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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5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돌아가자’의 반복은 제자리일 뿐!
본문 : 요한복음 8장 11절
여자가 대답하였다. "주님,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새번역>
이솝우화 중 ‘양치기소년’이란 이야기를 알고 계십니까? ‘거짓말쟁이 양치기’, ‘늑대와 양치기 소년’ 등으로도 알려진 이 이야기의 원래 제목은 ‘장난삼아 골탕 먹이기를 좋아하던 양치기’라고 합니다. 어떤 장난이었는지 기억나십니까?
어느 마을에 양치기 소년이 하나 있었는데, 늑대들이 나타나 양을 물어간다느니 잡아먹는다느니 식으로 수시로 장난삼아 소리치곤 했습니다. 두세 번 정도는 마을 사람들이 놀라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골탕을 먹고 바보가 된 기분으로 화를 내거나 투덜거리며 돌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짜로 늑대가 나타나서 양들을 잡아먹거나 물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양치기는 이번엔 절대로 거짓말이 아니고 진짜라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도와 달라고 호소했으나, 마을 사람들은 이번에는 절대로 속지 않을 것이며, 설령 진짜로 늑대가 나타났다 한들 다 저 녀석의 업보라고 칠 것이라면서 한 명도 도와주러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양치기는 그렇게 양떼를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겠지만, 오늘 저는 ‘반복’에 대한 교훈을 이 이야기를 통해 얻을까 합니다. 양치기소년이 한 번만 아니 최소 2번까지만 그랬다면 어땠을까요? 백 번 양보해서 2번까지는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장난이 3번이나 반복되면 더 이상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양치기 소년의 반복적인 장난에 더 이상 동조할 마음이 없을 것입니다. 한 번, 두 번 속지 세 번은 속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진짜 늑대가 나타나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것입니다. 반복적으로 했던 거짓말과 장난 때문이었습니다.
6월 한 달 동안 시리즈설교로 호세아 6장 1절에 등장하는 ‘여호와께 돌아가자’를 기초로 하여 ‘RETURN’에 대해서 함께 묵상해 보았습니다. 실로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고, 다시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런데 3주 연속 이어지면서 한 가지 느끼는 바가 없으십니까? 저는 3주 연속 ‘돌아가자’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 ‘돌아가자’가 계속해서 우리의 삶 속에서 반복이 된다면 어떨까요? 매 주 하나님을 떠나고, 매 주 하나님께 돌아옴의 반복은 혹시 아닐까요? 주일 오전 다시 교회를 왔을 때가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교회 문을 나설 때 다시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은 기다려주신다고 하셨으니, 언제든 돌아가기만 하면 되겠지?’ 라며, 하나님의 인내와 기다림과 사랑을 혹시 이용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스스로 잘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기다리십니다. 이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우리가 이 전제를 이용해서 돌아감과 떠남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감보다 스스로를 돌아봄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돌아감과 떠남의 반복 속에서 무뎌진 우리의 신앙은 조금 많이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감격도, 감흥도, 기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사랑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게 됩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내가 지금 떠난 상태인지, 돌아온 상태인지 가늠할 수 없고, 그 어떤 상태인지 무관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거짓말에 관대하십니까? 저는 저희 아이들에게 다른 것은 몰라도 ‘정직’만큼은 언제나 호되게 가르치는 편입니다. 거짓말을 하거나, 비겁하거나, 숨기거나 할 때는 정말 무서운 아빠가 되는 편입니다. 아마 아이들이 그럴 때 제가 참 싫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양보할 마음이 없습니다. 거짓말은 반드시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게 되어 있습니다. 거짓말은 반복 됩니다. 거짓말은 모든 완성된 것을 무너뜨리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은 죄로 가는 지름길이고, 악을 형성해 내는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직’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네! 하나님, 돌아가겠습니다.” 이 말을 계속 반복하다보면 결국 이 말은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상 하나님께로 돌아갈 마음이 없기에 계속해서 반복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단 한 번의 거짓말 때문에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셨습니까? 왜 ‘아간의 범죄’를 그렇게 잔인하게 처벌하셨습니까? 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그렇게 무섭게 벌하셨습니까? 모든 사람들 안에 ‘아담과 하와’ 같은 마음이 있고, ‘아간’이 가진 마음이 있고,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같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으면, 악은 소리 소문 없이 자리를 차지 할 것이며, 제 2, 제 3의 아간은 금방 등장할 것이며,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은 거짓말이 교회 안에 가득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짓말로 순간을 모면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인생을 모면할 수는 없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말을 정확히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거짓말이라는 녀석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은 분명하고 명확하게 다시 우리를 진실로 이끌기를 원하십니다. 의미 없는 반복이 계속 되지 않도록! 무엇보다 하나님께 ‘돌아감’이 반복적인 거짓말이 아니라, 돌아온 그 순간 완전히 끝난 사건이 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돌아온 탕자가 얼마 후에 또 집을 나간다면 어떨까요? 아버지의 마음과 형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기다리실 것이고, 사랑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굳이 반복하지 않아야 할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역사를 보고 깊은 묵상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돌아가고, 떠나고, 돌아가고의 반복이었던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래서 아예 역사 밖으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왕이 없었기에 사람이 자신의 생각대로 행하던 사사시대에 계속해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구절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여호와께 범죄하였다” <사사기 4장 1절, 6장 1절, 13장 1절, 새번역>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곧 나에게 반역만 해 온 한 반역 민족에게 보낸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처럼 이 날까지 나에게 죄만 지었다.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진 바로 그 자손에게, 내가 너를 보낸다. 너는 그들에게 '주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 하고 말하여라. <에스겔 2장 3~4절, 새번역>
