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일이 아닌 하느님>
[부산교구 표중관 베드로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습니다. 그런데 동생인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언니인 마르타는 예수님의 식사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동생인 마리아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있으니 조금은 화가 나서 예수님께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주십시오.’ 하고 말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두 여인, 마르타와 마리아는 활동가와 관상가의 모범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예수님께 식사 대접은 당연하고 지당한 일입니다. 그러나 손님으로 모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더욱더 중요합니다. 예수님 홀로 방 안에 계시고, 두 자매가 식사 준비에만 정신이 없다면 얼마나 예수님께서 쓸쓸하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집에 오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자매와 정담을 나누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장4절)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우리 존재의 의미이며, 목표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마음과 마음, 혼과 혼이 통해야 살 수 있듯이, 우리와 하느님 사이에 소통이 없다면 무슨 의미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시중드는 일로 분주한 마르타에게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장42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의 시중드는 일을 나쁘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필요하고 좋은 몫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생전에 ‘살아있는 성녀’라는 칭송을 들었던 고 마더 데레사 수녀는 ‘관상에서 넘쳐 흘러나온 것이 활동’이라고 하였습니다. 관상이란 무엇입니까? 하느님과 일치입니다. 말씀을 잘 듣어야 잘 일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언제나 기도하고 활동하였습니다. 그녀에겐 기도와 일이 하나였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활동하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는 많은데 기도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란 무엇입니까? 기도는 하느님과의 만남이며 대화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호흡하는 숨결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없는 삶은 생기 없는 삶이며, 메마른 삶에 불과합니다.기도를 잃어버린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그곳은 생명력이 없는 곳이며, 삭막한 사막과 같은 곳입니다. 오늘날 냉담자가 많은 이유도 교회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도 활동에만 치우치고 기도의 삶이 부족한 때문이 아닐까요? ‘활동이 기도를 삼켜 버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칫 활동에만 열중하다보면 기도는 점점 하기 싫고 고리타분한 것이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하느님의 일을 한다면서 하느님은 잊어버린 체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때로는 자신이 이룰 수없는 일까지도 설계하고 밀고 나가면서 한없이 쫓기게 되고, 설계한 것을 이루지 못해서 초조해하고 실망하고 좌절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 속엔 허무함과 공허함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 없는 나는 누구입니까? 기도가 없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그것은 마치 노래를 잃은 카나리아 새와 흡사한 삶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너는 많은 일에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루카 10장42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하나 필요한 것은 하느님 자신을 사랑하는 것,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하느님을 사랑할 때, 우리 마음속엔 기쁨과 평화가 강물처럼 흘러넘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하신 말씀에 다시 한 번 귀기울여 봅시다.
‘마리아 너는 오직 하나 필요한 것, 하느님의 일이 아닌 하느님’ 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몫을 택했으니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결코 그 몫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아멘.
첫댓글 예수님은 왜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들렸을까요? 배가 고프시고 힘드셔서? 두 자매가 보고 싶고 정담을 나누기 위해?
..........예수님은 이미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길입니다. 그곳은 수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곳입니다. 루카복음은 복음과 다르게 열두 명 제자외에 추가로 일흔 두명의 제자를 인선 파견하고 사도직 보고를 받습니다. 예수님을 떠보려는 율법학자와의 대화가 있은 후, 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가 나옵니다. 루카복음에는 중간 중간 여성들을 등장시키고 매우 중요한 복음전파의 사명에 동참시킵니다. 그래서 저의 생각엔 정담을 넘어서 상당히 중요한 어떤 활동, 주님은 '어떤 말씀을 하시기 위해' 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그 말씀과 관계된 중요한 사명에 동참하고 중요한 역활을 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즉 더 좋은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