이것이 가장 값진 봉사활동이고 값진 보살행이다. 보살행도요. 여러가지가 있어요. 얼마든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 좋은 보살행이지만은 이왕 값진 보살행을 할려면 부처님 법을 펴는 일 부처님 법을 공부하게 하는데 도움 되는 일 예를 들어서 포교당이 필요하다면 포교당을 우리가 만드는데 일조를 하는 그것도 크게는 부처님 법을 펴는데 일조를 하는 거예요.
법당을 짓는데 우리가 또 부처님을 조성하는데도 궁극에 가서는 부처님 법을 펴는데 일조를 하기 때문에 부처님을 조성하고 법당을 짓는데 시주를 하는 거예요. 그렇게 돼야 되는 거예요. '아이고 법당하고 부처님 하는데 복이 된다더라' 이렇게 하면 안돼요. 그건 복이 적게 돼.
좋지 부처님 조성하는데 시주 많이 하면 좋은 일이죠. 하지만은 무슨 불상만 모셔놓고 어쩌자는 말입니까. 본래 부처님을 모시는 뜻은 부처님 법을 펴자는데 하나의 방편으로 모시는 것이니까 궁극에 가서는 부처님 법으로써 사람들에게 공양하는 것 부처님 법으로써 시주하는 것 여기에 관계가 되기 때문에 그래서 법당 짓는데도 시주하고 불상 만드는데도 시주하고 무슨 강당 만드는데도 시주하고 한다 이렇게 돼야 돼요.
그래야 이치가 맞아떨어지는 것이지 그렇지 아니 하면은 크게 의미가 없다 하는 거 이런 것들도 제대로 우리가 알고 하면 같은 보시라도 복이 훨씬 많이 되고 모르고 하면은 같은 보시라도 같은 시주라도 그 값이 훨씬 떨어질 수가 있는 거죠.
3. 正授法界
정수법계
정수법계正授法界라, 바로 법의 세계 적정음해주야신이라고 하는 선지식이 공부한 것을 준다 이 말이야. 정수正授 바로 준다 가르쳐 준다 이 뜻입니다. 그 다음에
(1) 受讚問法
수찬문법
수찬문법受讚問法이라, 찬탄을 받고 법을 묻게 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時彼夜神이 告善財言하사대
시피야신 고선재언
그때 주야신이 야신이 선재에게 고해 말하대
善哉善哉라
선재선재
훌륭하고 훌륭하다
善男子여 汝能依善知識하야 求菩薩行이로다
선남자 여능의선지식 구보살행
선남자여 그대는 능히 선지식을 의지해서 보살행을 구하도다, 이게 찬탄하는 거라. '선재동자야 너는 참 선지식을 찾아가지고 보살행을 구할려고 여기끼지 왔구나. 정말 좋은 일이다.'
맹자에 보면은 맹자가 양나라에 갔어요. 가니까 양나라 혜왕이라고 하는 왕이 노인께서 그 당시 중국시대에 작은 나라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중국 천하에 아주 유명한 성인에 가까운 그런 훌륭한 인물로 소문이 나 있으니까 묻는다고요.
'당신이 훌륭한 분인데 맹자 당신이 우리나라에 온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이익을 우리나라에 어떤 이익을 줄려고 오십니까?' 그렇게 물었어요. 그러니까 '하필이면 왜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이익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랬어요.
이익보다 더 우선하는 것은 인과 의다 사랑과 정의다 이 말이야. '사랑과 정의 이것이 이익보다도 우선하고 내가 그것을 펴기 위해서 그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나는 당신의 나라에 왔노라' 그런 대화가 있듯이 여기는 선재동자가 보살행을 공부하러 왔고 보살행을 닦으려고 하는 뜻에서 왔으니 그걸 칭찬 안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보살행을 구하는도다.
善男子야 我得菩薩念念出生廣大喜莊嚴解脫門호라
선남자 아득보살념념출생광대희장엄해탈문
선남자야 나는 얻었다 무엇을 얻었는고 하니 보살이 염념念念에 출생광대희出生廣大喜 하는 장엄해탈문莊嚴解脫門을 얻었다 그랬어요. 자기가 공부한 어떤 내력을 이야기 하는 거죠.
