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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하나님의 사랑으로 완전해 집시다.(2)”
+ 본 문 : 고린도전서 13장 8절 - 12절(신약 279쪽)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하나님 사랑을 알 때, 비로소 사랑을 이해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랑의 필요성’ 과 ‘사랑의 실천’ 에 대해서, 세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완전해집니다.” 하는 제목으로 계속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하나님 사랑을 받은 우리가 이젠 옆에 분들에게 하나님 사랑을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오늘 집에서 싸우고 나온 분들이 있습니까? 다시 환하게 웃으면서 합시다. ‘사랑합니다.’
+ 이제 찬양으로 우리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음을 고백하고, 그 사랑을 나누는 찬양합시다.
* 우리는 사랑의 띠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 사랑의 주님이 날 사랑하시네.
삶의 모든 문제들을 보면, 결국 사랑이 병들고 변질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다 한 번씩 결혼을 앞 둔 사람들 가운데, 주례자가 될 나를 찾아와서는,
아주 엉뚱한 질문을 던져, 나를 정말로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엉뚱한 질문은 바로 “결혼할까요? 말까요?” 하는 질문입니다. 말이 됩니까?
너무 황당해서 “아니 이 사람아, 그게 무슨 소린가? 낼 모레 결혼식을 올릴 사람이,
결혼할까요? 말까요라니, 대체 왜 그러나?“ 하고 물으면 ”내 인생을 결정하는 일인데,
함부로 할 수 있습니까? 문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건지, 그걸 모르겠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다 알고 결혼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결혼생활 오래 한 나도 다 모르고,
그냥 사네, 천천히 천천히 알게 될 거네.“ 하고 말합니다만 정말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정말 사랑하는 것입니까?
또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고 믿습니까? 정말 사랑받고 있다고 믿습니까?
그것을 다 알고, 다 믿어진다면 우리들의 사랑전선에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문제는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고사하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도,
다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오늘 주시는 말씀에,
다시 한 번 거울을 보듯이, 저와 여러분의 사랑을 비추어 보기를 원합니다.
+ 먼저 오늘 본문 8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사랑의 지속성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만나서, 주고받는 사랑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들어도들어도 또 듣고 싶고, 무슨 말이든 끝없이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이, 갑자기 보기 싫은 것도 문제이지만,
사랑했던 그 사람의 말이 듣기 싫어지면, 그것은 사랑이 식어졌다는 증거입니다.
어떤 분은 남편이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고,
남편의 음성에 등골이 오싹해진다고 하는데, 이미 사랑 없이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한 집에서 오래 살았어도, 그것이 다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부부간에 자녀 낳고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참 사랑은 상대의 말, 상대의 행동에 이의가 없습니다. 다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의 모든 의견을 아무 조건없이 다 따릅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수고합니다.
그리고 그 수고가 즐겁습니다. 바로 이 참 사랑은 계속되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이런 참 사랑을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한다.” 고 말합니다.(8절)
사랑은 떨어지지 않고, 사랑은 끝나지도 않으며, 실패도 없고, 지루함도, 싫증도,
불만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루해지고, 싫증나고, 불만스럽고, 어쩌다가 이 팔자가 됐나,
이런 생각이 들면, 그 사랑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분명히 사랑이 잘못된 것입니다.
환경이라든가, 혹은 살림이 어려워서, 아이들 때문에 시달려서라고 변명할는지 모르나,
참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요컨대 사랑이 잘못된 것입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에는 “아가페” 라는 사랑이 있고, “에로스” 라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랑을 대비시켜 설명하고 있는 “Agape and Erose.” 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에로스라는 사랑은 내가 잡아당겨 쟁취하는 사랑이지만, 아가페라는 사랑은,
내가 그에게로 다가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를 받아들이는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에로스라는 사랑에는 언제나 욕구가 많습니다. 계속 보상을 바랍니다.
바램도 끝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결국에 가서는 언젠가는 원망으로 끝나고 맙니다.
