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크커피와 종로서적에서 커피 한잔과 책을 마주 대하며 미목 이효상 작가
역사를 소설속으로 소환하는 이유/ 미목 이효상 작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망각도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인간의 과거를 다 기억하면 정상적으로 살기에 버겁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잊어버려도 좋은 것이 있고, 잊어버리면 안되는 것이 있다.
현대인들은 과거를 기억하기 싫어한다. 아무리 큰 사건이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거나 과거를 진단하고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려는 참다운 생각도 없다.
‘역사는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역사는 인간 삶의 발자취다. 보잘 것 없는 민초들의 소박하기 짝이 없는 하루 하루의 삶이 역사다. 고통받으며 살아온 삶의 기록이다. 이 기록을 담은 소설을 소환하면 마음이 깊어지고, 시야가 넓어진다. 우리는 마음과 시야가 성숙하므로 고통과 수난의 기억으로부터 미래를 열어갈 올바른 비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1876년 개항을 하게 된 우리 나라는 서구 열강의 침략앞에서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를 맞게 된다. 이 당시 외세의 침탈에 따른 조국의 위기 상황에서 여성의 사회적 역할 변화에 대한 기대와 현실적 대응하는 새로운 가치관의 필요성을 강하게 제시한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 ‘혈의누(이인직)’이다. 이와 함께 개화기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역사적 전환기의 시대상과 가치관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 ‘무정’(이광수)이다. 젊은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어두운 시대를 타개할 계몽정신의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
변혁의 역사,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과 기대는 해방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암울한 역사를 청산하고 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 위한 진통과 혼란이 계속된 상황을 그린 작품이 ‘해방전후(이태준)’다. 일제에 의한 탄압과 해방후 문단활동, 김직원 영감과의 갈등 등을 자전적으로 보여 주는 기나긴 역사의 터널을 관통하는 한 지식인의 자화상과 고뇌를 잘 그려내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4대에 걸쳐 간도 이주민의 역사를 기술한 우리 농민의 끈질긴 생명력과 삶의 애환을 그려낸 소설이 ‘북간도(안수길’이다.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었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통과 슬픔이 ‘간도땅’을 중심으로 민족적, 지역적 갈등 문제와 겹쳐져 더욱 역사적이 되었다.
개인과 가문의 절묘한 결합이 민족의 역사로 바뀌는 ‘토지(박경리)’는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의 자본주의화 과정을 한 줄 한 줄 씨줄과 날줄을 엮듯 얽혀낸다. 최참판댁의 몰락, 서희와 조준구의 대립, 용이와 월선이의 한 맺힌 사랑, 김환의 비밀스러운 삶 등이 기나긴 우리 민족의 삶에 숨겨져 있는 듯 한다.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을 담은 풍속사라 할 ‘혼불(최명희)’은 우리 조상들이 행해왔던 혼례, 제사, 장례 등의 절차를 눈으로 보듯이 살려냈고, 숨막히게 아름다운 모국어를 구사하며 그 의미들에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해방후에도 이데올로기의 대립과정에서 끊임없이 떠돌고 흔들리는 민족의 가엾은 자화상을 보여주는 장면이 ‘카인의 후예(황순원)’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세상의 변화가 역사의 변화가 인간과 인간상을 어떻게 변모시키는가를 보여 준다.
1948년 여순 반란사건을 시작으로 6.25 전쟁에 이르는 격변의 현대사를 열정적으로 살다가 간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태백산맥(조정래)’도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를 펼치면서 민족분단의 뿌리는 무엇이며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담고 있다.
역사적 현장이나 사건에서 일어난 억눌린 사람들의 목소리가 소설이기도 하다. 역사의 현장에서 외줄 타기처럼 위태위태하게 현실을 살아낸 인물들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인간 실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역사적 사건보다 그 시대를 살아난 사람들의 삶과 인생을 읽게 된다. 역사를 소설로 소환한 이런 책 읽기는 앞으로 우리가 어떤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며 의미있는 해답과 지혜를 안겨 줄 것이다.
# 혈의 누(이인직)
# 무정(이광수)
# 해방전후(이태준)
# 북간도(안수길)
# 토지(박경리)
# 혼불(최명희)
# 카인의 후예(황순원)
# 태백산맥(조정래)
인크커피와 종로서적에서 커피 한잔과 책을 마주 대하며 미목 이효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