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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정보
추정강숙려의 풀꽃 문학
 
 
 
카페 게시글
긴 예술 단상 스크랩 [?주부생활수기 최우수 수상작] 꿈꾸는 그릇/ 박은숙
추정강숙려 추천 0 조회 45 13.04.19 20:3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꿈꾸는 그릇/ 박은숙


한때 그릇 모으기는 나의 큰 즐거움이었다. 빠듯한 살림에도 한 푼 두 푼 모아 영국 황실풍의 장미 찻잔이며 눈으로 요리를 먹는다는 화려한 일본의 밥공기, 꽃이 흐드러지게 핀 이태리 과일 접시 등을 사모았다. 그릇들을 하나씩 살 때마다 나는 마치 보물이라도 얻은 양 며칠을 설레는 마음으로 닦고 만지고 들여다보았다. 이국적인 찻잔과 그릇들을 마주하면서 난 영국 황실에 초대라도 받은 듯, 이태리의 어느 근사한 식당에서 요리를 먹고 후식을 즐기는 듯, 소박한 식사와 디저트를 이웃들과 나누며 잠시나마 일상을 잊고 행복에 젖었던 것이다.

이제는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 장식장을 빛내는 화려한 그릇들보다 투박해도 무던한 질그릇이 더 좋다. 꽃의 화려함이 한때이듯 삶도 이제는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보다 친근한 얼굴처럼 편안한 것들이 좋은가보다. 장식장을 차지한 매끄러운 그릇들은 기분 전환하고 싶을 때만 가끔 찾을 뿐 소박한 질그릇들에게 더욱 쉽게 손이 간다.
질그릇은 눈길을 확 사로잡는 강렬함은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모진 세상을 살아낸, 자기주장을 다른 사람과 잘 화합시킬 줄 아는 중년의 넉넉함과 같은 수수한 빛을 낸다. 그래서 생선과 육류, 과일과 밑반찬, 그무엇을 담아도 자신보다 담아낸 것들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조화롭게 한다.

 

여기저기 긁힌 상처도 삶의 연륜처럼 오히려 멋스러우며, 간혼 살점이 떨어져나간 그릇들도 세월의 손길에 닳고 닳아 주름마다 지혜가 깃든 노인들처럼 나름대로 골동품 같은 향기를 낸다. 또한 질그릇들은 모양과 색깔이 달라도 저네끼리 무리무리 구별 짓지 않는다. 이것저것 마구 섞어 놓아도 한집에서 태어난 형제자매처럼 잘 어우러진다. 마치 피부색과 생김새는 달라도 인류는 한 형제인 것처럼.

그러고 보니 질그릇의 탄생 과정과 존재의 의미가 우리의 삶과 흡사한 성깊다. 도공의 손에서 흙으로 빚어져 가마 속에서 불의 시간을 견뎠을 흙덩이들, 뼈를 녹이는 고통이 저를 삼키고 영혼까지 속속들이 달구어졌을 때 비로소 푸른 하늘이 열리고 지저귀는 새소리에 귀가 열리고, 한낱 흙이었던 몸뚱이에 뜨거운 존재의 피가 흐르는…….

