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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해觀海 독법
김동원 시인
질문
바다는 나에게 늘 새로운 질문이다. 밀물과 썰물의 방식으로 쉴새 없이 꿈틀거리는 바다는, 빛과 어둠, 혼돈과 무질서, 일출과 일몰의 점이지대다. 바다는 고전적이면서 아방가르드Avantgarde하다. 그것은 고백의 성소(聖所)이자, 스스로 발화의 주체를 설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중의 목소리로 시시각각 시점을 바꾼다. 정형의 틀에 갇히지 않고 매순간 창조적으로 생성한다.움직임으로 형태를 드러내고 상징의 숲으로 기능한다. 물의 안과 밖 어디에도 갇히지 않는 바다는 홀로 드러난다. 순간순간 사라지는 물안개처럼, 무기교의 기교다. 정말이지, 바다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비트겐슈타인: 1889~1951, 오스트리아 철학자) 하는 걸까. 때론 그로테스크하고 때론 환상적이고 시니컬한 바다는, 해와 달을 마주하며 변화무쌍한 빛과 색을 연출한다. 초승달과 보름달의 흐름은 물과 만나 현란한 색채의 오케스트라가 된다. 끝없는 태풍과 번갯불은, 하늘과 바다 위에서 현실을 초월한다. 붉게 번져 올라오는 물속의 햇덩이는 황홀하다. 한순간도 정지하지 않는 채 형체를 바꾸는 해는, 아이러니다. 한밤중 수평선 위에 고요히 떠 있는 은빛 달은, 형이상이자 형이하이다. 현묘한 정중동의 그 아름다운 풍경은 신비롭다. 바다는 떠도는 자의 언어와 물결의 언어가 육지와 만나 비로소 시가 된다.
바다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다. 시점(視點)을 특정하지 않고 인칭을 구분하지 않는다. 뜨고, 밀고 당기며, 접고 뒤집는 방식으로 전변(轉變)한다. 일체의 비유도 허락지 않으며 주체와 객체를 초월하는 바다는, 물의 매트릭스와 리듬으로 물고기와 노닌다. 언어의 표면과 이면은 저항뿐, 하늘과 바다는 불이(不二) 하다. 빛과 색의 오르가즘이다. 매순간 실험적이고 전복적(顚覆的)이며 묘사적이다. 끊임없는 부정과 긍정의 패러독스다. 바다는 ‘경험의 물방울’이며, 물방울의 시니피앙(기표記標)이다. “시니피앙은 다른 시니피앙을 위해서 주체를 재현”(라깡) 하듯, 물방울은 다른 물방울에 안겨 한 몸이 된다. 물론, “주체는 시니피앙과 시니피에(기의記意)의 행복한 결합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시니피앙이 다른 시니피앙으로 은유적 대치를 이루는 시니피앙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이 바로 라캉의 메타포 공식이 의미하는 것이다. 이 공식화 과정의 결과로서 어렴풋이 드러나는 의미 생성의 문제는 그대로 주체의 탄생과 직결된다.”(박찬부,『기호, 주체, 욕망』, 창비, 2007, 87~88쪽)
시집『관해觀海』는 열두 살 이전의 어린 눈(目)에 비친, 고향 바다의 실제 이야기이자, 시적 공간 속에 스며든 허구의 바다이다. 동해 · 남해 · 서해 · 울릉도 · 제주도, 그 밖의 바다와 섬을 돌며 쓴 내 사유의 창(窓)이다. 바다는 감각과 이미지, 운율과 반복적 리듬의 대서사시이다. 존재와 비존재, 의성(擬聲)과 의태(擬態), 숨김과 드러냄의 방식으로 은유하는 바다는 물의 신령스런 말(言)이다. 충돌과 반동, 번짐과 점묘의 방식으로 언어를 구성하는 바다의 변주는 환상적이다. 푸른 하늘과 흐르는 바람으로 연(聯) 구분을 한다. 천둥과 번개의 소리, 그 메타포는 긴장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며, 태풍과 해일로 시적 전환을 꾀한다. 바다는 물의 이동을 통해, 소낙비로 지상의 나무와 풀과 꽃의 행갈이를 한다. 이런 만물 생성 시법은, 음양오행, 춘하추동을 빌려 고저장단의 성음(聲音)과 율조를 만든다. 바다는 지구의 무한한 상상력의 여백이다. 의미를 지우고 무의미를 지우고, 끝내 천지의 ‘아름다운 위험’이 된다. 바다는 시간과 공간의 생멸이 지속되는 환유의 고리이자, 부분으로 전체를 드러내는 제유의 표상이다. 사물의 이치를 극대화하고, 연상과 스밈의 방식으로 관념을 무화시킨다. 악과 선을 동시적으로 정화하는 모순어법oxymoron이다. 샘물과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원융(圓融)과 무애(無碍)의 세계가 된다. 바다는 물고기들의 원초적 이미지로 한순간도 정지하는 법이 없다. 감각적 물질이자 공감각적 이미지인 바다는, 숭고한 위로다. 걷잡을 수 없는 인간을 치유하는 유일의 명의(名醫)다. 바다는 고독한 철학의 공간이다. 경쟁과 속도, 굴절과 왜곡, 전쟁과 살인, 상승과 하강을 단박에 ‘수평의 시’로 사로잡는다. 바다는 언어의 구각(舊殼)을 버리고 언어 이전의 속살을 드러낸다. 유무를 떠나 현상과 본체를 초월한다. 하여, 바다는 밑도 끝도 없는 무명(無明)의 미학이 된다. 장자의 말처럼, 우리는 그저, 한 마리 즐거운 물고기가 되어, 저마다 인생의 바다에서 노니면 된다. 지구의 위대한 작품이 인간이라면, 우주 빅뱅의 놀라운 마스터피스(masterpiece, 걸작)는 바다다. 하늘(天)이란 개념으로 하늘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낼 수 없듯이, 바다는 바다란 말(言)로 그 현묘한 이치를 다 담을 수 없다.
