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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58 - 세발자전거 1
S#1. 학교 내 자전거 매장
그 앞에 주리리 늘어서 있는 낡거나 새 것인 각종 자전거들....
자전거 주인이 한심한 얼굴로 보고 있는 곳.
해성이 자전거 한 대에 올라타고 있다. 재도전하는 중이다.
긴장해서 진지한 얼굴로 앞으로 보고 출발하지만 금방 어어어..해서 균형을 잃는다. 그래도 전혀 굴하지 않고 다시 시도한다.
이리 비틀해서 서고, 저리 비틀해서 서고.. 그렇게 좀 가는 듯 싶더니 결국 넘어져 버린다. 아유..아파서 다친 곳을 비비는데... 그 위로.
만수 : (E) 석사 일년차의 하루는 복사에서 시작해서 복사로 끝난다.
S#2. 복사기가 있는 방
복사기 한 대가 복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종이를 받아내는 받침대가 없어서 복사되어 나오는 종이마다 사방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
그 옆에서는 받침대를 손에 든 해성이 이리저리 흩어져있는 종이들을 챙기느라고 난리를 치고 있다.
요령없이 마음만 급하다가 손에 아무렇게나 모아 쥔 종이들을 다시 놓친다. 흩어지는 종이들...
난감한 해성이. 그 위로 계속...
만수 : (E) 석사 일년차의 생활을 얼마나 잘하느냐는 복사를 얼마나 잘하느냐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는 말이다. 각종 논문, 랩미팅자료,
세미나자료, 특히 교수님, 선배님이 보시는 자료는 백옥같이 깨끗하게 정리할 것.
해성, 문득 발을 들어본다. 종이 몇장이 자기 발 아래에 깔려있었다.
S#3. 전자과 우편함 앞
해성이 우편함 앞에서 박스에 쌓여있는 우편물들을 각 자리에 꼽고 있다.
그런데 하나의 우편물을 들어 주소를 자세히 보고 자리를 한참 찾아서 하나 꼽는 식이다.
해성의 뒤로 수업에 들어가는 학생들 서넛이 바쁜 발걸음으로 지나쳐간다.
해성은 또 하나의 우편물을 넣기 위해 칸마다 살피고 있다. 그 위로.
만수 : (E) 다음은 우편물 수령과 분배. 분배의 핵심은 신속 정확이다. 단 한통의 우편물 사고로도 우리나라 과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임해야 한다.
시간경과.
아까의 학생들이 수업이 끝나서 나오고 있다. 책을 펴서 함께 보면서 떠들면서.
그들이 지나쳐온 옆에 해성이 있다. 해성은 아예 그 자리에 퍼질러 앉아서 논문 잡지 하나를 읽고 있다.
해성의 옆에 있는 우편물 박스에는 아직 우편물이 반 넘어 남아있다.
S#4. 이교수랩
해성이 혼자 가운데 서서 사방을 둘러보고 있다.
만수 : (E) 봐라. 이 얼마나 삭막하냐. 랩의 환경미화는 보다 나은 연구를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왕이면 넘치는 사랑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 줄 것. 기대가 크다.
해성, 뭔가 아이디어를 생각했는지 활짝 웃는다.
S#5. 이교수랩 앞 복도
명환과 중희, 정태가 걸어오고 있다. 명환이 들춰보고 있는 복사물들을 함께 보며 뭔가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면서.
정태가 랩의 문을 열려다가 멈춘다. 랩 안에서 들려나오는 클래식 음악. 정태, 명환을 돌아본다.
S#6. 이교수 랩
들어서던 세명이 입구에 멈춰서 안을 본다. 모두 황당해졌다.
그제야 보이는 내부. 여기저기에 온갖 화분이 놓여져있고. 중앙 테이블 위에는 포터블 시디 플레이어가 놓여져 있어서
거기에서 클래식 음악이 들려나오고 있다.
화분은 기념리본이 달려있는 난화분부터 말라죽어가는 화분까지 다양하고, 각 책상 위에도 하나씩 올려져있다.
한쪽에 서있던 만수가 역시 황당한 얼굴로 돌아본다.
명환 : 이게 뭐야. 이것들이 다 뭐야.
만수 : (뭔가 설명을 하려고 손짓을 해대는데 말이 잘 안나온다)
중희 : (자기 책상 위의 화분에 달린 리본을 읽어본다) 축발전 삼도해물탕... 이건 또 뭐야.
만수 : 그게..그러니까 그건 당구장 개업식때 들어온 건가 본데요.
중희 : 당구장?
명환 : (자기 책상 위의 화분을 위험물질처럼 건드려보며) 정만수 30초내로 설명해봐.
만수 : 30초... 그니까...에.. 이게 학교 내 각 곳을 돌아다니며 하나씩 얻어왔다고 하는데요. 그러니까.. 랩의 환경미화를 위해서...
저기 시디플레이어도 빌려왔다고 하든데.. 그게.. 환경미화를 위해서.. (중얼중얼 소리가 줄어든다)
S#7. 이교수 랩 앞 복도
정태와 중희가 화분을 하나씩 둘씩 들고나오고 있다. 어디로 가져가나 해서 이쪽으로 가다가 다시 생각해보고 저쪽으로 간다.
만수 : (E) 내 살다살다 이런 앤 처음 봅니다.
S#8. 이교수 랩
이제 클래식 음악은 멈춰있고.
만수가 화분들을 모으고 있고, 명환은 팔짱을 끼고 서서 둘러보며.
명환 : 나도 놀라고 있는 중이다. 정만수보다 나를 더 황당하게 만드는 인간이 있다니.
만수 : 그래도 내 머리 속에선 뭐가 돌아가고 있는지 다 보이잖아요. 해성이 얘 머리 속에는 뭐가 들어있는지 도대체 예측을 할 수가
없다구요. 이거 원 투명패치를 깔든가 뭔 수를 내야된다고 보는데요.
명환 : (자기 책상에 떨어져있는 흙을 털어내는)
만수 : 30쪽짜리 복사 열부 하는데 평균 세시간. 우편물 넣고오는데 평균 다섯시간. 심부름 한번 시킬려면 학교전체 약도를 그려줘야되죠.
약도 그려주면 뭐합니까. 한시간쯤 후에 전화가 오는데..(해성 목소리) 선배님. 길을 잃었어요. 여기가 어디냐구요? 모르겠는데요.
여기가 어디죠?
명환 : 이게 다 인과응보라고 본다.
만수 : 뭔 응보요?
명환 : 자기가 저지른만큼 받는다는 얘기. 알지? 어쨌든 니가 직속사수니까 니가 책임져.
만수 : 내가요? 나 혼자요?
명환 : 한달내로 이해성이 우리 랩에 적응시켜.
만수 : 한달... 일년이 아니구요?
명환 : 그 녀석도 이런 식이라면 나름대로 힘들거야. 잘못하면 우리 랩에서 완전히 소외되어버릴 수도 있고. 너같은 놈이야 아무리
소외시킬려고 해도 안되지만 걘 인생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어떻게든 적응시켜.
만수 : 어이어이..잠깐만요. 지금 저를 과대평가하시는 거 같은데.. 저는 그냥 평범한 인간입니다. 그런데...
명환 : 니가 어떻게 평범한 인간이냐. 석사 2년차 봄이 되도 논문주제 하나 못 잡은 놈이 어떻게 평범해.
만수 더 이상 소리는 못 내고 궁시렁궁시렁... 화분을 옮긴다.
S#9. 석학의 집
서너테이블에 손님이 있고...
미순, 안에서 바쁘게 오무라이스 정도를 만들어내와서는 지민을 찾아보면...
거기 지민이 어느 테이블 옆에 붙어 서서 수다를 떨고 있는 중이다. 같은 과의 남학생인 찬규가 혼자 볶음밥 정도를 먹는데..
지민 : (얼굴부터 잔뜩 찌그러져서) 몇마리나 되는데?
찬규 : 야. 그걸 어떻게 다 세보냐. 하여간 무지 많어.
미순 : 지민아. 오무라이스 5번 테이블.
지민 : 네에... (여전히 찬규에게) 물지는 않어?
