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오솔길에서(7) - 톰 소여의 모험
아주 오래 전에 톰 소여의 모험을 읽었는데도 소설의 첫 장면이 생생하다. 판자 울타리에 페인트 칠을 하는 장면이었다. 어린이들의 장난기 어린 짓들이 어른의 눈에는 모험처럼 보였을까? 그래서 톰 소여의 모험이라고 하였을까?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는 미시시피 강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허클베리 핀은 미시시피 강에서 여러 가지 모험을 한다. 나는 모험보다는 강가의 모래톱에서 놀았고, 물새의 집에서 알을 훔치던 이야기를 더 오래 기억한다. 나도 한 때 강마을에서 살고 싶었다. 유장하게 흐르는 강변에서 틈틈이 낚시도 드리우면서 살아가는 삶을 설계해 본 일도 있었다.
유년을 보낸 시골마을의 뒤에는 크다란 저수지가 있다. 뒷산 자락이 물가까지 내려왔다. 산자락에는 황토가 드러난 체 언덕을 이룬 곳도 있었다. 봄철이 되면 뒷산 자락은 진달래가 붉은 색으로 물을 들였다. 산에 가서 진달래도 꺾었고 황토 언덕에 기어올라 새집을 찾아 다녔다. 운이 좋은 날은 엄지 손가락만한 새알을 몇 개 줍기도 하였다. 그럴 때는 엄마 새들이 머리 위를 날아다니면서 요란하게 지저귀었다.
노년이 된 지금, 인생의 긴 여정을 되돌아보면 그때가 가장 머물고 싶은 시절로 생각난다. 저수지의 물에 닿도록 내려와 있는 산의 둔덕을 돌아다니면서 물새의 집을 찾아다닌 때였다. 허클베리 핀이 미시시피 강가에서 자라의 알을 찾아다니고, 물새의 알을 줍던 그 나이 때였으리라.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의 지리시간에 배운 미시시피 강은 길이가 얼마이며, 유역에 어떤 산업이 발달하였다는 등의 삭막한 내용이었다. 정감이 흐르는 강은 아니었다. 노년이 된 지금의 내게는 미시시피 강이라면 유년을 보냈던 고향 마을의 하천이 생각나고, 뒷산 자락에 있던 저수지가 생각난다. 톰 소여나 허클베리 핀의 이름에 어릴 때의 친구인 근이, 환이, 식이의 이름이 겹쳐진다. 우리는 친구 이름을 외자로 불렀다. 왜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른다.
뒷집에 사는 근이는 물고기 잡는 데는 손재주가 뛰어났다. 비온 뒤에 통발을 들고 개울에 나가면 언제나 그의 바구니에 고기가 제일 많았다. 청, 소년기를 지나면서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살기가 어려워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일을 도우던 환이는 공장에 일자리를 찾아 떠나갔다. 식이는 언제 고향 마을을 떠났는지 모르지만 전봇대 세우는 공사판을 돌아디닌다고 하였다. 근이는 고향에 남아서 농사를 짓지만 생활이 어렵다고 하였다.
나는 공부를 하러 도시로 나왔다. 도시 생활에 젖어지면서 고향 마을은 일상에서 잊어졌다; 수련의 생활을 마치고 안동에서 몇 년 동안 근무하였다. 토요일만 되면 직장 동료와 낚시 가방을 들고, 저수지며, 강을 찾아 다녔다. 안동댐에 제일 자주 나갔다. 차를 타고 안동시내를 벗어나는 순간이면 시골의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나를 맞는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확 트이며 묘한 쾌감마저 느꼈다.
안동댐에 낚시를 드리우면 찰랑거리는 물결이 발밑의 흙을 조금씩 깎아내었다. 강가에서는 흐르는 강물이 찌를 쉬임 없이 흔들거리도록 하였다. 나도 낚시찌처럼 흔들거리면서 세월에 실려 노인이 되었다. 그 후로는 나의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때는 안동에서 근무하던 시절이라고 입버릇이 되어 말한다. 그때의 내 바람은 눈 아래로 흐르는 강물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일이었다. 그런 곳에 살려고 찾아다닌 일은 사실은 한 번도 없었다. 그냥 꿈꾸었을 뿐이다.
안동에서 생활을 마무리하고 도시에서 바쁜 삶을 시작하였다, 낚시를 하러 다닐 시간의 여유가 없었다. 가족을 건사하고, 더 나은 삶을 설계하며 사느라 바빴다. 우리나라가 거센 산업화의 물결에 떠밀려 빠르게 변해가던 시절과 나의 성년이 맞물렸다.
지금에 와서 톰 소여의 모험을,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들먹이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도시에 나와서 살았던 나의 인생행로에 후회가 쌓여서 일까? 가지 않았던 또 다른 길에 미련이 남아서 일까?
마크 트웨인에게 미시시피 강은 유년을 보낸 땅이다. 성인이 되어 미시시피를 떠난 마크 트웨인은 미국의 여러 도시를 옮겨가면서 살았다. 가정적으로 불행하였고, 삶을 꾸려나가기가 너무 고달팠다. 톰 소여의 모험(1876)과 허클베레 핀의 모험(1884)을 쓴 시기는 도시의 삶에 지쳐 있을 때였다. 그래서 젊은 시절을 보낸 미시시피 강이 회상 속에서 유토피아로 떠올랐을 것이다.
성인이 된 후의 나의 도시 생활은 풍요의 삶을 가져다주었으므로 내가 살아온 인생여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뛰놀았던 산과 들이 생각나고, 옛 친구인 환이, 근이, 식이가 생각날까? 식이는 벌써 오래 전에 죽었다고 들었다. 공장으로 간 환이는 소식을 모르고 지낸 세월이 아득하다. 시골에 남아서 농사를 짓는다는 근이도 생활이 무척 곤궁하다고 들었다. 그들을 생각하면 나의 도시 생활이 힘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 은퇴를 하고 나니 자꾸 어머니 생각이 나고, 옛 고향 땅이 생각난다. 까맣게 잊고 지낸 친구도 생각난다. 더러는 미련이 되어서 가슴속에 회오리친다.
왜일까?
무정한 도시의 거리를 돌아다녔던 내 인생이 유정의 땅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갈 수가 없는 환상의 땅이더라도 메마른 내 마음을 정감으로 적셔주기 때문이 아닐까? 마크 트웨인처럼 도시의 삶에 삭막해진 내 마음은 환상이라도 가져야 노년의 삶에 유정의 빗물이 스며들리라.
톰 소여의 모험을 떠 올린다.
잃어버린 체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어쩌면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다는 것을 불가능함으로 모험이라고 하였을까? 성인이 되기까지의 우리의 길은 온갖 모험으로 점철되어 있다. 가고 싶었지만 현실에 안주하느라 포기해버린 길도 있다. 그 길의 끝이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그런데도 그 길이 나를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으로 데리고 간다. 추억들은 유정의 시간을 불러주어 나의 길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해준다. 그리고 노년을 좀 더 편안하게 느끼도록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