바다로 가는 집
나에게 집은 시의 바다로 나 있는 꿈길이다. 14살 때까지 살았던 구계항(龜溪港) 그 집은, 포항-영덕 간 7번 국도 확장공사로 길 한복판에 묻혔다. 대청마루가 좋은 그 집 마당의 대문을 열면, 봉황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개울물이 흐르고, 신작로 굴다리가 보이고, 둥근 구멍 사이로 모래 벌이 보이고, 그 너머 푸른 바다가 무한히 펼쳐졌다. 태풍과 해일을 막기엔 턱없이 부족했지만, 동해로 쭉 뻗은 축항은 어부의 희망의 표지(標識)였다. 200호 남짓한 마을은 길쭉한 해안선을 끼고, 길가 해당화가 붉게 핀 흰 모래 벌이 고왔다. 드문드문 백사장 말뚝에 매인 암소들은, 저녁노을 수평선을 쳐다보며 음~매하고 울었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흰 등대와 빨간 등대 사이로 고깃배가 수시로 드나드는 아름다운 항구가 아니었다. 그랬다. 엄마가 강구 장(場)에 고기 팔러 나간 날은, “찐빵” 만한 우리 집 마당은 동네 놀이터였다. 구슬치기랑 딱지치기, 고누와 제기차기로 왁자하였다. 지겨우면 까까머리 또래 애들은, 백사장 위에서 오징어 가이상, 말타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작은 집은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어부 숙부와 해녀 숙모는 조카인 나를 친자식보다 더 사랑해 주었다. 숙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오리연을 대나무를 쪼개 기막히게 만들었다. 설날 동네 조무래기들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언 손을 호호 불며 가오리 연줄 끊기 시합을 하였다. 하늘 위로 높이 날려 바람길의 좌우로 실타래를 흔들며 연 싸움하는 재미는, 내게 무한한 자유를 가져다 주었다. 연줄이 끊긴 가오리연은 파란 바다를 향해 가물가물 날아가 버렸다. 내가 서정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육친에의 기억과 아름답고 애잔한 추억이 깃들었기 때문이다. 한겨울 바다 위에서 수천 수만 개의 눈송이가 떨어져 녹는 풍경을, 어린 나는 청상의 어미 손을 잡고 하염없이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찐빵과 미역」은, 가난한 그 시절 바다 위에 떠오른 보름달과 양식의 이야기다.
막걸리에 소다를 넣은 밀가루 반죽이 부풀어 오를 때쯤, 보름달은 바닷물 위에 떠 출렁거렸네. 낮엔 생선을 팔고 밤이 오면 홀어머니는, 찐빵을 쪄 팔았네. 팥은 푹 삶아 으깨어 앙금을 만들고, 반죽은 정성과 사카린을 섞어 따뜻한 아랫목에 덮어두었네. 희한하게도 면 보자기 너머로 볼록볼록 반죽 터지는 소리가 나면, 온 동네 처녀들이 암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우리 집 부엌으로 숨어들었네.
꾸덕꾸덕 해풍에 잘 마른 긴 미역 오리를 손에 들고 와, 갓 쪄낸 노르스름한 김 오른 찐빵과 바꿔 먹었네.
참 이상도 하지. 어디에서 분 냄새를 맡고, 한밤중만 되면 오징어 피대기를 들고 총각 놈들이, 수고양이처럼 우글우글 모였네. 밤새워 낄낄 깔깔 눈을 맞추곤, 어느새 캄캄한 배 밑창이나 어둑한 갯바위 새로, 하나둘씩 사라졌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어머닌 강구 장이나 영덕 장에 나가 그걸 팔아서, 내 등록금이랑 식구들 먹을 양식을 짱배기에 이고 왔네.
