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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체에 대한 세 가지 기억을 가지고 남체를 떠납니다. 하나는 창문밖의 풍광이 너무 훌륭하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숙소에 대한 불편했던 기억. 그리고 고도가 올라오자 기압의 변화로 모든 물질이 빵빵해진다는 물리적 변화. 일회용커피도 풍선처럼 빵빵해지고, 과자봉지도 터질듯이 빵빵해집니다. 그리고 사람얼굴도 빵빵해집니다. 내 얼굴을 본 소호님은 볼이 통통하게 부풀어 오르고, 볼에 밀려 입이 조그만 해진 모습을 단 한마디로 표현했습니다. “복어”!
아침 식사를 하고 천천히 마을 위로 올라갑니다. 마을 위쪽 끝에 캉주마로 가는 산길이 나있기 때문입니다. 캉주마까지는 잔잔한 풀과 키작은 관목이 듬성듬성있는 코스입니다. 내리쬐는 자외선을 대비해서 선크림을 듬뿍 바르고 입술연고를 바릅니다. 눈을 보호하기 위해 고글도 씁니다. 그리고 목은 다용도 스카프로 무장을 합니다. 돌담님은 오늘도 엄청난 양의 선크림을 얼굴에 발랐습니다. 아마 저 썬 크림이 흔적이 없어지려면 점심나절은 되어야 될 것입니다. 일본 게이샤처럼 하얀 얼굴 화장(?)을 하게된 돌담님을 보고 모두들 한 번씩 웃습니다. 롯지에는 거울이 없어 정작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더 재미있습니다. 어제 에베레스트뷰호텔을 갔다 온 탓인지 그래도 오르막을 올라 마을을 빠져 나가기가 엄청 쉬워 졌습니다.
아침이라 손이 시려 장갑을 끼고 산길로 접어드는데, 한 스무살 정도 되었을까? 셀파족 아가씨가 전통의상을 입고 길 옆에 서 있다가. 불쑥 나를 잡아 채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놀랬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아가씨가 입가에 환한 미소를 띄우며 지나가는 나를 잡는 다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포토 포토” “치토 치토”? “호이노(아니) 포토포토” 그제서야 그 아가씨의 말 뜻을 알아들었습니다. 이 아가씨는 사진을 찍어달라는 예기였습니다. 순간 ‘혹시 전통 의상 입은 자기 사진을 찍고 돈 달라는 건 아닐런지?’ 일단 사진기를 들이대자 아가씨는 모델처럼 살짝 웃으며 자세를 잡습니다. 그러니까 더 불안해 집니다. 사진 찍는 포즈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자 아가씨는 네가 다가와 뷰파인더를 봅니다. “호호호 라므로 라무로(좋아 좋아요)” 아가씨는 자신의 사진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수줍어 합니다. 그제서야 그 아가씨는 사진기에 자신이 찍히는 모습을 신기하게도 생각하고, 무척 즐긴 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진 모델이 되어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주머니에 있던 사탕을 몇 개 건네주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길은 우리네 산골의 민둥산에서 만날수 있는 길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 길이 가파른 산허리를 후벼파듯 만든 가느다란 길이라 오른쪽은 까마득한 낭떠러지이고 그 밑 계곡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임자체에서 흘러 내려오는 두다코시강의 원류입니다. 계곡이 깊어서일까 그 강의 원류는 가드다란 실처럼 보입니다.