우리 인생도 그러하지 않는가? 흙으로 빚어져 고난을 통해서 삶의 진실에 하나씩 눈뜨게 되지 않는가?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들이 찾아올 수 있을 것이고 나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함께 꿈을 키워 나가자던 남편의 말만 믿고 덜컥 불가마 속을 뛰어든 길, 내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나선 그 길엔 박봉의 남편 하나만 바라보는 부모 형제만 있었을 뿐 꿈은 없었다. 대출로 시작한 삶은 늘 가파른 산복도로 계단처럼 위태로웠고 오랜 병의 뒷바라지가 나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어린 아이들만이 내 유일한 버팀목이었고 하루하루 사는 나에게 더 이상 내일을 꿈꾸는 일은 없었다. 내 숨결조차 버거워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고 이대로 잠들었으면 이대로 잠들었으면, 주문처럼 되뇌이던 순간들, 뼈를 녹이고 내 영혼까지 달구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시련이 눈을 뜨게 하였다. 불구덩이에서 단련을 받고 나서야, 시련의 시간들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리고 여태껏 어리석어 보지 못했던 삶에 있어 진정 소중한 것들이 어렴풋이 보이게 되었다.
수줍게 형수를 챙기던, 지금은 가고 없는 시동생의 따뜻한 정이 보이고 때론 그런 시동생과 많은 짐을 내게 지워준 부모님을 원망했던 나의 철없음이 보이고 쌀 한 톨, 시든 채소라도 궁색한 살림에 보탬이 될까 끝끝내 챙겨주시던 부모님의 마음이 보이고 나의 아픔에는 참 무심했지만 부모님에게만큼은 그럴 수 없이 깊었던 남편의 효심이 보였다. 그리고 나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나를 붙들려고, 내게 그 당시의 우울한 형편을 감출 수밖에 없었던 나에 대한 남편의 사랑이 이제 뒤늦게라도 보이는 것이다.

한낱 흙덩이였던 내가 이 불가마 속을 지나고서 새롭게 감사한 것들 은 무엇일까? 가시가 있어 감사를 알게 하니 감사하고 그 옛날, 도저히 찾아올 것 같지 않았던 태양이 내 머리 위를 비추니 감사하고 이전의 배고픔을 기억하며 따뜻한 밥 한 그릇에 감사하고 아버님의 든든한 울을 늦게나마 깨달아 감사하고 냉정함으로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 여러 얼굴들이 감사하고 고구마 몇 개, 호박죽 한 그릇이라도 나눌 수 있어 감사하고 저라도 잘 살아주어 감사하다. 살아 있어, 모두들 살아 있어 진정 감사하다.


찬장 속의 그릇들을 하나씩 꺼내본다. 오늘 저녁 메뉴는 비빔밥, 고슬고슬 밥은 큼지막한 대접에 담고 콩나물, 호박 나물, 무채 나물은 둥글거나 네모난 접시에 그리고 종지에는 고추장과 참기름을 각각 담을 것이다.

식탁 위의 그릇들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릇들은 둥근 것은 둥근 대로 모난 것은 모난 대로 깊고 얕은 제안의 것을 다 비우고 있다. 또한 다 채우고도 있다. 크고 작은 욕심과 마음을 비우는 것이 곧 우리의 생을 넘치도록 풍요롭게 채우는 것이라고 말해 주는 듯이.

 

나는 신이 흙으로 빚은 하나의 질그릇, 언젠가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안에 무엇을 담고 무엇을 비울까? 기쁨은 이내 비우고 미움과 원망만 오래 담아두진 않았을까? 끝없는 욕심은 비울 줄 모르고 내 그릇만 작다고, 더 큰일은 감당할 수 없다고 고함치진 않았을까?

이제 나는 슬픔과 욕심은 빨리 비우고 기쁨과 소망을 오래도록 담아두는 그릇이고 싶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질그릇 같은 편안하고 변함없는 얼굴이고 싶다. 생채기 난 가슴으로도 그 옛날, 잊었던 꿈을 다시 꾸고 싶다.

상처가 오히려 아름다운 무늬로 새겨지게 생의 쓰고 단 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둥글면 둥근 대로 모나면 모난 대로, 환하게 웃는 저 햇살을 그 모습 그대로 들어앉히고 싶다. 힘든 일이 닥치면 잠시는 흔들리리라. 그러나 나는 영영 쓰러지지 않고 영영 포기하지 않고 내일을 꿈꾸기를 멈추지 않으리라.
불가마 속에서도 생명을 꿈꾸는 질그릇처럼.

 

 

출처: 고려원북스 '꿈꾸는 그릇' - 1억원 고료 수상작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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