―김동원,「찐빵과 미역」전문
어미에게 바다는 우리 집 곳간이었다. 안방은 늘상 “볼록볼록” “밀가루 반죽” 터지는 소리가 났다. 쿰쿰한 생선 피대기 냄새, 마른 해초 특유의 간간한 향은, 어느 집에서나 비슷하게 났다. 무슨 까닭인지 밤바다는, 혼자 해안에서 주체할 수 없는 마음으로 출렁 “출렁” 거렸다. 물결이 잔잔한 밤 “보름달”이 뜨면 바다는, 설유화 꽃 덤불처럼 하얗게 피었다. 잔물결 사이사이 부서진 달빛의 은빛 시어는 섬세하고 고왔다. 어쩌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달밤은, 물고기가 공중에 뛰어올라 어린 내 눈엔 마법처럼 보였다. 바다의 미궁(迷宮, 美宮)은 바다 그 자체였다. 파도는 매 순간 저만의 감정과 언어로 생의 허무와 환희를 가져다 주었다. 홀어머니는 내게 ‘가장 적은 언어로 가장 울림이 큰 명시’였다. 나는 갈매기 새끼처럼 종일 입을 벌리고, 엄마가 물어다 주는 먹이만 기다렸다. 하루하루 견뎌야 사는 어미의 바다는 고해(苦海)였지만, 아홉 살 무렵의 내 바다는 심미(審美)의 보고(寶庫)였다. “희한하게도” 밤만 되면, 우리 집 부엌엔 “암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동네 처녀들”이 모여 들었다. “분 냄새”가 좋은 그녀들은 “긴 미역 오리를” 들고, “갓 쪄낸 노르스름한 김 오른 찐빵”과 바꿔, 집게손가락으로 뜯어 먹었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밤마다 몰래 안방과 부엌으로 통하는 봉창으로 그 장면을 엿보곤 하였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어디에서” 그 달뜬 “분 냄새를 맡”았는 지, 기생오라비처럼 빤드르한 머리를 빗고, 동네 큰형들이 “우글우글” 모여들었다는 사실이다. 깜박, 내가 잠이 든 사이 “하나둘씩” 눈을 맞추어, “캄캄한 배 밑창이나 어둑한 갯바위 새로” 관능의 사랑을 나누러 사라졌다. 엄마가 그 고향 바다를 떠날 때까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쪼그마한 창으로 관음(觀淫)의 세계를 신비롭게 보았다. 밤낮없이 밥을 찾아 동분서주하던 어미의 “짱배기”가 짓물렀지만, 철없는 나는 무진장 바다가 좋았다.
태풍과 해일
거대한 흰 파도 더미를 타고 휘몰려 오는 늦여름 태풍은, 무시무시하다. 해안가 양철 지붕이란 지붕은 다 날아가고, 사람들은 윗동네 친척 집으로 뿔뿔이 도망쳤다. 우르릉 쾅쾅 천둥은 울고 번개는 번쩍이고, 컴컴한 축항 앞바다에 불이 내리꽂히면, 바닷속 물귀신이란 물귀신은 다 나온 듯했다. 어머니는 물샐 곳을 미리 채비를 하고, 누이와 난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까만 눈만 내놓고, 날이 새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새벽녘이었을까. 검은 먹구름에 휘감겨 온 치어가, 갑자기 양철 지붕 위에서 타닥, 타닥, 타닥 음악처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거짓말 같은 사실이다. 그런 아침이면 개울을 타고 올라온 바닷물이 역류해, 우리 집 앞마당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자잘한 물고기가 헤엄치고 다녔다. 대청마루 아래까지 물이 차올라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어린 내 눈앞에서 꿈속처럼 왔다 갔다 하였다. 여전히축항을 넘어 높은 파도가 마을 쪽으로 밀려올 즈음, 백사장 위의 신작로에는 동네 사람은 다 나와, 해일이 휩쓸고 간 그 바다를 구경하곤 하였다. 그때마다 치매에 걸린 뒷집 구순의 할머니는, 깨진 옹기처럼 웅크리고 앉아, 바다를 향해 주문처럼 혼자 무어라 중얼 중얼거렸다. 악동들은 꼬챙이를 들고 눈 밑이 짓물린 노파가 “미쳤다”며 지분거렸다. 어린 내 눈에도 뒷집 할머니의 정신은 흐렁해 보였다.
아이고, 자가 누고! 복순 아버지, 순돌이네 큰 애, 뒷집 허갑이 아제 아이가. 신묘년 오징어잡이 한배 탔다가 몽땅 수장水漿된, 가엾은 가엾은 목숨들. 흐렁 흐렁 흐렁 물 밟고 서성이네. 그래 그래 그래…, 뭍은 무탈하니 훨훨 다 벗고 올라 가거래이. 돌아볼 것 없다 카이! 아이고, 이 새벽 뭐 할라꼬 또 흰 수의壽衣 입고 저리들 몰리오노!
―김동원,「흐렁 흐렁 흐렁」전문
환력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뒷집 할머니 눈에만 물귀신이 보였다고 믿는다. “신묘년 오징어잡이 한배 탔다가 몽땅 수장水漿된”, “복순”이 “아버지”, 아랫동네 “순돌이네 큰”형, “뒷집 허갑이 아제”를 보았다고 믿는다. 고종형도 그때 물귀신이 되었다고, 형수는 나만 보면 눈시울을 붉히곤 하였다. 죽은 물귀신들이 그 할미에게 접신된 것은, 정말 섬뜩한 아름다움이다. 왠지 그때의 그 일이 지금도 나의 뇌리에 박혀있다. 어린 내 눈에도 “가엾은 목숨들”이 물 밖에서 “서성이”는 것을, 옆집 할미가 품어 주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해 풍어제를 지낼 때의 일이다. 무당이 잽이의 반주에 맞추어 춤을 추다가, 갑자기 물에 빠져 죽은 ‘아기 말소리’를 내는 것을, 동네 동무들과 함께 보다가 소름이 끼친 적이 있다. 아마도 뒷집 치매 할미는 뇌가 고장이 나서, 그 안쓰러운 물귀신들이 다 제 자식처럼 보였나 보다. 하여,「흐렁 흐렁 흐렁」은 그 뒷집 할머니와 물귀신들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바친 나의 헌시다. “그래 그래 그래…, 뭍은 무탈하니” 동해에 빠져 죽은 모든 물귀신들아! “훨훨 다 벗고 올라 가거래이. 돌아볼 것 없다 카이!” 그렇게 빌어 준다.