길을 지나다 돌을 깨서 길을 만드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워낙 높은 곳에 있는 길이라 길은 자연 붕괴되거나 소실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언제든지 '수퍼맨'처럼 '스톤맨'이 나타나, 돌을 깨고 축대는 쌓으며, 길을 보수합니다. 그런 사람은 공무원도 아니고, 공원 관리인도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 카스트제도에 의해 돌을 다루는 계급의 사람이 스스로 자기 업인 양 그렇게 무보수로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옆에는 항상 모금함이 있습니다. 이렇게 잘 보수된 길을 걷는 것이 고맙다면 소액이라도 감사의 성금(생활비)를 주고 가라는 것이겠지요. 그곳을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면 언제나 그렇듯 전망이 시원하게 트이는 곳에는 라마식 불탑이 있습니다. 불탑에서 아마다블람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모두들 그곳을 그냥 지나가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다른 팀 또는 서로 다른 외국인 끼리로 거리낌 없이 서로 찍어 주기도 하고, 함께 웃고 즐기기도 합니다. 이것이 산이 인간에게 주는 행복 중에 하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서 캉주마 까지는 그냥 편안한 산길로 이어집니다. 모두들 마음이 편안해진 건지 걸음도 설렁 설렁, 사진도 수없이 찍어가며, 꽃놀이 나온 분들처럼 그렇게 걷습니다. 이제는 히말라야에 이미 적응이 되었는지, 무섭게 뿔을 치겨 세우고 걸어오는 족교떼를 만나도, 서둘러 피하지도 않습니다. 설령 어찌하다 족교가 내 몸쪽으로 뿔을 들이 밀어도, 나를 떠받으려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순간'움찔'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내가 점점 족교와 같은 짐승이 되어가는 걸까요? 아니면 자연에 동화되어 가는 걸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내눈에는 족교의 날카로운 뿔은 보이지 않고, 천사의 눈망울을 가진 그 선량하기 그지없는 눈망울만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캉주마(3,550m)는 전망이 뛰어난 마을입니다. 사실 마을이라기보다는 휴게소같은 곳이라해야 맞겠습니다. 전망 좋은 롯지 두 채와 빵을 파는 레스토랑 하나가 전부인 곳이지만 전망이 좋은 탓에 많은 사람들이 쉬어 갑니다.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특이한 것은 롯지 입구에 덩치가 큰 야크 한 마리가 호객용인지 전시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두커니 서있습니다. 사람들은 야크 옆에서 사진을 찍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오버하기 좋아하는 강여사가 사진을 찍으며 야크 뿔에 손을 대려하자 주인 아주머니가 아주 놀라며 외칩니다. “노타치” 그리고는 달려와 강여사를 옆으로 밀어내고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합니다. “야크 콘 노터치, 베리 덴저러스, 야크 바디 터치 굳. 오케이” 야크 뿔을 잡거나 손대면 야크가 “뿔”낸다는 거죠. 야크에게 있어서 뿔이란 한비자에 나오는 역린(용의 몸에는 수많은 비늘이 있는데, 그 중 목 밑에 있는 비늘 하나가 거꾸로 나있는 것이 있다, 누군가가 실수로 그 것을 건들면, 용은 노발대발하여 모두 죽여버린다는 것)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본 동물 중 천사의 눈빛을 가장 많이 닮았을 것 같은 야크라도 건들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는 것. 아무리 착한 사람에게도 역린과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캉주마의 백미는 역시 아마다블람의 전경인 것 같습니다. 따듯해진 햇빛을 받으며 우리는 잠깐 동안이나마 아마다브람의 자태를 감상하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이제부터 점심 식사 장소인 풍기텡가(3,250m)까지는 내리막입니다. 가야할 길에 테싱(3,380m)의 평원이 보이고, 그 아래 풍기텡가가 있을 계곡이 보입니다. 그리고 오늘 문제의 코스도 함께 보입니다. 그곳에서 강을 건너 텡보체(3,860m)까지 올라가는 오르막길 언뜻 보기에는 한 20분 정도면 오를 것 같은데, 2시간 반은 갈어야 한답니다. 그 오르막이 만만치 않은가 봅니다. 그 오르막의 언덕 위에 마을의 모습이 멀찌기 보입니다.
