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를 신랑 색시 고르듯 한다’ ‘묘 농사가 반농사’ ‘종자가 농사의 절반이다’ 이런 말들은 종자가 농사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의미이고 농사의 시작은 종자에서부터라는 의미일 것이다.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용은 <이담속찬>에서 ‘농민은 굶어 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고 하였다. 아무리 먹을 것이 없어도 농사에 쓸 종자는 남겨 둔다는 것이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희망의 의미이기도 하다.
1941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소련을 침략했을 때 소련 최대의 작물종자와 표본을 갖고 있던 레닌그라드(현재 상트페데부르크) 바빌로프식물연구소 과학자들이 종자를 지켜낸 이야기는 유명하다.
전쟁은 계속되었고 독일군들은 900여일간 도시를 포위하여 굶어 죽은 사람이 100만명이나 되었다. 이렇게 어려운 전쟁 중에서도 연구소에는 50명의 연구원들이 세계 각지에서 수집해온 종자들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씨감자가 얼지 않도록 가재도구를 부수어 불을 피우기도 하고 쥐로부터 종자를 지키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보초를 섰다. 추위와 배고픔, 영양실조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 가는데도 종자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결국 31명의 연구원이 굶어 죽었지만 보관된 종자는 지킬 수 있었고 미래 세대를 위해 연구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들은 알고 있었다.
2022년 5월 16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종자은행인 유리에우연구소를 폭격했다. 앞으로 수 십 년 동안 우크라니아 농업에 해를 끼치려는 러시아의 악의적인 작전이었다. 약 16만종의 씨앗 품종이 보관돼 있는데 다행히도 폭격으로 손상된 부분은 보관용이 아닌 조사용 종자였다고 하여 세계의 학자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2022년 9월 1일자 미국 워싱턴포스트 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종자은행 파괴를 가리켜 다음과 같은 한 줄로 표현했다. ‘종자를 파괴해 미래를 지워라’(Destroy a seed, erase a future).
종자는 예전부터 농부들에게 생명만큼 소중하고 중요하였던 것이다.
과거의 농사는 먹거리 조달을 위한 생산에 중점이 맞추어진 반면 오늘날의 농업은 ‘이윤의 극대화’라는 명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종자는 ‘수량은 많게, 맛도 좋게, 영양성분은 많게, 농사짓기에 편리하게, 병해충에는 더 강하게’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개발되고 육종되고 있는 것이다.
1950년대 이전의 우리나라는 품종개발과 육종이라는 의미가 없었고 사실 관련 전문가도 없었다. 1950년 우장춘 박사가 일본에서 국내로 들어와 본격적으로 채소 육종을 하였고 이후 체계적인 기술축적으로 1980년대 들어와 다수의 전문가들과 종자회사가 설립되어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식량의 안정적 공급은 한 나라의 종속요건이기도 하다.
식물유전자원의 수집과 보존 그리고 신품종 개발이라는 종자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각 나라들이 힘을 쏟는 이유이다.
우리나라는 농촌진흥청 종자은행에 세계 5위 규모의 약 35만 여종 종자와 유전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식량자체가 무기가 될 수 있다. 선진국들이 종자산업 발전에 진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알싸한 맛으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청양고추를 외국기업에 로열티를 내면서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청양고추 뿐만 아니라 금싸라기참외, 불암배추 같은 우리에게 친근한 품종 2,000여종의 농산물 재배에 로열티로 매년 140억 정도가 지불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종자회사가 외국기업에 인수 합병되는 아픔을 겪었고 이들이 보유하고 있던 개발품종과 같은 지적재산권마저 넘어갔기 때문이다.
세계의 종자시장은 몬산토, 다우듀폰, 신젠타 같은 다국적기업 3개사가 80%를 점유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와 경제규모도 비교가 어렵고 재배하는 작물의 차이도 있지만 한번쯤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소비자들이 좋아하고 수출도 많이 하고 있는 파프리카를 예를 들어 보자. 종자 1g에 9만원이 넘는다. 금값이 1g에 5만원 정도하니 금값 보다 더 비싼 것이다. 파프리카 고추 1개가 1,000원이라고 한다면 그중 종자 값이 500원 정도이다. 생산비에서 종자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0%이다.
종자가격이 비싼 이유는 소유권에 따른 로열티 때문이다. 이는 농민의 경영압박의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 주요 농산물 종자 자급률은 벼와 같은 식량작물은 100% 이지만 양파 28%, 사과 19%, 포도 4%, 감귤 2%, 참다래 25% 정도이다.
그나마 딸기의 경우는 국내 농업연구진의 노력으로 경쟁력 있는 신품종을 개발하여 재배면적의 96% 이상이 국산품종이다.
다행이도 정부에서는 골든시드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금값 이상의 가치를 지닌 종자를 개발하여 국산화하고 수출종자를 개발하여 종자 강국으로 도약하는 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2022년 우리나라에서 외국 품종을 수입한 금액은 133백만$ 정도인데 그 중에서 우리의 밥상에 자주 오르는 당근, 시금치, 양파, 토마토 같은 채소종자 수입액이 74백만$로 전체 수입액의 56%정도를 점유하고 있다.
반면 우리가 개발한 종자는 외국으로 56백만$ 정도 수출하였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수입액이 수출액 보다 2.4배 많고 양으로는 10배 정도 많다. 아직도 세계 종자시장에서 우리나라 점유율은 1%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종자개발은 100배 이상의 부가가치가 있는 산업이다.
농업인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유전자원의 확보와 풍성한 식량확보, 질병치료제 개발과 같은 우리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
우리가 개발한 종자가 세계의 곳곳에서 태극기를 펄럭이는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