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이 몇일이야?"
갑자기 딸아이가 묻는다
응…22일”
염색작업을 하고 있던 나는 느낌이 가는대로 대답했다
"야, 한달이면 크리스마스네..”
크리스마스… 요정이 뿌리는 별빛처럼 크리스마스라는 단어가 갑자기 방안을 환하게 한다.
그 빛을 따라 이미 나는 멀리 추억의 길을 가고 있었다.
독일, 겨울, 그리고 20여년전….
12월이 오면 하늘은 언제라도 눈이 내릴듯 잿빛이고 넥카강에서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이 골목을 헤메기도 했지만 내가 살던 독일 하이델베르그는 또 다른 변신을 준비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중심가 거리와 광장에 큰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지고 어김없이 아름다운 시장이 꾸며지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동화의 세계로 바뀌어져 가는것이다
장소는 언제나 같은곳 대학광장과 시청앞… 어느곳에서나 古城이 올려다 보이는 자리였다
(하이델베르그 크리스마스 시장)
당시 나는 구 시가 한 복판에 살았기 때문에 12월 겨울 초입에 도시가 새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훔쳐볼수 있었다.
먼저 시에서 차가 나와 거리의 가로등을 트리나무 모습으로 바꾸어 놓는다 시청앞, 대학광장등 몇곳 요지에 큰 트리를 세운다 그리고 나면 이어서 목수들의 차례가 돌아온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시장으로 항상 예정된 두곳 광장에 자그마한 가게들을 뚝닥뚝닥 세운다.
다시 시내는 겨울의 침묵에 빠지지만 더 이상 고독을 기다리는 침묵은 아니다 하이델베르그는 밀려 올 크리스마스 방문객들을 “뜬눈으로” 기다리는것이다
드디어 시장이 열린 며칠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어둑어둑해진 시간 애써 달래온 설레임에 이끌려 산책삼아 나가보면 내가 알던 광장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가게마다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향초와 포도주 냄새가 뒤섞여 내는 특유의 향기 회전목마에서 들려오는 캐럴송들 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 실루엣들…
이미 크리스마스 시장은 온갖 불빛들이 품어내는 열기와 향기의 연금술속에서 태어나 있었다
가까이 다가 갈수록 나 역시 이 마법의 세계에 빠지지 않을수 없다
여기에서는 불빛도 향기도, 사람도 모든것이 서로 어울려 있고 뒤섞여 있다
눈에 부드러운 불빛은 백열 전구, 촛불, 횃불이 어울린것이다
코에 와 닿는 향기는 초, 과자, 끓인 포도주가 섞인것이다
이러한 아늑한 불빛과 향기속에 서면 마음은 괜히 즐거워지고 잊고 있었던 추억들이 뜻밖에 떠오르고 아무하고나 미소띤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 싶어진다
가게마다 매달려 있는 형형색색의 수많은 장식용 유리구슬들은 바람에 부딪치고 흔들리며 저희들끼리 흥겹고 사람들은 선물을 고르기 위해 가게를 비집고 다니거나 연인끼리, 친구끼리, 동료끼리 삼삼오오 모여 뜨거운 포도주를 마시며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끊임없이 캐럴을 쏟아내는 회전목마는 아이들의 손에 끌려온 엄마 아빠앞에서 신이나서 돌고있다
크리스마스 시장에 나오는 물건들은 거의가 가내 수공업정도의 개인 작업실에서 직접 만들어 온 작품들이다
물론 “작품”들은 다 크리스마스에 관계된것들이다 호두까기 인형, 병정, 산타, 장식용 초, 구슬, 병, 도자기… 성탄을 위해 일년동안 바친 장인들의 수고가 선보이는것이다
언젠가는 도자기 가게를 맡아 판매일도 해 보았는데 당시 가게주인이었던 젊은 陶工부부는 프랑스 프로방스에 작업실을 두고 거기에서 도자기를 만들어 12월이면 매년 자신들의 가게에 선보이고 있었다
매년 크리스마스때가 되면 우리 부부는 당시 어렸던 아이들을 썰매에 태우듯 차에 태우고 즐겨 유명한 크리스마스 시장을 찿곤했다
그것은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옷을 누비는 실처럼 각각 독특한 성탄장식으로 치장한 마을길을 지나 달려 이윽고 목적지에 도달하면 펼쳐지는 크리스마스의 세계들…
지나고 보니 추억속에 불현 떠오르는 곳만도 적지않다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크리스마스 시장 뉘른베르그 오스트리아의 쟐츠브르그 프랑스의 쉬트라스브르그…
하이델베르그는 아름다운 도시이고 그 품속에서 열리는 성탄시장도 매우 아름답지만 크리스마스 시장에 관한 그 최고의 명성만은 뉘른베르그에 양보해야 할것이다
뉴른베르그에 가면 우선 그 규모와 동화적 분위기에 홀려 버리게 된다 눈길이 닿는대로 끝이 없이 펼쳐진 휘황찬란한 가게들… 크리스마스 시장이 아니라 이건 크리스마스 나라에 온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규모답게 전통 또한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1530년경 뉘른베르그 주변의 수도원에 사는 수녀들이 과자를 구워내 놓은것에서 부터 시작한 이곳의 전통은 11월 28일 오후 5시 30분에 180여개의 가게가 일제히 문을 열게되면서 금년 2003년에도 어김없이 이어지게 될것이다.
