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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 알렉산더 날 짜 2011/09/04 (15:10)
I P 124.56.***.*** 조회 27
융은 최성봉 청년을 보라 !
핏덩이인 채 고아원에 버려져 고아원생들의 온갖 행패와 매질을 견디지 못하고
5세 때 고아원을 뛰쳐나와서 여기저기 거지꼴로 방황하고 거렁배이로 살았다
그때의 그의 어린 삶이 삶이었겠는가?
17세로 성장할 때까지 초등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그의 삶을 상상해 보라!
그는 21세가 된 지금까지도 막노동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래도 그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자기의 꿈을 가꾸며 살고 있다
그가 자기를 버린 부모를 원망하는가?
자기를 돌보지 않은 나라를 원망하는가?
이웃이나 친구를 원망하는가?
최성봉보다 더 구차하고 구구하고 구질구질하게 살아 온 사람이 있는가?
그는 누구처럼 자살도 하지 않았다
그는 융이처럼 찌질하게 원망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인간들의 참 모습이어야 한다
한강다리는 끊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끊었을 테고
비는 악한 사람들에게도 내리고 선한 사람들에게도
내린다는 것을 아는지.....
국가가 희생자들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냐고 묻겠지만
우리의 군대는 이제 겨우 60년 ...
몇 백 년을 앞서 간 나라들과 비교하여 무엇하리오
군대만 그런가?
한국의 모든 곳곳이 어설프고 어눌한 상태가 아닌가?
오늘 아침에도
tv에 나온 채명신 장군이 말하기를 6.25 때 적이 눈 앞에 쳐들어 왔는데
국방장관은 전화도 안 받고
군대 장교들은 밤새 모여서 술잔치를 벌였다고 비판하는데
그때는 토요일 밤었고 다음 날이 일요일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
이제와서 그런 걸 비판해 본들 좌파들과 똑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강다리를 끊어서 사람이 죽고 난리를 쳤다고 말하는데
적군의 기습공격에 누군들 당하지 않을 장사가 있는가?
적을 기다리고 있었던가?
적들은 꼼꼼하게 5년을 남침만 노리고 살았고
남한정부는 가난에 쫒겨 이리저리 방황만 하다가 보낸 세월들이 아닌가?
일제강점을 축복이라고 생각해야할 넘들은 북한이다
북한 땅엔 일본이 36년을 공들여서 상공업을 발달시켰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산 곳이 북한이다
북한동포들이 월남할 때 그들이 얼마나 많은 금은패물들을 가지고 넘어왔는데.....
가난한 기독교인들이나 빈 손으로 넘어왔지....
그곳에 남은 사람들은 다 가난한 인민들과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일본이 망해서 도망갈 때 그 많은 부를 다 북한이 그대로 받아서
김일성이가 축적하고 5년을 전쟁준비를 한 것이다
그러나 남한은 어땠나?
그런 걸 생각하면 가난하고 어수룩하기만 했던 대한민국에 대해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지 않나?
이제와서
조국에 대해 원망이나 늘어놓은들 좌파나 다를게 무엇인가 하는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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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 까마귀 날 짜 2011/09/04 (07:16)
I P 175.119.***.*** 조회 58
융이님. 대한민국은 할 일을 못하고 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백개 장군과 힌덴부르크 장군의 이야기를 보세요.
그동안 융이님이 올리신 글들...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한 지적. 공감하는 바가 많이 있습니다.
건국대통령 동상이 없고, 건국대통령 기념관이 없고,
초대 정부의 부통령을 지내신 이시영 박사의 후손들이 단간 월세방에 삽니다.
6.25때 국군포로 중에 단 한명도 정부의 노력으로 송환된 바가 없습니다.
월남전때 포로가 분명히 있는데 한 명도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대우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참전용사들에 대한 예우도 말할 수 없지요.
개인에 비유하자면 대한민국은 제 부모형제은인들에 대하여 제대로 대접을 못해온 사람입니다.
방혈법이라고 하여 사람의 몸에 병이 생기면 피를 뽑는 치료법이 있습니다. 한방에서는 부항을 뜨고 사혈이라고 하여 피를 뽑기도 합니다.
우리 몸에 혹이 생기면 그것을 외과수술로 떼어내는데, 주변의 건강한 조직도 어느 정도 떼어내게 되며 상당량의 피를 흘리게 됩니다.
