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바오로의 딸이다"
2015년 부활절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11살에 어머니를 따라 성당을 다니게 되어 교리 공부를 한 후 영세를 받고 예수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 내가 영세를 받은 것도 1955년 부활절이었으니 올해가 꼭 60년이 되는 해라 참으로 의미가 깊었다.
그 후 나는 많은 부활절을 보내면서 신앙생활을 해왔는데, 특히 1963년 이후 독일에 가서 지낸 부활절 추억들이 지금도 생생하기만 하다.
그 당시 나는 프란치스칸 수녀님들이 경영하는 기숙사에서 수녀가 되려고 준비 중인 신청자들과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영적 생활은 극히 엄하고 경건했다.
성탄절이 끝나면 독일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춤추는 이 세상 즐거움을 맘껏 누리다가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부터는 금육하면서 기숙사내는 더욱 엄숙한 분위기를 띄며 예수님 수난에 동참하는 듯해보였었다. 그당시 믿음이 없었던 나에게는 모든 것이 습관적인 영적행위였을 뿐, 큰 기쁨이나 감동은 받지 못했던 것 같다.
기숙사의 음식은 점점 단순해져가면서 고기와 단 것들이 식탁에서 사라지니 마음엔 불만이 가득 찼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도 그래서 더 부활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맛있는 고기 음식과 달콤한 케익이나 쵸콜렛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부활절을 말이다.
그 당시 부활절 예식은 새벽 4시에 시작되어 아침 7시까지 계속되었는데, 독일의 4월 날씨는 무척이나 쌀쌀해서 우리는 3시간 동안 주교님과 많은 신부님들이 집전하시는 부활 예식을 추위 속에서 끝낸 후에 부지런히 기숙사로 돌아와서는 수녀님들이 차려놓으신 화려한 부활 식탁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식탁위에는 물감들인 부활계란과 토끼 모양의 쵸콜렛, 양모양의 케익등 다양한 먹을 거리가 있었는데, 특히 내가 좋아하는 독일식 비엔나 소세지가 뜨거운 물속에 담겨진 채 우리가 그들을 맛있게 먹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 터질 것만 같은 소세지를 겨자에 찍어 한입 깨물면서 느꼈던 그 "맛으로 인한 행복감"은 고기 먹는 것을 포기한 지금의 내 입 안에서도 침이 돌게 한다.
이렇듯, 부활절은 결핍과 불편함, 부자유함을 모두 쫓아버리고 즐거움 기쁨, 행복을 가져다주는 축제였다.
그렇다! 부활절은 내게 늘 축제였다. 생명과 연결된 축제였다.
젊었던 그 시절, 나는 육으로 지배를 받아 육적인 즐거움으로 부활절을 기다려왔었는데, 이제 나이가 들면서 ,또 하느님을 깊이 만나 스스로 그분의 제자가 되려고 선택한 오늘, 나는 육체의 즐거움을 떠난 영적인 목마름으로
그분의 부활을 기다리게 되었다. 예수님 부활의 기쁨에 동참하려면 나는 먼저 그분의 수난에 동참해야한다.
수난의 고통 없이 어찌 부활의 기쁨만을 누릴 수 있겠는가?
나는 2015년 부활절을 특별한 곳에서 보내고 싶어 기도하던 중, 나의 자서전을 출간해주신 “성바오로의 딸” 수녀님들이 생각났다. 지난번 수도원에 초청받아 하룻밤을 보내면서 수녀님들의 영적인 삶에 너무도 감동받고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내안에 소망이 일기 시작했는데,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안에 소망이 있으면 그것은 하느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나는 내 삶을 통해서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수녀님들께 메일을 보내 내가 성삼일을 수녀님들의 수도원에서 보내면서 부활절을 맞이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빠른 답장이 왔고 수녀님들은 흔쾌히 나를 수도원으로 초청해주셨다. 그렇다! 주님은 나를 그곳으로 불러주시면서 예수님의 부활, 그리고 또 나의 부활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었다.
사실 나는 한국에 가도 집이 없기 때문에 늘 갈 곳을 마련해야만 한다. 이것이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이자
의탁인 것이다. 이번에는 어디에서 어떻게 보내야하는지를 하느님께 구하면 항상 좋은 협력자들을 통해 도움을 받으니 감사한 일이 아닐 수없다.
성목요일이었다. 점심에는 옛 제자들을 만나 함께 식사하면서 내가 물들인 부활계란과 쵸콜렛을 나누어주었다.