이와 반대로 아가페라는 사랑은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아가페적인 사랑은 사랑하면서 감동하며 감격하고, 희생하면서도 즐겁습니다.
그러므로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저 사랑한다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성경은 바로 이런 아가페적인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는 말은,
“아가파테 알렐루스” 입니다. 철저하게 서로 아가페의 사랑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않는 사랑” 이 바로 아가페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는 에로스적인 사랑입니다.
여기 “폐한다.” 는 일정기간이 지나면, 그 작용과 효력과 효능이 소멸된다는 뜻입니다.
예언은 성취되면 그만 아닙니까. 성취되었으면 그 예언은 이제 효력이 끝난 것입니다.
방언이라는 것도 방해받지 않고,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성숙한,
기도의 사람이 되면, 굳이 방언으로 기도하고, 방언으로 찬송할 필요도 없습니다.
방언으로 기도하고, 방언으로 찬송해야 깊은 신앙생활을 하는 줄은 아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성숙한 기도생활을 하지 못하니 방언으로 하는 것입니다.
또 끝없는 지식에 대한 욕구, 이것도 사랑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불같이 사랑하다가 결혼하고 나니, 식어버렸다면 처음부터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과 욕정은 다른 것입니다. 불타다가 식는 것은 욕정입니다. 욕정은 사랑이 아닙니다.
아가페적인 참 사랑은 결코 중단될 수도 없고, 떨어질 수도 없고, 소멸될 수도 없습니다.
아가페적인 참 사랑은 갈수록 점점 더 뜨거워지고, 더 성숙하고, 점점 더 높아집니다.
그러나 사랑이라고 했는데, 어느 순간에 싹 사라졌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욕정입니다.
제가 중매를 한 번 해본 적이 있는데, 신랑될 쪽을 만나면 신부될 쪽에 대해,
자꾸 물어봅니다. “나이가 몇 살이며, 어떻게 생겼으며, 얼마나 공부를 했느냐?“ 고,
또 신부될 쪽을 만나면 신랑에 대해서 물어 보는데, “고향이 어디며, 어느 학교,
무슨 과를 나와 지금은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부터, 묻는 것도 참 많습니다.
이러한 물음에 제가 다 대답할 수 없어, 당사자들끼리 만나서 물어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번 만났다가 맘에 안 든다고 하는 사람에게 “나한테 물었던 거 물어봤냐?“
그런데 안 물어 봤다고 합니다. 왜 안물어봤냐고 하면, 그냥 맘에 안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한 번 밖에 안 만났는데, 맘에 든다고 팔짱끼고 나타난 놈들도 있습니다.
그래 내가 생각하기를 “아, 이놈들은 물어 볼 것 다 물어보고, 서로 조건이 맞아,
이러는가보다.“ 하고 ”너희들은 물어봤냐?“ 물어보면, 다 안 물어 봤다고 합니다.
“왜 안 물어 봤냐?” 고 물었더니, 딱 보는 순간 “풍덩” 소리가 나더라고 합니다.
“그냥 좋은데 그거 알아서 뭐해요?” 더 기가 막힌 것은 그렇게 조건 따지던 놈들이,
하는 말이 “그런 게 뭐 중요합니까?” 하고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것입니다.
결국 뭐만 봤습니까? 외모만 봤습니다. 예쁘면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성도 여러분! 정답은 아닙니다만, 사랑도 그런 것입니다.
사랑은 질문이 없습니다.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시시콜콜 알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자꾸 따져 묻지 마세요. 남편 들어왔는데 점심 먹었냐? 먹었다. 뭐 먹었냐?
설렁탕 먹었다. 돈은 누가 냈냐? 내가 냈다. 얼마 냈냐? 몇 사람 같이 먹었냐?
자꾸 캐고 들려고 하면 “왜 그렇게 알고 싶은 것이 많냐?” 고 야단만 맞습니다.