대한민국은 6.25 전쟁의 와중에서 좌익 사상범들을 죽인 역사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 20대, 30대, 40대였던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그 사실을 당시나 조금 지나서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분들... 이미 작고한 분들도 꽤 있는데... 이 분들 중에 좌익사상범들을 죽인 것은 잘못이라든지 좌익사상법들이 아깝다고 동정하는 분들은 없었습니다. 과문한 탓일수도 있고 저에게 이야기한 분들이 한결같이 공산군을 피해 피난을 갔거나 국군으로 참전한 분들이라 그럴수도 있겠는데,
이미 6.25 발발 전에 대한민국에는 여러 건의 좌익의 폭력 봉기가 있었습니다. 대구폭동, 4.3사태 등등 많이 있었지요.
전쟁의 와중에 좌익사상범들을 풀어주었다면, 혹은 그대로 두고 후퇴를 했다면 그들은 대한민국에 총부리를 겨눌 사람들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그들을 그대로 놔둘 수 없었습니다.
전쟁을 하다보면 항복해 온 포로를 죽여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중국의 백개 장군과 독일의 힌덴부르크 장군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백개 장군은 항복해 온 포로 수만명을 죽인 일이 있습니다. 그는 이 사실에 대해 늘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가 말년에 그만 미쳐버렸습니다.
힌덴부르크는 1차대전때 독일의 명장으로 러시아의 36개 사단을 섬멸하였으나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적을 쓸어 버렸다는 떳떳한 마음만 있었기에 마음에 짐이 없었고 나중에는 독일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에서는 억울한 희생자가 없을까요?
아닙니다.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어느 전쟁에서든 항복한 포로를 죽이거나 적이 아닌 양민을 죽이는 일은 있을수가 있습니다. 대규모로 오랜기간 지속되는 전쟁, 그리고 전선이 크게 움직인 전쟁에서는 필연입니다.
6.25때 좌익수감자들 죽인 것,
광주사태때 폭력시위 가담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죽인 것.
아픔이고 비극이지만 그 일을 한 사람들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죄를 묻는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전쟁이 끝나고, 사태가 진정되고...
적으로서 우리가 죽인 사람들,
포로였고 수감자였는데 우리가 죽인 사람들,
적이 아닌데 적으로 오인하여 죽인 사람들...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일은 대한민국이 했어야 했는데 안 한 일입니다.
대한민국은 제부모형제의 장례도 제사도 제대로 못지내고 있는 인간으로 할 도리를 못해온 인간과 같습니다.
반성하고 늦게라도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건국의 아버지들에 대한 정당한 대우,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고 공을 세운 분들에 대한 대우가 첫째입니다.
그 다음으로 할 일이 적이었거나 적으로 의심받아 죽은 사람들에 대한 위령입니다.
이들을 죽인 사람들은 그 위령제에서 고개 숙여 명복을 빌고, 자신의 업을 씻으면 됩니다.
국가는 그래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융이님 가족들에게 드릴 것은 위령입니다.
가해자 처벌 같은 것은 아니라 봅니다.
가해자는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아측에 총부리를 겨눌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죽인 것입니다.
분함과 한이 풀리지 않고 더 증폭되실지도 모르겠으나 국가는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저의 가족이 그렇게 죽었다고 해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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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 융이 날 짜 2011/09/04 (06:45)
I P 211.44.***.*** 조회 68
이승노보다 알렉산더 보다 더...
이승노보다 알렉산더 보다 더 대한민국에 목숨을 바쳤던 참전용사이며 대한민국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고 대한민국을 더 사랑하는 융이입니다.
융이가 올린 글에 발췌이유를 보았는지 인정을 하지 않으려는 발버둥인지 모르겠으나 전교조로 매도하는 것에는 문제가 많아 보이며 인신공격입니다.
당신의 가족이 또는 자식이 대한민국 정부에의해 불법 살해 당했다면 당신들은 어떤 모습으로 이 게시판에 나타날지 궁금하군요,,,
애국 서울시민 122분의 가족들이 아직도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고 가족을 찾아 다니고 있는 현실입니다.
당신들은 언론에 조차 보도되지 못하고 묻혀 있는 이 사실들을 알고 있습니까?
당신같은 애국이란 이름을 앞세워 맹목적으로 날뛰는 인간들 때문에 좌익들이 길길이 날뛰게 하고 좌익정부가 들어서게 하는 자양분을 제공하며 대한민국을 혼란의 수렁으로 몰아가고 있는 한 축의 장본인들이란 사실들을 명심하세요.
융이는 희생당하신 애국 서울시민 122분 중 나타난 유일한 가족이기도 합니다.