순간순간 보살로서 순간순간 광대한 기쁨 그것은 곧 우리에게 큰 장엄 인생의 큰 장엄이고 해탈이다 이거야. 그래서 광대한 기쁨을 내는 출생하는 장엄해탈문을 얻었다 그랬습니다. 기쁨보다 더 좋은 게 없죠. 광대 넓고 큰 기쁨은 이렇게 했습니다.
善財가 言호대 大聖하 此解脫門이
선재 언 대성 차해탈문
선재가 말하대 대성이시여. 이 해탈문이
爲何事業이며
위하사업
무엇을 위한 사업이냐. 어떤 사업이냐. 그리고
行何境界며
행하경계
어떤 경계를 행하는 것이냐. 또
起何方便이며
기하방편
어떤 방편을 일으키는 것이냐. 또
作何觀察
작하관찰
어떤 관찰을 짓는 것입니까. 관찰은 뭐고 방편은 뭐고 경계는 뭐고 사업은 뭐냐. 선지식께서 말씀하시는 염념출생광대희念念出生廣大喜 광대한 기쁨을 출생하는 그런 해탈문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이고 어떤 경계고 어떤 방편이고 어떤 관찰이냐 이걸 물은 것입니다. 그래서
(2) 起何方便答
기하방편답
기하방편답起何方便答이라, 어떤 방편을 일으키냐 라고 하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인데 나는 이와 같은 마음을 냈습니다. 마음 낸 것에 대해서 죽~ 설명을 합니다. 전부 마음 낸 거예요. 발심한 거죠 말하자면. 발여시심이라. 이와같은 마음을 나는 냈습니다 하면서
夜神이 言하사대
야신 언
야신이 말하기를
善男子야 我發起淸淨平等樂欲心하며
선남자 아발기청정평등락욕심
선남자야 아발기我發起 나는 이러한 마음을 일으켰다. 무엇을? 청정하고 평등平等한 낙욕심樂欲心 아주 즐거운 마음 청정평등락욕심淸淨平等樂欲心을 일으켰으며 그걸 전부 그런 마음을 냈다, 그러니까 사람이 좋아하고 하고자 하는 마음이 많은데 여기는 청정淸淨하고 평등平等한 그런 데 대한 즐거움 그런 마음을 갖고자 하는 것 이것을 일으켰고
我發起離一切世間塵垢淸淨堅固莊嚴不可壞樂欲心하며
아발기리일체세간진구청정견고장엄불가괴락욕심
나는 또 발기發起 일으켰다 어떤 마음을 일으켰는고 하면 이일체세간진구離一切世間塵垢 일체 세상의 때를 다 떠나서 청정하고 견고한 그런 장엄의 불가괴락욕심不可壞樂欲心 무너지지 않는 그런 즐거운 마음 이러한 마음을 일으켰다 또 한 가지는
我發起攀緣不退轉位永不退轉心하며
아발기반연불퇴전위영불퇴전심
나는 반연불퇴전위攀緣不退轉位 불퇴전위 움직이지 않는 퇴전하지 않는 그런 지위를 반연해서, 그러니까 우리가 좋은 일이다 생각하면 더 이상 물러서지 않고 꾸준히 그 일에 매진하는 거 공부가 좋다 하면 그 일을 꾸준히 생활화 해서 하는 것 이게 불퇴위예요. 불퇴전이야.
더 이상 물러나지 않는 지위에 닿는 꾸준히 해야 그래도 뭐가 금 달라지지 좀 솔깃해서 하다 보면 아이고 힘들고 더 재밌는 게 있는데 하고 퇴타해 버리면 그러면 발전이 없어요.
좀 참고 어떤 고비들도 있어요. 살다 보면은. 공부도 하다 보면 고비가 있는데 그 고비를 넘기면서 하면은 상당히 자기에게 발전이 있습니다. 그게 고비 넘기는 게 불퇴전위不退轉位야. 불퇴전의 지위를 반연해서 영불퇴전심永不退轉心 영원히 퇴전하지 않는 영원히 물러서지 않는 그런 마음을 일으켰다
我發起莊嚴功德寶山不動心하며
아발기장엄공덕보산부동심
또 나는 장엄공덕보산莊嚴功德寶山 공덕보산을 장엄하는 그런 부동심不動心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일으켰으며
我發起無住處心하며
아발기무주처심
나는 무주처심無住處心 어디에 주처함이 없는 그런 마음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한 곳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다 이 말입니다. 여기 무주처심無住處心이라고 하는 것은. 불교공부는 하되 좋다고 해서 깊이 하되 거기에 또 집착하면 그건 역시 병이 되는 거죠. 무주처심이라는 게 그겁니다. 불교에는 이런 말은 참 흔하죠. 많이 나오죠. 무주처심無住處心 어디에 머물지 않는 거.