찬규 : 당연히 재수나쁘면 물리지.
지민 : 물리면 피 나?
찬규 : 쥐의 이빨 성능과 손가락 피부의 두께에 따라 피도 나겠지.
지민 : 으으... (몸서리치며 미순에게로 간다)
미순 : 이제부터 너 아는 인간들은 우리 가게 출입금지 시킬까? 어째 아는 인간만 오면 거기 들러붙어 한시간씩이냐.
지민 : 다음주부터 나 당번이거든요. 실험용 동물방 사육이요. 그게 밥만 주면 되는 게 아니고 청소도 해줘야 되는데... 쥐에요. 쥐.
미순 : (어이없어서) 너 생물과 아니냐? 생물과 학생이 뭐가 무서워?
지민 : 난 다른 생물은 다 괜찮은데.. 쥐래잖아요. 쥐.
미순 : 오무라이스! 5번 테이블!
지민, 쟁반을 들고 오다가 다시 찬규 테이블로 붙으며..
지민 : 청소할 때 쥐를 어떻게 해?
찬규 : 어떻게 하긴. 하나씩 집어내서 따로 놔야 청소를 하지.
지민 : 손으로 잡니?
찬규 : (밥 먹는데 자꾸 말시켜서 짜증나지만) 그럼 손으로 잡지 발로 잡냐?
지민 : 쥐를 손으로 잡으면 빤히 쳐다보지?
찬규 : (한심해서) 너 생물과에 왜 왔어?
지민 : 난 다른 건 다 괜찮아. 뱀같은 건 목에다 걸고 사진도 찍어. 근데 쥐는 안돼. 걔들은 꼬리가 너무 이상해. 어떻게 꼬리에 털이
하나도 없니? 미끈하고 지렁이같은 꼬리가 막 움직이면서....발발발....으으으...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쳐진다)
// 이쪽 테이블에는 만수와 해성이 마주앉아있다.
만수 : 이해성. 너의 문제가 뭔지 아냐.
해성 : (심각해서 고개를 끄덕인다)
만수 : 알어? 어유.. 뭔데.
해성 : 나의 문제는 나의 문제가 뭔지 모른다는 거에요.
만수 : (멈췄다가 한숨을 쉬고) 그래. 그게 문제야. 내가 가르쳐줄게 잘 들어.
해성 : (열심히 끄덕이고)
만수 : 너의 문제는 요령이 없다는 거야. 요령. 편법. 인생의 노하우. 그래서 매사에 굼뜨다.. 멍청하다... 맹하다 소리를 듣게 되는 거라고.
해성 : 예에..
만수 : 일단 석사생활의 노하우부터 전수를 해주마.
해성 : 저기 근데요. 저 지금부터 TSP 시뮬레이션 해야 되거든요.
만수 : 그거야 10분이면 되잖아. 이따 후딱 해치워.
해성 : 1000개 도시니까 한 번 돌리는데 30분 정도 걸리는데요. 명환선배가 최소한 20번 이상은 돌려본 다음에 결과를 뽑으라고 했어요.
그래야 통계적으로 신뢰할만하다고. 한 번에 30분 걸리고 20번 돌려야 되니까 30곱하기 20는 600분,
나누기 60하면 10시간 걸리는데요.
만수 : 해성아. 니가 그런 사고를 하고있으니까 요령부득, 앞뒤캄캄이란 소릴듣는거야. 한번을 돌려도 진하게. 다섯번만 돌려도 충분해요.
돌리다보면 그 느낌이 팍 오는 순간이 있어. 그럼 끝이야. 더 할 필요없이 그냥 그걸로 결과 작성해서 올리면 돼.
해성 : 느낌이 오는 순간이요?
만수 :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선배에게 인생의 필살기를 전수받는 이 귀한 순간에 뭔가 떡볶이같은 게 느껴지지 않냐?
이런 콜라 말고 떡볶이에 어묵 같은 거.
S#11. 학교 근처 분식집 / 밤
커다란 후라이팬의 벌건 떡볶이... 김이 오르는 오뎅 국물.
한쪽 테이블에서 만수 뻘건 떡볶이를 탐스럽게도 먹어가며..
만수 : 시킨 일을 빨리 해치우고 쉬자.. 이런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마. 왜냐. 어차피 할 일은 쌓여있고, 없던 일도 생겨나게 되있어.
쉬어가면서 놀면서 해야지, 일 끝내고 쉴 시간이란 것은 없다.
해성 : (수첩에 메모를 하며 듣고 있다) 일 끝내고 쉴 시간은 없다...
만수 : 그리고 사소한 일에 함부로 능력을 발휘하면 안돼. 잘못 걸리면 졸업할 때까지 그 일만 해야 되거든.
복사를 잘한다. 소문나면 넌 일년 내내 복사만 하게 되있어.
해성 : 복사만 하게 되어있다... (계속 열심히 적고 있음)
만수 : 그리고 이건 아주 중요한건데.. 호시탐탐 인정받을 기회를 노리고, 그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말라.
해성 : (적다가 말고 만수를 본다. 이해가 안되고 있다) 인정을 받을 기회요?
만수 : 그렇지. 예를 들어서 교수님이 무슨 일을 시켰는데.. 어쩌다보니 그 결과가 좋았다. 이럴 때는 확실하게 그 일이 내가 한것임을
주지시켜야 돼. 교수님은 이게 누가 한건지 그런 거 다 외우고 사는 게 아니거든.
해성 : 아까는 뭐든지 잘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만수 : 마. 그거하고 이건 다른 차원의 일이지. 잔심부름 복사는 잘하면 안되고, 학점이나 학위에 관계되는 건 잘해야 되는거라고.
학위를 누가 주냐. 교수님이 주잖아. 교수님은 논문 하나 보고 학위 주는 게 아니야. 평소의 선입견이란 게 그 논문을 읽을 때
적용이 되는거라고. 그래서... (하다가 보면)
해성 : (거의 울상이 되서 보고 있다)
만수 : 너한텐 너무 어렵냐? 오케이 오늘 진도는 여기까지.....우리 만두도 시켜먹을까? 만두 어때.
S#12. 자현. 해성의 방 / 밤
방 가득이 자현의 설계도며 책이며 부품들이 늘어져 있고, 자현은 방바닥을 기어다니며 뭔가를 찾고 있다.
자현 : 아니 이게 어디 갔나. 분명히 아까 여기 어디 던져놨는데...
침대에 앉아있는 해성의 발을 치우고 그 밑을 살피고 다시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해성을 본다.
해성은 멍하니 앉아서 생각에 잠겨있다.
자현 : 너 또 무슨 이상한 수식을 생각하고 있냐? 그러고 앉아있으면서 문제 풀이가 돼? 거 참 신기한 머리야.
해성 : (자현을 보더니) 난 있지. 가끔 사는 게 자신없어져.
자현 : .... 뭐? (찾던 거 잊어버리고 옆으로 앉는다) 너 왜 그래. 뭔 일 있었어?
해성 :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고 사는 게 자신없다고.
자현 : 야 뭔 일도 없는데 어째 그리 끔찍한 생각을 하냐? 사는 게 자신없으면 죽겠단거야 뭐야.
해성 : 넌 사는 게 쉽니?
자현 : (벙했다가) 사는 게 쉬운지 아닌지.. 사는 걸 무슨 시험문제처럼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해성 : 사람들은 다 사는 게 쉬운 거 같애. 언제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 다 잘 알고 있잖아. 난 언제나 그걸 잘 모르겠어.
자현 : (복잡해진다)
해성 : 난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 근데 사람들은 서로서로 다 잘 알잖아. 저 사람은 지금 웃고 있지만
사실은 화나있다. 저 사람은 좋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싫어하는거다..이런 걸 어떻게 다 알 수 있지?
자현 : 에.. 그건 말이지.. (열심히 생각해보다가) 그런데 어떻게 넌 그런 걸 모를 수가 있냐? 턱 보면 알잖아.
저 인간이 속으로 펄펄 끓는데 지금 웃고 있다. 아니다.. 보면 아는데..
해성, 쓸쓸한 얼굴로 자현을 보다가 일어서서 입구로 간다.
자현 : 너 어디 가.