국경을 넘으며 여러 크리스마스 시장들을 다니다 보면 나라마다 시장마다 독특한 크리스마스 향기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물건들이야 다 성탄장식이니 어디나 비슷하지만 각 나라, 지방마다 달리 구워내는 향토과자의 향기가 크리스마스 시장의 독특한 향기를 결정짓는것이다
뉘른베르그의 레브쿠헨 과자 잘쯔브르그의 구운 사과과자 쉬트라스브르그의 하얀 코코너스 과자의 향기, 그리고 아몬드를 굽는 냄새와 게피와 향료를 넣어 끓인 포도주 글뤼바인의 향기…
(뉘른베르그의크리스마스 시장)
향기가 발휘하는 마력은 마르셀 프루스트가 이미 “잃어버린 시간을 찿아서”에서 증명하고 있지만 크리스마스때만 되면 많은 추억들이 역시 그 향기의 손에 이끌려 온다
이 추억들은 파리에 살면서 더욱 자꾸만 그리워져 간다 파리는 전혀 다른 모습의 크리스마스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파리에는 크리스마스 시장이 없다 그 대신 화려한 “백화점 크리스마스” 와 샹젤리제의 휘황한 트리조명이 있다
특히 라파예트 백화점 진열관과 그 앞 거리는 해 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꾸며지고 해 마다 누가 점등을 하느냐로 관심을 끄는 샹젤리제의 성탄조명은 그 휘황함으로 모두의 가슴을 뛰게 하지만 아 …
여기에는 향기가 없는 것이다! 뜨거운 포도주 글뤼바인의 향기가, 마들렌과 레브쿠헨 과자들의 향기가…
이 향기가 그리워질때면 나는 집에 돌아 와 부얶 찬장을 열어본다
거기에는, 제 각기 다른 도시 이름과 크리스마스 장식이 그려진 약 20여개의 컵들이 층층이 쌓인채 나를 반긴다 각각 다른 향기의 추억을 간직한채…
그것들은 20여년 유럽에 살면서 크리스마스때마다 여러 도시 성탄시장에서 뜨거운 포도주 글뤼바인을 마시고 산 컵들인것이다
금년에는 어떤 어느 컵을 꺼내 어떤 도시의 크리스마스 추억을 마실게 될까 아니면 새 향기를 찿아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을 향해 떠나게 될찌…
눈이 내리는 날 그날 알게 되리라…
첫댓글 아 !!! 좋네요... 동심속의 크리스 마스를 맞이 하시는 미라보님..... 저도 그 동심속에 있으렵니다....
세상에는 사람이 참 많긴 많은가봐요~ 그만큼 여러가지 인생을 사는 사람도 많겠죠? 님의 글을 읽으면 제가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동경이 일어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가 도대체 떠오르지 않는데 이번 해에는 저도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를 만들어 볼수 있었음 좋겠네요..
이 글이었군요. 메일로 받아보고나서 카페로 바로 달려왔습니다. 여행준비에 있어 많은분들이 "이렇게 준비하자", "이런식으로는 여행하지 말자"는 등, 많이 알려주시지만, 분위기에 젖어서, 잠시동안이지만 현재의 나를 잊고 무작정 떠나가는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이 꼭 공부가 되고, 그 나라의 문화를 머리로 알아야 하는것은 아니니까요. 모르는곳에가서 보고 느끼는것으로 충분하다고 봐요. 이 글을 읽고, 다시금 여행준비하는 즐거움이 솟아납니다. 비록 크리스마스때는 못가지만요. *^^*
혹시 단체 멜 받으신 분중 메일에 딸려온 노래 누가 불렀는지 좀 아시는 분 있나요? ^^ whelm이 원곡이니 건 알겠고 이 여자분이 누군지 궁금하네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낌으로 남는 것.. 그것이진정한 여행이 아닐까 합니다....
첫댓글 아 !!! 좋네요... 동심속의 크리스 마스를 맞이 하시는 미라보님..... 저도 그 동심속에 있으렵니다....
세상에는 사람이 참 많긴 많은가봐요~ 그만큼 여러가지 인생을 사는 사람도 많겠죠? 님의 글을 읽으면 제가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동경이 일어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가 도대체 떠오르지 않는데 이번 해에는 저도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를 만들어 볼수 있었음 좋겠네요..
이 글이었군요. 메일로 받아보고나서 카페로 바로 달려왔습니다. 여행준비에 있어 많은분들이 "이렇게 준비하자", "이런식으로는 여행하지 말자"는 등, 많이 알려주시지만, 분위기에 젖어서, 잠시동안이지만 현재의 나를 잊고 무작정 떠나가는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이 꼭 공부가 되고, 그 나라의 문화를 머리로 알아야 하는것은 아니니까요. 모르는곳에가서 보고 느끼는것으로 충분하다고 봐요. 이 글을 읽고, 다시금 여행준비하는 즐거움이 솟아납니다. 비록 크리스마스때는 못가지만요. *^^*
혹시 단체 멜 받으신 분중 메일에 딸려온 노래 누가 불렀는지 좀 아시는 분 있나요? ^^ whelm이 원곡이니 건 알겠고 이 여자분이 누군지 궁금하네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낌으로 남는 것.. 그것이진정한 여행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