강구항
바다로 가는 길은, 언제나 내게 태초의 시원(始原)을 찾아가는 노정이다. 넘실대는 파도는 내 시의 운명 같다. 세파에 헛발질하다 깨지고 다치면, 나는 난파된 행간과 연을 꿰매러 바다로 간다. 바다를 보는 순간, 나는 막힌 기운(氣韻)이 뚫리고 생동한다. 동해안 7번 국도는 유년 시절 희비가 교차한 장소이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행복한 시간이자, 아버지의 부재를 확인하는 슬픈 내면 풍경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강구항을 찾을 때면, 고무 다라이를 인 어미와 어부 아비가 겹쳐 떠오른다. 어판장에서 대게와 고등어, 방어와 대구, 명태와 오징어가, 궤짝마다 줄지어 있는 광경을 보면 만감이 어린다. 까만 기차표 고무신을 신고 장사하던 엄마 따라 어판장 뒷골목에서, 도루묵찌개를 먹은 기억은 생생하다. 삶은 새끼 오징어가 나오고, 찐 가자미와 식혜가 나오고, 산초가 들어간 멸치젓갈로 버무린 파김치는, 맛이 기가 막혔다. 식당 미닫이문을 열자 비릿한 생선 비린내가 항구 쪽에서 풍겨왔다. 길 건너편 줄지어 선 다방 앞에는 완행버스가 서고, 고만고만한 어촌 사람들이 내리고 타고, 소하, 금진, 하저, 대부, 창포 너머로 사라졌다. “오라이, 출발!” 버스 안내양이 외치던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어제인 양 떠오른다. 가난하여 모든 것이 풍족하였고, 적어서 행복했던 그 어린 시절, 갈 수만 있다면 거꾸로 가는 기차에 올라타고 싶다. 죽은 어미가 살아나고, 죽은 아비가 살아나고, 죽은 형이 살아나고, 죽은 숙부와 숙모가 살아나고, 달을 안고 죽은 그 소녀가 살아나고, 그리고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인생 역사(驛舍)에 서서, 나는 또다시 내 바다를 본다. 스무 살 무렵 고향 친구들과 강구항 포장마차에서 술에 취해 바라본 야경은 잊히지 않는다. 서늘한 해풍에 일렁이던 물속 가로등 빛의 굴절은 형체도 없이 사라진 그리운 얼굴 같았다. 항구 건너편 붉으스름한 홍등가 니나노 집에서 흘러나오던, 술집「작부」의 노래와 실루엣은 쓸쓸해서 좋았다.
술집 작부 치마폭에 쌓인 것 맨키로, 볼또그리 취한 강구항 밤 야경. 어판장 뒷골목마다 그 옛날 홍등에는 야화夜花가 피어 흥청망청했지. 속초로 울릉도로 고깃배 타다 뭍에 내리면, 낮부터 술판에 젓가락 장단에 홍도야를 불렀지. 작부년 지분 냄새에 불뚝불뚝 아랫도리 힘은 뻗쳐, 그 어부들 주장군主將軍 명태 대가리만 했네. 소주 막걸리에 떡이 되면, 영순 아버지 마누라 새끼들 까맣게 잊어먹고 곱사춤을 추었지. 연분홍 치마저고리 입은 작부 엉덩이는 얼마나 컸던지, 고랫등만 했네. 아니, 아니 밤바다 보름달만 했네. 그 겨울 폭설에 대구 명태 방어 잡아 번 돈, 구삥에 도리짓고땡에, 그년들 치마폭에 다 녹아들었지. 새벽 오줌 누러 나와 어둑어둑한 방파제 파도 소리에, 번쩍 정신이 들면, 그때서야 동해에 밥 찾으러 나간 아비 기다리는, 올망졸망한 자식들 얼굴이 등댓불처럼 눈앞에 깜박깜박 비추는 거라.