해성 : 연습하러..
자현 나가는 해성을 보다가..
자현 : 가만 있어봐. 내가 지금 뭘 찾고 있었지? (두리번거린다)
S#13. 기숙사 근처 공터 / 밤
지원과 정태가 걸어오고 있다. 둘이 뭔가 얘기를 나누는 모습, 멀리 보이고...
정태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근처의 가로등 불빛에 비춰보며 둘이 멈추는 모습까지.. 가까이..
정태 : 그거 여기 어디 정리해놨는데.. 아 여기다.. (짚어 보이고)
지원 : (옆에서 함께 보며) 이거 나 한부 보내줄 수 있어?
정태 : 지금 집에 들어가서 바로 보내줄게. 아니.. (들고 있던 서류를 넘겨주며) 이거 가져 가. 난 하드 안에 있으니까.
지원 : 고마워.
정태 : 그럼.. 들어가.
지원 : 그래. 잘 자.
정태 : 어.
지원이 몇걸음 갔을 때.
정태 : 아 저기...
지원 : (돌아보면)
정태 : 내일 저녁에 민재 사무실에 올거지?
지원 : 갈거야. 남희 선배도 같이 가자고 했어.
정태 : 그래. 그럼 내일 거기서 봐.
지원 : (무슨 말 하려다 머뭇거리고 혼자 웃고 돌아서 간다)
정태 역시 혼자 멋쩍게 웃고 돌아서서 걸어오다가 문득 한 곳을 본다. 저만치 공터에 누군가가 자전거 연습을 하고 있다.
정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해성이 혼자서 자전거 연습중. 역시 얼마 못가 비틀거리며 서고 다시 가는 동작.
정태 좀 한심한 기분으로 본다.
해성은 혼자 어두운 공터에서 진지하게 열중해있다. 비틀거리며.
S#14. 이교수 연구실
이교수 복사물을 책상 위에 던지다시피하며.
이교수 : 이 보고서 읽어봤어? 읽어 본 거 맞어?
명환 : 예? (얼른 집어 들어 몇장 들춰보는)
이교수 : 내가 분명히 정확한 오더를 줬을텐데. 시뮬레이션 정리하고 기존 방법들과 결과 비교하고 향상된 이유 분석까지 해놓으라고.
그때 너두 들었지.
명환 : 예. 그렇게 들었습니다.
이교수 : 근데 결론이 뭐? 본 방법에서는 새로운 연산자들을 추가했으므로 기존의 방법보다 나아졌다고 본다?
명환 : (급히 뒤의 결론부분을 들춰보는)
이교수 : 이거 누가 맡은 거였어?
명환 : ...제 불찰입니다.
이교수 : (보다가) 후배를 감싸주는 건 좋은데 야단 칠 건 제대로 야단 쳐. 그래야 약이 되는거야.
명환 : 알겠습니다.
이교수 : 해성이는 어때. 적응이 되어가고 있니?
명환 : 해성이는.. 워낙 캐릭터가 특이해서 그렇지. 아주 총명하고 우수하니까...
이교수 : 걔가 우수한 건 나도 알아. 그래서 뽑은거고. 내 질문은 적응을 잘하고 있냐는 거야. 새 학교에 새 랩이고,
그리고 유일한 여학생이잖아.
명환 : 랩 아이들이 다 착해서요. 열심히 보살펴 주고 있습니다.
이교수 : 그럼 문제지. 새로 온 아이라고 해서 여자애라고 해서 다른 학생들과 다른 대우는 안돼. 무슨 말인지 알지?
명환 : 물론입니다.
S#15. 이교수랩
해성의 자리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있는 중희와 해성. 정태가 그 뒤에 서서 보고 있고.
중희 : 이게 뭐 이래. TSP에서 이런 결과가 나올 리 없잖아.
해성 : 아깐 분명히 나왔었는데요.
중희 : 너 몇번이나 돌려봤는데? 스무번 이상은 돌린거 맞어?
해성 : 그게.. 그러니까.. 느낌이 올때까지요. 네 번쯤 돌리니까 느낌이 왔어요.
중희 : 느낌? (어이없어 정태를 돌아보는)
정태 : 느낌이라니. 무슨 느낌.
해성 : 이게 맞는 거 같다는 느낌인데.. (자신 없어지고 있다. 슬그머니 만수를 쳐다보면)
만수, 못 들은 척 문으로 가는데 문이 열리며 들어서는 명환. 잔뜩 성질이 나있다.
명환 : (만수에게) 너 어디가.
만수 : 화장실에 가는데요.
명환 : (들고있던 서류를 만수에게 퍽 안기며) 니가 무슨 자격으로 화장실에 가?
만수 : 아니...선배님.
명환 : 너 무슨 배짱으로 보고서를 교수님께 바로 가져간거야?
만수 : 보고서요? (그제야 자기에게 던져진 보고서 뒤적이며) 아니. 중희형이나 정태도 바로 올렸는데요.
명환 : 니가 중희나 정태하구 같애? 너 앞으로 어떤 보고서든 무조건 나한테 먼저 검사맡어. 내 말 알겠어?
만수 : (비죽 입 나와서 보고서만 만지작거리는)
명환 : 너 오늘 중으로 그 보고서 다시 써서 내일 아침까지 내 책상에 갖다놔. 그리고 이해성.
해성 : (움찔해서 일어나며) 네?
명환 : 시물레이션 다 끝냈지?
해성 : 저기 그게요..
중희 : (얼른) 제가 지금 검토해보는 중인데요.
명환 : 그거 결과 정리해서 내일 아침까지 교수님께 드려야 되는데 어때.
중희 : 별... 문제 없겠어요.
해성 : (중희를 본다. 정말 별 문제가 없는건가..해서)
명환 : 그래 그럼 해성인 나 따라와. 다음 실험 지시해줄게.
명환, 문으로 가고 해성, 얼른 따라간다. 그들이 나가고 문이 닫기고..
중희 : 정만수.
만수 : 왜요.
중희 : 해성이한테 느낌이 오는 순간 어쩌구 가르친 거 너지?
만수 : 아니.. (부인하려다가 단념하고) 나야 그냥 농담으로 그런거죠. 누가 그런 말을 진담으로 합니까 예?
그런 말을 진담으로 받아들인 쪽이 문제가 있는거지.
정태 : 어뜩하죠? 그 결과 내일 아침까지 나와야 된다는데.
중희 : 아이구우.. 작년 이맘때가 생각난다. 그때도 정만수라는 인간 땜에 이 비슷한 짓 엄청 했지. 정만수 그러니까 니가 이건...
만수 : 난 못해요. 아까 들었잖아요. 이 보고서 다시 써야 되는 거.
정태 : 나도 오늘 저녁은 곤란한데.. 형도 안되잖아요. 내일 세미나 형이 발푠데...
중희 : (한숨을 쉬며 모니터를 본다) 세미나..맞어.. 세미나..내가 발푠데..
만수 : 아이 그건 걱정 마요. 우리가 일치단결 밀어드리지 뭐. 아무도 질문 안하고 무조건 박수 쳐주면 되잖아요 그거.
S#16. 전자동 앞 / 저녁
해성이 혼자 우두커니 서있다. 오가는 학생들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하고 있는데..
자현 : (E) 야 이해성.
자현이 저만치에서 달려온다.
자현 : 아이구 숨차. 넌 어뜩게 학부 뒤에 건물을 못 찾아온다는 거야. 오늘 완전히 마라톤을 하네.
해성 : 지도를 보고 찾아가려고 했는데 그게 지도에 안나와있어서..
자현 : 알았어 알았어. 얼른 가자. (해성의 팔을 잡아 끌며) 먹을 거 다 없어지기 전에 가야지.
해성 : (머뭇거려 버틴다)
자현 : 왜?
해성 : 나 거기 아는 사람도 없고.. 그냥 가지 말까?
자현 : 니가 아는 사람이 왜 없어. 경진이 지원이 다 올건데. 느이 랩에 정태도 있고..
해성 : 그래두..
자현 : 어이 시끄러. 모르면 이 기회에 알아두면 되지. 가자구.
자현 무조건 해성을 끌고 간다. 해성 불안한 채로 끌려간다.
