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고 행할 것이며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사 35:8-10)
우리들은 길을 가는 나그네들이다. 나그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향하고 있는 목적지이다. 그래서 지금 여기는 나그네의 우선순위가 아니다. 그에게 소중한 것은 목적지와 그곳에 도달할 미래이다. 바른 신앙과 삶이란 우선적으로 분명한 목적지를 정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최선을 다하여 그곳을 향한 전진이다. 방향이 잘못되면 아무리 열심히 달려간다 하여도 모든 것이 허사로 끝난다. 열정이 오히려 잘못을 가중시키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을 바르게 설정하는 것이다.
이사야 35장은 구원받은 자들이 가야하는 길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그 길은 어떤 길일까?
우선, 그 길은 구속함을 받은 자들만이 갈 수 있는 길이다. ‘구속’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가알'은 돈을 주고 되사왔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들의 본래 신분과 위치가 회복되었음을 의미한다. 범죄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의도에서 벗어났던 우리들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된 것이다. 10절의 '여호와의 속량함은 받은 자들'도 구속과 같은 뜻이다.
오늘의 본문 바로 앞에서는 구속받은 자들이 신체적 마비에서 온전하게 회복된 자들로 표현되고 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사 35:5-6) 하나님의 길을 가는 자들은 신체적 마비 증세로 비틀거리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정상적으로 걷고, 보고, 듣고, 말하는 자들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히 회복되어 하나님과의 교제가 원활하게 유지되는 자들임을 의미한다.
둘째로, 그 길은 나 홀로 걷는 길이 아니라 구속함을 받은 자들 모두가 함께 걷는 길이다(사 35:8-10). 홀로 길을 걷는 것보다 처량하고 외로운 것은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즐거움 중 하나는 공동체의 아름다움이다. 구속받은 자들은 믿음 안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는 영적 대가족들이다. 시편기자는 공동체적 삶의 즐거움을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라고 노래하였다. 형제의 연합이 이 땅에서 누리는 가장 큰 행복이다. 같은 방향의 길을 걷는 자들만이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셋째로, 그 길은 사막과 광야 가운데 있는 길이다. 그러나 사막과 광야는 더 이상 메마른 땅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을 풍요롭고 아름다운 낙원으로 바꾸어 놓으신다.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사 35:6-7) 그동안 하나님께서 땅속에 숨겨 두셨던 지하수 샘들을 터뜨려 황무지가 옥토로 바뀌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땅과 환경은 사막과 같은 곳이다. 그곳을 아무리 호화롭게 꾸민다고 하여도 메마른 사막일 뿐이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로 에덴의 낙원은 하나님의 저주로 땀과 노력을 들여야만 살 수 있는 삭막한 땅으로 바뀐 것이 그 출발점이다(창 3:19). 그런 땅을 옥토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구원의 한 결과이다. 신앙 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매일 매일의 삶은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시는 옥토를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길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갖가지 위험들도 막아 주시는 분이시다(사 35:8-9). 길에서 만날 수 있는 맹수들은 더 이상 우리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 길은 시온으로 가는 대로이다. 시온은 예루살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성경에서는 이 두 용어가 동의어로 사용이 된다. 다만 예루살렘이 정치적 측면을 강조한다면, 시온은 신앙적 차원을 강조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자가 정치적 수도로서 왕궁과 관련된다면, 후자는 종교의 중심지로서 성전과 관련된다.
예루살렘과 시온은 모두 하나님의 통치가 실재하는 곳이다. 왕의 존재나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는 모두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온의 대로를 걷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바른 신앙과 삶의 자세이다. 그것은 시온의 대로를 걷는 나그네들의 본분이다. <서울신대 권혁승 교수>
첫댓글 요며칠 컴이 말을 듣지 않아 제대로 카페에 들어오지 못해서 죄송해요
딸래미 노트북도 있고 다른 방에도 데스크탑이 있지만
왠지 내것이 아닌것에 잘 적응을 못해서리~~
바른 신앙과 삶의 자세를 생각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온의 대로가 넘 반가와요
울 시온 찬양대 공동체가 누리는 은혜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그곳이 바로 우리 시온이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