我發起普現一切衆生前救護心하며
아발기보현일체중생전구호심
또 나는 보현일체중생전구호심普現一切衆生前救護心 일체중생 앞에 나타나서 구호하는 중생들을 구호하는 그런 마음을 일으켰다, 과거에 자기가 마음 냈던 것을 죽~ 정리해가지고 이렇게 소개를 하는 거죠.
우리도 살다 보면 간혹 좋은 마음 일어나죠. 좋은 마음 일어날 때 이렇게 메모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분은 자기가 좋은 마음 일으킨 것을 죽~ 이렇게 선재동자에게다가 소개하는 거죠.
我發起見一切佛海無厭足心하며
아발기견일체불해무염족심
그리고 또 나는 견일체불해무염족심見一切佛海無厭足心 일체 부처님의 바다를 보고 일체 부처님의 세계를 보고 염족厭足이 없는 마음을 일으켰다 싫어함이 없는 마음을 일으켰다,
불교에 인연이 깊은 사람들은요. 부처님 좋아하고 절 좋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먹물 색깔까지 좋아해 먹물색.그게 무염족심無厭足心이라. 어디 길 가다가 먹물 옷만 입고 가는 것만 봐도 그게 승인이 됐든 속인이 됐든 누가 됐든지간에 그게 무염족심無厭足心이라.
부처님 세계에 대해서 싫어함이 없는 마음을 일으키는 어디 가서든지 먹물색만 봐도 기분이 좋거든. 그로 통해서 그 회색을 통해서 부처님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거예요. 부처님의 환희롭고 편안하고 한 그런 어떤 마음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되는 거예요.
我發起求一切菩薩淸淨願力心하며
아발기구일체보살청정원력심
나는 구일체보살청정원력심求一切菩薩淸淨願力心 일체보살 일체를 구하는 이렇게 해야 되겠네. 일체보살 청정 원력을 구하는 마음 그래 되겠네요. 일체보살들의 청정한 원력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켰다, 정한 원력이라는 게 참 중요하죠.
사람이 사는데 원력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살려고 하는 그 자체가 원력이예요. 그런데 그게 청정한 원력이냐? 그렇지 않은 원력이 너무 많거든요. 그런 걸 우리가 원력이라고 좋게 표현해서 원력이지 그거는 원력은 사실은 아니지만은.
사람이 살아있음으로 해서 뭔가 자기 발전을 꾀하는 그런 마음 이게 사실은 원력인데 그 중에서 청정한 원력을 구하는 그런 마음 좋은 것만 생각하는 그런 원력 좋은 쪽으로 자기를 발전시키는 그런 원력 그겁니다. 그 음에
我發起住大智光明海心하며
아발기주대지광명해심
나는 대지광명해심大智光明海心 큰 지혜의 광명에 머무는 마음을 일으켰다, 항상 나는 큰 지혜로써 마음의 광명이 있어가지고 척 이렇게 누가 오면은 뭐가 문제가 있어서 왔다 이런 게 마음에 싹 이렇게 나타나면은 그거 설명을 잘못 하더라도 그 사람을 빨리 알아가지고 좋은 처방을 할 수가 있도록 그러고 싶을 때가 많아요. 어떨 때 보면. 답답해가지고.
설명하느라고 하는데 자기 문제를 자기가 설명 제대로 못 해요. 그런 경우 많습니다. 우리는 설명하느라고 했는데 딴 사람이 들어 보면은 지금 뭔 이야기 할려고 하는지 도대체 납득이 안 가요.
그럴 때는 이게 듣는 사람이 제대로 파악해버리면 참 좋죠. 그게 대지광명大智光明이야. 그런 지혜 광명이 있으면은 설사 설명하는 사람이 제대로 설명 못 하더라도 환히 이렇게 내려다 볼 수 있으면 참 좋죠.
