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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요 20:26-31절
제 목 :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일 시 : 2017. 10. 15.
요20:26-31/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20장은 부활의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 주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을 첫 번째로 만났을 때 공교롭게도 도마는 거기에 없었습니다. 요20:24-25/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8일이 지나서 예수님은 도마를 포함한 모든 제자들이 함께 있을 때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이번에 찾아오신 목적은 순전히 도마를 위함이었고, 도마를 비롯한 성도들에게 바람직한 믿음이 무엇임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8일전에 도마가 제자들에게 했던 말을 다 들으셨기 때문에 도마에게 오셔서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도마는 자신의 손으로 예수님의 손을 만져 보거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지 않았지만 그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알고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 드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다시 도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보고 믿으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듣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보고 믿으려는 유혹들은 항상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는 것과 믿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보았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많은 기적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보는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특히 보는 것과 만나는 것은 더욱더 다릅니다. 예수님을 보려고 하지 말고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만나게 되면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마음에 주인으로 모셔 드리게 되면 예수님과 연합하여 하나가 됩니다. 그 순간부터 예수님의 인격을 닮게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타나게 됩니다. 즉 삶이 변화된다는 뜻입니다. 보는 것과 믿는 것, 보는 것과 만나는 것은 이처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창세기를 통해서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유혹으로 죄를 짓는 과정을 살펴보면 한편으로는 매우 안타깝고, 다른 한편으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3:1-7/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고 했습니다.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사용한 방법은 거짓말이었습니다. 두 가지의 거짓말로 하와를 속였고 그것이 하와에게 먹혀 들어갔습니다. 첫 번째는 선악과를 따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에덴동산에서의 삶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했습니다. 그런 하와의 마음속에 두 가지의 욕망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죄를 지으면서도 죽지 않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떠나서도 죽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둘째는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와의 마음속에 있는 두 가지의 욕망을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신다라고 했습니다.
하와는 마귀의 거짓말을 듣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따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고, 또한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죄를 짓는 순간 그들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동안에는 자신들이 벗고 있었는데도 자신들이 벗고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만 보면됩니다. 하나님을 보게 되면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고, 불필요한 것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죄를 짓고 하나님과 멀어지니까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보아서는 안될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허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죄가 주는 불행입니다. 하와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게 된 가장 큰 동기는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되어 하나님처럼 보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담이후 모든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보고, 믿고 싶어하는 유혹들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섬기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라고 했습니다. 출20:3-5/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풀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요약하면 눈에 보이는 어떤 것들을 만들어서, 눈으로 보면서 거기에 절하며, 그것들을 하나님처럼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도 인간의 깊은 내면에는 무엇인가를 보면서 믿으려는 강한 욕망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귀가 인간을 유혹하고 넘어뜨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어서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서 자기 앞에 무엇인가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고, 거기에 엎드려 절을 합니다.
팔공산 갓 바위를 바라보면서 엎드려 절하는 것이나 조상을 섬긴다는 명목으로 제사상 위에 온갖 음식물을 올려 놓고 절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기독교외에 거의 모든 종교와 샤머니즘은 제단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 조상의 사진이든지 어떤 형상을 만들어 올려 놓고 거기에 절을 합니다. 그렇게 하면 복을 받을 줄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행동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의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목사의 설교를 통해서, 아니면 예언이나 방언 통역이나 내적인 음성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보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전도하다보면 하나님을 보여 주면 믿겠다, 천국과 지옥을 보여 주면 믿겠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불신자도 보고 싶어합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답답한 문제를 속 시원하게 보여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오감을 통해서 믿으려고 합니다.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을 통해서 믿으려고 하는 유혹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보고 믿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지 않고 말씀을 통해서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고후4:18/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본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라고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보는 것은 보는 것이지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잠시 있다 없어져 버리는 보이는 것에서 시선을 돌려 보이지 않지만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느낌을 경험하게 됩니다. 불안, 초조, 두려움, 공포, 답답함, 불길함, 염려, 아픈 통증 등 좋지 않는 느낌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또 등장합니다. 이런 좋지 않는 감정들을 경험하게 되면 삶이 위축되어, 믿음으로 힘차게 전진하지 못하고, 움츠러들거나 머뭇거리나 고민에 빠집니다. 그 결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좋지 않는 감정들과 느낌들은 원수의 방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느낌과 감정은 진리가 아닙니다. 오감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현실적으로는 느낌과 감정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할 것은 오직 우리 주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뿐입니다. 기록된 성경말씀만을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말씀은 영원불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즉 우리가 가진 66권의 성경말씀만을 기록하심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씀 드리면 세상 모든 사람들아 너희들은 오직 기록된 성경말씀을 통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반석같은 말씀 위에 인생집을 지으라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수시로 바뀌고 변하는 모래같은 느낌과 감정 위에 인생집을 짓지 말라는 뜻입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은 쉽지만 언젠가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느낌과 감정에 근거한 믿음도 쉽게 무너집니다.