풍기텡가로 네려가는 길은 주목 천지 인니다. 한국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소백산, 태백산, 덕유산 정도에나 가면 울타리 밖에서나마 겨우 볼 수 있는데, 이곳에는 길이 주목 숲으로 나있습니다. 그것도 높이가 20미터는 넘는 주목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숲입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주목의 존재가치 보다는 가는 길에 강렬한 햇빛을 차단해주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 더욱더 반갑습니다. 그렇습니다 몇 시간전 출발할 때만하더라도 추워서 장갑을 꼈는데, 그새 달궈진 햇빛은 무섭고, 그늘이 반가워졌습니다. 조금 지나가 갈림길이 나옵니다. 왼쪽 길은 쿰중(3,780m)마을로 가는 길입니다. 쿰중은 남체만큼이나 큰 마을이고 그곳에서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등정한 힐러리 경이 세운 힐러리학교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직진을 하게되면 고쿄를 가는 길이고, 약간 오른쪽이 우리가 가고 있는 풍기텡가로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하산을 하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삼거리를 지나 테싱마을까지 내려 왔을 때 잠낀 휴식을 취하다 보니 대웅스님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가이드도 스텝들도 삼거리를 지나서는 아무도 스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서유기의 삼장법사처럼 오지를 여행하다, 마귀에 잡혀가리라도 한 것인지 갑자기 사라져서는 아무도 행방을 모른다고 하니, 이를 어쩝니까? 걸음이 느려 우리보다 먼저 갔을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해서 우선 발빠른 가이드 푸르바를 풍기텡가로 내려 보내고, 우리는 내려오는 외국인들에게 인상착의를 말하며 물어봤지만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정말 길을 잘못들어 고쿄로 간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스님을 찾으러 다시 오르막을 올라가는 것도 그렇고, 찾더라도 오늘 숙소까지 가는 것도 문제이고… 20분 쯤 지났을까? 멀리서 걸어내려오는 대웅스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한걸음 한걸음 느릿느릿 발을 떼면서…어느새 족교의 스텝을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풍기텡가(3,250m)는 고산병의 피난처입니다. 캉주마(3,550m)에서 고산병이 발생하면 풍기텡가로 네려 오고, 또한 텡보체(3,930m)에서 발생해도 다시 뒤돌아 풍기텡가로 내려와 몸을 추스르는 곳입니다.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압권은 어른 두 세명이 팔을 벌려야 잡을 수 있는 정도의 거대한 주목 나무입니다. 나무의 높이도 어림짐작으로 4~50m 정도는 되어 보입니다. 그런 주목이 그곳에서는 별로 주목(?)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거대한 주목은 빨래줄의 한쪽 지지대로서, 화장실은 가는 길목의 돌담벼락의 일부로서, 야외 차양막의 지지대로서 제 기능을 다할 뿐입니다. 점심을 먹고 나자 ‘안다이’ 유선생이 어제 남체바잘에서 산 산행지도를 꺼내놓고 오늘 오후 트레킹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풍기텡가에서 팡보체까지 거리는 지도 상으로 2센티도 안되니까. 대략 1.5킬로쯤 되는데 이걸 3시간 동안 걸어가냐?” 그러면서 또 다시 넌지시 다른 멤버들의 저질체력(?)을 비꼬고, 고산병을 두려워하는 겁쟁이 얕보는 말을 우회적으로 주저리주저리 이어갑니다. 그말은 곧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로 귀에 들려서 기분이 언짢아집니다. 그것은 자신의 산행 경험을 내세워 전체 스케줄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그래서 그는 늘 집요하게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길 좋아합니다. 나는 다시 슬며시 말을 잘라버렸습니다. “고산병 약은 각자 체력에 맞에 적절하게 잘쓰시면 되고요, 조금 전에 탱보체까지 2킬로밖에 안된다고 하셨는데, 실제 도상거리 계산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도상 거리가 2킬로라면 경사도에 따라 다르긴 한데 보통 산인 경우 우선 1.3을 곱합니다. 1.3은 경사도에 대한 실제거리 산정이고요. 그리고 산길은 직선이 아니고 구불구불하기 때문에 거기다가 또 1.2정도를 곱합니다. 그러면 2킬로라면 실제 거리는 3.12킬로 정도가 되겠지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텡보체 오르막은 경사도가 거의 40도는 넘을 것 같고, 길도 심하게 지그재그로 나있어 실제 거리는 최소한 4킬로는 넘을 것 같은데요” 유 선생은 입맛을 ‘쩝’다시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2등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는데, 왜 굳이 안다이 유선생은 1등을 못해 안달일까요? 허접한 부산 촌놈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며 ‘오후의 탱보체 혈투’를 준비합니다. 오후 산행은 고도를 600m나 올려야 합니다. 눈으로 볼 때에도 경사가 만만치 않고, 나무가 많지 않아 그늘도 거의 없습니다. 결국 호흡과의 싸움과, 뜻밖의 복병인 자외선과의 싸움까지 함께 치러야 하는 험난한 오후일정을 시작합니다.