지금 안 죽고 살아서 무사히 들어왔으면 왔는가보다 할 일이지, 뭘 자꾸 묻습니까?
대화가 있냐? 없냐? 하지만, 사실 대화란 하고 싶을 때도 있고, 하기 싫을 때도 있습니다.
참 사랑은 옆에 있기만 해도 좋고, 멀리 있어도 상관없이 그냥 좋은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인 아가페적인 사랑, 곧 참 사랑은 온전한 사랑, 성숙한 사랑입니다.
우리 사람이 어렸을 때는 유치합니다. 지독히 자기중심적이고, 지극히 물질적입니다.
먹는 것만 좋아합니다. 자기 좋아한 것만 좋아합니다. 자기한테 잘하는 사람만 좋아합니다.
또 매우 순간적입니다. 지금 나한테 잘해야지 어제 잘한 것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앞으로 잘할 것도 소용없습니다. 오직 현재 만입니다. 어렸을 때는 그렇습니다.
그냥 받기만 좋아합니다. 깊은 이해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 받아야 사랑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어머니를 향해 “사랑해요.” 합니다만, 그것이 뭘 알고 하는 소린가요?
유치합니다. 유아기가 두 살에서 여섯 살까지인데,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입니다.
아동기는 7살에서 13살까지인데 이런 때는 주관이 생기기 시작하지만, 부분적입니다.
그러나 청년기가 되고,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됩니까? 종합적으로 이해를 합니다.
칭찬하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 때로는 꾸중하는 것도 사랑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나를 때리는 것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깊이 이해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적인 온전한 사랑, 성숙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한 여 집사님이 자동차를 타고 가는 길에 차선을 바꾸다가 접촉사고를 냅니다.
이 여 집사님이 급히 내려 “제가 운전이 미숙해서 실수했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보상해드리겠습니다.“ 하고 울먹이며 말했더니, 그쪽도 좀 화가 난 것,
같았지만, 이쪽에서 자꾸 죄송하다고 그러니까, “아! 그렇습니까?” 하고 양해를 합니다.
그리고서 이 여 집사님이 상대방의 차를 보니, 조금 긁힌 것 외에는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새 번호판을 단 지 이틀밖에 안된 자기 차는, 앞과 옆이 왕창 찌그러졌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륵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에게 미안했습니다.
남편이 사랑해서 사 준 자동차인데, 이틀만에 차가 망가졌으니, 눈물이 나올 수밖에요.
그러나 경찰관이 사고처리를 위해, 주민등록증, 종합보험증서, 면허증, 차량등록증을,
가져오라고 해서 자동차 안의 사물함을 열었습니다. 사고를 대비해 남편이 서류를,
다 갖추어 봉투에 넣어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봉투를 본즉 봉투 면에 큰 사인펜으로,
쓴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만일에 사고가 나거든 여보, 이것을 꼭 잊지 마시오.
꼭 기억할 것은 내가 사랑하는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라는 것을 말이요.“
그 글을 보는 순간, 그 여집사님은 너무도 고마워서 또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나도 못해 본, 그 남편 같은 남자라면 성숙한 사랑을 할 줄 아는 괜찮은 남편입니다.
“자동차야 찌그러지건 말건, 내가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오, 속상해하지 마세요.”
새 차 찌그려가지고 들어오면, “이 여자가 정신을 어디다 두고 운전했느냐?” 하고,
화내는 남편들과는 너무 대조적이지 않습니까? 꼭 제 이야기하는 것 같아 쑥스럽니다.
제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제일 힘든 것은, 제가 설교하는 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제 아내거, 저기 눈 부릅뜨고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더 두려운 것은 “말은 참 잘 한다.” 그렇게 생각할까봐 더 많이 힘이 듭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냥 계속 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은 온전한 사랑으로, 성숙한 사랑으로 자라야 합니다.
자라지 않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랑은 유치합니다. 모두가 자기 중심적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1절에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어린아이처럼 막무가내로 떼쓰고 운다고, 말 많이 한다고 사랑인가요?