믿음을 든든히 세워 주는 것은 느낌이나 개인의 체험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지역의 목회자들을 불러놓고 고별설교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20:32/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든든하게 세우고 하나님의 기업을 얻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은 어디에 세워져 있습니까? 감정이나 느낌이나 개인의 체험 위에 세워졌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졌습니까?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견고하게 세워져 있지 않는 한 원수 마귀는 얼마든지 흔들어 넘어뜨릴 수 있습니다. 느낌과 감정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변덕스러운 장마철 날씨처럼 언제 바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에 보시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목격하고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예수님의 제자됨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획을 가지고 그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두 제자는 그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인줄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눈을 가리워 놓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제자들과 성도들이 부활의 예수님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통해서 믿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눅24:13-35/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 그들의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은 실의에 차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그들에게 부활하신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애들아 내가 살아났단다 보아라 하시면 정말 좋을 텐데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구약성경에서 자신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말씀들을 하나씩 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떡을 가지고 축복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떡을 떼어 주실 때 드디어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에게 말씀하시고 떡을 떼어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예수님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보고 믿으려고 하지 말고 말씀을 듣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보려고 하지 말고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삶이 바뀌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는 예수님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은 믿는 것도 아니며, 본다고 해서 삶이 바뀌고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야 삶이 바뀝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예수님을 마음에 주인으로 모셔 드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야 나의 주인되신 예수님이 나의 삶을 바꾸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면 삶이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예수님이 나를 바꾸어 주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특징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히11:1-2/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바라고 기대하고 희망하는 것이며, 그것이 나중에 실체가 됩니다. 2)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마음으로 바라고 기대하면 그것이 증거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보는 것은 보는 것일 뿐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후5:6-7/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라고 했으며, 롬8:24-25/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라고 했으며, 벧전1:8-9/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했습니다.
바울과 베드로는 뭐라고 말씀합니까? 우리가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왜냐하면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행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오 라고 했습니다.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보이는 것을 믿는 것도 믿음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것이 참된 믿음이며, 거기에 영혼의 구원이 있습니다.
여러분, 다미선교회 시한부종말론 사건을 아시죠? 이장림 목사 등이 1992년 10월 28일에 세상에 종말이 오면서 시한부종말론을 믿는 자는 하늘로 들림받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여 기독교계에 파란을 일으킨 사건입니다.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거기에 미혹되어서 각 지역마다 예배당에 보여서 예수님의 재림과 자신들의 휴거를 기다렸지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1992년 10월 28일에 예수님이 온다고 믿고 직장도 그만두고 학교도 다니지 않고 교회에 모여 힌 옷을 입고 기도하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렸습니다. 모든 방송사에서 그것을 촬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정이 되어도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고 힌 옷을 입고 기다리던 사람들 단 한 사람도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그들은 왜 이런 잘못된 신앙에 빠졌습니까? 그 교회에서 기도회로 모여서 열심히 기도하는 중에 어떤 학생이 환상을 보고 예수님을 만나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환상 중에 예수님이 나타나서 1992년 10월 28일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학생 한 명이 환상을 보았지만 나중에는 여러 명의 성도들이 같은 방식으로 환상 가운데 예수님이 나타나서 말씀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장림 씨는 기도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근거로 시한부 종말론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이 가짜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그들이 환상 중에 나타나서 말씀하셨다는 분은 예수님이 아니라 귀신의 장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 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성경말씀에 근거한 신앙이 되어야지 보고 듣는 것이 신앙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기도를 하다보면 보여지고 들리는 음성이 있습니다. 또한 어떤 느낌이 오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몸이 뜨겁거나 시원하거나 전기가 오는 것처럼 찌릿찌릿하거나 하는 느낌들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그것이 정말 예수님이 주신 것인지 성경말씀을 가지고 분별해야 합니다. 무조건 믿지 말고 확실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성경 말씀과 일치한다면 그것은 주님이 주시는 것이고, 성경말씀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주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은 참고만 할 뿐이지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실수하게 됩니다. 오직 성경말씀만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할 뿐입니다. 그것이 가장 안전하고 바람직한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 홀로 앉으십시오.
1. 요20:26-31절을 읽고 본인은 지금까지 어떻게 믿으려고 했는지 성찰해봅시다.
▣ 함께 나누십시오.
1. 예수님은 도마에게 어떤 믿음이 더 복되다고 했습니까?
2. 하와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게 된 두 가지 동기는 무엇입니까?
3. 오감을 통해서 겪게 되는 나쁜 감정들은 누가, 왜 주는 것입니까?
4.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주님은 자신을 감추고 말씀을 풀어주신 이유는?
5. 히11장이 소개하는 믿음의 특징을 볼 때 참되고 바람직한 믿음은?
6. 다미선교회 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1. 예수님을 직접 보고 믿으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듣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
2. 첫째는 죄를 지으면서도 죽지 않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떠나서도 죽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둘째는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되는 것
3.원수들의 방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4. 예수님을 보고 믿으려고 하지 말고 말씀을 듣고 믿으라는 것
5.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믿는 것
6. 성경말씀에 근거한 신앙이 되어야지 보고 듣는 것이 신앙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된다.
1.보고믿으려하지말고 예수님에관한 말씀을 듣고 믿는자가 복이 있다고 하심
2.1)죄를 지으면서도 죽지않고 2)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되는것
3.원수마귀가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것
4.예수님을 보고 믿으려고 하지 말고 말씀을 듣고 믿으라
5.믿음은 보이지 않는것을 보는것처럼 믿는것입니다
6.성경말씀에 근거한 믿음이 아닌 보고 듣는것을 믿음으로 삼는 신앙의 위험한 사례
1. 예수님을 직접 보고 믿으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듣고 믿는 믿음.
2. 1)죄를 지으면서도 죽지 않는 것. 즉 하나님을 떠나서도 죽지 않기를 바란 것. 2)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되는 것.
3. 사단 마귀 원수.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4. 제자들과 성도들이 부활의 예수님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통해서 믿기를 원하셨기 때문.
5.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믿는 믿음.
6. 성경말씀에 근거한 신앙이 되어야지 보고 듣는 것이 신앙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