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재직했던 15년 동안, 매년 성목요일 예식을 학생들과 지냈는데, 함께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 게 베푸셨던 그 사랑을 조금이라도 나의 제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올해는 한국에서 다시 부활절을 보내게 되었으니 함께 모여 다시 그날을 기억하자는 뜻으로 만난 후, 나는 성북동 수도원을 찾았다.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시는 수녀님들의 손길, 발걸음이 분주했다. 다행히 손님방 하나가 비어 있어서 내가 올 수 있었다는 원장 수녀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데 안 될 일이 어디있겠어요?” 라고 속으로만 답하고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저 기쁘고 감사하기만 했다.
성목요일은 '하가다 예식"으로 시작되었는데, 유태인들은 출애굽기 12장에 나오는 말씀으로 파스카 예식을 행한다고 한다. 수녀님들 150여명이 아름답게 차려진 식탁으로 모였는데 식탁에는 누룩 없는 빵, 쓴 나물, 양고기 대신 닭고기와 포도주로 정갈하게 준비되어 우리는 침묵 속에서 음식을 나누면서 말씀을 묵상했다.
"하가다 예식" 후에는 예수님 최후만찬 예식을 거행한 후, 예수님을 경당으로 모셔와서 밤새도록 정해진 시간에 나와 기도를 할 수 있었는데, 나는 고요함 속에서 예수님과 만나면서 나의 삶을 회개하고 있었다. 말라위 내가 살고 있는 곳에는 사제가 많지않아 미사를 자주 드리지 못하고 공소예절로 대치할 때가 많이 있음을 고백하면서,
내가 혼자서 너무 외롭고 힘들다고 말씀을 드렸을 때, 내 마음속에 큰 울림이 들려왔다.
“너도 바오로의 딸이다”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과 그분의 복음을 전하려고 땅 끝까지 찾아가 자신을 하느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크고 작은 그릇을 온전히 비워가며 내어드린 삶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인간이기에 자주 외로움과 좌절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나도 최근에 부쩍 외로움을 느끼며 사막에 나 홀로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곤했다. 사도바오로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당한 환란과 고통을 생각하면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닌데, 나는 많이 약해져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주시는 위로의 말씀이었다. “너도 바오로의 딸”이라 들려주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나의 수고를 알아주신다는 의미가 있었고 그리고 사랑의 기도로 나를 응원해주는 수많은 “바오로의 딸”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심이었으리라.
나는 감격해서 눈물이 흘렀다. 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는 사막이 아닌 주님의 풍성한 포도원에서 일하는 일꾼임을 깨닫게 되는 은총의 시간이었다.,
성금요일에는 “성무일도” 후에 금식을 하고 “십자가의 길”을 드렸으며 저녁에는 말씀의 전례가 있었다. 나는 수녀님들의 경건한 삶과 기도하시는 모습에 감동을 받으며 비록 며칠 동안의 수도원 삶이지만 이 순간들이 내 영혼에 얼마나 유익한지를 알게 되었다.
토요일에는 수녀님들 드리려고 독일에서 구입한 물감으로 170개의 부활계란을 물들이면서 내 부활의 기쁨은 시작되었다. 나에게 이토록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수녀님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힘이 안 들었다. 170개의 아름답게 물들여진 부활계란과 쵸콜렛을 수녀님들께 나누어드리니 수녀님들은 소녀들처럼 기뻐하셨다.
우리는 부활절 아침을 맞이했다. 밖에는 진달래와 개나리. 목련꽃이 만발해 몸은 무르익었고 우리들 마음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으로 가득 차니 기쁨과 활력이 넘쳐났다. 세상일과 사람들로 지쳤던 내 육체와 영혼을 온전히 치유하시고 나를 당신 부활에 동참하게 해주신 나의 주님을 온몸으로 사랑하며 찬미를 드렸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 승천대축일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가 예수님의 영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우리들의 삶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어 우리들에게 곧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 성령께서 친히 우리들 각자에게 찾아주시어 우리를 다시" 숨 쉬게" 하시며 온전히 변화시키시어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실 것을 나는 굳게 믿는다.
이것이 나의 소망이며 하느님의 나를 향한 계획임을 이미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첫댓글
아침 성당가는 길에 교수님의 좋은 글이 가슴에 와 닿네요. 무엇보다 교수님의 글을 읽으며 건강이 말끔히 회복되신 것 같아 반갑습니다. 주님, 고맙습니다.
* 아렐루야! 아렐루야 !!
주님은 나의 힘 ! 당신의 정의는 영원한 정의! 당신의 가르침은 진실입니다 ..!!! ( 시편 119 ,142 )
알렐루야 !! 바오로의 딸 ..!!!!! ^*~~~
아주 오래전에 바오로 딸 성소자모임에서 피정하던 때가 생각이 나요.교수님과 교집합이 또 하나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