풍기탱가에서 출발하자마자 만난 풍경은 물길을 이용한 라마 회전종이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돌리지 않아도 라마경전이 적인 종은 쉴 새 없이 돌아갑니다. 어쩌면 이런 회전종의 법력이 풍기텡가를 에베레스트 트레킹에 있어서 오아시스같은 존재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엉성한 군복차림의 군인이 서있습니다. ‘이런 곳에 왠 군인?’ 처음엔 그 군인이 왜 거기에 서있는지 몰랐습니다. 자세히 보니 군인은 초병이었습니다. 그가 서 있는 안 쪽에 허름한 집이 있는 것으로 봐 그 건물은 군 막사였고, 그 안에 서성이는 군인이 몇 보였습니다. 형식적인 철조망이 군부대의 경계인 모양입니다. 군인은 군기도 없고, 자세도 허술해 보였지만 물어 보니 직업군인들이랍니다. 말하자면 ‘프로전사’인데 전투력은 글쎄요. 술이 취해 담벼락에 쉬를 하는 예비군 몇 명만 붙여놔도 부대를 바로 접수할 것 같습니다. 단, 고산병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이제부터 오르막이 시작됩니다. 나무가 많지 않은 탓에 햇빛이 따갑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그재그로 된 오르막을 오르다가 나무 그늘만 있으면 그곳에는 한 두 사람씩 호흡을 가다듬고 있습니다. 캉주마에서 내려왔던 탓에 초반에는 호흡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어려워집니다. 이렇게 숨을 몰아쉬다보면 폐 속이 깨끗해지겠지! 라고 자위를 하며 오늘도 숨쉬기 운동을 빡쎄게 하며 오르막을 오릅니다.
텡보체 오르막은 야크에게도 쉬운 코스는 아닌가 봅니다. 고쿄 쪽에서 산을 오르던 한 무리의 야크 떼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다 뒷쪽의 야크 한 마리는 입에 거품을 물고 아예 길바닥에 엎드려 버렸습니다. 야크 주인 가족은 채찍을 때리고, 큰소리로 독려를 해도, 야크는 거친 숨만 몰아쉴 뿐 일어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한참을 야크와 실랑이를 하던 남자는 돌멩이를 하나 주워 야크의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순간 움찔하던 야크는 그래도 일어나질 않습니다. 결국 야크 등에 지워진 등짐은 야크 주인 가족 차지가 되었습니다. 어른은 큼지막한 플라스틱 드럼통을 머리띠로 지고, 여자와 아이들도 묵직해 보이는 자루들을 지고 갑니다. 그제서야 야크는 홀가분해진 몸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대열에 합류를 합니다. 잠깐의 채찍질과 돌멩이로 머리를 맞는 어려움을 이겨 냈기 때문에 야크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는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입니다. 야크의 숨길이 회복 되면 또 다시 그 등에 등짐이 얹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야크가 일생동안 함께해야할 야크 ‘일생의 짐’이 되고, 그렇게 짐은 몸의 일부분이 되어 평생을 살아 가는가 봅니다.
야크떼의 지체로 우리는 충분한 휴식을 취했습니다. 내리쬐는 햇빛이 부담스러웠지만, 고산 적응이 우선입니다. 예기치 않게 야크떼가 가져다준 휴식이란 선물은 나머지 오르막을 오르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쉬엄쉬엄 오르막을 올랐습니다. 물론 모습은 비스따리 비스따리 이지만 나름대로의 한계를 극복하며 필사적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땅을 보고 걸음을 다섯 번 옮긴 후 고개 들어 풍광을 보고, 다시 땅을 보며 다섯 걸음을 걷고 시계의 고도계를 보고, 그리고는 심호흡 ‘헐떡 헐떡’ 어디선가 족교나 야크가 나타면 긴급대피, 나무 그늘만 있으면 쉬어가기, ‘내가 왜 곳에 와서 이 고생을 하는가’ 하며 후회하기, 그래도 저 위에는 무언가 의미있는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희망찾기…
문득 나타난 하얀 첨탑의 모습이 보였을 때 ‘아 비로소 텡보체를 올라 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탑의 모습이 반갑다 못해 경이롭습니다. 그래서 텡보체 사원은 극적인 묘미를 더해 주는 것 같습니다. 탑을 돌아 언덕 위에 서자 놀라운 광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설산의 연속이었습니다. 오른쪽으로 바투 다가선 아마다블람(6,856m), 그리고 로체(8,516m)와 눕체(7,861m), 송곳니처럼 뽀족뽀족한 눕체 능선 한편에 머리를 내밀고 있는 에베레스트(8,850m)가 병풍처럼 나타났습니다.
