善男子(선남자)야
선남자야
若有無量百千萬億衆生(약유무량백천만억중생)이
만일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受諸苦惱(수제고뇌)호대
여러 가지 고뇌를 받을 때에
聞是觀世音菩薩(문시관세음보살)하고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一心稱名(일심칭명)하면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觀世音菩薩(관세음보살)이
관세음보살이
卽時(즉시)에 觀其音聲(관기음성)하야
즉시로 그 음성을 듣고
皆得解脫(개득해탈)케하나니라
모두 해탈케 하느니라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법우 여러분 감사합니다 無量光明 합장
[부처님 말씀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至誠 寫經합니다]
10. 보문의 뜻
② 발심, 보리심을 낸다는 뜻
부처님께서 이『보문품』을 설하실 때
대중 가운데 8만 4천 중생이 모두 비할 바 없이
평등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다.
대승 경전에서는 거의 전부가
'그 자리에 있던 000명의 대중들이 깨달음을
이루었다' 라든가, '보리심을 내었다' 라는
표현이 마지막에 자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종교나 사상, 학문의 세계에서는
스승과 뛰어난 제자 한 사람 사이에
비밀리에 진리의 핵심이 전수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스승은 가급적 마지막까지 진리의 정수를
가르쳐 주지 않으려 합니다. 죽기 직전까지
제 주먹 속에 꽉 움켜쥔 채 대중들의 신망과
신자들의 공경과 공양을 받기 때문에
'스승의 주먹(師拳)' 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꼭꼭 감추어 둔 진리의 정수를 받은
제자는 스승의 인정을 받은, 대중의
차세대 정신적인 스승으로 떠오릅니다.
그런데 경전을 읽어보면, 대체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는 그 자리에서 모두가 제각각의
수준에 적합한 단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법을 감추어 두지도 않고
한 사람에게만 비밀리에 전하지도 않습니다.
"아난다여, 수행자들은 내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느냐?
나는 안팎을 가리지 않고 하나하나 이치와 법을 설명하였다.
완전한 자의 가르침에는 제자들에게 무언가를 숨기는
이른바 스승의 주먹과 같은 것은 없다." (『대반열반경』)
이렇게 조금도 숨김없이 다 열어 보인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백 퍼센트 이해하고
제 것으로 체현하든지 다만 일 퍼센트만 이해하든지
그것은 오로지 법을 듣는 그 사람의 몫입니다.
8만 4천이라는 숫자는 아주 많다는 의미입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내었는데
그것은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다는 것입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먼저 깨달음을 의미하는 '보리' 를 설명하자면,
'보리(bodhi)' 는 '눈을 뜨다' 라는 의미에서 나온 말입니다.
칠흑 같이 깜깜한 황야에 어떤 이가
횃불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자기가
어떤 모습인지, 자기 앞에 누가 살고 있었는지
전혀 모르며 지내오던 어둠 속의 존재들은
빛을 얻어 눈 앞이 밝아졌습니다.
빛을 얻는 순간 여태까지는 몰랐던 세상의 모든 것들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환히 보게 된 것이지요.
세상에는 자기 혼자만 어둠 속에서
고독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왔었는데
빛을 얻어서 눈을 뜨고 보니 세상에는 자신만
있었던 것이 아니요, 자기와 똑같은 이들이
셀 수 없이 존재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어둠 속에서 자신은 쓸모없는 인간이요,
볼품없는 존재일거라 생각하며 탄식 속에서
지내왔었는데 밝은 빛 속에서 자신을 보자니
참으로 기품이 있고 우아하고 힘이 넘치는 존재였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반열반경』)
눈을 떴다는 말은 이렇게
밝게 제대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보리, 즉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을 설명하는데 이보다 더
절묘한 구절은 다시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리' 라는 말 앞에 '아뇩다라삼먁삼-'
이라는 길고 아리송한 말이 붙어 있습니다.
이 말은 '완전한' 이라는 뜻입니다.
