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초록(草綠) 자연에 대한 태생적 그리움이 있다고 한다.
하버드 대학의 윌슨 교수는 이를 ‘생명애(生命愛)’(Biophilia)라 하였다.
어린 시절을 회상(回想)할 때면,
어김없이 플라타너스가 떠 오른다.
학교 운동장 언저리에 우람하게 자리잡고
너른 품의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며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어주곤 하였다.
플라타너스(Platanus)는 "넓다"는 뜻의 그리스어,
플라티스(Platys)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포플러보다 잎이 훨씬 크고 넓으며,
수피(樹皮)가 하얗게 벗겨진다고 해서
우리말 이름은 버즘나무라고 한다.
빨리 자라므로 수피가 벗겨질 수 밖에 없는 플라타너스 !
이 나무는 최단 기간내 가난을 벗어나려고 전력을 다해왔던
우리 대한민국의 성장통(成長痛)을 상징하는 나무가 아닐까?
플라타너스는 우리나라에 1910년쯤 들어왔으며
그 나무껍질을 법국오동(法國梧桐, 프랑스 오동)이라하여,
복통, 이질로 인한 설사를 그치게 하고 치통에도 쓰였다.
임경빈 서울대 명예교수는 플라타너스를 이렇게 예찬한다.
< 플라타너스는 우리의 정감을 사로잡는다.
세계적으로 보아 가로수의 왕이라 할 수 있으며,
찬양받아야 할 아름다운 나무임에 틀림없지만,
이것은 생물학적인 측면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노래와 예술, 때로는 철학적인 그 무엇에서 이 나무를 좋아한다.>
역사상 플라타너스를 가장 사랑한 이는 '크세르크세스 1세'인데,
페르시아 황제인 그가 BC 480년에 아테네를 점령했을 때
모든 것을 파괴하였지만 플라타너스는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헨델의 오페라 ‘ 세르세’(혹은‘크세르크세스’)에 나오는 아리아,
'나의 사랑하는 나무 그늘이여'는 페르시아 황제 '세르세'가
사랑하는 궁정(宮庭) 플라타너스에게 바치는 찬가(讚歌)이다.
- 청주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
플라타너스는 마로니에, 히말라야시더와 함께 세계 3대 가로수로 꼽힌다.
플라타너스는 추위를 잘 견디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도시 공해를 잘 견뎌낸다.
무엇보다 도심 환경을 개선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플라타너스를 가로수로 삼은 역사는 아주 길다.
그리스에서는 BC 5세기경에 가로수로 삼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영화 '만추'(晩秋)의 촬영장소였고
경부고속도로 청주 I.C에서 청주 도심까지 36번 국도에 있는
1천5백여 그루의 플라타너스길은 아름다운 길로 유명하다.
고대에는 교육이 주로 야외에서 이루어졌고 대부분 문답식이었다.
공자가 살구나무 아래서 제자를 가르쳤듯이,
히포크라테스도 플라타너스 아래서 제자들에게 의술을 가르쳤다.
그리스 에게해(海) 동남쪽에 위치한 코스섬(Kos Island)에
히포크라테스의 플라타너스 나무가 있다.
- 그리스 Magnesia지역 동쪽 마을 Tsagarada의 플라타너스.
이 나무는 수령(樹齡)이 100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성경 창세기 30장에도 플라타너스(버즘나무)가 등장한다.
< 야곱이 라반에게 말하였다.
“고향으로 가게 저를 보내 주십시오.”(25절)
라반이 “자네에게 무엇을 주면 좋겠나?” 하고 묻자,
야곱이 대답하였다.
“새끼 양들 가운데서 검은 것들, 염소들 가운데서도 얼룩진 것들을
저의 품삯이 되게 해 주십시오.”(31-32절)
라반은 “좋네, 자네 말대로 함세.”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라반은 얼룩지고 검은 것들을 모두 가려내어
자기 아들들에게 맡겼다. (34-35절)
야곱은 은백양나무, 편도나무, 버즘나무(플라타너스) 가지를 꺾고,
흰 줄무늬 껍질을 벗겨내 가지의 하얀 부분이 드러나게 하였다.(37절)
양과 염소들은 그 가지 앞에서 짝짓기를 하여 줄쳐진 것들을 낳았다.(30,39)
이렇게 해서 야곱은 부자가 되었다.(43절) >
- 영국 The Mottisfont 마을에 있는 웅장한 플라타너스.
이 나무는 수령이 400년 가까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오늘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 날 모든 계곡이 높이 솟아오르고, 모든 언덕과 산은 낮아지고,
거친 곳은 평평해지고, 굽은 곳은 곧게 펴지고,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
모든 사람들이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는 꿈입니다. >
위의 연설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마틴 루터킹 목사 !
그를 상징하는 나무가 '플라타너스'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역사적 인물들을 기리는 나무가 많은데,
미국의 초대(初代)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튤립포플러,
제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물푸레나무.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플라타너스나무이다.
인간에게는 초록(草綠)의 나무를 사랑하는 DNA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나무를 보면 마음이 평온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지도자들을 아름다운 나무에 대입하여 사랑하는 미국인들 !
그러한 ‘생명애’(Biophilia)에서 미국의 힘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우리도 미국인들처럼 지도자들의 허물을 들추어내기 보다는
그들의 공적(功績)을 기리는 문화가 정착되기를 꿈꾸어 본다.
위에 열거한 미국의 지도자들에게도 허물은 있었지 않았는가?
[플라타너스 / 김현승]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 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窓)이 열린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