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도 많이 이용하는 펀드·저축 등 금융상품
비과세·감면 크게 줄어 '친(親)서민' 항목 못지않게
'서민 증세' 항목도 많아 정기국회서 논란일듯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세제(稅制) 개편안을 '친(親)서민'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정부는 지난 20일과 25일 두 차례에 걸쳐 세제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친서민 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예년에는 세제 개편안을 한 번에 내놓았는데, 이번에는 서민 지원과 관련된 개편방안(지난 20일 발표)을 별도로 묶어서 홍보할 정도로 '친서민' 브랜드를 부각시켰다.
하지만 하나 하나 내용을 뜯어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아졌지만 오히려 서민층(일부 중위소득 계층 포함)에게 세금을 더 걷는 내용도 꽤 눈에 띄기 때문이다. 내년도 세제 개편안의 항목들을 서민과 관련성이 깊은 내용을 중심으로 구분해보면, 서민에게 유리한 항목과 불리한 항목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서민에게 유리한 세제
세제 개편안에서 가장 큰 '친서민' 항목은 사업에 실패해 폐업한 영세사업자들에게 밀린 세금을 최대 500만원까지 탕감해주는 것이다. 정부는 90여 만명의 영세사업자들이 총 2000억원 정도의 체납세금 탕감 혜택을 받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또 부양가족과 함께 월세 사는 사람들은 월세 불입액의 40%(연 300만원 한도)까지 소득공제를 새로 받도록 한 방안도 대표적인 친 서민 세금정책으로 정부는 홍보했다.
또한 정부는 올 5월 출시된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들에게 납입액의 40%(연 120만원 한도)까지 소득공제를 받게 한 것도 친서민 세제 개편안의 목록에 올려 놓았다.
실제로 작년에 비해 서민층을 지원하는 세제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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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에게 불리한 세제
그러나 '친서민'이라는 슬로건 아래 정부가 은근슬쩍 끼워놓은 것으로 해석할 만한 '서민 증세'도 적지 않다.
우선 각종 금융상품의 비과세감면이 사라지면서, 그동안 서민층들이 누려온 세금감면이 크게 줄어들게 됐다.
20대 후반의 직장인 김모씨는 결혼 후 주택 마련도 하고 소득공제도 받기 위해 지난 2월 장기주택마련저축에 가입했다. 세대주만 가입할 수 있다는 상담원의 말에 동사무소에서 세대분리까지 신청하며 상품에 가입해 총 590만원을 불입했다. 김씨는 "만기가 7년이나 되는 상품을 재태크 플랜으로 짰는데, 정부가 세수를 확대하겠다며 나 같은 직장인들이 가입하는 상품의 세제지원을 없앤다는 것에 화가 난다"고 했다.
내년부터 소득공제를 폐지하기로 한 장기주택마련저축은 무주택 서민층이 많이 가입한 상품이다. 이 상품은 18세 이상 무주택자와 국민주택 규모(85㎡) 이하 1주택 소유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1994년 도입 이후 125만명이 가입돼 있다. 이자·배당소득에 대해 비과세해주고, 불입금액의 40%(연간 300만원 한도)를 소득공제해줬다. 따라서 소득공제 혜택을 기대하고 저축에 가입한 서민층 고객들의 불만이 나오고 있다. 일부 서민층도 투자하고 있는 해외펀드 주식매매와 평가손익에 대한 소득세 비과세도 내년부터 폐지돼 세금부담이 늘어난다. 공모펀드 투자자들은 그동안 내지 않아도 됐던 증권거래세(0.3%)를 부담해야 한다. 장기 주식형 펀드는 내년부터 소득공제를 받을 수 없고 배당소득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 현재 국내 주식형 펀드 계좌수만 957만9000계좌(73조원)에 이르고 해외 주식형펀드는 585만4000계좌(55조원)에 달하는데, 중산층 이하 투자자들도 많이 가입해 있다.
생계형 저축과 농협·수협·신협·새마을금고 예탁금의 중복가입을 금지하면서 부부 가입한도를 1억2000만원에서 6000만원으로 줄인 것은 은행 이자로 생활하는 은퇴자들에게 타격을 줄 것이란 지적이 많다. 여기에 주택 등 부동산을 팔 때 2개월 이내에 신고·납부하면 세금의 10%를 깎아주던 제도가 사라진다. 거주요건(3년 보유하고 2년 거주)을 갖추지 못한 서민층 1가구1주택자들이 급하게 주택을 팔 경우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일부 금융상품 소득공제를 없앤 것은 (관련 금융상품들의) 정책 목적을 다 이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고, 공모펀드 거래세를 새로 부과한 것은 정부 재정의 건전성을 고려해 세수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기국회에서도 논란 일 듯
전문가들은 이번 세제개편에 대해 "대다수 서민들이 '친 서민'이라고 체감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한다. 지난 25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참석한 고위 당정협의 때에도 여당 의원들이 "일반인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내용들이 많다. 이런 식으로 하면 (여당의) 전선(戰線)만 넓히고 득보다 잃는 게 많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야당의 세제개편안 회의에서도 "저축, 펀드 비과세 감면이 대거 축소돼 일반 중산층 세금 부담이 늘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세제 개편안은 앞으로 국회 입법과정에서 '친서민 정책이 맞느냐?'는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서민층이란
학술적 정의 없어… 빈곤층과 중하위 중산층이 해당
서민층에 대해 학술적으로 정립된 정의는 없다. 다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중위소득(전체 가구를 소득 순서로 배열했을 때 맨 가운데에 해당하는 소득수준, 우리나라는 2008년 기준 월 354만원)의 50~150%를 버는 계층을 중산층으로 정의하는데, 중위소득의 절반 미만으로 버는 빈곤층과 중산층 가운데 중하위권에 속하는 가구를 합쳐 '서민층'으로 분류하는 견해가 많다. 또 정부는 연소득 3000만원 이하의 무주택자인 경우 서민·근로자 전세 대출을 해주고 있는데, 이를 감안해서 연소득 3000만원 이하를 서민층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연소득 3000만원 이하는 가구소득 하위 40% 이하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