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2:10-18 /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신 예수님
■2025년10월3일(금)■
(히브리서 2장)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묵상/히 2:10-18)
◆ 사랑 이야기(10)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10절)는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킨다. ‘구원의 창시자’는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거룩하게 하시는 이’(11절)이며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곧 우리들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선택한 사람들을 자기 아들에게 주셨다.(13절)
그런데 아들이 이 사람들을 얻기 위한 과정이 놀랍도록 감동적이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 땅에 오셔서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오, 이것은 놀라운 사랑 이야기다. 우리를 향한 그 사랑도 감동적이지만, 우리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쏟아부은 그 간절함이 더 감동이다.
평민 여자를 사랑하는 왕자가 그 여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일부러 평민이 되어 온갖 고생과 고난을 감수하면서 결국 평민 여자의 자발적인 사랑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실화라면 엄청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 사람을 얻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온갖 고난을 받고 심지어 십자가의 죽음까지 당하시면서 사람들의 사랑을 얻고자 하셨다. 오, 이게 실화라니!
이토록 지독한 사랑을 보았는가? 믿지 않으니 그게 실감이 안 나는 것이다. 믿어서 이것이 사실임을 깨닫게된다면, 어찌 이런 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지독한 사랑을 깨닫게 되어도 여전히 그를 사랑하기를 주저한다면 바울처럼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고전 16:22)
이토록 사랑을 갈구하여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신 분에게 우리는 기껏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바르게 사는 것만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는 전혀 믿음의 비밀을 모르는 자다. 우리가 진짜 할 일은 그분을 믿고 사랑하여 그분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것에 비하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선행과 봉사는 티끌에 불과하다.
평민 여자가 끝내 왕자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고 그저 그에게 사랑이나 받으려고 하고, 트집 잡히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의 사랑을 이용하여 자기 필요만 채우고 끝났다고 하면 어찌 감동적인 스토리가 되겠는가?
이제 예수님을 내 필요를 채우시는 분으로만 대하지 말고, 나의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1)
이런 고백이 내 양심에서 흘러나올 때, 그는 온전케 된 것이다.
◆ 우리는 주님의 형제 (11)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하남에 있는 어떤 교회 형제들이 초빙해서 메시지를 전한 적이 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평신도 교회를 하고 싶다고 했다. 몹시 반가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주저하게 하는 가장 큰 장벽이 있다고 했다. 무엇인지 물으니 전혀 생각지 못한 엉뚱한 것을 지적했다. 곧 호칭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장로, 권사, 집사라는 명칭에 익숙하기에 ‘형제’라고 부르는 것이 도저히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호칭은 우리 문화와 정서에 안 맞는다고 했다. 더구나 중학생이 감히 칠십된 노인에게 ‘형제’라니! 이런 일이 우리 문화에서 과연 용납되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오해다. 우리가 형제라고 함은 그 사람의 형제라는 의미도 있지만, 더 궁극적인 것은 ‘주님의 형제’라는 의미가 더 크다. 중학생이 나에게 ‘주님의 형제님’이라고 부른다면 이것처럼 영광스러운 호칭이 어디있겠는가?
사람들은 나에게 ‘장로님’, 또는 ‘목사님’이라고 부른다. 그게 나를 대접하는 예라고 믿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이 우리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는데, 내게 계속 ‘장로님’이라고 불렀다. ‘형제’라고 부르라고 하자, 그는 자기가 나이가 어려 차마 그렇게 부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큰 형님’이라고 부르면 어떠냐고 했다. 오, 그것은 오히려 낮춤말이다. 그런 호칭은 자기를 중심으로 한 관계다. 우리가 ‘형제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나를 중심으로 한 관계 호칭이 아니라, 주님을 중심으로 한 관계 호칭이다.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11절). 나의 창조주이시고 나의 주님이시며, 온 우주에서 가장 높으신 그 분이 나를 '형제'라고 부르신다니 얼마나 황송한가? 그런데 겨우 자기보다 어리거나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기를 형제라고 부르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다면, 과연 주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을까? 아직도 주님의 겸손을 배우지 못한 우리는 얼마나 오만하고 한심한 자인가!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신 주님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내 속에 주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우리나라 문화와 정서를 운운하며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귀족과 노예가 명확하게 나뉘어졌다. 그것이 문화고 질서고 정서였다. 그런데 그들이 교회당에서 함께 모여 떡을 떼고, 함께 어우러져 손 잡고 기도했다. 그리고 서로 ‘형제’라고 불렀다. 우리나라는 유교 문화 사회이기 때문에 어렵다고? 과연 귀족 노예 문화 사회보다 더 어려울까?
‘형제님’이란 말이 오늘날 조롱의 말로 다루어질지라도, 나는 이런 호칭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형제님이라는 말이 차마 입에서 안 나온다면 ‘주님의 형제님’이라고 하라. 최고의 호칭이다. 중학생 시절에 내 제자였던 자매가 나에게 ‘형제님’이라고 부른다. 내가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것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겸손하게 하며, 내 신분을 자각하게 하는 영광스러운 호칭이다.
대학 시절에 내가 속했던 모임에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꽤 유명한 목사님을 초빙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모임 대표가 이 분을 'OOO형제님'으로 소개했다. 호칭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해서 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그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그 교회 부목사가 내게 알려주었는데, 그분이 형제라고 부른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해 했다고 전했다. 이미 호칭에 길들여진 탓이다.
아무리 내가 잘났어도 주님보다 잘났겠는가? 아무리 내가 희생을 해도 주님만큼 희생했겠는가?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자랑하고 싶다가도 주님께서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것을 생각하면, 잠시나마 잘난 체 하려고 했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어디로 숨고 싶다.
아,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몹시 오만하고 건방지다.
주님의 마음을 잊지 말자. 주님께서 가신 길을 걷자. 매일 주님의 얼굴을 구하고, 그 얼굴빛을 따라 행하는 자에게는 주님의 마음이 임한다.
주 예수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제 안에 주님의 마음을 주십시오.
여전히 교만하고, 인정받고 싶어하고,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이 악함에서 저를 건져주십시오.
[출처] 히 2:10-18 /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신 예수님|작성자 야곱
첫댓글 주님의 형제~
부르다 보면 형제님 자매님 좋은데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한국교회는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를 놓치고 있는 현실이지요...
그리스도인들은 주 안에서 형제이며 자매입니다. 귀한 호칭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