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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洪川] - 푸른산 맑은물 청정의 고장
강원도 영서 내륙의 중앙에 자리한 홍천군은 전국 기조자치단체 중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한다. 서울특별시의 3배 넓이이며 강원도의 10.7%에 달한다. 홍천은 동쪽은 높고 서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진다. 산지가 군 전체의 87%를 차지한다. 홍천은 서울에서 가까운 강원도 땅이면서도 ‘근대화’ 바람은 가장 더디게 불었다.
1경. 팔봉산
한국의 100대 명산으로 해발 327.4m의 나지막한 산으로 여덟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어서 팔봉산이라 하며, 봄/가을은 등산객들이, 여름철은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여덟 봉우리마다 비경과 기암괴석이 산허리를 감싸고 흐르는 맑고 깨끗한 홍천강 물이 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절경을 간직한 곳이다.
2경. 가리산
해발 1,051m의 가리산은 산 정상에 서면 탁 트인 시야와 발 아래로 펼쳐진 소양호의 풍경이 등산객들의 발을 묶는 곳이다. 또한 이 산의 1봉 남쪽 정상아래 바위벽면사이에서 샘물이 솟아나와 400리 홍천강으로 흐르는 작은 석간수는 목마름에 지친 등산객들에게 청량감을 더해주는 가리산의 특색 있는 자랑거리이기도하다.
미약골은 높은산과 깊은 계곡으로 둘러싸여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다. 옛날 이곳을 지나던 풍수가가 지세를 둘러보고 삼정승 6판서가 나올 명당자리가 있어 학이 울고 촛대바위가 아름답게 치솟았으며 선녀가 하강하여 목욕을 했다는 암석폭포 등 바위들이 각기 아름다운 형상을 이루고 있어 미암동 또는 미약골이라 이름 지었다 하며, 원시림의 자연생태계의 보고로서 맑고 깨끗한 용천수가 샘솟아 400리를 흘러 북한강 청평댐으로 유입되는 홍천강의 발원지이다.
4경. 금학산
해발 652m의 정상에 오르면 태극문양의 노일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명산으로, 백두대간에서 오대산을 거쳐 영서내륙 한강변까지 깊숙이 뻗어 내린 한강기맥의 끝자락 장락산맥이 한눈에 들어온다. 낮은 산이지만 산정으로 오르는 등산코스가 다양하고 400리 홍천강변 최고의 절경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서 유명하다.
5경. 가령폭포
가령폭포는 자연 속에 숨겨진 오지의 백암산(1,099m) 서남쪽 기슭에 숨어 있으며 개령폭포라고도 불리운다. 가령폭포는 최근 생태체험 등산 동호인들이 찾으면서 알려지기 시작한 백암산과 더불어 우렁찬 굉음을 토하며 수십미터(50여m)의 낭떠러지를 뒤흔들며 내리꽂는 자태가 웅장하다.
6경. 공작산 수타사
공작산은 해발 887m로 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홍천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며, 산세가 공작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홍천읍에서 바라보면 거인이 하늘을 향해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 100대 명산 공작산 끝자락에 자리한 천년고찰 수타사는 신라 33대 성덕왕 7년(서기 708년)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대적광전 팔작지붕과 1364년 만든 동종, 3층석탑이 보존되어 있고 보물 제745호 월인석보를 비롯한 대적광전, 범종, 후불탱화, 홍우당부도 등 수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영서내륙 최고 고찰이다.
7경. 용소계곡
내촌면 광암리에서 발원하여 두촌면 괘석리를 거쳐 천현리에 이르는 10km의 계곡으로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조화롭게 펼쳐져 있는 곳이다. 우거진 숲과 곳곳에 펼쳐지는 소와 너래바위들이 어우러져 비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내설악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계곡이다.
8경. 살둔계곡
계방천과 자운천이 어우러져 만든 살둔계곡은 원시의 비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으로 입구부터 하늘을 가린 원시림에 둘러싸여 있는 별천지다. 한자로는 생둔(生屯)이라고 하며 삶둔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단종 복위를 꾀하던 이들이 숨어들면서 마을이 최초로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 예언서인 정감록에도 일곱 군데의 피난처인 삼둔사가리 중 한곳으로 전하고 있다. 난리를 피하고 화를 면할 수 있는 곳 삼둔사가리가 모두 살둔을 중심으로 인근에 있다. 살를 도와 가족단위의 휴양지로 적당하다.
