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의 오종법사,
법화경을 전하는 다섯 가지 법사(法師) 즉,
오종법사는 수지(受持), 독(讀), 송(誦), 해설(解說), 서사(書寫) 등의
활동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법사는 본래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출가수행자가 하는 설법사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재가불자는 독송자라고 하였습니다.
오종법사 중에서 법화경의 가르침을 해설 하는 사람은
주로 스님으로 설법사(說法師)에 해당하며,
법화경을 읽고 외워서 전해주는 사람은 독송자(讀誦者)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출가 수행자와 재가불자들이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법화경의 가르침을 열심히 전해주면
모두가 오종법사의 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오종법사의 공덕은 탑과 절을 짓고 승방을 지어
스님들에게 공양하는 정도로 공덕이 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설하는 이유는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오종법사가 바라밀행을 실천할 경우
그 공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입니다.
[출처] 법화경:17-14.
‘게송으로 다시 묻다’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경전에는 그 중에서 가장 정제된 경전, 발달한 경전,
다듬어진 경전, 가장 우수한 경전은 이 산문과 운문이
이렇게 같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불교용어로 말하면 ‘장항(長行)’과 ‘게송(偈頌)’ 이렇게 말해요,
전통적으로는.
그래서 장항(長行)이 있고 그 다음에 그 장항을 다시 반복 연습하거나
좀 더 부연 설명하는, 장항에서 빠진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서 운문으로써 시 형식을 통해서 다시 거론을 합니다.
그것을 ‘게송(偈頌)’ 이렇게 해요.
반복해서 공부하는 점도 있고,
좀 더 부족한 점을 더 드러내는 그런 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는 게송이 많아요. 시가 아주 발달했습니다.
법구경 같은 것은 순전히 시 형식으로써
경전이 이루어진 것이 법구경이잖습니까?
그리고 다른 경전에도 보면 많고.
또 으레 선사들이 당신이 깨달으신바
또 열반에 드실 때 이럴 때 꼭 시 형식,
그 게송을 통해서 당신의 그 어떤 불교적인 안목을
표현하기도 하는 그런 사례가 대단히 많죠.
바로 그런 것을 우리 이렇게 만나게 되었고,
앞으로 법화경은 계속 그런 형식으로
산문이 있고, 운문이 있고,
장항이 있고, 게송이 있고...
이런 형식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이게 다른 경전에는 그렇지 못한데
어찌하여 이런고 하면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법화경은 가장 발달한 경전입니다.
불교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탄생한 경전,
결집된 경전이 법화경이기 때문에
그런 글의 형식까지도 그와 같이 아주 그 완벽하게 구비되었다,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예문)
미륵보살은 이 뜻을 거듭 말씀드리고자 게송으로 물었습니다.
여기 미륵보살이 이제 부처님의 광명 속에 나타난
여러 가지 현상들을 신기하게 보시고서 그 뜻을 묻기 위해서
산문으로 묻고 나서 다시 게송으로, 시 형식으로써
다시 묻게 된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무비스님 무상사 법화경 특강(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