잔소리한다고, 관심이니 뭐니 해가면서, 사람 괴롭히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정말로 온전한 사랑을 하는 사람은 말 한마디를 해도 “내 사랑하는 사람이,
이 말을 어떻게 들을까? 기분이 좋을까 나쁠까?“ 를 생각하고 말을 합니다.
상대방의 기분보다, 내 기분 내키는 대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한다면서, 그 사랑의 말로 사람의 마음을 엄청 아프게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둘러대지만, 그것은 결코 사랑이 아닙니다. 유치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인내가 따라야 합니다. 기다림과 기대와 인내가 있고,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늘 말씀드립니다만, 참 성숙한 사랑은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가 아닙니다.
“당신 때문에 나는 항상 행복합니다.” 이래야 진짜 진짜 성숙한 사랑입니다.
어느 교회의 회지의 글인데, 목사님께서 “부부간에 당신 때문에 난 행복하다.” 고,
말해야 한다는 설교를 들은 여 집사님이 집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을 안 믿는,
남편에게 “여보! 여보! 난 당신 때문에 참 행복 해“ 했더니 ”미쳤냐?“ 하더랍니다.
순간 속으로 내가 저런 남자하고 사나, 그래서 한숨이 팍팍 나오더라고 합니다.
그래도 그 다음날도 시치미 딱 떼고 ‘여보, 나는 당신 때문에 행복해, 나는 당신하고,
결혼한 걸 참 고맙게 생각해“ 했더니 ”쓸데없는 소리한다.“ 고 소리를 빽 지르더랍니다.
정나미가 뚝 떨어지더랍니다. 그래도 사흘째 되는 날, 인내심을 가지고 또 해보자 하고,
한 마디 덧붙여 “여보, 정말 나는 당신 때문에 행복해, 나는 당신하고 결혼한 걸,
참 고맙게 생각해, 다시 태어나도 당신하고 결혼할거야.“ 한참 말이 없다가 고개를,
돌리며 하는 말이 “사실은 나도 그래.” 하더랍니다. 사랑하면 그냥 행복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11절 하반절에서 말씀합니다. “어렸을 때의 일을 버렸노라.”
오늘이라도 어린아이처럼, 자꾸 받기만을 원하는 사랑을 과감히 버리시기 바랍니다.
결혼생활 30년, 50년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숙한 어른답게 성숙한,
사랑을 해야 하고, 특별히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온전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사랑은 나도 너도, 모두 다 행복하게 만드는 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라고 얼굴을 마주 보는 사랑을 말씀합니다.
요새는 거울이 좋아서 실물과 똑같이 보입니다마는, 옛날에는 거울이 없었습니다.
이천 년 전의 거울은 대개 청동이나 돌을 갈아서 표면을 반들반들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얼굴을 비추어보면 뿌옇게 보이고, 희미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옛날 거울처럼 희미하게 보이고, 멀리 보이고, 부분적으로 보이는 사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서로 눈과 눈이 마주쳐야 하는데, 싸울 때는 딴데 보며 말합니다.
참 사랑은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보며, 마음과 마음, 인격과 인격이 바로 보아야 합니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고 서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말을,
다 들어주고, 인격적으로 이해해주는 사랑, 바로 그런 사랑이 완전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바로 이런 완전한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시기를, 날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이제 침묵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는 나는 완전한,
사랑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침묵기도 드리겠습니다.
+ 이제 하나님을 향하여, 특히 사랑하는 가족들과 성도들, 그리고 모든,
이웃들에게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서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말을 다 들어주고, 인격적으로 이해해주는,
완전한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단의 기도를 통성으로 드립시다.
+ 이제 옆 사람에게 ‘사랑합니다.’ ‘서로 사랑하며 삽시다.’ 하고 격려하며 인사합시다.
+ 그리고 ‘사랑의 주님이 날 사랑하시네....’ 찬양하며 우리의 사랑을 나누겠습니다.
+ 마무리기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