9경. 가칠봉삼봉약수
가칠봉은 백두대간 제 27구간 갈전곡봉에서 남서로 뻗은 능선상 2.5km 지점의 첫 번째 봉으로 태고의 원시림속에 숨겨진 오지의 산으로 전나무와 활엽수가 어우러진 자연경관이 수려하며 산자락에 있는 삼봉약수로 더 유명한 산이다.
삼봉약수는 조선시대 실론약수(實論藥水)라 불렸으며 주위에 가칠봉, 사삼봉, 응복산의 세 봉우리 가운데 위치한다 하여 삼봉약수라 불린다. 전국에서도 드물게 수질이 우수하여 한국의 명수 100선에 선정되었다.
강재구공원 성동리 985-3
기미만세공원 물걸리 기미만세공원
1919년 4월 1일 일제탄압에 항거하여 만세 운동을 하다 이곳에서 순직한 8열사를 추모하기 위하여, 1963년 관과 민이 합동하여 팔렬각을 건립하였으나, 최근 팔렬각이 노후되고 초라하여, 당시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모든 선열들의 뜻을 기리고자, 1990년 2월 28일에 기미만세공원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군민의 성금과 독지가의 도움과 군비를 투자하여 5천7백여㎡의 부지에 기미만세상을 세우고, 부대시설을 만들어 팔렬사를 비롯한 선현들의 애국충절의 높은 뜻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조성된 공원이다
무궁화공원[無窮花公園]
일제강점기에 무궁화를 널리 보급한 한서 남궁억을 기념하여 세운 공원이다. 공원 안에 남궁억의 시비와 군민헌장기념비, 충혼탑, 3·1만세탑, 6·25전쟁 홍천지구전투 전적비, 전국회부의장 동은 이재학기념비, 반공희생자위령탑 등이 있다.
입장료는 없으며 홍천군민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향토애와 나라사랑을 가르치는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찾아가려면 홍천읍에서 공원행 시내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간다.
비발디파크
대명레저산업(주)이 운영하는 종합 레저단지로, 1993년 12월 문을 열었다. 서울에서 77㎞ 거리에 있으며, 대규모 스키장을 비롯해 콘도미니엄•유스호스텔 등의 숙박시설과 각종 레포츠 및 위락시설을 갖추고 있다. 전체면적은 344만 8700평, 부지면적은 114만㎡이다.
살둔마을 살만한 둔덕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단종의 복위를 꾀하던 사람들이 방태산 골짜기에 숨어들었던 곳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마을은 ‘이곳에 오면 사람이 산다’는 의미를 담아 ‘살둔’이라 불렸습니다. 오랜 시간 외지인의 손길이 닿지 않던 산골에는 알음알음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1985년 지어진 살둔산장이 언론사 선정 ‘한국인이 살고 싶은 집 100'에 선정되면서 외지인의 관심이 일었습니다. 2009년에는 살둔마을에서 문암마을에 이르는 트레킹 코스가 방송에 소개됐습니다. 오로지 걷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도 속속 생겨났습니다.
수타사[壽陀寺]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다. 708년(성덕왕 7)에 창건하여 우적산(牛寂山) 일월사(日月寺)라 하였는데 누가 지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창건 이후 영서 지방의 명찰로 꼽히다가 1457년(세조 3)에 현 위치로 옮기면서 수타사(水墮寺)라 하였다.
신라의 원효대사가 창건한 수타사는 동면 덕치리 공작산(887m) 자락에 있다. 조선 세조 때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합해 편찬한 <월인석보> 제17권, 18권이 사천왕상 복장유물로 발견되면서 유명해졌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강원도 유형문화재 17호)은 수타사 중심 법당으로 내부 장식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동종(보물 제11-3호), 홍우당부도(강원문화재자료 제15호), 후불탱화 등 수많은 문화재가 간직돼 있다. 월인석보 초간본은 수타사 성보박물관인 ‘보장각’에 있다.
최승희
홍천이 자랑하는 인물 가운데 또 한 사람이 최승희(1911-1967)다. 우리나라가 배출한 세계적인 춤꾼인 최승희는 남면 제곡리 안말에서 태어났다. 최승희 춤 정신의 계승을 위해 해마다 최승희 춤축제를 연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활동한 근대 신무용가. 이시이 바쿠의 무용단에서 활동한 후 최승희 무용연구소를 세우고 한국의 고전무용을 현대화하였다. 구미 각국의 순회공연을 통해 '동양의 무희'로 불리며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월북 후 평양에서 조선춤의 체계화와 무용극 창작에 힘썼다.
