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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성
터 키
동서양의 공존, 은혜로운 땅
TURKEY -
묵은 간장처럼 오래오래 켜켜이 반복되는 일상은 때로 일탈을 꿈꾸게 하기 마련인가 보다.
멀쩡하게 일을 하다가도 엉덩이가 들썩들썩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다.
7.8 월은 정신없는 휴가철이다. 산으로 바다로 너도나도 떠나고 또 돌아 왔던, 그래서
“여름, 이었던 시간은 훌쩍 지나고 이제 달력은 단 넉 장을 남겨 두었다.
한해의 반이 꺾이는 계절이 틀림없지만, 일 년의 제2악장은 가을 문턱인 듯하다. 선선한 날씨 때문에, 높은 하늘 때문에, 붉게 물들어가는 나뭇잎 때문에……. 그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떠남이 너그러워지는 떠남의 가을이다.
끔찍하게 추억이 아름다웠노라고 말하고 싶은 이스탄불.
터키는 단순한 기행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는 여행지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오스만트르쿠의 기상과 화려함에 극치를 이루었던 술탄의 궁전, 신비로운 하렘의 여인들,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야릇한 선율의 피리소리와 관능적인 벨리댄스, 이슬람 사원의 뾰족한 첨탑과 빙글빙글 돌며 신과의 교감을 추구하는 세마의식 등은 터키를 다분히 환상적인 이미지로 휘감고 있다. 이게 바로 지금 터키이다.
그러나 한때 로마로 가는 실크로드의 마지막 길목이자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충돌한 종교의 격전지였던 이곳은 수천 년간 동서 문명이 교차하는 요충지로 번성해 왔고 이 땅을 지배하는 자는 자연스럽게 세계의 중심지로 군림했다.
터키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교차하는 나라답게 조금만 시선을 돌려도, 이국적인 풍경이 오감을 매료시킨다. 그 만큼 보고 즐기고 느낄 것이 많다.
메트로 타고 둘러보는 이스탄불 (ISTANBUL)
이스탄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둥근 지붕과 첨탑, 콧수염을 기른 주름진 남자의 하얀 담배연기와 배꼽을 들어내고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무희 등이 아닐까 아니면 골목골목 숨어있을 것 같은 숨은 사연이 있을 듯하다.
이스탄불은 아주 오래된 도시이다. 그래서 도시는 유적으로 가득하다. 조금 오래되어 보인다 싶으면 1.500년은 예사고, 새로운 건물이다 싶은 것도 최하 300년은 되었다. 하지만 이스탄불이 유적들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1.200백만 명의 사람들이 매일매일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의 걸쳐 하루가 다르게 현대화의 길을 달리고 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모습, 그 속에서 우리 동시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스탄불 번화가 중심, 탁심(Taksim)
일반적으로 이스탄불 시가지는 크게 세 지역으로 나뉜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경계로 유럽과 아시아 구역으로, 유렵구역은 다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뉜다. 아시아 구역은 주로 주거지역이고, 유럽의 구시가지는 관광지역, 그리고 본격적으로 들여다 볼 유럽구역은 신시가지 사이드다.
이스탄불 신시가지에는 메트로 지하철이 사방 총 6개 정거장으로 개통되어 있어 시민들의 생활의 중심을 이룬다. 이 메트로를 중심으로 들러보면 현재의 이스탄불을 쉽게 조금이나마 구경할 수 있다. 이 거리에서는 이스탄불의 현재를 사는 젊은이들을 볼 수 있다. 다양한 레스토랑과 카페,바자르와는 다른 상점들, 활기 넘치는 행인들이 거리를 채운다. 모스크와 궁전, 성곽과 유적이 아닌 근대화된 빌딩, 아파트와 상점, 구불구불한 골목이 아닌 대로에서 이스탄불의 현재를 즐기며 걸어본다.
