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늦다. 몇 년 치 축적된 5월의 사진들을 보면, 이 맘 때엔 붓꽃이 피고 찔레가 피었다. 그러나 아직 붓꽃도 찔레도 피지 않고 있다. 모란 또한 4월의 얘기였는데 이해엔 5월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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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빠르다. 기온이 높다. 더워 밭일을 못하겠다. 어느 틈에 초여름이다. 아카시가 피지 않아, ‘봄날은 간다.’라고 말할 수 있어도 ‘봄날이 갔다.’라고는 말할 수 없는데, 이리 무더운 걸 보면 ‘봄날은 간다.’가 아니라, ‘봄날이 갔다.’라고 말해야 할 판이다. 덥다. 계절이 빠르다. ‘실없는 기약’ 한번 해보지 못하고 봄날을 보낸다.
목재를 한 차 샀다. 광양까지 가서 ‘건우 하우징’을 방문, 주문한 목재다. 처음엔 트럭으로 보내겠다고 했는데 나중에 2.5톤 트럭에 실려 보낸다고 했다. 그러려니 하고 기다렸다.
트럭이 동매 마을회관 앞에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다. 밭 입구에서 기다렸다. 헉헉거리는 소리가 너무 크다. 좀 높기는 하지만, 그리 많은 양의 목재가 아닌지라 금방 올라올 텐데, 왜 저리 헉헉거리면서 늦어지는 건지 의아해하며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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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타났다. 아연실색! 내가 요즈음 본 화물차 중에 가장 낡은 차다. 너덜너덜 떨어진 모습과 덕지덕지 녹슨 페인트, 달랑대는 번호판 또 끈으로 묶은 범퍼…. 이런 차로 보내는 줄 알았으면 말렸을 텐데 몰랐으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만다. 퍼지지 않은 차에게 감사할 따름. 다 간 봄날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가까이 온 여름날이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슬리퍼 질질 끌며 내리는 빼빼 마른 기사의 미소를 고마워할 따름.
“돈 없는 우리는 꿈도 못 꿀 자린데요.” 하는 절라도 사투리의 트럭 기사 표정이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는다. 채서(빌려서) 샀다고 했더니 “우찌 갚을라꼬예.” 한다. 역시 전라도 사투리…. 음료수를 드렸더니 벌컥벌컥 마신다. 봄날이 갔음을 그가 마시다 흘리는 물방울에서 또 다시 확인한다.
목재는 6인용 일체형 탁자를 만들 나무다. 그리고 그 탁자를 놓을 데크를 만들 목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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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 만드는 일은 뒤로 미루고 생태 화장실을 먼저 만들었다. 꼬빡 하루 반이 걸렸다. 한여름엔 샤워도 하게 될 칸이다. 그리고 탁자 놓을 자리를 만들었다. 지난해에 만든 데크을 옆으로 이어 내었다. 첫날엔 밤 8시 이후까지, 이튿날은 새벽 5시부터 시작한 일. 도목수(都木手)이며 사수(射手)인 우리 아이들 막내 이모부는 내색하지 않고 일하는데 곁꾼이며 조수(助手)인 나는 헉헉거린다.
탁자 자리를 만들었다. 마무리가 다 된 건 아니다. 마무리를 다 한 다음 탁자를 만들고 나서 저쪽에도 또 데크를 마저 깔아야 한다. 탁자 자리, 만들어진 빈자리를 보면서, 비록 가버리긴 했지만, 저건 봄의 자리라는 생각을 했다. 봄은 앉아보지 못하지만, 여름은 탁자를 놓기도 전에 와서 앉을 것이라는 짐작도 했다. 탁자엔 파라솔을 꽂을 것이다. 색은 정하지 못했다. 가버린 봄의 색이었으면 좋겠다. 아마 여름의 원색으로 결정될 것이다.
첫댓글 봄날이 가거나 말거나 악약 뜨락의 정경은 갈루록 럭셔리 해집니다요. 이젠 언제든지 날아가도 서 있지 않을 , 발 뻗고 앉을 자리가 생겨 어쩐지 푸근한 느낌입니다. 부지런한 악양의 쥔장 길뫼님...최춘희 시인이 안부 전해달랍니다.
숙원사업이던 화장실이 만들어져, 그야 말로 이제 별장(?)티가 나게 되었습니다. 소유하는 많큼, 그 많큼 일꺼리나 걱정꺼리, 투자꺼리가 늘어난다더니, 한뼘 땅 이것도 소유라고 투입을 많이 해야 합니다. 나중의 가든 파티를 위해 직4각형 잔디밭도 조성하고 있습니다. / 최춘희 시인? 고마운데요.
바쁜 봄을 보내고 계시는군요 혼사도 힘드셨을텐데 데크공사까지.. 매실이 익을 때 쯤에 악양엘 갈 계획이었는데 집사람 허리가 다시 않좋아져서 어찌될지 모르겠습니다. 새로 마련하신 탁자가 잘 어울렸으면 좋겠습니다.
악양에 대한 정이 두터우시군요. 우리 밭 바로 앞집의 카페 주소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출입해보시죠. 지인들에게 실속있는 땅의 정보를 알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악양에 진입하려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 제법 많다고 합니다. 친분을 쌓으시어 의논을 청하면 응해주지 않겠습니까. http://cafe.naver.com/tadomb <별일 없이 산다>
데크를 더하니 푸근하고 정감 넘쳐 보입니다~! 만드시느라 애 많이 쓰셨겠어요. ^ ^
데크 공사와 탁자 제작이 끝나고 나면 잔디밭 조성하는 일과 페인트 칠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농사일은 물론이고요. '내일 또 내일' 하는 노래가사가 생각납니다. 일은 늘 오늘 또 내일, 내일 또 내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