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석유가 되는 유기물의 90%는 '식물성 플랑크톤'이에요
입력 : 2022.06.28 03:30
석유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치솟던 국제 유가(油價)가 최근 갑자기 떨어졌어요. 석유 가격의 변동은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쳐요. 석유는 주요 산업의 에너지원이기 때문이에요. 특히 우리나라처럼 석유가 나오지 않는 국가는 수입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석유 가격의 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요. 석유가 대규모로 묻혀 있는 지역을 유전(油田)이라고 해요. 중동이나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대륙 등에 많지요.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에서는 석유가 나오지 않을까요? 그 이유와 함께 석유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아볼게요.
까다로운 석유 생성·저장 조건
우리나라에 석유가 없는 이유를 알기 위해선 석유가 만들어질 수 있는 조건을 알아야 해요. 석유는 '퇴적암'(堆積巖)으로부터 얻을 수 있어요. 퇴적이란 물질이 차곡차곡 쌓였다는 뜻이에요. 아주 고운 모래나 진흙 등이 차곡차곡 쌓이고 눌리며 흙 사이에 있던 공기가 다 빠져나가고 굳어진 것을 퇴적암이라고 하는데요.
석유가 생기려면 퇴적암에 유기물이 포함돼 있어야 해요. 유기물은 생물로부터 생겨난 물질이에요. 연구에 따르면, 석유가 되는 유기물의 90%는 물에 떠서 광합성을 하는 조류, 곧 식물성 플랑크톤이라고 해요. 나머지가 동물성 플랑크톤이나 홍수로 묻힌 육지 식물 등이고요. 이렇게 묻힌 유기물은 지층이 쌓여가며 누르는 힘으로 열과 압력을 받아 분해돼 석유로 변하는데, 이처럼 석유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퇴적암을 '근원암'(根源巖)이라고 한답니다.
그렇다면 유기물이 있는 퇴적암만 있으면 유전이 만들어지는 걸까요? 그렇지 않아요. 석유가 생성돼도 다른 곳으로 한 방울씩 흘러들어가 흩어지면 소용이 없겠죠. 근원암에서 석유가 생기면, 그 옆에 석유를 저장해 줄 곳이 필요해요. 이를 '저류암'(貯留巖)이라고 하는데, 저장하고 흐르게 할 수 있는 돌이라는 의미예요. 구멍이 거의 없는 근원암과 달리 저류암에는 구멍이 많아요. 이곳으로 석유가 스며들어 구멍이 메워지면서 사실상 저장 역할을 하는 거예요.
이게 끝이 아니에요. 다음으로는 저장된 석유를 보호해주는 '뚜껑' 역할의 돌이 필요해요. 석유가 서서히 지표면으로 떠오르며 증발하거나 다른 암석으로 스며들어 사라지지 않도록 해주는 거예요. 이처럼 석유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붙드는 역할을 하는 돌은 '덮개암'이라고 해요. 구멍이 거의 없어 석유는 물론 물조차 통과할 수 없지요. 덮개암은 위로 불룩하게 솟은 모양이라 진짜 뚜껑처럼 보이기도 해요.
이처럼 땅속 깊은 곳부터 근원암·저류암·덮개암이 순서대로 잘 놓여서 석유를 가두는 덫 구조를 형성해야 석유가 고일 수 있어요. 이와 같은 덫 구조는 석유가 생기기 전에 미리 형성되어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다면 만들어진 석유가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가 한 방울도 얻을 수 없을 테니까요. 우리나라에서 석유가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는 위의 조건을 완벽하게 만족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에요. 하나만 부족해도 석유를 얻을 수 없어요. 혹시 땅속에서 석유가 만들어졌다 할지라도 말이에요.
깊은 곳에서 수천만 년간 온도 유지해야
석유는 생명 활동을 하던 생물이 퇴적된 뒤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져요. 어느 지역에서 만들어진 암석이냐에 따라 근원암을 구성하는 유기물도 다른데요. 예컨대 위도가 높은 지역의 근원암에는 단단한 규산염(광물의 일종) 껍질을 가진 식물성 플랑크톤 '규조'(硅藻)가 많이 포함돼 있어요. 얕은 바다에서 퇴적된 근원암에는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가 많이 포함돼 있지요. 시아노박테리아는 24억년 전 바다에 등장한 최초의 광합성 생물로 알려져 있어요.
강과 바다가 만나는 삼각주에서 퇴적된 근원암에는 물에서 쓸려 내려온 나무나 풀이 포함돼 있기도 해요. 보통 나무나 큰 식물은 땅속에서 석탄으로 변하는데, 조건이 맞으면 석탄이 석유나 가스로 변하기도 한답니다.
이렇게 다양한 생물이 퇴적물과 함께 눌리고, 그 압력으로 열을 받아 온도가 60도에 이르면 생물을 이루던 분자들이 서서히 결합해 석유로 변할 수 있는 근원 물질로 변해요. 이 물질을 '케로젠'(Kerogen)이라고 합니다. 근원암이 적당한 깊이에서 수천만 년간 60~150도를 유지하면 케로젠은 서서히 석유와 천연가스로 변하지요. 대략 1500m 이상 깊은 곳이라고 해요.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만들어진 석유는 그 위로 퇴적층이 계속해서 쌓이며 땅속 깊은 곳에 묻힙니다. 하지만 때로는 바다 표면이나 육지로 나와 휘발되거나 분해되기도 해요. 박테리아에게 먹히기도 하고요. 지금껏 만들어진 석유 가운데 극소량만 덮개암이 있는 저류암에 저장돼 있답니다. 인간은 그것을 찾아 뽑아 올리는 거예요.
석유가 있는 곳은 어떻게 알까
석유는 물보다 가볍기 때문에 지하수를 만나면 땅 위로 올라와요. 그래서 때때로 물과 만난 석유가 지표면 위로 올라오며 유전이 발견되기도 해요. 그렇다면 땅속에 매장돼 있는 석유는 어떻게 찾아낼까요?
과학자들은 우선 땅 밑의 지층이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 조사해요. 퇴적층이 근원암·저류암·덮개암으로 만들어진 덫 구조인지 조사하는 거지요. 만약 이런 덫 구조가 잘 형성된 곳이라면, 땅에 구멍을 뚫고 깊이를 재며 암석을 퍼 올려요.
그리고 암석을 잘 갈아서 헬륨을 채운 통 속에 넣어 뜨겁게 달궈요. 헬륨을 가득 채워 땅속에 있을 때와 비슷한 압력을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그러면 암석은 원자로 분해되는데요. 이때 암석에 탄소·수소·산소가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 알 수 있지요. 이 비율을 다양한 방법으로 분석하면 석유로 변할 가능성이 있는 근원 물질(케로젠)이 얼마나 있었는지, 그 가운데 어느 정도가 석유로 변했는지를 알아낼 수 있어요.
이런 방법 등으로 근원암에 있던 케로젠이 대부분 석유로 변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그 주변 어딘가에 석유가 있을 확률이 크다"고 여기고 주변을 조사하는 것이랍니다.
이지유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조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