―김동원,「작부酌婦」전문
시는 풍경이다. 시는 바다 안에도 있고 바다 밖에도 있다. 바다와 사는 일은 바닷속에서만 가능하다. 내가 언어를 아름답게 생각하는 것은, 생생하면서도 살아있는 리듬의 바다와 그 기억을 환기하기 때문이다. 시「작부酌婦」는6·70년대를 배경으로 삼는다. 그 당시 강구항에는 풍어기만 되면, 동네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특히 여름부터 가을까지 오징어잡이 철에는, 출항한 어선마다 만선의 깃발이 휘날렸다. 깜깜한 동해에 집어등을 달고 불야성을 이룬 고깃배들은, 보기만 해도 장관이었다. 오징어는 낮에는 수심 아래에서 놀다가, 밤만 되면 불빛에 유혹되어 미끼를 물려고 환장을 한다. 잡혀 온 고기들은 어판장을 통해 대처로 부리나케 팔려나갔다. 오징어 배 따는 아주머니들은 돈벌이가 좋아 신바람이 났고, 간주를 탄 어부들은 호주머니가 두둑해 어깨가 절로 들썩였다. 그 옛날 파시(波市) 때면 사내들 호리려고, 강구항 다방과 술집에는, 인근 도회지에서 모여든 이쁜 여자들로 시끌벅적 하였다. 노물리 달봉이 아제, 삼사리 병삼이 형, 남호리 학이 삼촌까지, 간주 받는 날은 대“낮부터 술판에 젓가락 장단에 홍도야를 불”러댔다. 거나하게 취하면 “분 냄새” 풍기는 “술집 작부 치마폭”에, 항구에 배들 듯, 쑥쑥 손모가지들을 잘도 넣었다. 한바탕 웃고 난리가 나면, 야한 코맹맹이 작부 년 소리에 하저리 박태기 형 “명태 대가리만”한 “주장군主將軍”을, 그년 엉덩이에 대고 “불뚝불뚝” 세웠다나 어쨌다나.소주, 막걸리 주전자 통째로 돌면 “영순 아버지 마누라 새끼들 까맣게 잊어먹고 곱사춤을” 잘도 추었다. “연분홍 치마저고리 입은 작부 엉덩이는 얼마나 컸던지, 고래 등만”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 시절은 참으로 사내들 세상이었다. “구삥에 도리짓고땡에” 마음껏 술을 퍼마셔도, 집에 가면 도리어 큰소리를 탕탕 쳤다. 아이쿠! “새벽 오줌 누러 나와 어둑어둑한 방파제 파도 소리에, 번쩍 정신”든, 마흔의 내 아버지도 그 술판에 끼었으리라. 그리고 “동해에 밥 찾으러 나간 아비 기다리는” 새끼들 얼굴도 찬 해풍에 떠올랐겠다. 그런데 어쩐다? 울 아버지도 울 어머니도, 그 시절 강구항에 우글우글 모여들던 그 많던 군상들도, 모두 저승으로 배 타고 가버렸으니…. 시여, 죽고 사는 것이, 정말 유수(流水)같구나!
비괘否卦
시「否卦」는 홀연히 “폭풍의 바다”를 건너 “내 심장”에 비가(悲歌)로 치고 들어왔다. 언제나 내 시의 운명은 ‘산꼭대기에서 바라본 불(離卦)’의 형상이었다. 젊은 날 낭만적 아이러니와 페이소스에 미쳐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데아만을 꿈꾸진 않았다. 시심은 흔들리는 비련(悲戀)이었으나, 붉은 물의 행간을 집요하게 쫓았다. 비록 이별의 내용은 흐느꼈으나, 사랑의 형식은 춥지 않았다. 꺼질듯한 한숨은 애조를 띠었지만, 시정(詩情)만은 겨울 바다 위에 내리는 흰 눈처럼 행간에 녹아들었다. 연과 연 사이는 침울했으나, 어두운 그림자가 오히려 이미지를 깊게 새겼다. 유협(위진남북조, 465?~520, 문예비평가)의『문심조룡』을 빌리면, 내 시는 ‘아려(雅麗)’의 풍격과 진실을 추구하였고, 우울한 격조는 행간에 유미(唯美)로 스며들었다. 늘상 슬픔과 비애 사이에서 고뇌하였으나, 내 시는 “칼빛 번개”로 “심장”을 “내리”치는, 시선일검(詩禪一劍)의 경계를 원했다.
내 심장 번쩍 칼빛 번개가 내리쳐요
저 바다 폭풍을 건너
무작정 그녀가 밀려 들어왔으니까요
왜 이리 마음이 아플까요
처음부터 그녀 심장에 내가 없었으니까요
그 남자의 눈빛 속에 내 여자의 사랑이
걸어 들어가는 것을 보았으니까요
아, 내 심장 쿵쿵 천둥이 쳐요
그녀의 눈에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내 흐르는 눈물이 다 말해주었으니까요
―김동원,「비괘否卦」전문
시는 언제나 내게 열렬한 영감(靈感)으로 불타오르다, 홀연히 심장에 비수를 꽂고 가버린 “그녀”처럼 비정하였다. “하늘은 높게 있을 뿐 땅을 돌보지 않는” 법. 즉하늘과 땅이 사귀지 않음이 천지 비(否)괘라면, 이 시에서 내가 꿈꾼 시법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갈증과 이별의 구조다. 절창은 형식과 내용을 “무작정” 무너뜨린다. 시는 사물 안에 있고, 말은 사물 밖에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주저하면 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한밤중 은은히 빛나는 바다 위에 달빛처럼 자연스레 시어를 흐르게 하라. 그러면 시신(詩神)은 아름다운 ‘문채(文彩)’로 화답한다. 세계는 세 개의 언어가 산다. 사람의 언어와 사물의 언어, 그리고 침묵의 언어가 그것이다. 독보적인 개성과 언어의 치밀함을 추구해야 한다. 기술에서 예술로 가려면, 언어의 절대 순수와 그 강을 건너야 한다. 하여, 나는 밤낮으로 하늘을 향해 절실하게 시를 간구(懇求)하였다. 미완성의 완성을 향해, 덜어내고 깎아내고 쪼개고 다듬어, 오직 나의「비괘否卦」를 향해 전진하였다.“처음은 비색(否塞)하나 뒤에는 기쁨이 있다”는 말씀처럼, 비록 “내 여자의 사랑”이 다른 “남자”의 “눈빛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해도, 끝내 시의 적막을 놓지 않았다. 시「비괘否卦」를 읽는젊은 시인이여! 맨발로 불의 행간을 홀로 걸어가라. 살과 뼈가 타는 고통을 느낄지라도, 언어를 뚫는 것은 진실뿐이다. 언어로 세계를 가두기엔, 우주는 너무나 아름답고 시적이다. 피를 찍어 시를 쓸 때 구원된다. 언어는 끝나지만 그 여운과 감동은 영원하다. “나는 시가 나오는 그 찰나가 바로 우주의 원초임을 자각한다”(고은)
