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한국의 바람직한 모습은 모든 인류가 꿈꾸어 왔고, 우리 민족이 추구하고 바라는 이상적인 국가상을 말한다. 동양의 유가에서 옛 선현들은 대동 사회(大同社會)를 꿈꾸어 왔고, 서양의 플라톤이 이상 국가를 설계하였듯이, 우리도 바람직한 통일 한국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 보아야 한다.
통일 한국의 미래 국가상을 관점에 따라서 다양하게 제시할 수 있으나,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념적 좌표를 중심으로 모색해 보기로 하자.
첫째, 통일 한국은 ‘자주적인 민족 국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 나라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민족 국가로서의 자주성을 위협받아 왔다. 특히, 일제에 의한 국권 상실과 민족적 고통, 그리고 세계적인 냉전 구조로 인한 분단과 동족 상잔의 비극은 엄청난 고통을 안겨 주었으며, 남북한 분단의 구조는 민족의 자주적 역량을 발휘하는 데 장애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우리가 통일 과정에서 자주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외세 의존적 통일로 인해 초래될 수도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통일 후에도 자주적인 민족 국가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자주적 민족 국가는 정치·군사적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문화적 측면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실제로 경제력이 바탕이 되지 않는 정치적 자주성은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렵고, 문화적 자주성도 정신적 주체 의식뿐만 아니라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둘째, 통일 한국은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민주 국가’가 되어야 한다. 자유로운 민주주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지속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념이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민주 국가란, 바로 시민들에게 민주주의의 이념을 철저히 구현한 국가를 말한다. 그것은 국민이 나라의 참된 주인이 되고, 특정 계급이나 정파가 아닌 국민의 의사에 따라 국가의 모든 정책이 결정되며, 국민을 위한 정치가 이루어지는 국가를 말한다.
통일 독일의 경우, 1996년에 실시된 한 여론 조사에 의하면, “서독식의 민주주의 체제가 가장 좋은 국가 형태라고 보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동독 주민들이 34%는 서독 민주주의가 가장 좋다고 대답했으나, 그보다 좋은 국가 형태가 있다고 답한 사람들도 25%에 달했다. 나머지 41%는 모르겠다고 답하였다. 남북한은 동서독보다도 오랫동안 서로 다른 형태의 이념을 추구해 왔다. 따라서, 통일 한국의 정치 이념은 남북한 주민들 모두에게 인간답고 자유로운 민주주의적 삶이 보장되는 정치 형태가 되어야 하겠다.
우리는 이미 통일 과정에서부터 민주적인 절차와 방법을 강조해 왔으므로, 통일 후 국가의 모습도 자유로운 민주 국가가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자유로운 민주 국가는 통일 후에 갑자기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 남북한은, 통일의 과정에서부터 비민주적인 사회 구조나 제도를 하나씩 개선시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통일 한국은 ‘정의로운 복지 국가 (welfare state)'가 되어야 한다. 통일 한국을 달성하려고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이 바로 민족 성원들의 삶의 질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길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복지 국가의 모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다시 분단의 길로 들어서게 될 수도 있다. 독일이 통일된 후, 동독 지역의 한 노조 지도자가 한 말을 들어 보자.
우리가 원했던 사회는 바로 현재 보는 사회의 모습은 아니다. 우리는 구공산 체제의 전체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 요소를 없애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나 대중들의 민주화 운동이 적절한 수준에서 절제되지 못하였고, 대중들은 서독의 물질적 풍요로움의 위력에 빨려들게 되었다. 따라서, 그 동안 전개해 온 공산 억압 통치에서 벗어나, 이제부터는 우리가 바라던 인간적인 사회 건설을 위한 노력을 새롭게 전개해야 할 상황이다.
여기서 동독 노조 지도자는, 통일 전에 자신들이 바랐던 인간답고 삶의 질이 보장되는 사회가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복지 국가의 이념은 사회 성원들의 삶의 질을 인간답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 따라서, 통일 한국은 불공정한 부의 분배나 집단과 계층 간의 사회적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 민족 성원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복지 국가야말로 통일을 이루려는 가장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이며, 민족을 통합시켜 주는 물질적 토대가 되는 것이다.
넷째, 통일 한국은 ‘수준 높은 문화 국가’가 되어야 한다. 21세기의 국가 정체성이나 경쟁력은 경제적 측면보다는 문화적 측면에서 찾아야 한다고 한다. ‘문화는 국가 경쟁력이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문화의 위력은 대단하다.
우리 민족은 그 동안 오랜 역사 속에서 외세에 시달리면서도 고유의 전통 문화를 간직하여 왔으며, 대륙과 해양 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면서 동아시아 문화 발전의 매개자적 역할을 스스로 맡아 왔다. 그러나 근대 이후 일제의 식민지 지배는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왜곡시켰고, 남북한 분단의 장기화는 문화적 동질성을 훼손시켰다. 더구나 20세기 산업화·개방화의 과정에서 우리는 민족의 전통적인 문화 유산을 소홀히 한 점이 없지 않다. 따라서, 통일 한국은 21세기 사회 발전과 국가 경쟁력의 원동력인 문화 자원을 더욱 발굴·육성하고,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자세로 동·서양의 우수한 문화를 수용해서, 세계적인 문화 국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 전통 문화 속에 담긴 지혜와 도덕적인 가치를 되살리는 방법이고, 문화 한국을 건설하는 길이다.
대동 사회(大同社會) : 『예기(禮記)』'예운편(禮運編) '에서 제시된 유가의 이상적인 사회상을 말한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 : 철인(哲人)왕이 다스리는 국가로서, 능력에 따라 세 계급의 인간(통치자, 군인, 생산자)으로 구성된다.
복지 국가 (welfare state) : 국민 전체의 복지 증진과 확보 및 행복 추구를 국가의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보는 국가이다.. 한편,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완전 고용·최저 임금·사회 보장 제도 등이 가장 중요한 시책이다.
동도서기(東道西器) : 동양의 정신 문화[道]와 서양의 과학 기술[器]을 조화시키자는 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