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차나 수요일엔 빨간장미를 같은 노래는 당시 라디오에서도 수없이 들을 수 있는 속칭 뜬노래였고 그러다가 2집 앨범이 발표되었습니다.
1987년 초던가 우연히 서울거리를 지나다가 다섯손가락의 공연포스터를 봤고 그것을 보기 위해 당시 3000원인가 5000원인가를 내고 표를 사고 파고다 예술극장에서 공연을 봤습니다.
하루에 두번 연이어 공연을 했는데 당시의 라인업은 1집의 사진과는 달리 이두헌과 임형순을 제외한 멤버들이 바뀐 상태였고 베이스에 박문일 드럼에 이상희 키보드에 강태수가 연주를 했는데 그 당시 알고 있던 노래말고 가슴을 파고드는 노래가 있었는데 ...
그 노래가 '사라진 가을'이라는 노래로 참으로 좋은 명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노래가 사실은 1집 데뷔앨범 보다 빨리 나와 다섯손가락을 알렸던 노래입니다.
다섯손가락의 데뷔는 1집이 발표1985년 보다 빠른 음반 '캠퍼스의 소리' 가 발표된 1984년 입니다.
당시 아마추어 냄새가 나던 시기 데뷰음반을 만들었는데 그 음반에는 지금은 유명가수가 된 조동진 사단의 일명 포크의 여제 장필순이 '소리두울' 이라는 듀엣으로 나와 '종이비행기' 그리고 '바람에 실려온 마음'이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훗날 안치환과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불러 이름을 알립니다.
1집 과는 달리 투박하고 풋풋한 것이 특징이긴 하지만 직접들어본 저의 생각은 임형순의 풍부한 성량과 이두헌을 비롯한 나머지 맴버의 연주와 화음이 다른 노래도 그렇지만 대단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당시 악보를 따거나 노랠 듣고 연주할 수준이 아니었는데 자켓 앨범에 나오는 최태완을 임형순 콘서트에 놀러온 기회를 이용(당시 군복무중) 코드를 적어달라고 하여 연습하여 학교에서 콘서트때 직접 부른 기억은 너무도 생생합니다.
대학교 1학년때 당시 알바를 뛰고 번돈으로 음반점에가서 최초로 산 LP판이 다섯손가락 1집과 2집이었습니다.
당시엔 신선한 대학생 그룹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곳을 거쳐간 분들 중 이두헌과 임형순을 제외하고도 1집 음반전에 활동한 세월이 가면의 '최호섭' (로보트 태권V주제가를 중학교 때 불렀고 형이 명곡 '연극이 끝난 후' 를 만든 최명섭이고 아버지가 작곡가 최창권)원래 싱어로 활동했으나 탈퇴 했고 그리고 베이스를 쳤던 유명 작곡가이며 연주자 '하광훈' 그리고 1집 앨범을 내고 주춤할 당시 팀에서 베이스를 치고 군제대후 건반을 치고 훗날 부산지역대학생들이 뭉쳐 만든 '평균율'에서 건반을 치고 가수 이범학이 데뷔한 이색지대에서 건반을 친 '최준성'도 다섯손가락 출신입니다.
물론 1집 앨범을 녹음할 때 곡을 쓰기도 했던 드럼 주자 '박강영'이나 키보드의 '최태완'등도 너무나 유명한 사람들이라 다섯손가락의 소박한 이름에 이분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못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 만큼 저력있는 밴드이고 당시 젊은이들에게 많은 영향은 끼친 가수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 다섯손가락의 중심과 작품을 만든 주인공은 기타의 이두헌이고 그는 후에 기타로 전공을 바꿔 강단에도 서고 음악평론과 감독 그리고 와인에 관한 전문칼럼을 연재하며 방배동에서 카페를 하는데 생각보다 생각이 맑고 서민적이며 소탈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 수요일엔 빨간장미를' 를 부른 주인공인데 보통 메인보컬이 불러 히트한 경우가 많은데 조금은 예외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세히 들어 보면 임형순의 화음도 기가 막힘니다. 실제 공연장에서 보면 음반의 성량과 음색이 메인보컬 답게 임형순은 실력있는 가수라 생각하며 현재는 전공과는 달리 실용음악과 교수가 되었습니다.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그룹 '다섯손가락' 지금도 이분들의 노래와 연주는 저에게도 큰 힘이 됩니다.
그리고 당시 노랫말 때문에 심의에 걸려 실제 녹음시엔 바뀌게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훗날 시집이 나와서 그 사연을 알게 되기도 하는데 보통 밴드의 음악이 사랑타령이나 하고 시대를 외면한다는 편견을 없애 버린 팀이기도 하고 좋아할 수 있는 팀인데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