바다와 시니피앙
바다의 입술은 위선적이다 // 라고 했다가, 바다란 말은 더 폭력적이다라고 고친다 // 미친놈! //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할 것 // 비트겐슈타인이라고 // 썼다가, 바다는 언어를 가리고 언어로 핀다 // 다시 바다는, // 바다의 몸은 관점의 차이라고 썼다가 // 들뢰즈에게 들켜, 닮은 것은 모두 사기꾼이라고 적는다(김동원,「시뮬라크르」전문)
시의 사유를 따라가다 생긴 질문은 크게 전통과 창조(novelty)의 문제로 수렴된다. 서구의 담론에 비해 전통 시론은 ‘떠도는 시적 사유의 힘’으로서 시귀(詩鬼)나 시마(詩魔) 또는 광기(狂氣)의 속성을 지닌다. 이는 나의 경우 깊은 병(病)의 체험에 기반한 새로운 전통의 방법론에 속한다. 내시를 서구 사조로서 낭만주의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낭만주의의 허구와 실재는 허와 실의 양분이 아니라, 허실(虛實)이 겹쳐 있거나 역립으로 존재한다. 바깥의 말과 사유, 주체의 허구와 실재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근현대 시의 존재 방식은 기실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없는 것의 부정적 드러냄”이다. 또다른 문제 제기로는 황당무계와 광대무변이란 말은 모두 진위를 떠나 시적 사고와 상상의 지평을 전제로 하며, 그런 혼돈의 세계와 언어를 일컫는다. 그리고 문학작품의 미학적 윤리적 가치문제는 상대적 우위를 말할 수는 있어도 결코 분리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리고 특정 텍스트의 작품 해석에 있어 독자의 창조적 역할이 작가의 의도만큼이나 중요하다면, 작가와 독자, 주관과 객관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호 소통-작용은 여전히 새로운 관심을 끈다. 로만 야우스의 수용이론이나 해롤드 블룸의 해석상의 오류는 작가의 시선으로서 독자, 독자의 지평으로서 작가 의식이 요청된다. 나는 어떤 시론의 체계와 구조보다는 시에 대한 직관과 통찰, 아포리아 중심의 글쓰기가 주된 관심사다. 그도 그럴 것이 시는 ‘불가능의 가능’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고은의 말처럼, “시는 현실 없이도 불가능”하고, “현실 초월 없이도 불가능”하다. “이 두 가지 불가능성이야말로 시를 현실과 현실 너머라는 두 세계 사이에서 살아 있게” 한다.
모든 형상은 형상이 아니며, 실재하는 것은 모두 허상이다. ‘나는 그렇게 들었다 如是我聞’『금강경』)이상하게도 ‘바다’를 호명하는 순간, 이순(耳順)의 나의 ‘바다’는 사라지고 ‘아버지’가 보인다. 그럴 때면 생각의 주체는 언어가 아니라 항시 ‘나’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바다와 죽은 아버지는 소리의 이미지로서 시니피앙과 소리의 관념적 의미로서 시니피에가 겹쳐 일어난다. 하여 바다-아버지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는 중층적이다. 훗날, 구조주의 언어학자인 소쉬르(1857~1913, 스위스 언어학자)의 ‘인간은 언어가 지배한다’는 글을 만났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한 번도 ‘언어’가 먼저 있고, ‘세계’가 있다고 상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겐 ‘세계와 언어’가 한 몸이었다. 소쉬르의 등장은 말의 구조와 체계, 사물에 대한 관점,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을 혁명적으로 뒤바꿔 놓았다.‘마당의 개는 짖지만, 책 속의 개는 짖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했다. 이처럼 ‘사물과 언어는 필연적이지도 동일하지도 않은, 임의(자의)적 관계에 놓여 있다’는 그의 주장은 기존의 언어 문화를 전복시켰다. 또한 ‘무의식이 언어를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무의식을 불러낸다’는 라깡(1901~1981, 프랑스 정신과의사)의 말 역시, 동일성의 시학을 해체한 일대 사건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언어를 ‘시를 실어나르는 도구-뗏목’쯤으로 여겼다. 지금도 시의 본체는 언어 이전의 세계가 진짜이고, 언어 이후는 시가 걸친 옷 정도로 인식한다. 왜냐하면 시는, 언어의 눈동자 속으로 신(神)을 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언어를 통해 언어 이전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는 소쉬르의 말도 인정한다. 하여, 나는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사이, 그 어디쯤이라고 우긴다. 시「바다와 시니피앙」은,언어로써 언어를 뛰어넘는 ‘시의 본질’을 꿰뚫은 나의 시도이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그는 계속해서 물속으로 들어간다. 한 마리 물고기가 되어, 아래로 아래로 헤엄쳐 내려간다. 물은 물의 은유다. 바다는 문門이 없고, 있다. 바다의 깊이는 질문이다. 오, 지우는 방식으로 채우는 바다여! 바다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 바다는 생각을 생각하지 않는다. 바다는 노을을 버리고 주체가 된다. 바다는 바다일 때만 나비가 된다.