완벽하여서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는
궁극적인 깨달음에 도달했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부처님의 경지,
부처님의 지혜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법문 자리에 모여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진리에 대한 관심과 앎이 있기에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한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수준입니다.
어쩌면 "부처님 말씀 잘 들어서 착한 일 많이
하고 살자." 라든가, "내 마음 속 번뇌를 없애야 겠다."
라는 정도의 결심을 한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은 그런 사람들 각각의 수준에 따라서
'나' 와 '세상' 의 구조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해주고, 선업을 짓도록 권하고,
바른 견해를 지니도록 인도하기도 하고,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반야바라밀다를 강조하여 모든 것이 공空한
성품을 지녔음을 잊지 말도록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과 근기에 맞게
법문을 듣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리하여 지금 살아가는 과정에서 조금 더
행복해지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면 그만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정작 욕심이 크신 분입니다.
정말 불에 타지도 않고 물에 휩쓸려
가지도 않고 영원하고 진실된 행복을 얻으려면
부처가 되는 길 밖에 없다고 합니다.
부처가 되려고 결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다' 는 것이요,
이 말을 줄이면 '발보리심',
더 줄이면 '발심(發心)' 이 됩니다.
실제로「보문품」속의 중생들은
지혜니 수행이니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는 기도자의 입장입니다.
1992년부터 꾸준하게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55세의 이문희 씨는 언제나 관세음보살 기도를
마음에서 놓지 않습니다. 엄청난 교통사고를 당하여
1년 6개월 동안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건강을 회복한 뒤 다시 자원봉사 현장으로 복귀한
그 분에게 관세음보살에 대하여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난 잘 몰라요. 그저 아주 오래 전에 스님께서
'조념관세음朝念觀世音 모념관세음暮念觀世音' 이라고
자꾸만 외라고 일러 주신 뒤에는 무조건
조념관세음朝念觀世音 모념관세음暮念觀世音' 하며 중얼거렸습니다.
'조념관세음朝念觀世音 모념관세음暮念觀世音' 은
'아침[朝]에도 관세음을 생각하고,
저녁[暮]에도 관세음을 생각한다' 는 뜻입니다.
그 분은 관세음보살이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보문품」내용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그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관세음보살' 을 불렀습니다.
그저 '관세음' 이라는 소리가 부르기 쉬웠고,
듣기 편하였고, 스님이 항상 부르라고 일러
주었기 때문에 관음기도를 일상화했다는
그 분의 대답은 사실 조금 실망스럽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진짜 입었다고
인정하는지를 자꾸만 캐물었습니다.
그 분이 답하였습니다.
"1년 6개월 동안 병상에 누워있다가 지금은
이렇게 건강하게 내 일하던 자리로 복귀했으니
그것이 내가 입은 가피일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관세음보살님이 나를
살려 주셨다고 큰 소리로 외쳐도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어찌되었거나 나는 평소에
'조념관세음朝念觀世音 모념관세음暮念觀世音' 을 염하였어요.
그런데 병상에 누워 기도를 하며 지내는
어느 날부터 자꾸 우울해지고 화가 나기
시작했어요. 그 동안 함께 자원봉사를 하던
친구들이 병문안을 온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매사에 적극적으로 앞장 서서 활동하던
그 분은 친구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유, 내가 얼른 나아서 같이 봉사활동을
해야할 텐데......내가 없으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러자 친구들이 대답했습니다.
"어머, 괜찮아요. 금강심 보살님(이문희 씨의 법명)이
안 계셔도 잘 돌아 가고 있어요."
그러니 걱정을 놓고 빨리 회복하라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문희씨는 그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없어도 모임이 잘 돌아가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 모임은 내가 없으면 절대로 안 되는 곳이야.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고 있다면
그럼 그 동안 고생한 나는 뭐란 말이야?
난 대체 뭐야?
저들이 내가 얼나마 중요한지 모르고 있단 말인가?'
가슴 속에서 솟구치는 울화를 견딜 수 없어
결국 우울증에 시달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조념관세음朝念觀世音 모념관세음暮念觀世音' 을
아무리 외쳐대도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그 모임' 을
떠올리면 알 수 없는 분노가 치솟고 섭섭했습니다.