이렇게 아무 의미 없이 계속 반복만 되는 현실은 자신들의 얼굴을 뻔뻔하게 하고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지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니 ‘돌아감’과 ‘떠남’의 의미 없는 반복을 멈출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강력하게 전해주고 싶은 예수님의 선포가 담긴 본문이 바로 요한복음 8장의 문을 열면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8장으로 함께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늘 그러셨듯이 예수께서 많은 백성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을 하다가 잡힌 여자를 갑자기 예수님 앞으로 끌고 왔습니다. 참 쓸데없는 일의 반복을 잘 하는 그들입니다. 깨달을 때도 되었는데 어떻게든 예수님을 무너뜨리고 싶었나 봅니다. 그리고는 여인을 가운데 세워 놓고 예수를 시험하여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는 속셈으로 이렇게 질문하게 됩니다.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들을 돌로 쳐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요한복음 8장 4절B~5절, 새번역>
대꾸조차 할 필요가 없으셨는지 예수님이 대답을 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들은 다그쳐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게 됩니다.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요한복음 8장 7절B, 새번역>
돌로 치라 하시면 지금껏 사랑과 용서를 말씀 하신 것이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순간이고, 사랑과 용서를 말하시면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상황이 생기게 됩니다. 과연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대답하실까 귀를 기울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말씀이 들려 왔습니다. 예수님의 말을 들은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들은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세의 율법대로 돌로 치되,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지라고 하시니 누구 하나 선뜻 나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스스로가 죄인인 것은 양심상 알고는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몸을 굽혀서, 땅에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말씀을 쓰셨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이로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떠나가고, 마침내 예수님과 그 여인만 남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인기척이 들리지 않자 예수님은 다시 몸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에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사람들은 어디에 있느냐? 너를 정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느냐?” <요한복음 8장 10절B, 새번역>
그러자 여자가 주변을 돌아본 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님,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8장 11절A, 새번역>
그리고 다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모두가 기억해야 할 너무도 중요한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요한복음 8장 11절B, 새번역>
이 여인이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인지, 그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데리고 온 여인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정죄하지 않으셨기에 우리도 이 여인을 정죄할 필요가 없습니다. ‘용서’라는 말도 이 자리에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이 구절일 것입니다. ‘가서’, 즉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즉 동일한 삶을 반복하지 말고 새로운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여인에게는 이 순간이 세례의 순간이며, 회심의 순간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더 이상 똑같은 삶을 살지 말라! 더 이상 반복하지 말라! 그래서 이런 대접을 받지 말고 아름다운 인생으로 살아가라! 예수님은 정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격려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예수님의 이 음성은 우리 모두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동일합니다. 더 이상 똑같은 삶을 살지 않아야 합니다. 주변에 여전히 산적한 ‘다시 하나님을 떠나 제자리로 돌아가게’ 만드는 모든 요소들을 쓰레기통에 처박아야 할 때입니다. 분명 그 것 때문에 다시 하나님을 떠나게 될 것을 자신 스스로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과 여러분 자신은 너무도 분명히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것을 더 이상 반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술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는 분들은 ‘돌아감’을 이야기하기 전에, 술을 끊어야 합니다. 나쁜 습관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는 분들은 ‘돌아감’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 나쁜 습관의 반복을 먼저 끊어내야 합니다. ‘돌아가자’라는 말과 동시에, 아니 할 수만 있다면 결심을 하기 전에, 버릴 것부터 버리고, 끊어야 할 것부터 끊어야, 의미 없는 반복이 다시 생겨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여인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기회’를 부여 받았습니다. 다시 새롭게 살 수 있는 문이 열린 것입니다. 저는 이 여인이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물론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았기에 더욱 노력했을 것입니다. 쉬웠다면 오히려 금방 다시 돌아갈 수 있기에 그 어려움을 기쁨으로 감당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마 우리가 아는 그 어떤 여인이 되어 예수님의 사역을 돕고,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데 일조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신앙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때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약한 존재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또 범죄하고 떠날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돌아오시면 됩니다. 그런데 언제든 돌아갈 수 있기에 떠난다는 객기는 신앙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돌아감에 대해서 무덤덤해 지고 있다면, 지금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멈춰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돌아가자’의 반복은 그저 제자리일 뿐이라는 것을 꼭 명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이 그 반복의 멈춤을 도와 줄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더 깊은 말씀 묵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그 반복의 멈춤을 도와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면, 그 빈손으로 하나님을 굳게 붙잡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 할 때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갈라디아서 5장 1절, 새번역>
결단 찬양 - 주께 가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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