―김동원,「바다와 시니피앙」전문
그렇다. 네 살 때부터 내 무의식 속엔,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 자리로 인해 랑그(langue, 언어의 추상적 체계)가 거세된 파롤(parole, 개인적 발화), 혹은 시니피앙의 감각이 지배한다. 그리고 이 시에서 우리는 왜 불(남자/陽)의 서사보다, 물(여자/陰)의 서정을 추구해 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주체의 욕망은 언제나 ‘비극과 결핍’의 상태로 흔적을 남기며, ‘묘사’보단 ‘압축과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시상(詩想)을 촉발한다. 아침마다 본 일출은 생생(生生)의 변(變)과 역(易)이 우주의 이치임을 안다. 어린 내게 물결은 늘 새롭고 낯선 리듬의 반복이었다. 순간순간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물안개는, 시적 모호성의 극치였다. 그 끝없는 반복과 변주의 바다는, 장자의 “나비”처럼 ‘내가 바다’인지, ‘바다가 나’인지 모를 환상을 심어주었다. 바다의 파토스는 사라진 것에 대한 내 서러움이나 그리움을 고통으로 잉태하였다. 하여 나는 라캉의 명제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고로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를 지지한다. “바다는 노을을 버리고 주체가”될 때, 비로소 무(無)가 된다. 실재하는 대상은 이미지로도 언어로도 포착되지 않는다. 마치, 노자가『도덕경』1장에서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를 도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것은 영원한 도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으로 부를 수 있지만, 그것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이용주『노자 도덕경』)라고 설파한 것처럼, 바다는 언어가 침묵할 때 그 순간 시가 된다. 내게 있어 시의 바다, 바다의 시는 언어 이전도 이후도 아닌, 현의 지점이다. “玄之又玄 衆妙之門 어둠에 이어지는 또다른 어둠, 그것이 존재의 신비로 들어가는 문이다.”(이용주, 같은 책)
부조리
운명의 커다란 저울은 평형을 이루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결국 당신은 올라가던가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지배해서 얻어내던 가 아니면 복종하면서 빼앗기든가. 참고 견디든가 개가를 올리든가. 모루가 아니면 망치가 되는 것입니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1832, 독일의 대문호.『코프타의 노래』, 2020 뮤즈출판사 p28)
삶의 의미와 이유가 있다면, 세계는 합리적인가. 그리고 진정한 현실(성)이란 무엇인가? 이런 유(類)의 질문에 앞서 인간의 운명과 조건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여기서 우리는 모순과 부조리의 근본에 봉착하게 된다. 불합리·배리(背理)·모순·불가해(不可解) 등을 뜻하는 부조리(不條理)는 원래 조리에 맞지 않는 것이라는 논리적 의미만을 표시하는 말이었다. 이후 실존주의 문학과 철학의 담론에서는 보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알베르 카뮈(1913~1960, 알제리)의 경우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카뮈에게 부조리는 ‘세계의 무의미성’을 전제로 한다.“인간은 세계의 의미를 추구하지만 세계는 그 자체로 존재할 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하여 세계는 합리적인 인간의 물음에 결코 대답하지 않는다. 노자의 『도덕경』5장에 나오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란 말도 그 연장선에 놓인다. 세계는 사사로운 감정에 더이상 연연해 하지 않는다. 여기에는“합리적 관점이 적용되지 않는 세계와 합리적인 이해를 시도하는 인간 사이에는 하나의 거대한 미스떼흐mystère 같은 것이 놓여 있다.”이는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삶보다는 일 개인의 특수한 경험이 반영된 다양한 감각과 삶이 우선한다. 부조리는 인간과 세계 어느 하나가 아닌, 인간과 세계의‘사이’에 존재한다. 이 사이의 경계와 심연이 갖는 부조리에 대해 카뮈는 하나의 ‘이혼’과 ‘절연’으로, ‘이방인’으로 파악한다.