온통 유적만 있을 줄 알았던 야외 박물관, 이스탄불의 새로운 모습이 5천역사의 도시를 모던한 시티 라이프로 바꾸어 놓고 있다. 도심 이스타크랄 거리 (Istiklal Caddesi)를 중심으로 스타벅스,커피빈,버거킹,맥도날드, 피자헛 등 서구의 유명한 외식업체가 우리네 명동 거리와 다를 봐 없이 즐비하다고 해야겠다. 탁심거리를 걷다보면 터키라는 강한 인상도 쉽게 지워지게 눈썹 진한 현지인들의 조금은 느끼한 눈빛과 친절함이 아니라면 쉽게 다가 갈 수 있다. 푸마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브랜드숍이 즐비해있는 쇼핑거리다. 하지만 약2km에 걸쳐 늘어서있는 재즈바,나이트클럽,펍등 이러한 것들이 터키를 더욱 매료시키는데, 신비로운 이슬람교의 모습과 활기 넘치는 열기를 느낄 수 있다.특히 주말이면 밤을 불태우는 젊은이 들을 볼 수 있다. 이슬람교를 상당히 금욕적인 종교라고 생각했다면 아마도 이들의 모습에 고개를 꺄우뚱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잠시 들르는 여행객이라면 이곳에선 마음을 푹 놓을 수만은 없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현금을 소지하는 동양인들의 주머니를 엿보는 소매치기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상이자 장소이기 때문이다.
쇼핑거리 시실리(Sisli)와 레벤트(Levent)ㅡㅡ
메트로의 두 번째 정거장인 시실리와 다섯 번째 레벤트는 쇼핑의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시실리는 밤엔 주민 30만이 조용하게 살지만 낯에는 10배나 넘는 약 350만이 활동하는 곳으로 회사기 밀집되어있어 그만큼 유동 인구도 많다. 시실리 지하철역에서 10분 거리를 걷다보면, 구찌,아루마나,샤넬 등 고급 상점들이 골목골목 자리하고 있는 고급 주택가 사이로 모던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다.
고급 승용차가 거리를 누비는 스트리트 노천카페에 앉아 진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노라면 여기가 뉴욕인지 어딘 인지 헷갈릴 정도, 이게 바로 이스탄불 여행에서 느끼는 숨은 매력 중 한 가지가 아닐 수 없다.
시실리는 개별 상점들로 이루어진 거리라면, 레벤트(Levent)는 대형 백화점이 몰려있는 거리 이다.메트로 시티.카니온,아크메르케즈라 불리는 세 개의 대형 백화점이 몰려있는 곳이다.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이내의 위치하고 있어 이들 브랜드의 상점들뿐 아니라, 실내놀이 공원과 부대시설이 있어 하루 종일 줄길 만한 곳이다. 이들 백화점들은 등근 지붕과 첨탑으로 기억되는 이스탄불에서 만나는 또 다른 모습이다.
이스탄불은 터키 제1의 도시이다.
이스탄불은 수도인 앙카라보다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세계적인 도시인데는 그 역사적 배경을 무시할 수 없다. 2천 년 전 역사를 지닌 이스탄불은 세계를 지배한 3대 강국인 로마, 비잔틴,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다. 중요한 것은 아직까지도 그 당시 번영된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스탄불은 또한 동서양의 문화가 혼재 된 지역이다. 지정학적으로 도시 중앙을 흐르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로 나뉘는데 이 때문에 국제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스탄불에서 보스포러스 해협의 의미는 정치,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흑해와 지중해를 중심으로 무역업이 성행하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스탄불의 하루는 바쁘다. 터키의 유혹 도 바쁘게 계속된다.
1.200만 명의 인구가 바쁘게 일상을 여는 활기찬 도시 같이 에너지가 깊숙이 밀려든다.
자동차 경적소리, 바쁜 걸음으로 오고 가는 사람들, 허기진 여행객들의 입맛을 자극하는 맛있는 음식 냄세. 이스탄불은 마치 거대하고 건강한 생명체처럼 거친 숨을 내뿜는 듯하다.
새벽녘에 사원에서 코란을 울프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깼다.
멀리서 보기에 훌륭한 건축물이라 호기심에 블루모스크(Blue Mosque)로 행 했다,
내부가 굉장히 웅장하긴 한데 블루모스크는 사원이기에 신발을 벗고 참배객은 들어가야 한다. 훌륭한 건축물 내부에 이럴 수가 전 세계 사람들의 발고린 내가 다 모여 코를 찌르니 역겨워 참을 수 없어 그냥 나와 버렸다.