한서 남궁억선생기념관
홍천군 서면 모곡리에 가면 일제 강점시 누구보다도 뜨거운 가슴으로 나라사랑을 실천한 남궁억선생을 기리는 기념관과 예배당 및 묘소(한서초등학교 뒤 유리봉)가 있다.
기념관에는 남궁억선생의 약력 및 업적에 대한 자료와 사진자료를 소개하고 있으며, 전시실 옆에는 일제에 의해 강제 폐쇄되었던 예배당을 복원해 놓았다.
독립신문을 편집한 경험을 살려서 황성신문 사장으로 취임한 남궁억은 1902년 일본이 러시아와 한반도 분할안을 토의하는 것을 폭로하여 일제의 침략야욕을 백일하에 폭로하였다. 그 때문에 심한 고문을 받아 병약한 몸이 되었고 황성신문 사장직을 사임하였다.
남궁억 교장은 학교 뒤뜰에 무궁화 밭을 일구어 7만이나 되는 많은 무궁화 묘목을 길러서 몰래 나누어주기 시작하였다. 그는 또 무궁화 노래를 지어 널리 퍼뜨려 민족정신을 일깨웠다. 나라꽃 무궁화처럼 독립운동을 하는데 무난한 상징물은 달리 없었다. 남궁억은 무궁화만이 아니라 국어와 국사교육을 통해 민족정신을 고취하였다.
그러나 남궁억의 외로운 민족운동은 1933년 무궁화 십자당사건으로 끝을 맺게 되었다. 모진 일본경찰의 고문을 받아 병이 든 남궁억은 그 여독(餘毒)으로 1939년 77세를 일기로 한 많은 일생을 마감하였다. 그러나 그의 무궁화정신은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남아 우리의 민족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문화관광부는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며, 황성신문을 창간하고 무궁화보급운동을 전개한 한서 남궁억(翰西 南宮檍 : 1863∼1939)선생을 2000년 1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였다.
한서 남궁억 묘역
2000년 11월 18일 강원도기념물 제77호로 지정되었다. 독립운동가이며 언론인·교육자인 한서(翰西) 남궁억(南宮檍)의 묘역이다. 보리울 마을(모곡리)의 한서초등학교 뒷산에 있으며, 묘에는 호석(護石)을 둥글게 두르고 봉분 앞에 상석(床石)을 두었다
한서문화제
강원도 홍천지역에서 활동한 언론인이자 교육가, 항일독립운동가로 무궁화 사랑 운동을 펼쳐 무궁화가 겨레꽃이 되는데 큰 공헌을 한 한서(翰西) 남궁억(南宮檍)의 정신을 군민정신으로 승화시키고, 군민 화합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1977년부터 개최하고 있다. 한서문화제위원회가 주최하고 홍천문화원, 홍천군체육회, 한국예총 홍천군지부가 주관한다.
민속행사로 민속경연, 줄다리기, 씨름, 그네, 족구가 열리고, 문화예술행사로 종합예술제, 무궁화학생사진전, 무궁화분재 및 야생화 전시회, 전국 사진공모전, 무궁화그림 전시회, 군민노래자랑, 전국 한시백일장, 전국청소년무궁화대전, 무궁화사랑 강연회, 외국인 주부 바자회, 도자기 물레 시연, 전통체험 마당, 사진촬영 시연 등이 펼쳐지며, 체육행사로 축구, 테니스, 궁도대회, 게이트볼, 육상, 족구가 열린다.
강원도 인삼의 우수성을 알려 타지역 인삼과의 차별화를 꾀하며, 강원도는 6년근 인삼의 고장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여 '인삼의 고장은 강원·홍천'이라는 이미지를 확산시키기 위해 2003년부터 열리고 있다. 강원도와 홍천군이 주최하고, 강원홍천인삼축제위원회와 강원인삼농협이 주관한다.
기념행사로 천신제, 개막식, 개막공연, 불꽃놀이가, 무대행사로 국악한마당, 실버가요제, 인삼가수왕 선발대회, 연예인 초청공연, 인삼가족노래자랑, 전통택견시범공연, 품바공연, 두드락공연 등이, 참여행사로 인삼요리경연대회, 인삼요리시식회, 인삼왕선발대회, 인삼관련 어린이 글·그림 잔치, 인삼채굴행사, 인삼주 담그기, 백삼만들기, 전통놀이체험, 즉석 이벤트 등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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