S#17. 민재의 사무실 내부
민재와 경진, 정태, 대욱, 지민, 병석이 시끌벅적 모여 있는 중.
중앙에 테이블을 마련하고 그 위에 양념통닭이며 맥주며 간식거리들을 늘어 놓으며.
대욱 : 야아 이거 아무래도 술이 모자라겠는데요.
지민 : 말로만 그러지 말고 오빠가 나가서 사와.
정태 : 근데 통닭은 이걸로 되겠냐? 더 사올까?
경진 : 만수선배하고 자현이만 안오면 돼. 오기 전에 빨랑 먹자.
민재 : 내 생각엔 니가 제일 겁나는데.
경진 : 그러지 마라. 나 감기 땜에 몸무게 엄청 빠졌단 말야. 나 지금 영양실종이야.
정태 : 얼마나 빠졌는데?
경진 : 120그램. 야 강대욱. 손 떼. 하나둘셋하면 일제히 먹는거야. 반칙하지 마.
문 벌컥 열리며 만수가 뛰어든다.
만수 : 뭐야. 아직 시작 안했지? 어이 모두 안녕. (먹을 것으로 달려들며) 이게 뭐냐. 그래도 개업식인데 돼지머리 하나는 갖다 놔야지.
경진 : 누가 만수선배 좀 책임져. 양손을 묶어놓으란 말야.
떠들썩한 와중에 문이 열리며 자현과 해성이 들어온다.
자현 : 뭐야, 벌써 먹기 시작한거야. 나 오기 전에 시작하지 말라고 했잖아.
병석 : 이게 무슨 회식 자리냐. 창업식이다. 창업식.
술잔부터 돌려. 술병 따.. 등등 떠들석한데..
뒤의 해성이 자기 자리를 못 찾고 어설프게 웃으며 구석으로 슬금슬금 옮겨간다.
그 옆에 있던 정태가 해성을 보고,
정태 : 해성이 왔구나. 서있지 말고 일루 앉어.
하며 의자 하나를 밀어준다. 해성 어정쩡하게 앉는다.
저쪽에서는 만수가 뭔가를 집어먹다가 원성을 듣고 있다. 정태도 그리로 합류해서 같이 떠든다.
문이 열리며 남희 지원이 마이클 규한 등 전산과 학생들이 우루루 들어온다. 안에 있던 아이들과 분분이 인사하고..
새로온 아이들은 민재에게 축하해.. 등의 인사. 다른 이들끼리는 어서 오라.. 너도 왔네 등등..
해성, 일어나서 자기도 누군가와 인사를 하려고 자세를 잡지만 떠들어대는 아이들 때문에 누구와도 시선이 마주치지 못한다.
마이클 : (들고 온 벽시계를 민재에게 내주며) 이거 우리 전산과 선물.
민재 : 와아 고맙다. (남희에게) 고맙습니다.
남희 : 창업식이잖아. 시간을 금처럼 잘 써서 성공하라고.
대욱 : 이리 주세요. 어디 걸까요. 망치하고 못 있어요?
정태 : 야야 거기 컵들이나 이리 줘. 일단 건배부터 해야 되잖아.
경진 : (술병을 쳐서 소리를 내며) 모두 조용.. 이민재 사장의 한말씀이 있겠습니다. 마이클, 계속 떠들거야?
민재 : 한말씀은 뭐가 한말씀이야. 그냥 먹고 마시자고 모인 자리야.
남희 : 그래도 우리가 왜 먹고 마시는지는 알아야지. 민재 한마디하고 우리도 한마디씩 좋은 말해주고..그리고 시작하면 좋잖아.
만수 : 오우 역시 카이스트의 명엠씨 정만수와 신남희답다. 오케이 오늘 사회는 우리가 커플로, (남희에게) 부탁해요~
아이들 저마다 술잔을 채우며 웃으며 즐거운데.. 구석에서 해성이가 부러운 듯이 그들을 보고 있다.
S#18. 실험실 / 밤
중희가 혼자 앉아서 시뮬레이션 작업을 하고 있다. 중희 작업을 하며 옆의 김밥 용기를 더듬어 보지만 안은 비어있다. 배가 고프다.
용기 안을 들여다보고 남아있는 단무지를 집어 우적우적 먹으며 작업을 한다.
S#19. 민재의 사무실
아이들 저마다 종이잔을 하나씩 들고 둘러서있는데 민재가 한마디 하는 중.
민재 : 아직은 벤처라고 하기는 좀 우습고.. 민망하고.. 그저 공부를 계속한다는 기분으로 시작했슴다. 그리고.. 음..
여러분이 도와준 덕분에 이렇게 어영부영 창업을 하게 됐습니다. 에.. 그러니 앞으로도 니들 안 도와주면 배신이야!
아이들 우우..소리지르고...
만수 : 뭐야? 끝이야?
민재 : 아이구 뭘 더 바래?
만수 : 마. 뭐 한마디 해야 우리가 술을 마시지.
민재 : 좋아좋아. 술잔 들고오...
모두 술이다. 술.. 떠들어대며 술잔을 들면...
민재 : 술은 인류의 적. 마셔서 없애자.
모두 없애자.. 복창을 하며 마시고...
저 뒤의 해성.. 남들을 따라 술잔을 들고 뒤늦게 없애자.. 조그맣게 복창하고는 한모금 마신다.
S#20. 사무실 외경 / 밤
백곰과 미순이 오고 있다. 백곰은 떡상자를 안고 있고.
백곰 : 정말 미순씨는 사려깊고 자상하고 생각의 넓이가 하해와 같으십니다. 어떻게 일개 손님의 창업식을 기억하시며 그 창업식에
시루떡을 해오실 생각을 할 수 있으십니까.
미순 : 조용히 좀 해봐요.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순간, 민재의 사무실 쪽에서 와르르 웃는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미순 : 저 집이구만. 애들이 떼거지로 모여있는 모양이네.
백곰 : 저는 기껏 화분 정도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더 생각해 본 결과 그 화분을 누가 키우겠습니까?
그런 일종의 심적 부담을 주는 것이며..
미순 : (백곰의 말은 아예 무시하고 있는 중) 근데 저게 누구여.
백곰도 돌아보면 사무실에서 조용히 나오고 있는 해성.
살그머니 문을 닫더니 살금살금 걸어오다가 둘을 발견하고는 꾸벅 절을 해보인다.
미순 : 가만있어봐. 저번에 만수랑 같이 온 학생 맞지?
백곰 : 아 이교수님 랩에 신입생.
해성 : 안녕하세요.
미순 : 근데 왜 나와. 쟤들 벌써 파장인가?
해성 : 아뇨. 그냥 먼저 나왔어요.
백곰 : 아니 왜애. 보통 저렇게 시작하면 새벽까지는 갈텐데..
해성 : 저기 근데요. 전자동이 어느 쪽이죠?
미순 : 아이구 저런.. 이 밤중에 연구를 해야 되는구먼. 내가 떡 좀 줄게 가져갈래?
해성 : 그게 아니구요. 전자동에 가야 기숙사를 찾아갈 수 있거든요.
백곰과 미순이 잠시 본다.
해성 : 아니면 교문을 가르쳐 주셔도 되요. 거기서부터 기숙사 가는 길도 알아요.
백곰과 미순이 서로 마주본다.
S#21. 캠퍼스 / 밤
해성이 걸어오고 있다. 걸어오다가 사방치기 하듯이 깽깽이로 뛰기도 하고 두발을 벌려 뛰기도 하며.... 아무도 없는 길을 걸어온다.
S#22. 기숙사 복도 / 밤
해성이 혼자 걸어오고 있다. 자기 방문 앞에 서서 주머니를 뒤진다. 열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주머니마다 뒤지다가, 잠겨져 있는 방문의 손잡이를 괜히 몇번 돌려보다가 포기하고 문 앞에 주저앉는다.
잠시 멍청이 앉아있다가 문득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낸다. 동전이 하나 잡혀나왔다.
해성 그렇게 주저앉아서 동전 마술을 연습하기 시작한다. (동전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서 안보이게 하는 방법)
금방 해성은 그 연습에 열중하기 시작한다. 두어번 연습하며 기억을 더듬어 해보다가
문득 앞의 보이지 않는 관객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인다.