我發起令一切衆生超過憂惱曠野心하며
아발기령일체중생초과우뇌광야심
나는 또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영일체중생令一切衆生으로 초과우뇌광야심超過憂惱曠野心이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우뇌광야憂惱曠野를 초과하는, 근심과 번거로움과 걱정과 고민 우뇌憂惱는 고민과 걱정과 근심의 그런 광야를 지나쳐버리는 거기서 높이 뛰어나버리는 그러한 마음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중생들이 좀 번민과 고민이 좀 없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중생들의 번뇌와 고민이 없을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마음도 냈다 이거야. 그 다음에 나는 또
我發起令一切衆生捨離愁憂苦惱心하며
아발기령일체중생사리수우고뇌심
또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사리수우고뇌심捨離愁憂苦惱心 앞에 거 하고 비슷해요. 수우고뇌愁憂苦惱 근심과 걱정과 고뇌를 사리捨離하는 버리고 떠나게 하는 그런 마음을 일으켰다, 어떻게 하면 저 중생이 좀 근심도 없고 고뇌도 없고 걱정도 없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번민에 쌓여 있는 중생을 보면은 그게 보살심으로써 어떻게 하면 저 중생을 걱정거리를 덜어 줄 수 있을까 이런 마음을 낼 수 있는 거죠. 정말 이건 보살심이죠. 그 다음에 나는
我發起令一切衆生捨離不可意色聲香味觸法心
아발기령일체중생사리불가의색성향미촉법심
이거는 일체중생들로 하여금 전부 일체중생을 위하는 이야기라.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불가의不可意 뜻같지 못 한 마음에 안 드는 그렇게 생각하면 좋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이런 것을 다 떠나버리게 하는 그런 마음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어떤 사물이든지 바깥 대상이 전부 중생들의 마음에 들도록 하는 그런 어떤 길은 없을까 어떻게 하면 중생들이 전부 자기가 사는 환경들이 마음에 들도록 하는 그런 길은 없을까 이런 생각이예요 이거는.
我發起令一切衆生捨離愛別離苦怨憎會苦心하며
아발기령일체중생사리애별리고원증회고심
또 나는 영일체중생사리애별리고원증회고令一切衆生捨離愛別離苦怨憎會苦 이거 우리 8고苦 중에 하나죠. 생로병사 그게 4가지 고통. 그 다음에 애별리고愛別離苦 그거 줄 그어 놓으세요.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는 사람끼리 헤어지는 것이 큰 고통이예요.
또 원증회고怨憎會苦라. 미워하는 사람끼리 만나는 것도 또 큰 고통이라. 안 봤으면 좋겠는데 한 동네 사니까 어떡해. 오다가다 마주친다고. 그러면 골목으로 쑥 들어 가버린다든지 고개를 돌려서 먼 산 바라본다든지 그러잖아요. 그것도 작은 것이긴 하지만 그것도 역시 원증회고怨憎會苦야.
모임에 나오라고 할 때 그 모임에 누구누구 나오냐 물어 보고 재수 없는 사람이 나온다 그러면은 안 가잖아요. 그런데 그게 자기한테 재수 없는 사람이지 그 사람은 딴 데 가면 아주 재수 있는 사람이야.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것이지 나쁜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렇게 알아야 돼. 그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인데 나 하고는 웬지 인연이 안 돼. 이렇게 이해를 해야지. 내한테 안 맞다고 그냥 무조건 나쁜놈 나쁜놈 이렇게 선전해 버리면 그거는 큰 편견이라.
편협심이고 그건 참 업짓는 거예요. 정말 업짓는 겁니다. 내한테 나쁘다고 해서 그 사람 어디 가도 다 나쁜 것 절대 아니거든요. 또 내한테 잘 한다고 해서 어디 가서 잘 하는 사람 절대 아니야. 그러니까 나쁜 면도 있고 좋은 면도 있는 거 이게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그런 모습이라.
그래 그걸 동시에 봐야 된다고요. 같이 보는 그게 중도적인 안목이라. 불교에서 중도 중도라는 말을 잘 쓰는데 그걸 같이 가지고 있다 라고 보고 저 사람은 나한테는 참 잘 하는 사람이지만 어디 가면 나쁘다는 소리 들어. 그렇게 우리가 알아야 된다고요.
내한테는 참 나쁜 사람인데 어디 가면 참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소리 들어. 이렇게 알아야 돼 동시에.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무조건 말이지. 나쁜 사람이라고 매도해버리면 그거는 업 지어요.
사람을 그렇게 취급하는 게 아니라고요. 우리는 그렇죠. 어리석을 때. 내한테 나쁘면 어디 가도 나쁜놈으로 그렇게 매도해가지고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 보는데. 그 정도라도 우리 불자는 생각할 줄 알아야 된다니까. 내한테는 나쁘지만은 딴 데 가면 착은 사람이야.
