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조사는 예술!
최봉호
예전 직장 선배한테 전화가 갑자기 걸려왔다. 정의감에 불타있는 다소 흥분된 목소리였다. 다짜고짜 내게 한 말은 통계조사원이 소득 조사하러 집에 왔는데, 엉터리로 조사한다는 얘기였다. 선배는 조사가 대충 이루어지고 있다는 내용을 현직에 있는 젊은 직원들에게 일러주기가 뭣해 내가 생각나서 전화했다고 한다. 그 선배의 성격을 아는지라 맞장구를 치고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다시하기로 했다. 다음은 그 선배와의 대화 요지다.
“조사원이 소득과 지출항목을 적어놓은 우리 집 가계부를 회수하러 왔는데, 너무 대충하고 있어요. 예전에 내가 했을 때는 정확하게 했는데 너무 엉터리이에요.” 그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들린다.
“예, 매월 작성하는 가계부 방식이나, 연간으로 조사하는 설문서 방식, 모두 소득 파악이 참 어렵습니다.” 나도 적극 동조했다.
“조사를 불응하는 가구도 속출하고 있어요. 지금 발표되는 모든 통계가 다 부실해요. 이렇게 만들어진 통계는 현실과 전혀 맞지 않고, 쓸 수 있는 자료가 아니에요. 개선책이 나와야 되고 숫자 보정이 필요할 것 같아요.”
“예, 조사된 그대로 발표하면 큰일 날 것 같습니다. 과학적으로 보정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 직원들은 현장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아요. 저도 고민 하겠습니다.”
어느새 내 입에서도 선배와 비슷한 우려의 소리가 나왔다. 선배와 통화하면서 현직에 있을 때 경험했던 일이 생각났다. 나는 전 국민을 조사하는 인구센서스에 기획자로 여러 번 참여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오랜 동안 이 업무에 매달렸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항상 바쁘다고 했다. 아내는 매5년마다 하는 일인데, 왜 매일 바쁘냐고 불만을 표시했다. 아내는 인구 헤아리는 일을 쉽게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모든 사람을 일정시점에 빠짐없이 정확하게 일일이 헤아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어떤 사람은 병원에 입원해 있고, 어떤 사람은 해외여행 중이고. 노숙자도 있고, 유치장에 가 있고 등등 사유로 빠지기가 십상이다.
게다가 조사원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문을 두드릴 때 문을 안 열어주는 집이 많다. ‘90년과 ’95년 인구센서스 때는 아내에게 직접 조사원 생활을 해 보도록 했다. 100여 집을 찾아다니면서 일을 하다가, 중간에 수당이고 뭐고 그만 두고 싶다고 했다. 몇 명이 사는지, 직업이 뭔지 등, 남한테 개인 프라이버시 정보를 얻어내는 일이 무척 어려운 일임을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이후엔 내가 집에 늦게 들어오면서 인구조사 때문에 바빠 그랬다고 핑계를 대더라도 아내는 별 내색이 없다.
좋은 통계가 되기 위해서는 통계가 정확해야 하고, 속보성을 가져야 하며, 이해하기 쉽게 표현돼야 한다. 이와 같은 조건 중에서도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정확성이다. 선배도 자기 집에 찾아온 조사원이 조사를 대충하는 걸 보고 한탄을 한 것이다. 통계가 정확하게 만들어지려면 현장에서 잘 되어야 한다. 현장에서 대충 수집된 자료는 단순한 정보에 불과할 뿐 통계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일반사람들은 현장 업무를 아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본다. 그러나 가정이나 농가, 사업체로부터 소득, 생산량, 매출액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많은 아파트에는 입구에 잠금장치가 되어 있어 출입하기조차 어렵다. 어렵게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집에 아무도 없는 경우가 많아 조사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운 좋게 응답자를 만난다고 하여도 정확한 답변을 얻어 내는 일 만만치가 않다. 속마음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수년 전, ‘한 끼 줍쇼’라는 TV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유명한 두 연예인이 저녁 한 끼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미션장소인 동네로 가서 무작정 아무 집의 초인종을 눌러 밥 한 끼 달라고 하는 것이다. 성공하면 들어가서 한 끼 대접받으며 그 집 식구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사전 섭외를 하지 않아서 인지 퇴짜 맞는 경우도 보여주었다. 심지어는 성공했다 하더라도 집안사람들 중 일부가 촬영을 거부하는 바람에 도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유명 연예인들도 집집을 방문해 협조 얻는 걸 힘들어 하는 판에, 인지도가 없는 조사원들이 집집을 다니면서 정보를 캔다는 건 참 지난한 일이다. 나도 어느 종교단체를 불쑥 찾아가 설문조사를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험악한 분위기에 애를 먹은 적이 있다. 또 한 번은 아파트 한 동 서른 여 집을 식은땀을 흘리면서 어렵게 조사해보았던 일도 기억난다.
하여튼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일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장조사가 부실하게 이뤄지게 되면 당연히 그 결과도 전혀 쓸모가 없게 되는 것이다. 나는 ʻ현장조사는 예술이다!ʼ 라는 말을 종종 했다. 주어진 매뉴얼에 따라 기계적으로 한 조사로는 진심이 담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말이다. 하나의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장 요원들은 장인정신을 가져야 한다. 대상자와 조사원 간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현장업무는 조사에 대한 전문지식, 경청과 말하기 등 의사소통능력, 풍부한 인생경험, 인내심, 순발력, 친화력 등이 모두 요구되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장인정신을 갖는다 함은 이와 같은 능력을 두루 갖추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세상은 거대한 만남의 현장이다. 현장 조사하는 분들은 상대방과 진정으로 만나야 한다. 그래야 정확한 통계가 만들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응답자를 만나고 정확한 답변을 얻어내기 위해 전국 현장에서 발로 뛰고 있는 수천 명의 현장 조사원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첫댓글 최봉로 수필가님,
올려주신 <통계는 예술이다> 글 잘 읽었습니다.
저의 집에도 더러는 많은 통계조사원이 조시를 하러 온 게 생각이 납니다..
통계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하는 좋은 수필입니다.
글을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집마님께, 매번 긍정적 좋은 답글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기운을 바탕으로 좀더 고민해서 쓰고자 하는 힘을 받고 있습니다. 글 쓰기가 쉽지 않음을 느낍니다. 새로운 한 주 즐겁고 힘차게 맞이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