해성 : 다음은 동전을 없애는 마술입니다. 아이엠에프 시대에 동전을 없애면 어떻게 하냐구요? 걱정마세요. 없어진 동전이 두 개가 되서
나타날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눈을 크게 뜨고 잘 봐주세요. (여러번 외웠던 대사를 다시 외우는 조금은 딱딱한 톤)
그러더니 입으로 두두두두.. 작은 북 치는 효과음을 내고는
왼손 손가락에 동전을 끼워서 보이지 않는 앞의 관객에게 동전을 보여주고. 화사하게 웃어보이고.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쌌다가 짜안.. 펴보이는데 쨍그렁 소리와 함께 동전이 떨어진다.
다시 주워들고 처음부터 다시 해보인다. 앞의 관객에게 웃어보이는 것까지 함께.
해성 : 다음은 동전을 없애는 마술입니다. 아이엠에프 시대에...
S#23. 센터 외경 / 낮
민재와 경진이 자리마다 복사물을 나누고 있다.
경진, 나누다말고 혼자 킬킬대고 웃고 있다.
민재 : 민경진, 웃지 마.
경진 : 왜애.
민재 : 무섭잖아. 니 머리 속에 이 순간 뭐가 돌아가는지... 겁나. 끔찍해. 웃지 마.
경진 : 우흐흐.. 그런데 참을 수가 없어. 생각만 해도 행복해. 아이구 즐거운 인생에 즐거운 하루여.
민재 : (결국 멈춰서) 뭐야.
경진, 주위를 싹 둘러보더니 민재에게 붙어서 따로 두었던 복사물을 들춰보여준다.
세미나 자료인 복사물에는 중간중간 빨간 줄이 그어져 있다.
민재 : 이게 뭔데.
경진 : 오늘 발표, 석우선배잖어. 이거 다 질문할 것들이야. 내가 어제 이 자료에서 꼬투리잡느라고 두시간 49분밖에 못 잔거 알어?
민재 : 꼬투리를 잡어?
경진 : 그렇지그렇지. 그동안 민경진을 괴롭혀온 김석우. 드디어 복수에 나선 민경진.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오늘 교수님과 후배들 앞에서 찬란하게 당해보시라.
민재 : 그래서 선배의 세미나 발표에 대단한 질문들을 퍼부어서 당황하게 만들겠다고?
경진 : 당황 정도로는 안되지. 이 기회에 아예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게 만들리라. 으하하하. 기대하라 김석우. 내가 간다 김석우.
석우 : (E) 아침부터 왜 그렇게 나를 찾냐?
경진 : 엄마야..
석우 : (서교수와 들어서서 앞쪽으로 이동해가고 있다)
민재 경진, 얼른 인사하고.
경진 : (작게) 내가 미쳐.
서교수 : (석우에게) 오늘 세미나엔 내가 오래 못 있을 거 같은데. 회의가 잡혀있거든.
석우 : 걱정 마세요. 우리끼리 마무리하겠습니다.
서교수 : 아침에 자료 읽어봤어. 관점이 아주 좋던데. 정리도 확실하고.
석우 : 그래도 머리 나쁜 애들은 이해안되는 부분이 많을 겁니다. 오늘 세미나는 애들 질문에 대답해주는 걸로 진행할까 하는데요.
그렇게 해서 이 분야에 대한 애들의 이해도도 평가해보구요.
서교수 : 좋지. ...민경진.
경진 : (몰래 귀기울이고 있다가) 니예.
서교수 : 오늘 또 뒤에서 졸고 있으면 안돼. 이따가 얼마나 명쾌하게 질문을 하는지 지켜보겠어.
경진 : 아이구 교수님도. 모르는 게 뭐 그렇게 자랑이라고 질문을 해대겠습니까. 전 모르는 게 있음 혼자 조용히 공부합니다.
서교수 : 저 말솜씨만큼만 연구를 해주면 얼마나 좋아.
석우와 서교수가 자료를 보며 뭔가 얘기하고 아이들이 들어서고 있고. 민재, 경진을 툭 찌른다.
민재 : 아까하고 말이 틀리잖아. 너.
경진 : 그거야.. 그건.. 그려 나 이런 인간이여. 우짤래. 우짤건데.
S#24. 세미나실
중희 앞에서 발표하고 있다. 이교수와 랩원들 듣고 있고 해성이와 만수는 나란히 앉아있다.
중희 : 본 발표에서는 이상과 같이 hybrid architecture 의 대표적인 모델로인 AuRa, Atlantis, Planner-Reactor 및
PRS의 각각의 특징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교수 : (못마땅해서 보다가) 질문 해. 누구 질문 없어?
정태 : (중희를 봐 주려는 의도로) hybrid architecture가 좋아보이기는 하는데 design하는 것이 왜 어려운가요?
중희 : (자신있게) hybrid architecture는 deliberative와 reactive block을 적절히 연결해서 구성해야 하는데, 각각의 구성비를
얼마로 할지는 적용하는 시스템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최적으로 구현하는 일반적인 방법을 찾아내기가 어렵습니다.
이교수 : (그런 둘을 어이없어 보다가) 지금 고등학교 수업이니? 김정태. 지금 몰라서 물어 본 거야?
정태 : (당황) 아니 아까 잘 못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해성 : (그런 모습들을 보다가 손을 번쩍 든다) 제가 보기에 AuRa는 일반적인 계층적 구조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거든요.
저자가 hybrid architecture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뭐죠?
중희 : (대답하기 다소 어려운..하지만 생각을 짜내어 겨우겨우 답하는) 저도 좀 의아했습니다만, 아마도 상층부에는
deliberative controller가 있고 가장 하층부에는 reactive controller가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정태와 만수, 당황해서 중희와 해성을 돌아본다.
만수는 옆에서 해성의 옷자락을 열심히 잡아당겨 보지만, 해성은 이 문제에 아주 골몰해서 알아채지 못하고.
해성 : 그런데 다른 제어기들도 가장 하층부에는 actuator와 직접 맞물려 있으니까 reactive controller 성격이 크잖아요.
그렇다면 다른 제어기들도 다 hybrid controller라고 부를 수 있는 거에요?
중희 : 글세, 다른 것은 그렇게 부르지 않으니까, 차이점이 있을 것 같은데... (더듬거리는)
이교수 : 차이점이 있을 거 같은거야. 있는거야. 있으면 뭐가 있다는거지?
중희 : (진땀이 나고 있다)
해성 : 아 그리고 하나만 더요. AuRa의 특징중에서 쥐네틱알고리즘(GA; Genetic Alorithm)을 사용한 학습 방법도 있다고 했는데
그게 on-line 상으로도 가능해요?
중희 : (괴로운..)
이교수 : 류중희 뭐해. 대답해야지.
중희 : 거기까진 생각못해봤습니다.
이교수 : 그럼 넌 세미나 준비를 뭘로 해온거야? 책한권 달랑 요약해서 나온거니?
중희 땀만 빼고 있으면서 원망스럽게 해성이를 본다. 정태와 만수도 언짢아서 해성을 본다.
해성은 천지 모르고 심각하게 복사물만 뒤적여 보고 있다.
이교수 : (챙겨 일어서며) 사흘안에 세미나 일정 다시 잡어. 해성이가 질문한 내용에 대해 집중적으로 준비하도록 하고.
이교수 아이들 표정을 한번 죽 훑어보고 나가버린다.
다들 떨떠름한 표정으로 일어서는데 아직도 자료에 파묻혀있는 해성.
아이들 일어서서 교수를 배웅하고.
명환 : 중희야.
중희 : 예.
명환 : 너까지 이러면 어뜩하니. 너라도 무게중심을 잡아줘야 되잖아.
중희 : 예.
명환도 기분나빠져서 나가고..
중희 아주 기분이 나빠져서 퍽퍽 자료들을 챙기는데, 해성은 여전히 자료에 집중해있다가..
해성 : 그러니까요. 이게 만약 온라인상으로 가능하다고 하면요..
중희 : 이해성.
해성 : 예?