돌담님, 소호님, 허브님과 합류하여 왼쪽의 텡보체 라마사원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라마사원은 전통과 상징성면에서 단연 으뜸입니다. 라마 사원을 들어서자 또 다른 놀라움이 있습니다. 추위를 피해 우모복을 입고, 장갑을 끼고 있는 우리들 앞에 민소매 차림의 라마승들이 지나가기도 하고, 숫제 제자리에 서서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입니다. 도데체 추위에 얼마나 단련이 되었으면 이런 기온에 민소매 승복을 입고 있는 걸까요? 놀라움은 자연에만 있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소호님과 허브님은 사원건물 안으로 예를 오리러 들어가고, 돌담님과 나는 사원을 빙 둘러 만들어 놓은 회전종을 돌리러 사원을 한 바퀴 돕니다. 내 앞에 서서 회전종을 돌리고 있는 돌담님은 무엇을 빌고 있을까요? 나는 처음엔 내가 바라는 가족의 건강과 개개인의 바램을 빌었습니다. 그런데 종을 돌리다 문득 그것이 내 욕심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가족 모두가 자기가 생각하는 꿈이 이루어지길 빌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트레킹에 함께한 모든 분들이 모두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빌었습니다. 이것도 욕심일까요?…
“선생님 오늘은 텡보체에서 자지 않고, 디보체에서 잡니다” 한국어에 능통한 푸르바가 숙소 변경을 알려주었습니다. “디보체 까지는 얼마나 걸려?” “20분쯤 걸립니다. 저 아래 마을입니다” 당초 계획은 숙박지가 텡보체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디보체(3,710m)로 변경 되었단다. 어차피 지나가야할 길이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디보체로 하산하였습니다.
디보체로 내려가는 길은 숲길입니다. 특이한 것은 껍질 벗는 나무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 껍질을 벗는 나무는 생긴 것도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생겼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아예 나무이름을 뱀나무라고 할까부다. 그것도 붉은 빛이나니까 홍사목(紅蛇木)이라고나 할까?…’. 숲길을 한참 내려가자 마을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우리가 숙박할 롯지는 그 마을 끝쯤에 초원 위의 집처럼 짧은 잔디가 잘 깔려진 곳에 위치한 롯지였습니다. 롯지는 길보다 약간 높은 축대 위에 지어졌는데, 안정감이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이곳 히말라야의 잔디는 유독 짧은 이유가 무었인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하루를 멀다 않고, 잔디 깎는 기계로 쉴새 없이 깎아 놓았듯 그렇게 가지런하게 짧은 것이었습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고산잔디의 특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롯지 안은 그리 썩 훌륭하진 않았지만 그런 데로 잘 만해 보입니다. 문제는 주방이 너무 멀어 우리 요리팀이 식사를 준비하고 식사홀까지 나르는 것이 여간 번거로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는 데 가이드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아 보입니다. 무엇인가 어려움이 있는 모양입니다. 무슨일인지 궁금하던 차에 식사를 마치고 나자. 안다이 유(유선생)이 문제 제기를 합니다. “오늘 숙박지는 원래 텡보체인데 갑자기 디보체로 빠꿨어요. 이곳 시설 보세요. 텡보체 나두고, 이런 후진 곳으로 온 것은 예네들이 숙박비 적게 쓸려고 그런거 아녜요. 이거 여행사에 문제 제기 해야합니다” “맞어! 예네들이 제 맘대로야, 웃기는 애들이야” 강여사가 맞장구를 칩니다. 그랬습니다. 디보체로 오는 동안 ‘안다이 유’께서 짧은 영어로 가이드에게“디보체 클레임”을 반복했던 모양입니다. 눈치라면 한 눈치 하는 가이드들이 금방 알아듣죠. 그러자 평소 조용하던 압구정 이선생이 차분하게 예기합니다. “유 선생님 이건 제 사견입니다만, 제가 알기로는 텡보체는 모든 롯지가 탱보체 라마사원 소유라서 전혀 보수가 안돼 아주 지저분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쯤 지나갔던 트레커들은 일부러 디보체에 내려와서 자지, 텡보체에서는 안자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설 좋은 텡보체 놔두고 시설 안좋은 디보체 왔다는 건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자 안다이 유와 강여사는 뒷통수를 맞은 듯 조용해집니다. 