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택일
안 종 문
겨울이 끝나갈 자락에 호주로 날아가 현대판 인생 공부를 하고 지내는 딸아이와 스카이프로 영상통화를 하면서 가족의 그리움과 정을 나누고 있다.
어젯밤이었다. ‘아빠, 엄마 비행기 표를 예매하게 언제쯤 오실래요? 내 마음대로 날짜를 잡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며칠로 잡을까요?’고 묻는 것이었다.
떠나기 전에 이미 자신의 희망을 어렴풋이 비추기는 하였어도 막상 구체적인 날짜를 잡자는 말에는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젊은 날의 피땀이 배어있을 딸아이가 번 돈으로 호주여행을 해보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나 자신의 물음에 아직 시원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옆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집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나와 마찬가지로 망설임이 역력하였다. 외국여행에서 문제가 되는 언어가 깨끗이 해결될 딸아이와의 동반 가족여행이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반가운 뜻을 내비친 적은 있었지만, 지아비의 뜻을 살피는 아내의 도를 보여주었다.
잠시 망설인 끝에 ‘네 뜻은 가상하나 이 아빠의 생각은 네가 번 돈으로는 창창한 앞날 귀한 밑거름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아빠 엄마는 이다음 너희를 잘 키워낸 후 마음 홀가분하게 여행을 하마.’고 뜻을 굳혀서 대답해주었다. 딸아이의 간절한 요청을 거절하는 순간 내 마음도 딸아이가 느낄 당혹스러움을 고스란히 예상할 수 있었다. 부모를 여행시켜 드린다는 희망에 부풀었을 꿈을 깨트리는 아픔이었다.
‘아, 그러실래요?’ 딸아이는 한동안 말을 이어가지 못하였다. ‘그러면 잘 알았습니다.’라는 대답 소리에는 물기를 가득 머금은 처연함이 묻어있었다.
아이들의 소원을 대체로 들어주며 살아왔지만 모처럼의 호의를 거절하고만 나의 심정도 맨발로 눈 녹은 시냇물을 건너는 양 몹시 아렸다.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모를 연로하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두고 외국여행길에 오르는 자신의 모습도 내키지가 않았으나, 무엇보다도 남의 신세를 지지 않으려는 성격이 또 한 번 강하게 작용한 것 같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일 중에는 이처럼 양자택일의 순간을 숱하게 맞는다.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서 기쁠 때도 많겠지만 괴로울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문제는 그 괴로움을 어떻게 승화시키며 살아가는가의 일일 것이다. 결국 당사자의 생각이 삶의 순간순간 운명을 결정 짖고 산다. 이런 것 마져 운명이라고 해야 되는지를 아직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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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의 휴일 아침 한 작품을 올려봅니다. 엊그제 있었던 일이라 제대로 다듬어졌을까 염려가 됩니다.... (2012. 3. 10. 아침. 거실에서)
첫댓글 슬픈 선택이군요
나 같으면 땡빗을 내서 창균이와 일정 맞추어 가겠담...
재고 해 보심이...
행복이란 기차가 떠나가기 전에...
나의 기쁨에 가득찬 선택을 슬픈 선택으로 표현하였구려....
그렇다면 장조카의 충고대로 큰 맘 먹고 가도록 해보겠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기다림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데....기차가 한 대 뿐인 것도 아니고....
갔다오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 무슨 일을 만드는 것이 초연히 살아가는 것에 못 미칠까봐.
특히 어머님 살아계실 때 조금이라도 효를 실천해야 함에도 룰랄라 외국 여행 다니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인가에 대한 물음에 적절한 답이 없었기 때문임을 이해하여야 할 듯.....
장기 여행이 아니면 좋은 타이밍 맞춰 다녀 오는 게 여러모로 좋다고 생각되고...
어차피 의미있는 여행이 될 바에는 오는 여름방학이 적기라고 생각되기도 하는 데 학교운동부 하계 훈련 감독 교사가 외유하는 꼴이라서 그에 대한 대책마련을 위해서는 또 누군가에게 아쉬운 부탁을 하고 살아야 할 듯하네요.... 조언 고맙습니다.
인생은 생각만큼 길지 않고...
그 중에서 행복한 시간은...
하지만 추억으로 간직되는 시간은
짧은 행복한 시간을 보충 해 주지요...
인생은 매우 길지요... 나날이 행복한 사람에게는 ... 염려를 해주어서 참으로 고맙네요.
기존의 생각을 뒤바꾸어서 살아보는 것도 의미가 클 듯하오.
길게 행복한 시간을 누리며 사는 방법 한가지는 남을 도와주면서 살면 당장 행복하여 진답니다. 따라서 길게 행복하려면 그러한 시간을 길게 하면 자연히 .....
맞어 딸애한테 미안하기도 할테지만 딸이 남은 아니고, 기회가 항상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었보다 혼자 단독으로 결정하지 말고 현명하신 제수씨와 충분히 논의 하시게나. 이미 한번 결정 된 사안이라 하더라도,
딸이 남이라는 뜻이 아니었어요.... 제 글의 결미에 표현된 것은 엄마 성미를 닮은 저의 성격 일반적인 것에 대한 언급이었는데...집사람과 의논 끝에 여러 사람들의 권유를 받아들여서 7월 말에서 8월 중순까지 보름간 호주 여행 다녀오기로 결심을 하여 어제 효빈이에게 직접 알려주었답니다. 여러 조언 감사합니다. 경비는 이 아버지의 비상금으로 갈테니 여행 일정 가이드는 책임지라고요...
잘 생각 했구먼
따뜻한 조언 덕분에 결혼 25주년을 뜻있는 여행으로 가정의 행복을 창조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를 드립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