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日報 “山” 取材山行 (2008년 2월 2일,맑음)
산행을 시작하며(괴음산을 향해 축사길 끝지점에서 우측으로 진입한다).
호구산 봉수대는 이동면 다정리 호구산(납산)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산또는 납산으로 불리는데 조선시대에는 원산이라 했다, 이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 남해현 산천조에는 원산은 현의 남쪽 16리 지점에 있다고 전하며 호구산 봉수대의 기능에 대해 동쪽으로는 금산 봉수에 응 하였고 남쪽으로는 설흘산 봉수에 응 하였다고 한다. 아울러 서쪽으로는 본현에 보고하고 끝났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 본 현은 이동면에 현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일컬어 난포현이다.
자연식 석축이며 기단부는 1.7m높이이고 둘레 25m 직경이 8.1m이며 봉돈부분은 높이 1.8m 둘레 12.5m 직경 4.0m이며 가로 0.6m세로 0.5m의 아궁이를 갖추고 있다.
식사후 송등산에서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기사만 빼고)
제법 잔설이 남아있는 송등산
창선 대방산과 사천의 와룡산이 아스라이 보인다.
송등산을 향하는 암벽 너덜구간.
남해의 절경을 담아가려고 열중인 취재진.
남해를 알리는데 헌신하는 코디네이터 팀장인 조혜연씨와 하문자씨.(유일한 여자 참가자)
오랜만에 만난 이구대장님과 함께,
보드라운 잡목길(등산로 초입)
참가자 : 安重局 (조선일보 월간“山”기자)
李 九 (주, 자이언트 트래킹 대표이사)
郭元柱 (조선일보 월간“山”화백)
외 사진기자1명과 평택 맥산악회장과 산행대장
성락건 (하동 청학동 산에 미친사람)
문찬일 (한정식 미담 사장)
조혜연 (남해네트워크 코디네이터 팀장)
과 우리부부를 포함한 11명
구 간 : 신비 한우목장-괴음산(604m)-송등산(617m)-납산(618m)-임도-용문사
어제 오후 거인산악회 이구 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취재 산행 차 남해로 가고 있으니 만나볼 수 있느냐고 물어온다, 안 그래도 내일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산에 갈 것이라고 벼르고 있던 차 얼씨구나 싶다,
떡 삶은 물에 중우 데치고(빨래하고) 임도 보고 뽕도 따는 격이며 취재산행 동참도 하고 오랜만에 산 벗도 만나니 이것이 一石三鳥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약속장소인 미담(군청 앞 한정식당)으로 갔다, 9시가 되어서야 모두 도착 하여 인사를 나눈 뒤 내일 산행계획을 의논했다.
미담에서 9시 출발하기로 하고 점심은 공동 김밥으로 하며 신비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숙소가 내산 휴양림으로 예약이 되어있어 이동시간을 고려해서 좀 늦게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갖고 있던 물건을 잊어버리면 많이도 아까워하며 다시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한번 멀어져 버린 사람과의 因緣은 슬퍼하지도 않고 아까워하지도 않는 우리네 마음이 너무 가난하고 부족한 마음가짐이라 여겨진다.
6년 만에 만나는 이구씨도 그동안 많이 변한 모습이다.
회색빛으로 물들인 얇은 겨울의 풍경 속에 이제 봄을 향한 아스라한 꿈길을 마중할 채비를 하는 것도 남은 겨울을 멋지게 보낼 수 있는 준비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양지쪽 무덤가에 피어나는 할미꽃 한 송이가 그리워지고 울타리 개나리꽃이 피어날 때쯤이면 따뜻한 봄날이 온다는 희망과 기대에 춥고 위험한 눈, 어름 길이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산행을 하는 것이다.
無主空山이 따로 있는가.
“山”의 주인이 나요, “山”이 있기에 내가 찾고 “山”이 나를 부름에 달려가는 내가 어찌 “山”의 攝理를 그르치겠는가.
나이는 나만 먹는 것이 아니다. 나도 먹지만 너도 먹는 것이다.
萬壽無疆, 千壽無彊은 못해도 百壽無疆은 해야 할 터인데 ..........,
어제 저녁부터 미담의 문사장은 우리 남해를 찾아준 취재진에게 우리 남해를 하나라도 더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습이 너무 고맙고 아름다워 감사한 마음 몸 둘 바 모르겠고 군민을 대표해 칭찬과 격려해 주고픈 마음뿐이다.