발췌이유를 잘 보세요...
이 순간에도 진보건, 보수건, 정치권이건 언론이건, 이념적, 정치적 또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입맛에 맏게 이용하고 편을 가르며 싸움질들을 하고 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한강다리를 폭파하고 정부는 서울을 사수하라는 메시지만 남긴채 남쪽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이에 서울시민들은 정부를 믿고 정부의 반격을 기다리며 인민군에 갖은 수모를 당하면서도 굳건히 이겨내고 1950년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어 국군에 입대한 청년을 부역혐의자라 하여 서대문구치소에 입감시켰습니다.
이후 소식이 단절된 채 죽었는지 살았는지 60여년동안 알길없어 애타게 찾아 헤메던 가족들에게 그가 나타난 것은 2010년 5월 중순경 이름도 거창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위원회 조사관으로부터 건네받은 1951년 1월 14일자 대전형무소 재소자 명부 중 부산이송직전미정리적수(釜山移送直前未程理積數)라는 사망자 명단에 서울지검 담당 부역혐의 미결수들인 서울시민 122분들이 1951년 1월 4일 같은 날 사망했다라는 문서를 받고서입니다.
이렇게 60여년 동안을 "찾을 수 없다" "전쟁 중에 소실됐다더라 "그런 자료가 없다"라던" 문서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국민을 보호하고 지켜주어야 할 대한민국 정부는 60여년동안 국민 살해라는 국가범죄를 숨겨 왔으며 현 공직자들에게까지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며 은폐의 죄를 뒤집어 씌우게 하는 우를 계속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이에 나아가 정부는 서울지검 담당 부역혐의 미결수들인 서울시민 122분의 유족들에게 사망사실을 알리지도 유해반환의 국가의 의무를 거부하고 국가범죄에 대한 진실을 외곡하고 축소하며 살인 은폐라는 국가범죄가 진행형으로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산이송직전미정리적수(釜山移送直前未程理積數)라는 이 제목이 무었을 뜻하는지 아십니까?
이 명단에 들어있는 122분들은 좌익이 아닌 피난을 가지못해 볼모로 잡혀 인민군들과 처절한 싸움과 갖은 수모를 격어야 했던 애국 서울 시민들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전해 주셨던 장본인은 모 대학 설립자로서 여러분들의 존경을 받아오셨던 훌륭하신 분입니다.
내 주장만 하기 전에 정확한 사실과 옳고, 그름을 확인한 후에 날뛰시기를...
1951년 1월 4일 대전까지 끌려가 형무소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고도 대전 어느 골짜기에서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60여년 동안 돌아가지도 못하고 있는 이 122분의 애국 서울시민들의 영혼들과 가족들에게 어떻게 처리해야 옳은 방법인지 제시해 보세요.
게시판을 이용하기 무었하다면 메일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추가설명 : 대한민국에서 자중해야 할 인간들에게...
1. 대한민국과 북한과의 현실의 차이를 망각하고 맹목적으로 북을 찬양하고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하며 살아가야 하는 북한 동포들이나 이 게시판에서 맹목적으로 앞뒤 가리지 못하고 아무에게나 들이대는 못난 인간들이나 다를 바 없다는것.
2. 김일성에게 풍지박살을 당하여 60여년을 고통속에 살아와야 했던 산 증인인 가족들이 누구를 원수로 생각하며 살아 왔을지 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위인들...
3. 그동안 권력에 빌붙어 아부하며 먹고 살아 왔거나 권력의 눈치만 보고 살아왔던자들...
4. 국가에 피해를 본 국민들을 나무라는 인간들...
5. 자신의 안위와 욕심만을 챙기려는 위인들...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자중하고 또 자중하며 숨어 살아가기를 바란다.
패닉상태의 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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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phyr 2011-09-04 오전 10:54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이와 그 자식놈 한테 궁극적
책임이 있는 겁니다.
물론 남쪽의 김일성 광신교도들도 책임을
면할 수 는 없죠.
하늘새 2011-09-04 오전 9:06
융이님 대한민국은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습니다. 억울한 죽음을 가려낼 여유가 없었다고 봅니다. 시대의 아픔이지요. 수천만명의 죽음을 딛고 소비에트 러시아가 세워진 것 보세요. 안 그런 나라가 있을까요? 그래도 우리는 결국 좋은 나라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이 좋은 나라를 지키는 것이 오늘의 할 일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융이님의 비극도 김일성의 원죄 때문이란 점에 동의할 것으로 봅니다.
출처 : 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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