참 그런데 내한테 오면 내한테 자꾸 나쁘게 해코지만 하고 내한테 손해만 끼치고 그런다고. 그렇게 이해하기 시작하면은 용서하고 용납할 줄 안다고요. 용서하고 용납할 줄 알아.
어떤 사람들은 보면은 내가 알기로는 아주 멀쩡한 사람인데 자기하고 어떻게 안 맞아가지고는 한 번 들어보라는 거야. 누가 옳은지 들어보라고. 옳은지 들어보려고 가만히 이야기 들어보면은 별로 크게 자기가 옳지도 않아.
크게 옳지도 않고 또 딴 사람한테 하는 거 보면 이 사람 지금 내한테 와서 이야기 하는 거 보다 훨씬 더 잘 해. 참 그럴 때는 말 못 하겠대 그거. 편들 수도 없고 안 들 수도 없고.
이거 일부러 문제 보따리 가지고 와서 풀어놓는데 그거 안 들어 주면 또 어떡해. 참 난처하다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중도로 사람을 봐야지 치우쳐서 그렇게 내한테 나쁘다고 치우쳐서 보면은 그거는 정말 업짓는 겁니다. 절대 그거는 마음을 조금 더 여유롭게 가져야 돼요.
그래 이 선지식이 그런다잖아요.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애별리고원증회고愛別離苦怨憎會苦 이런 것을 다 떠나게 하는 그런 마음을 일으킨다, 이런 게 없어야 되는데 어디 그게 쉽나요.
사랑하는 사람끼리 또 소중한 가족끼리 떠나는 그런 고통 그런 아픔 또 좋지 아니한 사람 하고도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그런 고통 그런 아픔이 우리에게는 있다 이거예요.
그런데 그게 좀 떠나는 게 무슨 이사 가서 떠나는 거 그게 아니예요. 소화해 버려야 돼 소화. 자기에게 소화하면은 그걸 잘 받아들이고 소화해 버리면 그게 떠나는 거라. 달리 다르게 해결책이 없다고요.
我發起令一切衆生捨離惡緣愚癡等苦心하며
아발기령일체중생사리악연우치등고심
그리고 나는 또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사리악연우치등捨離惡緣愚癡等 악한 인연 악연, 악한 인연과 또 우치 어리석은 등 그러한 것들을 다 떠나버리는 등의 그런 고통을 다 떠나버리는 그런 마음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중생들에 대해서 좋지 아니한 것은 전부 보고는 아 저런 게 없었으면 또 그런 거 안 좋은 거 보고는 또 저런 건 중생들에게 없었으면 왜 죄없는 중생들에게 저런 일이 있는가 하고 이렇게 측은한 마음 연민하는 마음 측은심과 연민심을 잔득 가지고 있는 거지요. 이 선지식은 또
我發起與一切險難衆生作依怙心
아발기여일체험난중생작의호심
일체중생으로 더불어 험난한 험난한 데 처해 있는 그런 중생들에게 의호심依怙心 의지할 의依자 믿을 호怙자예요. 의지하고 믿는 믿음을 짓는 그런 마음을 일으킨다,
아주 참 외롭게 살고 어렵게 살고 험하게 살고 아주 힘들게 사는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의지가 되어야지 어떻게 하면 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될까 그런 마음을 일으킨다,
노약자 아픈 사람 힘든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는 뭔가 위로가 되는 위로가 되는 게 그게 의지가 되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위로하는 거냐. 뭘 이렇게 갖다 주고 하는 것도 위로하는 거지만은 그 사정을 속속들이 이야기를 들어주면 속속들이 알아주는 게 제일 위로하는 겁니다. 그거 알아야 돼요.
절대 돈들 일이 아니거든요 그거는. 돈 드는 일은 형편이 안되면 어렵지만은 이거는 마음만 내면 할 수 있는 거라. 내가 TV 같은 데 이렇게 보면은 아주 불우한 처지에 있는 노인들 요즘 많이 방송하잖아요. 그럴 때 가만히 들어보면 한결같아.
와서 이야기 상대가 돼주고 자기의 힘든 사정 어려운 사정을 속속들이 이해해주는 거 물어가지고 살펴봐주고 이해해주고 물어주고 그게 제일 위로가 되는 겁니다. 제일 위로가 돼요. 이해해주는 거. 자기 어려운 처지를 이해해주는 그것만 최고라.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의지가 되는 거야.