시간과 경비를 들여가면서 남해를 찾은 그분들한테 설천 조각공원과 삼동 해오름촌을 자기차로 전부 안내하여 소개하며 같이 온 조혜연씨는 박식한 내용과 달변으로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데 과연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 남해의 이미지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산행하는 것 보다 더 값지고 귀중한 것을 느낀 하루였음에 다시 한 번 감사한다.
산길은 부드럽기도 하다가 가팔라지며 올라갈수록 눈길로 바뀌기도 한다,
순수 알피니즘을 추구하는 산꾼 다운 사람이 요즈음엔 많다.
불굴의 개척정신과 도전정신으로 보통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험하고 어려운 산을 찾아 나서는 보이지 않는 막강한 힘을 발휘 하는 것은 진실성 그것 하나 뿐 이라고 본다.
이들의 마음속엔 항상 우리의 산이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내 것을 먼저 알자는 것은 知彼知己면 百戰百勝이란 말이 있듯이 자신도 잘 모르면서 남을 먼저 알려는 것은 아무래도 도리에 어긋난 것 같은 생각이다, 그래서 그들의 꿈과 목표를 달성하기 전 까지는 외국의 높은 설산은 꿈꾸지 않는 것이다.
진실은 위대하기도 하지만 무서운 것이기도 하다. 꽃씨라도 심어보며 봄을 재촉해 보고도 싶다. 짙은 어둠이 새벽을 예견이라도 하듯 겨울이 깊었기에 봄은 이미 어딘가에 서성이고 있을 것이다.
한시간정도 쉬엄쉬엄 오르니 괴엄산 정상이다.
눈(雪)이 있어 귀가 시리기도 하지만 이마엔 땀이 흐른다, 멀리 지리산의 천왕봉과 영신봉이 약간 높아 보이나 수평으로 하늘 금을 긋고 있으며 양쪽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아황산가스로 인한 가스 오존층이 푸른 하늘아래 누런 띠를 두르고 있는 것이 나의 가슴을 압박해오는 느낌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이렇게 좋은데 기자들의 눈에는 얼마나 돋보이는 우리고향 산 인가!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더 담으려고 연신 셧터를 눌러댄다.
도전이 아름다운 것은 꿈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송등산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는데 많은 산객이 지난다.
뽀드득하고 눈(雪)밟히는 소리가 오감을 자극하며 童心의 세계로 안내한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조심에 조심을 하며 납산에 오르니 四方天地가 훤하게 보이는 것이 그야말로 一望無題이다. 湖水같은 강진만과 앵강만의 바다가 잔잔한 것이 아주 평화로워 보인다. 암릉구간을 지나 임도에 도착하니 4시 15분이다.
취재산행이라 記錄에다 촬영까지 하다 보니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차가 용문사 주차장에 있다 보니 20여분 발품을 들여 간 김에 용문사도 들려 보기로 했다.
전 보다도 절의 모습이 많이도 달라졌고 주변도 깨끗해졌으며 보기가 좋아 보는 우리의 마음은 더 좋았다.
산이 좋아 같이한 산행이 즐겁기도 했지만 문사장님과 조혜연씨의 헌신적인 홍보활동에 적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은 심정이며 격려해 드리고 싶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한 산행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고 참여하신 모든 분께 이 자리를 빌 어 감사드린다,
아름다운강산,
남해읍과 하늘금의 지리산(천왕봉과 영신봉,반야봉과 만복대가 뚜렸하다)
납산에서 바라본 앵강만의 형제섬과 노도
이구 대장(자이언트 해외 트래킹 대표이사)님과 곽원주 화백
납산 아래 바위절벽에 선 취재진.
오랜만에 산을 찾은 하문자씨
묵직하고 근사한 立石
지장대도장인 용문사입구 (주변 정비가 깨끗하다)
부도 하단부에 사람 얼굴모양의 문양은 보기 힌든 부도이다(보통 연꽃이 대부분이다)
일주문 뒤 우측엔 下馬碑가 자연석에 새겨져있다.
용문사 대웅전
신라 문무왕 3년(663년)元曉大師가 錦山에 세웠다는 普光寺가 뒤에 이곳으로 옮겨와 지금의 용문사가 되었다고 전한다,
조선숙종(1675 ~ 1720 재위) 때에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의 활약한 공으로 인해 守國寺로 지정되어 왕실의 보호를 받었던 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