실례일지 몰라도 ,아마 군 행진부대가 여름날 하루 종일 행군하고 복귀해도 여기에 비하면 샴프 향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생각되어진다. 광장으로 나와서 숨 돌리면서 보니 참배객 긴 행렬은 여전하다, 그들에게 이곳은 성스러운 은혜의 장이니 말이다,
신비의 지하세계 골짜기
카파도키아 (Kappadocia)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땅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카파도키아는 수도 앙카라를 지나 동부로 약 275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은 멀어도 가까이 달려 갈 수 있는 신비로운 곳이다.
개방된 이슬람 국가인 터키의 문화는 신비롭기 만하다. 앙카라를 지나 동남쪽으로 가면 카파도키아가 나타난다. 버섯의 바위들이 솟아나고 석굴의 거주지가 생겨난 기이한 모습이 눈앞에 다가온다. 금방이라도 그 안에서 스머퍼들이 뛰쳐나올 것만 같은 신기한 지형이다.
실제로 그 괴석 동굴 안에서 거주하는 사람들도 있고 여행객들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나 식당으로 개조된 곳들도 있다.
버섯의 바위들이 솟아나고 석굴의 거주지가 생겨난 것은 애초 화산 때문이다.
약10만 년 전 화산 폭발로 인한 용암과 화산재가 지층을 이루며 쌓이고 오랜 세월을 거처 비와 바람으로 모습이 변형되기 시작해 지금처럼 기이한 모습이 되었다.
이곳 지층은 다른 곳과 다르게 화산재와 용암으로 이루어져 다소 강도가 약한 지층을 이루고 있어 원뿔형의 바위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카파도키아의 초입인 아바노스에서 버스로 약15분 거리에 있는 데버란트 계곡은 경이로운 자연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원뿔형 바위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바위 사이로 뚫린 도로를 따라 계곡으로 올라가다 보면 파노라마로 펼쳐진 경치를 만나게 된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이 일대를 덥고 있는 바위들의 모습은 제 각각이다. 낙타의 모습을 한 바위나 둥근 원통을 쪼개놓은 듯 한 모양의 바위는 인간의 손이 아닌 자연의 작품이라는 사실에, 바라보고 있으면 인간의 존재가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박해 기독교인들의 은둔처
신을 위한 간절한 마음 -
이러한 신비한 자연경관은 로마시대 박해를 피해온 기독교인들의 은신처가 되었다.
바위굴을 파고 생활을 한 이들의 흔적은 이 일대 계곡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 젤베 계곡 주변에는 집과 교회가 많이 남아 있다. 완만한 경사를 보이는 계곡 안으로 들어가면 골짜기 바위마다 층층이 굴을 파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데버란트 계곡처럼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모습도 경이롭지만, 일일이 굴을 파서 거대한 마을을 만들어 놓은 곳 또한 신비에 가까워 감탄을 자아나게 한다. 100여개가 넘는 카파도키아의 교회 중에서 이런 계곡의 굴속에 남아 있는 교회의 벽화는 150여개 된다고 한다.
대부분 박해를 피해 은신처를 만들었고 종교를 지키기 위해 석굴교회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안전과 보존상의 이유로 몇 곳만 공개된다고 한다.
근처에 있는 괴뢰메에는 야외 박물관이 있다. 자연 상태로 있는 유적에 울타리를 치고 박물관으로 보호를 하고 있는데 약 30개 이상의 석굴교회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외 박물관에 있는 교회들 내부는 외부애서 보는 것처럼 거칠지 않은 것이 특징이고, 일부교회이긴 하지만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과 프레스코화가 볼만하다. 골짜기로 숨어들어 굴을 파고 경건하고 간절한 생활을 했던 기독교인의 흔적을 지금은 차도르를 입은 여인, 반바지차림의 마냥 즐겁기만 한 배낭여행자,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종교의 순례자들이 돌아보고 있으니 세상은 넓어지고 종교는 과거보다 관대해진 듯하다.
지상의 신비로운 관경을 뒤로하고 지하 도시로 향했다.