마침내 의사에게 어렵게 허락을 받아 서울
도봉산의 망월암을 온 힘을 다해 올랐고,
이문희 씨는 부처님에게 절규하듯이 외쳐댔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 동안 봉사활동 한 것, 기도한 것, 절에 다니며
시주한 것 등등이 너무나 허망해졌습니다.
부처님이 정말 위대하다면 이런 내게
그렇게 무심할 수가 없습니다.
원망과 분노를 끝도 없이 쏟아내는데 마음 속
깊은곳에서 갑자기 이런 질문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뭔데?"
"네가 뭔데? 네가 뭔데 세상 사람들이 반겨야 하고,
네 앞에서 허리를 숙여야 하지?"
"뭔지 모르겠지만 뭔가 엄청난 것이
와르르 무너졌어요."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가 아주 시원해졌어요.
금강심은 죽었어요. 없어요."
이문희 씨는 지금도 여전히 쉬지 않고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날 망월암에서
뼛속 깊이까지 자신에게 던져진
"네가 뭔데?" 라는 그 물음은 그녀로 하여금
세상을 대하는 자신의 시각과 태도를
완전히 새롭게 교정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것이 발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처음부터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보리를 얻겠다' 라고 마음을 낼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자기 만큼의 처지와 환경에서 각자가
원하는 것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고 기도합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어느 순간
이렇게 자신을 전폭적으로 부정하고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계기가 찾아 옵니다.
그 동안은 의식주를 해결하고 가슴에 품은
소망을 이루고 세간에서 말하는 행복을
얻는 것이 자기 삶의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그 목표를 향해 전심전력 살아온
사람이 그 동안의 자기를 전해 새로운
눈으로 바라 볼 때 목표는 달라집니다.
새롭게 세우게 된 목표는 개인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새로운 목표는 비좁은 '나' 에서
벗어나 더 넓고 깊게 세상을 마주
대한다는 공통점을 가질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다시 내고 목표를 다시 세운
사람들은 이제 네 가지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첫째는 넓고 큰 마음입니다.
둘째는 가장 중요하고 제일가는 마음입니다.
셋째는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입니다.
넷째는 이떤 위기가 덕쳐도 흔들리거나
뒤바뀌지 않는 마음입니다 (『금강경』).
부처님의 법회에서「보문품」법문을 들은 사람은
바로 이런 네 가지 마음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자기에게 닥친 불행이나 재난이
왜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알았고,
부질없는 바람을 품지 않으며,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다스린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이제 관세음보살의 입장에 서서
자기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손을 내밀어야 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 모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의
마음을 내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의 마음을
내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외부로부터의
구제와 가피를 바라기만 하던 자신을 버리고,
자신과 세상에 대해서 전혀 새롭게 눈을 뜨고
앞으로의 목표를 전폭적으로 수정하는 일,
이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것이고,
발심하는 것입니다.
발심하는 사람은 더 이상 중생에 머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제 삶의 주인자리를
되찾았기 때문입니다. 관세음보살
▲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대의 금불상으로 중국의 불공견색관세음,
높이 3.8m 로써 황금 100kg, 금강석 4백개, 비추 홍남 보석, 조모록,
산호, 송석, 진주 등 진귀한 보석 수천 개로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
[관음염불수행 이창희님(법명 : 지혜장) : 좋은글이니 읽어보세요]
고요한 공기를 가르고 죽비가 울립니다.
한 배 한 배 절을 올립니다.
천천히 몸의 상태를 느끼면서
호흡 끝에 관세음보살을 염念하며 108배를 합니다.
거친 호흡을 정리하고
숨을 고르며 편하게 앉습니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지켜보며
관세음보살을 염念합니다.
한 숨 한 숨 들어오고 나가면서
몸이 이완되고 손이 따뜻해져오는 것이 느껴집니다.
저에게 불교는 대학시절 잠깐
배운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이었고,
사찰은 MT가는 관광지에 불과했습니다.