중희 : 너 해도해도 너무하지 않냐?
해성 : ...제가요?
만수 : (중희에게로 가서 자료 챙기는 거 도우며) 해성이 너 좀 심했어. 내가 아무리 교수님 앞에선 기회를 잘 잡아라.. 이렇게 가르쳤다고
해도 말이지. 어떻게 이런 순간까지 그럴 수 있냐. 큰절을 해도 모자란 판에 그런 잔인한 질문을 해대? 야아.. 놀랐다놀랐어.
해성 : (어리둥절)
중희와 만수가 나가고.. 정태 자료들을 챙겨 나가려다가 해성을 돌아본다.
해성 멍해서 앉아있다.
정태 : 설마.. 너 몰랐어?
해성 : 뭘?
정태 : 중희선배 어제 밤에 니 작업해주느라고 밤샜어. 세미나 준비 제대로 할 시간이 없었다구.
해성 : 내 작업?
정태 : 그 시뮬레이션 말이야. 오늘 새벽에야 끝내서 교수님께 갖다드렸다구. 물론 니가 한거라고 해서 말야. 너.. 몰랐구나.
해성 : .....알고 있었어.
정태 : 알았다구?
해성 : 아침에 중희 선배가 내 일 해준거 알았어. 알았지만.. 그래서.. 그러니까..세미나때 질문하면 안된다는 건 몰랐어.
그건 아무도 안 가르쳐줘서...
정태 : (한심해서 보다가 웃고) 너두 참 사는 게 힘들겠다.
해성 : (순순이 고개 끄덕인다)
정태 : 이따 밤에 야식 사갖고 와. 중희형 9시만 넘으면 배고파서 허덕거리니까. 그 시간에 먹을 거 주면 금방 풀릴거야.
해성 : 응.
정태 : 만미분식에서 파는 순대를 제일 좋아해. 간이나 허파 많이 얻어오는 거 잊지 말구. 거기서 따끈한 떡볶이를 비닐에 넣어서 팔거든.
그것두 같이 사오면 좋아.
해성 : 간이나 허파.. 떡볶이... 응.
정태, 설레설레하는 기분으로 먼저 나간다.
해성 혼자 멍하니 남아있다.
S#25. 복도
만수와 중희가 걸어오고 있다.
만수 : 너무 심란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네? 요즘 애들 다 그래요. 더불어 사는 끈끈한 정이라는 거 잘 몰라요. 이게 사이버 세계에서만
헤메다녀서 그런가. 독불장군. 지 밖에 모르잖아요. X세대. N세대, 그 담은 뭐야 F세댄가.. 그게 다 그래서 나온 말 아닙니까.
중희 : 해성이가 지 밖에 몰라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만수 : 눈치가 없죠.
중희 : 그래. 그거다. 그 점에선 만수 니가 좀 낫지.
만수 : 그 점 뿐입니까? 예? 내가 좀 나은 게 오로지 그 점 뿐이라고 생각하는거에요 지금?
중희 : 야야. 안그래도 기분 더러워. 밥이나 먹으러 가자. 이럴 땐 먹는 수밖에 없어.
만수 : 전적으로 동감이고 이하동문입니다. 식당 말고 밖으로 나가죠. 간만에 콧구멍에 궁동 공기도 집어넣고.
중희 : 간만은 짜샤. 넌 그저께 밤에도 갔다왔대매. 너 펌프했지? 너 들어오는데 땀냄새가 폴폴 나드라.. 몇시간이나 방방 뛴거야?
떠들며 멀어지는 두 사람.
S#26. 생물과 복도
복도 한쪽으로는 온갖 기기들이 주리리 늘어서 있는 곳. 지민이가 대욱을 끌고 오며.
지민 : 오늘부터 딱 두주일동안이야. 응? 딱 두주일만 하면 돼.
대욱 : (버팅겨 서더니) 그럼 너도 확실한거다. 확실하게 자현선배를 민재형 사무실로 끌고오는거야.
지민 : 아유 걱정마. 민재 오빠가 그랬잖아. 자기 일을 도와줄 사람을 구한다. 원한다면 스톡옵션도 줄 수 있고 돈으로도 줄수 있다.
지금 자현언니 돈 필요해. 이번 자작자동차 대회 나갈려면 돈이 무쟈게 필요하다구. 그러니까...
대욱 : 알았어. 하여간 확실하다 이거지?
지민 : 그래애. 그러니까 오빠는 민재오빠 사무실에서 자현언니하구 사이좋게 함께 일할 생각만 하면 돼.
대욱 : 알았어. 쥐새끼만 잡아주면 되는거야?
지민 : 그렇지. 먹이 주고 청소하고 그러는 건 내가 다 할 수 있어. 그냥 쥐새끼... 으으으.. 그것들만 잡아서 옆에 옮겨주면 돼.
대욱 : 몇마리나 되는데.
지민 : 그게.. 몰라.
대욱 : 몰라?
지민 : 아직 한번도 안 들어가봤어. 그 방엔.
대욱 : ... 너 생물학과 맞냐?
지민 : 아유 고만해. 그 소리만 이백번쯤 들었단 말야.
S#27. 동물 실험실 안
실험용 쥐들이 박스안에 주리리 놓여있는 방. 각 박스 안에 쥐들이 오글거린다.
그 쥐들이 가득이 보여지다가 빠져서 보면. 지민이 굳어서 쥐들을 보고 있다.
옆의 대욱이 휘이 둘러보며.
대욱 : 이야.. 냄새 죽이는데. 뭐부터 시작하면 되냐.
지민 : 몰라.
대욱 : 모르면 어떻게 해. 여기 선배나 누구 없어? 물어보기라고 해야지.
지민 : 안돼. 선배들한텐 알리고 싶지 않어. 나의 약점.
대욱 : 하긴 그렇기도 하겠다. 생물학과 다닌다는 녀석이 실험용 쥐를 무서워한다니 말이 되냐?
지민 : 일단 각 박스의 쥐를 헷갈리면 안돼. 절대로 안돼.
대욱 : 그거야 알지. 그리고.
지민 : 그리고.. (비틀거리며 한쪽으로 가며) 여기 어디 먹이가 있다고 했는데.. 물은 어딨지?
하는데 대욱은 박스 하나에서 쥐 한 마리를 들어 구경한다.
지민이 물통을 들고 돌아서는데.. 그 앞으로 쥐를 내보이는 대욱.
지민 비명을 지르며 물러선다.
대욱 : 도대체 이게 왜 무섭다는거야. 봐. 얼마나 귀엽게 생겼어.
지민 : 절루 좀 치워. 그 꼬리 좀 안보이게 하라구.
대욱 : 꼬리? 이 꼬리가 뭐.
하며 쥐의 꼬리를 들어본다.
지민. 조용히 물통을 내려놓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린다. 토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대욱, 재미있기도 하고 한심하고.. 손에 들린 쥐를 눈높이로 들어보며.
대욱 : 안됐다. 이렇게 이쁜 니가 징그럽다니. 알레르긴가봐. 알레르기. ....근데 너 눈 말야. 꼭 우리 자현선배같이 생겼다. 응?
S#28. 엔진랩 / 낮
혹은 천막. 자작 자동차를 손보고 있는 중.
자현이 기름때 범벅이 되서 작업을 하고 있다가 귀를 쑤시며.
자현 : 누가 내 말 하고 있나. 왜 이렇게 귀가 간지러워.
병석 : (공구를 들고 오며) 너 어제 엔진 테스트 다 해놨어?
자현 : 뭔 테스트?
병석 : 우리 랩장이 시킨 거 있잖아. 아까 그 결과 보고서 찾고 있든데?
자현 : 아이구. 잊어 먹었다.
병석 : 자알 한다. 둘 중에 하나 택해. 자수하러 가든가 영원히 도망치던가.
자현 : 랩장 어딨는데.
병석 : 일루 오고 있지.
자현.. 으아해서 후다닥 주위를 둘러보다가 구석에 놓여졌던 천막 밑으로 기어든다.
동시에 들어서는 동현.
동현 : 추자현. 자현이 어딨어?
병석 : (얼른 작업하는 척 하면서) 자현이요?