이런 단절과 타자성의 문제는 실재reality의 하나로서 ‘느낌feeling’의 문제이기도 하다. 즉 부조리한 인간이 아니라, 부조리를 느끼는 인간이다. 이 경우“부조리는 세계와 관계를 맺을 때만 나타나는 감정”으로서,“부조리의 감정은 우리가 알아야 하는 진실”이다. 우연한 사건과 사건의 연속이 곧 우리의 현실이자 생이라면, 부조리는 반드시 무의미하거나 부정적인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와 창조적 계기로 작동하기도 한다. 카뮈가 말하는부조리 인간(l’homme absurde)이란 것도 기실은 부조리한 인간이 아니라, 부조리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인간, 즉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인간을 말한다. 부조리한 인간은 반항과 자유, 열정을 가진 인간이다. 하여 비극과 절망은 곧 희극과 희망의 다른 말이자, 그 배후인 것이다. 반항인은 ‘아니non’라고 말하는 인간(“반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이며, 반역(反逆)은 생명의 본질인 것이다. 이상에서 보면, “부조리의 진실을 의식하며 자기 창조를 실현하는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이며, “부조리의 진실을 아는 자만이 자기 자신의 본래 의미를 창조”한다. 그리고 부조리가 존재와 무 사이, 딴은 현실(성)의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면,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 1920~1991, 체코 철학자)의 현실성(Wirklichkeit)은 ‘죽음에 이르는 길 위에서 마주치는 것’내지는 ‘궁극적 관심’을 말한다. 이런 실존적 국면에서 부조리한 인간은 자신의 죽음과 운명에 도전하며 삶의 참된 의미와 현실성을 찾고자 부심한다. 그러나 여기엔 비극적 행위와 결말이 수반된다.(김동원 평론집,『시집사리詩集思理』참조) 시,「날치」는 부조리한 이 세상을 향해 인간의 끝없는 자유와 희망을 말하려고 했다.
한때 그는, 바다의 체제가 평등하다고 믿었다. 돌고래나 만새기에 쫓겨 먹히지 않으려고, 물을 박차고 공중에 뛰어올라 우연히 활강하기 전까지, 그는 한낱 소시민이었다. 솟구쳐 오른 자者게만 보이는 희한한 물 밖 자유 세상.
더러는 스크랩을 짜고 물의 저항을 거스르며, 푸른 하늘로 날아올랐지만, 쥐도 새도 모르게 군함새가 낚아채었다. 물 속이나 물 밖이나 음흉한 것들은, 끼리끼리 눈짓을 건네며, 구석구석 법망을 쳐놓고 먹이를 기다릴 줄 알았다.
얼마나 많은 물고기가 바다 밑바닥에서, 눈이 먼 채, 귀가 막힌 채,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쳤을까. 아아아! 그는 혼자서라도 외쳐야 함을 알았다. 꼬리지느러미에 힘을 주고, 날개를 접고 무작정 솟구쳐 올라,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한가를, 푸른 하늘에 대고 소리쳐야 했다.
― 김동원,「날치」전문
얼토당토않게도「날치」는, 그때까지 물속 세계가 평등하다고 믿었다. 그는 ‘지배와 피지배’가 없는 대동 세상을 확신하였다. 날치는 현실의 바다를 몰랐고, 꿈의 바다를 믿었다. 잡힌 물고기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퍼덕거리다 죽는 것을 목격한 뒤부터, ‘고도를 기다리는’ 희망을 접었다. 어마어마한 “음흉한 것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 바다 “구석구석 법망을 쳐놓고 먹이를 기다”린다는 사실에, 구토가 나왔다. 날치는 “돌고래나 만새기에 쫓겨 먹히지 않으려고, 물을 박차고 공중에 뛰어올라 우연히 활강하기 전까지,” “한낱 소시민이었다.” 순진하게도 아무리 사회가 위험할지라도, 외로운 사람들끼리 살을 비비고 얼굴을 맞대면, 인간다운 세상이 열릴 줄 알았다. 우연히「날치」는 “솟구쳐 오른 자者에게만 보이는 희한한 물 밖 자유 세상.”을 한 번 보곤 생각이 바뀌었다. 그때까지 굳게 믿었던 국가와 체제가 얼마나 허구였는지를 깨닫게 된다. 소시민 날치는, “사회적 동물에서 정치적 동물로”(한나 아렌트, 1906~1975, 독일 철학자) 목표를 바꿨다. 그날부터 부당한 공권력에 대항해 ‘시민 불복종’ 운동을 부르짖었다. 우리의 날치는, 서로가 서로에게 “스크랩을 짜고 물의 저항을 거스르며,” “푸른 하늘”이 있다고, 새벽마다 사회를 향해 외쳐대었다. 그러나 ‘밖’을 튀어나 간 자들은 요주의 위험인물 대상이 되었고, “쥐도 새도 모르게 군함새”에게 잡혀 먹혔다. 그때부터 그 어떤 ‘날치’도 자유를 부르짖지 않았다. 아무리 국가가 억압하여도, 소시민의 “눈”과 “귀”를 틀어“막”아도, 모두 모른 척 외면하였다. 그러나 자유를 경험한 그「날치」만은 달랐다. 이 세계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를, “무작정” “하늘” 밖으로 “솟구쳐 올라” 외쳐대었다. 그렇다. 시인은 시대가 위급하면, 선봉에 서서 야만의 역사를 고발하는 자이다.
첫댓글 대구시낭송예술협회 이지희 회장님을 비롯한 회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행사에 발걸음해 주신 시인님들과 선생님들께 두고두고 마음의 빚을 갚겠습니다. - 사진을 보내주신 양재완 수필가님, 이정경 수필가님 감읍합니다. 무엇보다 텃밭시인학교 회원님들께 감사의 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