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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계시의 주인공 | 1-6 1 ①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②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 ③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
특별계시의 주인공 | 7-11 7 ④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⑤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1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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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을 깨달을 자 | 12-14 12 ⑥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⑦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3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14 ⑧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
19편, 나의 반석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
요절 : 14절,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19편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1) 한, 자연 계시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7) 한 특별계시를 통해서,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12) 한,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구조(構造)입니다. 그리고 결론에 이르러 “나의 반석, 나의 구속자”라 고백함으로, 죄인이 오직 “나의 반석, 나의 구속자”를 통해서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연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한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고”(롬 1:20), 더욱이나 “완전하고, 확실하고, 정직”(7-9)한 특별계시를 통해서 “구속자”를 분명히 계시하여주셨는데, 어찌하여 “구속자”를 모르고 영접하지를 않는단 말인가? 그것은 분명합니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12) 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본문은 이처럼 세 단원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째 단원(1-6) 자연계시의 주인공
둘째 단원(7-11) 특별계시의 주인공
셋째 단원(12-14) 허물을 깨달을 자
첫째 단원(1-6) 자연계시의 주인공
첫째 단원에서 증거하고 있는 자연계시의 주인공(主人公)은 도표에 표시한 대로 단연 “해”입니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나이다”(4) 합니다. 그런데 유념해야할 점은 성령께서 이를 기록케 하심은 해에 대한 찬가(讚歌)를 부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계시의 주인공”인 해를 상징으로 하여, 둘째 단원에서 말씀하게 될 특별계시의 주인공이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려는데 있다는 점입니다.
①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1) 합니다.
㉠ 첫 절은 계시(자연계시와, 특별계시)의 목적(目的)을 밝혀주고 있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宣布)하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하신 일, 즉 행사(行事)를 나타내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점을 8편에서는,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8:1) 말씀하고, 신약성경에서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지니라”(롬 1:20) 합니다.
㉡ 하늘 궁창에 있는 해와 달과 별들 같은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나타낸다”는 말은, “구속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친 백성”(딛 2:14)이 된 우리들, 특히 말씀을 맡은 설교자들에게 큰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 첫째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나타내고 있는가? 아니면 도리어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으시게”(롬 2:24) 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묻고 있고,
㉯ 둘째는 더욱 설교자들에게 “너의 설교는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으며, 자기 아들의 대속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여주신 구원행사(行事)를 나타내고 있느냐” 하고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엡 3:9)이라고 정의한 바울은,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합니다. “해”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 아들을 통해서 친히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셨다”(딤후 1:10-11) 하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사도”라는 직분보다도 “반포자”, 즉 전도자라는 말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선포(宣布)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이 계속되는 말씀 중에 더욱 분명히 나타나는데,
㉢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2),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3), 하늘의 해, 달, 별들에는 “언어”(言語)가 없습니다. “들리는 소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나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언어”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언어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롬 3:13-14) 하고 말씀합니다.
더욱이나 설교자들에게는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한 특별계시인 성경이 주어졌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나타내고, 전하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② 그러면 얼마나 넓게 나타내고, 어디까지 선포해야 하는가?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4상) 합니다.
㉠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롬 1:1) 바울 사도가 이 말씀을 외면할 수가 있단 말인가? 4절을 인용하여,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 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펴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롬 10:18) 말씀합니다.
㉡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4하) 합니다. 이렇게 말씀하는 의도는 자연계시의 주인공인 “해”라는 모형을 통해서 우리를 특별계시의 주인공이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이점에서 요셉의 꿈에,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창 37:9) 한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한 가족인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들”을 해와 달과 별들로 상징한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가족들인 그리스도와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③ 본문은 한걸음 더 나아가,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다”(5) 하고 말씀합니다.
㉠ 해를 바라보면서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新郞)을 연상하고, 전장(戰場)을 누비는 “장사”(將士)를 생각한다는 것은 다윗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엡 1:17)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통찰력입니다. 그렇다면 의미는 더욱 분명해지고, 그리스도의 모습은 더욱 선명해지는 것입니다.
㉡ 왜냐하면 계시록 19장에서는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다”(7) 하고, 주님을 “신랑”(新郞)으로 말씀하면서, 동시에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계 19:11, 15) 하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로 묘사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따르는 성도들도 어린양의 신부(新婦)이면서, 동시에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계 19:14) 한 군사(軍士)들인 것입니다.
㉢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6) 합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들이 “해”의 빛과, 그 온기(溫氣) 없이 살아남을 생명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를 통해서 말씀하려는 바는,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光線)을 발하리니”(말 4:2) 한, 구원이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여진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요 1:9)이신 것입니다.
㉣ 그리하여 그의 통치 영역은,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입니다. 이것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 28:18-19) 하신 우리들의 교구(敎區)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 영원까지,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게”(시 113:2-3) 해야 할 사명이 우리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둘째 단원(7-11) 특별계시의 주인공
첫째 단원(1-6)에서 자연계(自然界)에 대해서 노래하다가 갑자기 “여호와의 율법(律法)은”(7) 하니까 앞뒤가 조화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후대의 삽입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있으나, 아닙니다. 그렇게 여기는 것은 첫째 단원의 주인공인 “해”를 단순한 자연 계시로만 보고,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점을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을 교훈적(敎訓的)으로 보고 성경신학, 즉 구속사(救贖史)라는 맥락에서 보지를 못하기 때문에 오는 한계입니다.