동현 : 좀 전까지 여기 있었는데 어디로 간거야?
병석 : 좀 전까지 여기 있었습니까?
동현 : 자현이 보면 당장 나 찾아오라고 해. 알았지?
병석 : 예.
동현 : (돌아서 나가려다가 문득 한곳을 본다)
자현이 숨은 천막이 꼼지락거리고 있다.
병석, 아이구...싶은데..
동현 : 아니 나한테 오라고 할 거 없어. 그냥 이 말만 전해. 일을 시키면 셋 중에 하나는 씹어먹고. 하나는 사고를 치고,
나머지 하나는 대충 해치우고. 이런 식으로는 랩생활 계속하기 힘들테니까.. 어디 정비소나 알아보라고 해.
대전 안이라면 나도 몇군데 소개해 줄수 있다고.
병석 : ...예에..
동현 : 그리고 병석이. 너두 마찬가지야. 친구따라 강남갈래? 너 점점 추자현이 닮아가는데 너두 랩생활 하기 싫어?
자현 : (참다 못해 천막을 젖히고 벌떡 일어나며) 제가 잘못한거면 저만 갖고 말씀하십쇼. 사람이 치사하게 화낼 대상이 눈에 안뵌다고
약한 놈 아무나 붙잡고 화풀이하고 그럼 됩니까?
동현 : (쯧쯧..해서 보는)
자현 : (에구..)
동현 : (손을 내밀며) 내놔. 테스트 정리한 거.
자현 : 아..저기 그게요..
동현 : 어딨어. 내 책상 위에 놔두라고 했는데 왜 없어.
자현 : (에라.. 큰소리로) 잊어먹었습니다. 차라리 절 죽이십쇼. (고개를 푹 떨군다)
병석 더 이상은 나도 모르겠다..싶어서 돌아선다.
S#29. 박교수 연구실
박교수가 부지런히 차를 나르고 있다. 처장과 이교수가 앉아있고.
박교수 : 드세요. 박기훈표 인스턴트 커핍니다. 제 방에는 녹차가 없어서 어쩌죠.
처장 : 기대도 안했습니다. 잘 마시겠어요.
이교수 : 고마워요.. (처장에게 하던 얘기 계속) 그래서 말인데요. 랩 아이들을 데리고 밤새 술이라도 마셔보면 어떨까 생각해봤거든요.
박교수 : 오 술. 언제 어디서요?
이교수 : 그럼 애들끼리 친해지는데 확실하게 도움이 될까요? 난 애들하고 술을 마셔본 적이 없어서요.
처장 : 글세요. 왜 이교수 랩 아이들 팀웍에 문제가 있나요?
박교수 : 좋은데. 술마시고 같이 취해보는 거 아주우 좋은데..
이교수 : 우리 랩에는 타대학에서 진학한 아이가 하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신경이 쓰여요. 너무 신경 쓰는 거 처럼 보이면
그게 또 차별하는 거니까 그러지도 못하고..
처장 : 혹시 전에 말씀하신 그 학생인가요? 아주 우수한 실력으로 입학했다고 했던..
이교수 : 근데 랩 생활이라는 게 실력만 가지고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처장 : 그거야 어디서나 마찬가지죠. 어디서든 실력보다 좀 더 중요한 게 인간관계 아니겠어요?
박교수 : (이교수에게) 그 술자리에 술상무 필요없어요? 내가 이교수님 옆에 딱 붙어서 이교수님꺼 다 마셔줄 수도 있는데.
이교수 : 박교수님 랩에 새로 들어왔다는 학생은 어때요?
박교수 : 우리요? 우린 아무 문제 없는데요. 1년에 두세번씩 신입생 뽑았음 좋겠어. 그럼 재밌을텐데.
맨날 그 얼굴에 그 얼굴만 보면 질리잖아요.
이교수 : (박교수와 대화 단념하고 처장에게) 함께 모여 앉아서 정신을 잃도록 취해보고.. 그런 모습들 서로 보고..
그럼 친해지는데 도움이 될까요?
처장 : 설마.. 이교수 이제까지 한번도 정신잃도록 취해본 적이 없는거에요?
이교수 : ...난 취해지지가 않아요.
박교수 : 에구.. 그런 불쌍한 일이.. 그렇게 술이 세신거에요? 그럼 술값이 많이 들텐데..
이교수 : 술 취한다는 게 싫어요.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없다는 건.. 그건.. 화나는 일이잖아요.
박교수 : 엥? 이상하네. 그렇게 자기를 맨날 통제하고 사는 게 재밌어요? 질리지 않나?
처장 : (웃으며) 내 생각은 이런데요. 아이들한테 관심을 갖는 건 좋지만 그애들의 인간관계까지 교수가 간섭을 하는 건
좀 곤란하지 않겠어요?
이교수 : 간섭을 하자는 게 아니구요. 다만 좀 도와주는 의미에서..
처장 : 놔두세요.
이교수 : 놔둬요?
박교수 : 놔두래요.
처장 : 스무살 시절이라는 건 한참 자전거 배우기를 할 때라고 봐요. 자전거 배우는 게 그렇잖아요. 언제까지 누가 뒤에서 잡아줄 수가
없는 거지요. 자기가 넘어지고 무릎도 깨보고.. 그래야 타는 법을 익히는 거에요.
이교수 : 그럼.. 이십대에 배운 자전거 타기로 평생을 달려가는 건가요?
처장 : 허허. 하긴 평생 자전거 타기를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거 같습디다..
박교수 : (이쪽저쪽 보고..) 저는 자전거 탈 줄 아는데요. 오토바이도 탈 줄 아는데..
처장 : 박교수야 언제나 그 다음 탈거를 노리는 분이잖아요. 다음은 우주선 아닌가요?
처장 허허 웃고, 이교수는 뭔가 생각해보고 있다.
S#30. 이교수 랩 / 밤
아이들 모여서 회의 중.
명환 : (수첩을 보아가며) 정태는 초음파 회로쪽을 맡아왔으니까 그걸 계속해주면 되겠고..중희는 서버 프로그램..아 GUI에 신경써서해줘.
중희 : 예.
명환 : 그리고 경로제언데.. 만수 너 할 수 있겠어?
만수 : 하이구 맡겨만 주십쇼. 안그래도 요즘 근질거리던 참입니다.
명환 : 논문 주제는 잡은거야?
만수 : 아아참. 이번엔 기가 막히다니까 그러네요. 내일 중으로 보여드릴테니까 너무 감탄하진 마세요. 경로제어.. 문제 없슴다.
제가 또 이동로봇의 달인 아닙니까.
명환 : (못 미덥지만 할 수없이) 그래. 대신 이틀에 한번씩은 보고해. (수첩을 덮으며) 자 그럼..
해성 : 전요. 전 뭐하면 되죠?
아이들 모두 해성을 쳐다본다.
명환 : (좀 당황해서 수첩을 다시 펴며) 해성인.. 어.. 뭘해야 되나. 중희야 너 도와줄 사람 필요하지?
중희 : 뭐 맨날 하던건데요.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명환 : 그런가... 그럼 정태 너하고 같이 하면 되겠다.
해성 : 로봇 항법 부분을 하면 안될까요?
만수 : 야야. 너 이동로봇을 만만하게 보는 모양인데 그거 무지 어려워.
해성 : 그래도 해보고 싶어요. 그거 아주 재밌어요.
만수 : 그래? 그럼.. (명환의 눈치를 보는)
명환 : (얼른) 그러자. 해성이하고 만수가 같이 해봐. (일어나며..) 자 그럼 각자 시작하라구.
아이들 분분이 흩어지고..
만수 : 좋아 이해성. 일루 붙어. 내가 이 기회에 진정한 연구의 맛을 충분히 느끼게 해줄게.
해성 : 근데...(손목 시계를 보며) 지금 잠깐 나갔다 와도 되요?
만수 : 지금? 어디?
정태 : (슬쩍 해성을 돌아본다)
해성 : 조기 앞에 잠깐요.
만수 : 그래? 아아.. 그거.. (화장실이라고 생각하고 있음) 그럼 갔다 와야지. 천천이 볼일 다 보고 와라..
