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오카 1 - 하치노헤에서 모리오카에 도착해 광장에서 니또베 이나조를 만나다!
2022년 10월 28일 아오모리현 도와다코 十和田湖 호수 야스미야 休屋 버스터미널에서 3,050엔에
표를 끊어 버스를 타고 오이라세계류 奧入瀕溪流 를 지나 도와다시 十和田市 미술관을 거쳐
하치노헤 八戶 에 도착해 창구에서 3560엔 하는 모리오카 (盛岡) 행 기차표를 끊어 신칸센을 탑니다.
우린 시테이세키(지정석) 가 아닌 지유세키(자유석) 표를 끊었는데 기차는 전량 지정석 인지라 출입구에
가까운 빈 자리에 앉아가는데 한 정거장인 모리오카에 기차가 서는지라 내려서 모리오카(盛岡) 역
으로 들어가 동구로 나가 역광장을 구경하노라니.... 불현 듯 옛날 이 도시를 여행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하치노헤역사 내에 사진들이 많이 붙어있는데 그중에 일본 3대 종유 동굴인 암천정
에 있는 龍泉洞(용천동) 이 눈길을 끌건만..... 시간이 바쁘니 볼수는 없습니다.
여기 하치노헤 에서 모리오카 까지 도호쿠혼센(동북본선) 신칸센은 2002년에
연장되었는데 14시 16분발 도쿄행 기차는 전석 지정석 이라 자리가 없네요?
일본인들은 좌석표가 없으면 지정석 차량에 들어오지 않고 자유석 차량 을 찾아가는데
그마저 다 차면 차량내에는 아예 들어오지 않고 차량 연결부위 문앞에 서있으니...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메이와쿠 めい-わく (迷惑) 가케루나" 라는 일본인의 문화라!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첫 수업에서 배우는 사회윤리 교육의 핵심인데 유치원 입학전 가정에서
엄마가 질서라는 이름으로 교육하니 동일본 대지진 에서도 혼란없이 질서를 유지했으니
파이낸셜 타임스는 “일본 시민의식은 인류 정신이 진화한다 는걸 보여줬다”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린 원리원칙과 정해진 매뉴얼 을 고집하는 답답한 일본인이 아니라, 요령 좋고 융통성
있는 한국인이니..... 빈자리가 있는데 서서 갈 필요는 없는지라 출입문 옆 빈자리 에 앉습니다.
이윽고 이와테 岩手(암수) 현의 현청소재지인 모리오카 盛岡(성강) 역에 내리는데 8월 1일
부터 4일 까지 개최되는 모리오카 산사 마쓰리 포스터가 도배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산사 축제 는 8월 1일부터 4일간 황혼인 오후 6시반 모리오카 시청과 현청앞 주오도리
에서 북소리가 울려퍼지면..... 유가타를 입은 2만명의 무희가 춤을 추며 행진합니다.
피리와 북소리 장단 에 맞추어 미스 산사의 화려한 북 퍼레이드 와 아이들 산사에 전통
산사등 150여팀이 행진한 뒤에는 누구나 참여하는 원형춤을 추는 무용 이 이어집니다.
시민 문화홀에서는 산사 경연대회 가 벌어지는데, 옛날 미츠이시 신사에서 악행 귀신 을
퇴치해 달라고 비니 손바닥 자국을 남기며 도망간 것을 축하한데서 유래 한다네요?
역 바로 앞에 위치한 도요코인 東橫 イン 모리오카에키마에 호텔에 체크인을 하는데
원래 4시 체크인 이지만 우린 인터넷 에약시 빠른 체크인 을 선택한지라
3시 정각 에 열쇠를 받아 방으로 들어가서는 샤워를 하고 잠시 쉰다음 바로 나옵니다.
모리오카 역 광장을 둘러 보노라니 동상 이 하나 서 있는데....
명문을 읽어 보니..... "이나조 니토베" Inazo Nitobe 라?
아래쪽에 작은 글씨로 許文龍(허문룡) 대만, 2012년 10월 24일 이라고 적혀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허씨들은 많이 사니 김해허씨와 양천 허씨등은 모두 같은 뿌리라고 합니다.
허문룡(許文龍) 씨는 합성유지회사로는 세계 유수의 대만 치메이 실업 그룹의 회장인데
2000년 대만 총통 선거에서 독립지지파인 천수이 볜(陳水扁) 총통을 지지합니다.
이후 중국대륙에 벌여놓은 기업이 노골적인 배척을 당하자 입장을 바꾸어 “대만과 중국
은 하나의 중국 에 속하며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 라고 말한 사람인데?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나조 니토베 Inazo Nitobe 란 서양식 성명 표기법이고 일본식
으로는 니토베 이나조 (新渡戸稲造) 이니 일본 화폐 5천엔권 에 나오는 인물이니...
그럼 니토베 이나조 동상을 세우는데 돈을 댄 사람이 대만의 사업가 허문룡이라는 것일러나?