비오는 날 산사에서 마시는 커피를 좋아했고,
법당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냄새와 딸랑이는
풍경소리에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아
가끔 삶이 힘들 때면 절을 찾고는 했지요.
그것이 불연佛緣 이었을까요.
우연히 선지식을 만나보겠냐는 한 마디에 끌려 해운대
'시선원' 을 알게 되었고, 법사님을 만나면서
불교에 입문한지 벌써 6년째가 되어 갑니다.
이삼십 대에는 뭔가가 되어야 했고
무엇이든 이뤄야 한다고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는 삶을 원했고
돈 만이 삶의 질을 향상시켜 준다고 믿었지요.
주식이며 경매며 돈 되는 것이라면
눈을 두 눈을 반짝이고 뛰어 다녔습니다.
그 와중에 그림도 그리고 전시도 하며
나름 남들보다 잘살고 있다고 자부도 했었죠.
오만 때문이었을까요.
사업장을 열었고 열심히 고생하며 일했지만
가진 재산을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노력만으로 되는 세상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지요.
어떤 사람들은 '책임질 부양가족이 없으니
다행이지 않느냐' 고도 합니다.
돈만 잃은 것이 아니라 자존심까지도 잃었습니다.
재기를 꿈꿨으나 여의치 않았고
몸과 마음이 가난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무엇에 이끌렸을까요.
시선원에 처음 발을 들인 후 다음날부터
직장처럼 거의 매일 출근을 했습니다.
처음 접하는 예불에 어색했고,
발음도 어려운 경전에
혀도 꼬였지만 그냥 좋았습니다.
'천수경', '금강경'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서장', '육조단경' 등 알아 듣든 모르든
빠지지 않고 들으려 애썼습니다.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고
가랑비에 옷 젖는다 했지요.
법이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법 아닌 것은 알게 되었고,
뜬구름 같던 법문들도 명료하게 다가옵니다.
커피를 마실 때도, 버스를 타고 갈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어디서든 나를 점검해 봅니다.
늘 내 잣대로만 옳고 그름을 분별했으며
피해자였고, 상처받은 영혼이었습니다.
새들도 알을 깨기 전에 두려워한다죠.
깨어야만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지만
그 고통을 이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냥 알 속에서
편하게 살고 싶단 생각도 합니다.
항상 무엇이 되어야 하고
채워져야 편안하다는 욕망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 의 삶을 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게만 여겨집니다.
쉬운 것이라 하지만 불쑥 불쑥
올라오는 중생 업을 뛰어
넘는다는 게 피눈물이 납니다.
누군가 뒤통수 쳐도, 억울하거나
화나는 일이 생겨도 감정에 끌려가지 않고
'나' 를 겸허한 마음으로 챙겨봅니다.
아프면 아픈 만큼 깨지고 비워집니다.
비워지고 나면 저연스레 채워집니다.
편안함과 기쁨이...............
이제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고,
순간순간 생활 속에서 관음觀音을 챙깁니다.
아이들과 미술작업을 하면서 명상도 시켜봅니다.
잘 따라 하지는 못하지만
좋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너무 해맑습니다.
이제 더 이상 가난하지 않습니다.
바른 불법을 알게 해준 법사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힘들 때 격려해 주는
도반들이 있음에 위안을 느낍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법과 인연되어
삶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관세음보살
▲ 불편한 몸이심에도 오직 전법의 일념으로 부처님의 소명을 다 하고 계신
무비스님의 법체 강녕을 축원 드립니다. 스님 건강하십시오. 관세음보살 ▲
무비스님 염화실 인터넷 법문 관세음보살보문품 ①
찰나라도 의심하지 말지니 염념물생의(念念勿生疑)
관세음 거룩한 성인은 관세음정성(觀世音淨聖)
고뇌와 죽음의 재앙에서 어고뇌사액(於故惱死厄)
능히 믿는 의지처가 되어준다네 능위작의호(能爲作依怙)
[완연한 秋節에 공부 잘 지어가십시오 (38)편으로 이어집니다]
'가장 행복한 공부' 無量光明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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