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옆지는 2024년 가을 올해도 두 달 남기고 벌써 10월이 되었다.
도서관 책속에서 이곳저곳서성이다 이달은 이 책을 선택하여 읽기로 했다.
혼자 늙는 게 어때서.
요즘은 90세를 넘길 확률이 남성은 4명중1명이면 여성은 2명중1명이라고 한다.
100세를 넘긴 장수노인이 일본에선 8만 명에 이르고 나나 너나 장수 확률이 꽤 높다는 뜻이다. 노인 혼자 있으면 불쌍하다. 외롭겠다. 말하고 있다. 사실 나도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아주 많다. 그런데 어느 샌가 우리사회의 싱글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독고비율은 2007년15.7%에서 2019년에는27%증가했다고 한다. 사별과 이혼에 따른 예비1인가구가 미래에는 절반이상이 될 것이다.
노후에는 혼자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60세 이상의 고령자500명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본 결과 460명의 답변에서 노후는 가족과 함께 보단 혼자 사는 것을 원한다는 데이터가 높았다. 노후의 의식주 해결 만 완벽히 준비된다면 혼자가 편하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다. 앞에서와 같이 데이터와 롤 모델이 늘어나 싱글의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사라지길 바란다.
자녀가 없는 노후는 정말로 비참 한가.
자식에게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부담만 남기자. 바로 전날까지 건강하다가 그다음 날 죽어있는 경우를 돌연사라고 한다. 119를 부르기 전에 우선 방문 간호 스테이션에 연락하는게 좋다. 방문 간호 스테이션은 24시간 대응의 의무이기 때문에 상황을 설명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필요하면 주치의에게 연락해 주거나 야간 방문도 해 준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잘 부탁해” 라는 말 정도는 해 두는 게 좋다. 간병보험 덕분에 그 정도는 가능해졌다. 자녀도 “저도 이제 어께의 짐을 내려놓을게요“ 등의 감정을 서로느껴보자. 이런 성취감도 떠나는 이가 가족에게 주는 마지막선물이 아닐까.
시설에서 죽기 원하는 노인은 없다
병원이나 시설에서 노후를 보네고 싶은 사람은 없다. 모두 어쩔 수 없이 형편상 가는 곳이지 어린이집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24시간 관리해주는 전체적기관이며 따라서 시설은 교도소와 다를바없다. 언젠가는 나갈 수도 있지만 시신이 되지 않는 한 내 자유대로 나갈 수 도 없다. 허락을 받아야 하고 보호자의 승인이 있어야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서비스제공형 고령자 주택이라면 괜찮을까. 여기서 문제는 의료간호간병을 모두 전담하는 의료법인을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열화가 일어난다 는 점이다. 후생 노동성도 이것을 눈치 챘는지 동일 건물로 방문 진료를 반복 할 경우에는 감액해주거나 케어 매니저에게도 여러 센터를 함께 이용하도록 고령자 주택에 들어가면 도중에 주치의를 바꾸기가 어렵다. 시설에서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죽는 순간에는 의사도 필요 없다. 집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편이 행복할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살아있을 때 고립되지 않는 것이다.
싱글여성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남성과 달리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고립된 인생은 가족의 부제가 많기 때문이다. 간병서비스가 있고 유품정리회사가 있고 고독사의 정의 중 입회인이 없는 죽음이다. 혼자 사는 고령자라면 가끔 오갈 수 있는 사람이 있겠지만 나도 너도 기본적으로 혼자 있다. 삼대가 살아도 외출하고 직장가고각자의 볼일 보러 나가면 늘 혼자다. 작별의 인사와 감사의 말은 미리미리 하자. 혼자 살던 노인이 혼자 죽는 건 당연한일이다. 중요한 것은살아 생전에 고립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치매에 걸려도 집에서 혼자 죽을 수 있을까.
치매 환자 700만 명 시대가 왔다. 치매환자는 정신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을까. BPSD<행동심리증상>라는 문제를 억제하는 수단은 두 가지다. 신체 구속이나 실내 격리와 같은 물질적 행동 억제다. 약물을 투여하면 얌전해지지만 생기를 잃는다. 정신병원이 아니고 일반 병원에서도매한가지다. 부유층 어느 노인시설에 갔더니 환자가 복도는 왔다 갔다 하지만 승강기에 암호가 있어 출입은 불가능하다. 피난처라 하는 것은 환자의 가족이나 자주 와야 한다, 그러나 가족들이 자주 오질 않는 것이 통계다. 집에서 혼자 사는 치매환자의 상태가 좋은 이유는 마음대로 활보하며 자유를 누리며 지낸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늙고 병든다.
아스나엔은 노인시설 서비스 제공형 노령자 주택 데이서비스 쇼트 스테이<단기 보호 센터>소규모 다기능형 사업을 조합하여 통근숙박 방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직원 배치나 전환도 유연하여 이용자가 데이서비스에 올수 없으면 담당직원이 가정으로 방문한다, 우리도 이런 시스탬을 강구 해봐야겠다.
사회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은 살면 안 되나요.
존엄한 생과 존엄하지 않은 생의 경계선은 어디일까. 어떤 사람은 배변배뇨를 할 수 있는 상태를 존엄의 지표로 보고 타인에게 부탁할 상황이라면 존엄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자기 결정 능력이 있는 동안은 괜찮지만 자기 결정 능력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마지막까지 망설이면 되요. 이런 생각을 한다. 글 쓴 작가의 아버지는 의사였고 암환자였으나 어떤 날은 절망하고 어떤 날은 빨리 죽기를 원했고 어떤 날은 ‘이제 됐다’ 하셨다, 의사인 아버지도 흔들리는 마음에 온 가족은 휘둘리며 함께 고통을 느끼며 지내야한다.
의료업계 지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ACP<연명치료>를 권하는 입장이지만 사실 마음이 내키지 않아요. 나도 쓰고 싶지 않고 타인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아요” 이런 말을 들으면 나는 이 사람은 믿어도 되겠다. 란 생각을 한다. 내가 노망이 난다면 먹을 수 있는 동안은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고 사는 날 까지 살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집에서 혼자 죽을 수 있습니까.
가족이 있어도 할 수 있고 없어도 할 수 있다. 혼자 살아도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고 암이라면 더 쉽고 치매여도 가능하다. 간병 보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혼자 살아왔는데 임종이라고 해서 거의 만나지 않던 일가친척이 모이는 것도 어색하다. 그저 혼자서 조용히 생을 마감 하는 것도 괜찮은 생각인가 싶다. 세상은 이렇게 자꾸 바뀌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