니토베 이나조 는 메이지시대에 독일과 미국에 유학하고 와세다 대학교, 버클리 대학교,
스탠포드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및 제네바 대학교 교수 를 역임 했습니다!
유엔 사무차장 을 지냈으며 도쿄여자대학을 설립하고 도쿄대 총장 을 역임한
인물로 무엇보다도 “武士道 무사도“ 라는 책을 써서 유명해진 사람인
데, 도쿠가와 이에야스 의 유훈이며 “꽃은 벚꽃, 사람은 무사” 라는 말 처럼....
오이시 구라노스케 를 수장으로 하는 아코로시 47인의 무사 같은...
유명한 인물들의 언행과 행동을 예시로 하여 의리, 용기 인내, 충의, 봉공 등
무사도 가 담고 있는 가치를 설명하는 책이 그가 쓴 “무사도” 입니다.
러일전쟁 시 일본은 머나먼 만주 까지 보급선이 엄청 길어지니 전비 조달이 어려워져
탄약과 무기 및 식량부족 에 허덕이는데..... 지모가 남다은 이토 히로부미 는
두뇌회전이 빠른데다가 혜안이 있었으니 이런 사태를 예상하고 미리 조치 를 해둡니다.
어느나라나 마찬가지이지만 중세 사회에서는 전통과 명예 를 중시하는데 일본
역사에서 동시대인을 넘어 발상의 전환으로 현대인과 같은 생각 을 한 자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 세사람 이라고 봅니다.
이토 히로부미 는 러일전쟁 전에 하버드 로스쿨 출신 가네코 겐타로 를
미국에 보내 하버드 대학교 동문이자 절친인.....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에게 니토베 이나조 의 "무사도" 책을 선물합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은 이 책을 읽고 일본 무사도 정신에 흠뻑 빠져
스스로 진심을 가지고 "친일파" 로 자처했으며.....
거기에 그치지 않고 책을 대량 구입해서는 미국의 지인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일본은 청일전쟁 영웅 도고 헤이하치로 가 이끄는 일본 연합함대가 쓰시마해전에서 러시아
해군을 격파하자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종전 중재 를 요청하니 루스벨트는 러시아와
일본대표를 미국 동부 포츠머스 에 불러 러시아를 윽박질러 "종전협정을 강요" 했던 것이라!
이런 인연으로 이토 히로부미 내각에서 육군대신을 지낸 조슈번 출신 가쓰라 다로 총리는
미국 육군장관 태프트와 "필리핀은 미국이, 조선은 일본" 이 갈라먹기로 협정하니
이른바 태프트~가쓰라 밀약 으로 이를 바탕으로 을사보호조약(늑약) 을 체결했던 것이라?
그전에 니또베 이나조 는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고 프랑스가 베트남, 영국이 말레이시아를
지배하는 방식으로 일본제국도 구미제국 처럼 식민지 를 통치한다는 상식을 전파했습니다.
이때 미국 순방단에 루즈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 가 있었으니 서울을 방문하자 고종황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환대하니 도로에는 조선인들이 늘어서서 청홍의 장명등과
성조기를 흔들었으며 오찬장에는 고종황제가 앨리스와 같은 테이블 에 앉아 선물을 전합니다.
일본의 만행 을 알리려고 "명성황후의 무덤 홍릉" 에서 야외만찬을 열었는데 입에는 시가
를 물고 말을 탄채 능에 들어선 그녀 는 석상 위에 올라타고 사진 을 찍으며 놉니다.
그러고는 샴페인을 마시고 말을 타고는 일행과 함께 쏜살같이 질주해 사라져 갔던 것이라!
도쿄에서는 이미 한달여전에 조선을 일본에 주는 가쓰라-태프트 밀약 이 맺어졌는데도
국제정세아 어두운 고종만 몸이 달았던게 아니니, 대한매일신보 는...
“연약한 미국 공주가 이런 장거리 항행을 해서 한국에 온 것은 참으로 보기 드문 일이다”
“그녀의 방문으로 한국의 산천은 더욱 빛나고 초목이 영광을 품었다” 고 보도했으나
미국 부영사 윌러드 스트레이트는 이러한 앨리스의 한국 방문 환대는
마치 “황달에 걸린 그들의 상상력에 구명대” 같은 것이었다고 묘사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1934년 자서전에서 “조선은 속수무책으로 일본의 손아귀로 끌려들어가고
있었으니 이 황실도 얼마남지 않았다”라고 적었으니, 그녀와 미국
관리들은 망국을 알면서도 환대를 즐겼던 것이니..... 그 음흉함 을 알만 하네요!
그러고는 관광안내소에 받은 시내 지도를 들고는 1일 시티 투어 승차권 으로
300엔 하는 시내 순환 버스인 덴덴무시 でんでんむし 를 탑니다.
버스는 시가지를 천천히 달리는데 20분 가량 지났을까? 9번째 정류소인
本町通1丁目 에 내려서는 鬼の手形(귀노수형) 신사를 찾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