신비롭고 과학적이기 까지 한 지하 도시는 네브쉐히르에서 남쪽으로 20km거리에 있는 데린큐유 지역에 있다. 외부의 침입을 견고히 막았던 흔적들이 보이는 것으로 역시 박해를 피해온 기독교인들의 거주지라고 한다.
지하도시는 요새와 같은데, 외부와 통하는 문은 밖에서는 잘 안 보이는 데다 안에서 잠그면 들어 올 수 없는 구조이다. 일단 들어왔다고 해도 미로 같은 통로에서 길을 잃고, 중간 중간 길을 차단하는 문이 있어 전진이 쉽지 않다. 하지만 거주민들은 이곳에서 부엌과 방, 침대, 곡식창고, 우물, 환기구 ,신호를 위한 울림통을 갖추고 완벽한 생활을 했다.
여행객들을 위해 개방한 곳은 화살표 표시로 돼있고, 현재까지 밝혀진 것만 지하 12층 규모인데 가장 번성했을 때 당시 약 4만 명 정도의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곳에 이처럼 거대한 규모의 지하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는지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어렵다.
카파도키아의 자연은 분명 신기한 것이지만, 이런 자연만큼 경이로운 것은 인간의 힘이다.
바위를 파고 들어가 살며 흔들림 없이 자신의 종교를 지키고자한 노력은 종교와 문화를 막론하고 위대하다 할만하다
터키 여행에서의 맛보는 전통음식,
케밥(Kabap)
터키요리는 프랑스, 중국요리와 함께 세계3대 요리로 꼽힌다.
광대하고 비옥한 토지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과일과 야채는 물론 삼면의 바다에서 잡히는 생선 등이 그 풍성함의 원천이다.
오스만 제국 술탄의 왕궁이었던 톱카프 궁전 왕실 주방에는 수백 명의 요리사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자기만의 고유한 음식을 만들고, 또 이를 왕실 식탁에 내놓으려 경쟁을 했다. 톱카프 궁전에는 주요 건물마다 모두 10개의 주방이 있었고,17세기 까지만 해도 궁전에는 약300백 명의 요리사가 있었고 요리사들은 각자 스프나,팔랖,케밥,야체,생선,빵,패스트라,켄디,시럽,잼등을 말아 하루 1만 명분의 음식을 만들었으며, 이에 더해 왕의 총애를 받는 궁전 밖에 인사들까지 보낼 요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맛있게 구워진 케밥을 얇게 저미는 요리사가 넘겨주는 음식이 일품이다.
대표적인 터키 요리는 케밥(Kabap)을 들 수 있다. 터키어로 “구이”라는 뜻으로 고기를 구워서 만든 요리는 모두 케밥이 되는 셈이다. 케밥은 유목민들이 야영지에서 고기를 모닥불에 굽거나 데워먹던 시절부터 내려오는 터키 전통음식의 하나다.
고기의 종류에 따라 쿠주케밥(양고기구이) 타브크케밥(닭고기구이)다나케밥(소고기구이)등으로 구분하기도하며, 굽는 방식에 따
되네르케밥(바베퀴식으로 돌려 구운 요리) 쉬스케밥(꼬치에 끼워 구운 요리)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야시장에서 자주 편하게 맛보는 “뵈렉”이라고 하는 얇은 페스트리(밀가루 반죽으로 편편하게 부푼 빵)도 여행객의 간편 메뉴다. 왕궁에서 맛보는 음식을 그대로 맛보고 싶다면 이스탄불 시내 스파이스 바자와 모스크 샛길에 있는 200백년 전통의 로쿰 전문점 베카르란은 반드시 가봐야 할 명소 중에 하나이다.
성지에서 만나는 소중한 시간,
터키는 단순한 기행의 차원을 훌쩍 뛰어 넘는 여행지라는 의미를 몸소 체험한, 잊혀지지 않는 여행지다.
특히 터키는 우리와는 형제의 나라이다. 6.25 한국전 당시 유엔군 일원으로 1만 5천명의 군인을 보내 자유를 지켜준 나라이다.
가슴속까지 따듯하게 감싸주는 평생 잊지 못할 시간여행에서 …….
여행은 끝났지만, 추억은 계속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