여기 작의호심作依怙心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그 사람이 의지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이해해주는 사람이 의지가 되는 거라. 그래 그걸 모르고는 우리 중생들은 어리석어가지고 뭐 이렇게 한 보따리 턱 갖다 주면 그게 의지가 되는 줄 알아.
절대 그런 거 아냐. 속속들이 이해해주는 거. 그게 제일 위로가 되고 위로가 되는 사람이 의지가 되고. 이건 아주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래 내가 TV 같은 데서도 보면은 꼭 그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자기를 이해해주는 거.
옛날 선비들은 자기 이해해주는 사람을 위해서 생명도 바친다 그러잖습니까. 선비가 아니더라도 그렇습니다. 제대로 이해해주는 사람에게는 생명도 바칠 수 있는 거지요. 그리고
我發起令一切衆生出生死苦處心
아발기령일체중생출생사고처심
중생들로 하여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생사의 괴로운 곳에서 출出 벗어나는 출 사의 고통스러운 곳에서 벗어나게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궁극에 가서는 저 중생들이 어떻게 하면 생사의 고통까지도 면할 수 있을까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이런 마음까지도 이 선지식은 냈다는 거예요. 마음 내는 것을 가만히 살펴 보면은 너무너무 좋은 게 많아요. 또 그 다음에
我發起令一切衆生捨離生老病死等苦心하며
아발기령일체중생사리생로병사등고심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생로병사등의 고통 궁극에 가서는 생로병사등의 고통까지도 사리捨離하는 떠나버리는 떠나버리게는 할 수 없을까. 생로병사를 완전히 떠날 수는 없을까 하는 그런 마음까지도 일으켰다,물론 욕심은 많죠. 우리 입장에서 보면은 욕심은 많지만은 그러나 이 선지식의 보살심에서 볼 때는 중생들 하나하나에 대해서 그런 마음을 갖게 되는 거지요. 우리가 아는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我發起令一切衆生成就如來無上法樂心하며
아발기령일체중생성취여래무상법락심
그리고 나는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결국은 가서는 여래무상법락如來無上法樂 여래무상법락을 성취하도록 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마음도 일으켰다, 부처님의 법락을 저 중생들이 누릴 수는 없을까 하는 그런 마음을 냈다는 거죠. 그 다음에
我發起令一切衆生皆受喜樂心호라
아발기령일체중생개수희락심
나는 또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개수희락皆受喜樂이라. 전부 다 기쁘고 즐겁게 살도록 하는 길은 없을까 어떻게 하면 저 중생들이 전부 기쁘고 즐겁게 살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을 결국은 내게 됐다, 그러니까 이 선지식이 참 중생들에게 아주 좋은 마음을 일으켰어요.
그걸 다 실천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 보다도 우선 그런 마음이 들어야 사람들에게 그러한 마음이 들어야 움직여져요. 몸이 따라간다고요. 생각부터 일단 들면 몸이 따라가거든요. 그러니 생각도 안하면 몸이 움직여질 수가 없습니다.
행동은 결국 생각 따라가는 것이거든요. 생각이 있고 그 다음에 행동이 따라간다고요. 생각 없는 행동은 있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 심心이라고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러한 마음을 일으키고 갖게 됐다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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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지선화님~~~_()()()_
學 , 入, 修 , 住 보살행불교의 최목표는 보살행...智禪華보살님 더운 날씨에 대작불사 지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_()()()_
고생하셨습니다. 지선화님 감사합니다. _()()()_
愛別離苦怨憎會苦..고맙습니다._()()()_
學菩薩行하며/入菩薩行하며/修菩薩行하며/住菩薩行하며... _()()()_
편혐심은 업을 짓는 일, 단지 나하고 맞지 않을 뿐...
지선화 님, 이 뜨끈뜨끈한 날씨에 고맙습니다. 오늘이 말복이니 내일부터 선선하겠지요
攀緣不退轉位...지선화님,더운 날씨에 수고하셨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
發起 攀緣不退轉位 永不退轉心으로.. 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녹취하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學 入 修 住 보살행
學 入 修 住 菩薩行
적정음해 주야신
;菩薩念念出生廣大喜莊嚴解脫門
적정음해 주야신은 중생을 위하는 다양한 마음을 냄
나무 입법계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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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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