해성 부지런히 나간다.
정태 벽시계를 본다. 밤 9시 30분을 넘어가고 있다.
S#31. 밤 전산동 앞
지원, 마이클, 규한이 나오고 있다.
규한 : (지원에게 열심히 설명중) 그건 지원이 니가 몰라서 그래. 일단 머그게임에 들어가면 거긴 또 다른 세계야.
현실에선 내가 한심무쌍하고 비리비리하고 맨날 얻어맞고 다니는 놈이라고 해도, 그 안에 나는 절대고수가 될 수도 있고.
재벌이 될 수도 있단 말야.
지원 : 글세 그래봐야 게임이잖아.
규한 : 하아 정말 말이 안 통하네.
마이클 : 그러지 말고 누나도 한번 해봐. 해봐야 알어.
규한 : (멈춰 세우며) 그래. 게임에 들어가서 일단 레벨을 올려보라구. 그 맛이 기가 막히다 너.
지원 : 레벨을 올리다니.
규한 : 일단 시작하면 레벨이 1인데.. 열심히 사냥하고 무술을 익히고 그럼 레벨이 하나씩 올라가거든.
지원 : 그렇게 올려서.. 그 다음에는..
규한 : ...그거야. 올리는 맛. 고수가 되어가는 맛.
지원 : 그게 뭐야. (한심하다는 듯 웃고 계속 가려는데)
규한 : (막아서며) 구지원 넌 이 현실세계에 불만이 없냐? 또 다른 세계가 필요없다는 거야?
마이클 : 현실에 불만 없는 사람 없어. 마이클 내기할 수 있어. 현실세상. 현실의 나. 모두 불만 있어.
지원 : 마이클 너도 그렇다는 거야?
마이클 : 그럼 현실에 마이클은 너무 가난해. 난 지금 스테이크가 먹고 싶은데 돈 없어.
지원 : (웃는데..)
해성 : (E) 지원아.
돌아보면 해성이 조심스레 다가오고 있다.
지원 : 해성이구나. 왜.
해성 : 저기.. 만미분식이 어디 있는지 아니?
지원 : 만미분식?
해성 : 응. 순대도 팔고 떡볶이도 파는 데.
마이클 : 나 아는데.. 그거 중국집 옆에 있어.
해성 : 중국집?
지원 : 쪽문으로 나가야 돼. 쪽문 알지?
해성 : 쪽문? 아 알어..
규한 : 아니 무슨 데이트를 순대집에서 하기로 한거에요?
지원 : 그리로 나가서 골목을 따라 주욱 가다보면.. (어렵다..) 약도 그려줄까?
해성 : (활짝) 응 약도 있으면 찾아갈 수 있어.
S#32. 이교수 랩 / 밤
명환, 중희 만수 등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만수 : 진짜 이번에두 짜장면 한그릇씩 멕이고 끝내면 안됩니다.
중희 : 마 이 시간에 짜장면 집이 열려있기나 하냐.
명환 : 술은 한병 이상씩 안된다. 내일 일찍 미팅 있는 거 알지?
만수 : 그 술이 무슨 술이냐에 달렸죠. 몸에 나쁜 쇠주냐. 뇌세포에 좋은 양주냐. 선배님. 양주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세요?
중희, 만수를 떼밀며 나가고.. 명환, 정태를 돌아본다.
명환 : 뭐하고 있어? 사준다 그럴 때 얼른 붙어.
정태 : (머뭇거리며 일어서며) 예. ...근데 해성이는..
명환 : 보나마나 어디서 또 문제 풀이하느라고 세상 잊고 있을거다. 그앤 뭐 그리 풀어야 되는 문제가 많은지 원...
명환 나가고... 정태 내키지 않은채로 뒤따른다.
벽시계는 11시를 넘기고 있다. 불이 꺼지고.. 문이 닫기는 소리.
S#33. 캠퍼스 쪽문 근처 / 밤
백곰이 퇴근하는 차림으로 흥얼거리며 걸어오다가 보면.
해성이 음식이 든 비닐 봉지를 양손에 든 채로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이쪽을 봤다가 저쪽을 봤다가 하고 있다.
백곰 : (다가서며..) 전자과 이해성.
해성 : (돌아보고 인사를 꾸벅 한다) 안녕하세요.
백곰 : 뭐하고 있어. 거기 서서.
해성 : 저기 전자과로 가려면 어느쪽으로 가야되죠?
백곰 : 또 전자과야? 왜 기숙사에 갈려구?
해성 : 아뇨. 전자과 우리 랩에 갈건데요.
백곰 : 근데 원래 그렇게 방향치야? 두바퀴만 돌려놓으면 동서남북이 완전히 헷갈려버리고 그래?
해성 : 언제나 길이.. 잘 생각이 안나요.
백곰 : 아니 지금 여기까지는 어떻게 왔는데.
해성 : 약도 보구요. 근데 그 약도는 쪽문에서 분식집까지만 있거든요. 근데 그 약도가 어려워서 아주 오래 걸렸어요.
백곰 : 하아참. 그 전에 전자과에서 여기까지는 왔을 거 아냐. 그건 어떻게 왔어.
해성 : 오는 길은 아는데.. 가는 길은 모르겠어요.
백곰 : (어이없어서 말이 안나온다)
S#34. 전자과 복도
불이 꺼져 있어서 어두컴컴한데 해성이 혼자서 걸어오고 있다. 양손에는 달랑달랑 음식을 들고.
이교수 랩 앞에 서서 봉지를 한손에 모으고 문을 열려고 한다. 잠겨있다.
해성, 쾅쾅 노크를 해본다. 아무 대답이 없다. 해성, 안을 들여다보려고 애쓴다. 소용없다. 난감해서 서있다.
S#35. 전자과 로비 / 밤
만수가 카드키를 열고 들어서고 있다.
아직 디디알(펌프)의 여운에서 벗어나질 못해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땅을 이리저리 스텝 밟듯이 뛰어가며 걸어온다.
S#36. 이교수 랩 앞 복도
이제 만수는 거의 스테이지의 댄스 가수가 된 기분으로 온갖 폼을 잡으며 노래를 부르며 걸어오고 있다.
주머니에서 멋지게 열쇠를 뽑아들고 마악 문을 향하다가 오잉? 해서 본다.
거기 해성이 문 앞에 앉아있다.
만수 : 이해성. 너 거기서 뭐하냐? 또 문제 푸냐?
해성 : (천천이 고개를 들고 만수를 본다)
만수 : 너 열쇠 없어? 저번에 복사한 거 줬잖아.
해성 : 가방에 있는데 가방이 안에 있어요.
만수 : 저런.. 근데. 너 어디갔다 이제 온거야? 너 기다리다가 우리 나가서 간만에 한잔씩 했잖아.
해성 : (부시럭거리며 그때까지 겉옷 안에 품고 있던 봉지들을 꺼내 보인다) 이거 사러 갔었어요.
만수 : 그게 뭔데. (앞에 쭈그려 앉아 보는)
해성 : 순대하고 떡볶이요. 이거 살려고 만미분식이란 데 찾아갔거든요. 근데 가보니까 저번에 만수선배하고 갔던 곳이드라구요.
근데.. 그걸 몰라서 너무 오래 걸렸어요. 이거 이제 다 식었어요. 맛도 없을거에요. (지금 좀 지치고 어쩐지 울고 싶은 기분이다)
만수 : 그럼 너.. 이거 사려고 나갔었단 말야? 우리랑 같이 먹을려구? 야 임마. 그럼 진작에 그렇게 말했으면 우리가 기다렸지.
해성 : (이제 결국 조금씩 울먹이며) 그걸 잘 모르겠어요. 언제 어떤 말을 해야 되는지..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아닌지.. 그런 걸 정말
잘 모르겠어요. 그런 건 책에도 나와 있지 않잖아요. (눈물을 닦아가며) 너무 쉬운 거라서 책으로 나올 필요가 없는 건가봐요.
자전거 타기도 그렇잖아요. 너무 쉬워서 그거 가르쳐 주는 책이 없어요. 근데.. 난 잘 모르겠어요.
만수, 당황해서 보고 있다. 해성 이제 흐느껴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