이번엔 우리의 해결사 돌담님이 안건을 발의 합니다. “내일 숙박지는 우리는 팡보체이고, 혜초는 페로체인데, 팡보체는 추쿵을 다냐오기 좋은 곳이고, 대신에 팡보체로 가면 우리 혜초 이선생님과 대웅스님은 하주 꼬박 식사팀이 없어 식사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한편 페로체로 가면 모두 식사를 함께할 수 있고, 고산병 전문 병원이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추쿵을 다녀오기에는 거리가 조금 멀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모두들 잠깐 고심하는 눈치였으나, 안다이 유와 강여사를 제외하고는 페로체로 함께 움직였으면 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러자 분위기 반전을 노린 안다이 유가 치고 나왔습니다. “이거 스케줄대로 해야합니다. 왜 스케줄 대로 안하고 가이드 편한 대로 바꿉니까” 그러자 돌담님이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집어내십니다. “가이드 문제가 아니라, 여기 이선생님 하고 대웅스님이 식사를 못하는 문제가 있어서 회의를 하는 건데,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이곳까지 와서 서로 도우면서 가야 안되겠습니까” 강여사가 쏘아 붙입니다. “스케줄대로 해요. 난 페로체 못가” 결국 돌담님이 결정에 대한 제안을 합니다. “그럼 다수결로 합시다” “다수결 반댑니다. 다수결해보나 마나 인데 뭐” 강여사도 민심이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아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스케줄 대로만 하겠다고 우깁니다. “스케줄 스케줄 하는데 누가 아파서 스케줄대로 못할 때도 무조건 스케줄대로 할겁니까” 아무래도 바로 결론이 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세에 밀린 안다이 유와 강여사가 회의장(?)에서 침실로 퇴장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내일 아침이 되면 어떻게든 결론이 나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여행이 되었으면 합니다.
페로체의 밤은 금새 기온이 내려갑니다. 하루 동안 악전고투를 한 탓인지 모두들 피곤해 보입니다. 우려했던 허브님은 의외로 건재합니다. 소호님도 피곤해 보이기는 하지만 별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돌담님은 조금 추위를 타는 것으로 볼 때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닌 가 봅니다.
오늘도 밤새 화장실을 오가며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처럼 라마즈호흡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득 밤하늘의 별이 보고파 슬쩍 밖을 나가보았습니다. 아직 밤이 깊지 않아 별이 많지 않습니다. 새벽이 되면 밤하늘이 온통 별천지 일겁니다.
잠을 잡니다….
시간이 지나자 돌담님의 거친 호흡이 들립니다. 이곳에는 밤에 이따금씩 호흡곤란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는 옆으로 몸을 돌리면 호흡이 편해집니다….
잠결에 문소리가 나고 거친 호흡이 들립니다. 돌담님이 화장실에 다녀온 모양입니다. 침낭에 들어가기 까지 돌담님의 고통스런 호흡은 파문이 되어 내 몸으로 전해져 옵니다….
문득 잠에서 깨어 화장실에 들렀다, 밖을 나가 하늘을 보았습니다. 아름답습니다. 별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그 별들은 너무도 큽니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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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렇게 고생 많이 했는데 야간산행 글 재미있게 봄니다 .......수고많으심니다
산행하느라 힘들고 피곤했을텐데 기록은 언제 어떻게하셨는지 대단하십니다.
글을 읽는동안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 합니다...정말 힘든 모습이 눈에 선 하군요 마지막까지 화이팅을 외치고 싶어요...
넘^ 실감나게 읽고 있습니다. 야간산행님이 호흡이 가파지면 바람순이는 숨이 막혀 버립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