지금 다윗은 자연계를 찬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증거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광을 증거하고, 들어내고, 영광을 돌리신 분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 17:4) 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첫째와 둘째 단원은 오히려 감탄할 정도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④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7),
㉠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8) 합니다. 7-9절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여호와의 율법, 여호와의 증거(7), 여호와의 교훈, 여호와의 계명(8),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 여호와의 규례”(9)라는 표현들은 모두가 특별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가리킵니다. 이를 도표로 정리를 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 완전하여 | 영혼을 소성케 하고 |
여호와의 증거는 | 확실하여 |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
여호와의 교훈은 | 정직하여 | 마음을 기쁘게 하고 |
여호와의 계명은 | 순결하여 | 눈을 밝게 하도다 |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 정결하여 | 영원까지 이르고 |
여호와의 규례는 | 확실하여 | 다 의로우니 |
㉡ 그러면 왜 이런 특별계시를 주셨는가? 자연계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롬 1:20)을 드러내고 있지만 셋째 단원에서 말씀하는 “허물과, 죄”로부터 구원을 얻게 하는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엡 1:13)은 깨닫게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와 결부하여서는 호칭(呼稱)이 “하나님”(1, 4)으로 되어 있으나, 구원과 결부해서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14) 하고, 7번이나 “여호와”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 첫 말씀이 “영혼을 소성(蘇醒)케 하고”(7상) 합니다. 이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심령을 다시 소생케 한다는 뜻입니다. 이점을 23:3절에서는,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하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여호와의 말씀이 “영혼을 소성케 하고, 지혜롭게 하며,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하고, 영원까지 이르고, 다 의로우니” 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가?
㉣ 이에 대한 답변은 특별계시의 주인공(主人公), 다시 말하면 성경이 누구를 증거하고 있는가를 아는 사람이라면 대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즉 성경이 영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영생은 성경이 증거하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4) 하고 말씀했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베풀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언약, 모형, 예표, 예언”하신 대로 성취하여 구원을 완성하여주시는 말씀이기에, “완전하고, 확실하고, 정직하고, 순결하고, 정결하고, 확실하다” 하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⑤ 그러므로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10) 합니다.
㉠ 둘째 단원을 정교화한 것이 119편이라 할 수가 있는데, 176절이나 되는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예찬하는 시로 되어 있습니다.
㉮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119:103, 127) 합니다.
㉯ 그리고 본문은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11) 하는데 119편에서는,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119:56) 합니다. ㉡ 첫째 단원의 주인공인 “해”라는 모형이 몽학선생 역할을 하여 우리를 둘째 단원의 주인공인,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치취는 빛이 있었나니”(요 1:9) 한,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여 주고, 해의 온기(溫氣)는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는”, 복음의 빛으로 인류에게 비춰지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단원(12-14) 자기 허물을 깨달을 자 누구리요
셋째 단원은 적용부분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⑥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12상) 하고 묻고 있습니다. 죄를 깨닫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 성경을 상고해보면 분명 잘못하고 있는데도 이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을 당해야만 했는가? 죄를 깨닫지를 못해서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醫師)가 있지 아니 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렘 8:22) 하고, 죄를 깨닫지 못하여 멸망을 자초하고 있는 점을 탄식했던 것입니다.
㉢ 어찌하여 많은 영혼들이 멸망을 당하게 되는가? 죄인임을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년 “해맞이, 정월 대보름 달”은 보려고 하면서 세상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보려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2, 13) 하신 것입니다.
⑦ 이를 알았기에 다윗은,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12하-13상)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 죄의 유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숨은 허물”입니다. 이는 부지중(不知中)에 범하는 죄입니다. 이를 “숨은 허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죄를 범하면서도 죄인 줄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139:23) 하고, 하나님 앞에 종합검진을 받는 것같이 내어 놓는 것입니다.
㉡ 그러면 이 “숨은 허물”을 어떻게 깨달을 수가 있는가?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롬 7:9) 한, 계명을 통해서입니다. “계명이 이르렀다”는 뜻은 마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해보다 더 밝은 빛에 비췸을 받은 것과 같은 성령의 조명(照明)함을 의미합니다.
그 이전에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 3:6) 하고 자부하던, 즉 “산 줄”로 알았던 그가 “숨은 허물”이 백일하에 드러나자,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한 것입니다. 이점을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롬 7:11), 즉 자신도 죄에게 “속았다” 하고 말합니다.
㉢ 둘째는 “고범죄”(故犯罪)인데, 이는 알면서도 고의로 범하는 죄입니다. 다시 말하면 습관적으로 죄를 범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13하) 합니다.
여기 “주장(主張)한다”는 말과, “벗어난다”는 말이 대조되어 있는데, 죄가 주장하게 되면 “죄의 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죄의 주장”에서 벗어나 자유하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이점을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7-18) 합니다.
⑧ 그러므로 도달하게 되는 결론은,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14) 한, “나의 구속자”(救贖者)인 것입니다.
㉠ 이를 점으로만 본다면 나의 구속자가 “여호와”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구속사라는 “선”(線)으로 보게 되면, 구약성경에 계시된, “왕, 목자, 피난처, 구원의 반석” 등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임마누엘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나고, 죽으시고 다시 사심을 통해서 복음을 드러내시고 성취하신 것입니다.
㉡ 다윗이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14) 한, “마음의 묵상”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늘의 해를 바라보면서,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실 구속자 되시는 그리스도를 멀리서 바라본 묵상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나의 반석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입니다.
적용 : 자연계시인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다면, 특별계시인 성경은 더욱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들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해야할 사명은 설교자의 책임입니다. 또한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면, 구속함을 얻은 성도들은 더더욱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묵상
㉠ 자연계시의 주인공인 해가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에 대해서,
㉡ 특별계시의 필요성과 주인공에 대해서,
㉢ 첫째와 둘째를 통해서 깨달아야할 죄와 구원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