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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 지음 / 223쪽 /값: 16,000원
사진 읽어주는 여자, 김윤수
이 책은 13년 경력의 잡지 기자ㆍ편집자인 김윤수가 읽어주는 17인17색 한국 사진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담고 있다. 이들 사진가는 지난 13년 동안 김윤수와 함께 작업하거나 또는 그녀와 인터뷰한 인연으로 여기 한 권의 지면에 같이 묶였다. 순수사진을 찍는 아티스트와 상업사진작가가 이처럼 한 자리에 모이는 일 자체가 드문 일인 데다, 그 면면이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한국 사진의 현주소를 가늠케 할 만큼 다채롭다. 나날이 한국예술계의 큰 부분으로 성장해 가는 사진 분야를 안팎으로 다양하게 조명하며, 풍성하고도 가지런하게 보여주는 역작이라고 할 만하다.
22년 동안 작업해 온 소나무 시리즈로 유명한 배병우. 백자 시리즈로 대작의 탄생을 예감케 하는 구본창. 정규교육 없이 일가를 이룬 김경태(K.T.Kim이란 이니셜로 더 유명한)의 고양이 사진. 사진이라는 평면에 새로운 깊이를 불어 넣는 이윤진의 디아섹 프레임 사진들. 칼날 같은 플래쉬가 터지는 순간 인물을 도려내듯 사진을 찍는다는 오형근의 여고생 사진. 한국보다 독일이나 유럽에서 더욱 인정받는 천경우의 작품.
렌즈를 통해 특정한 장소의 향을 들여다본다는 윤석무, 사랑해서 참 다행이었다는 김지양. 따뜻한 시선으로 빚어낸 기품어린 빛의 사진가 어상선, 금세라도 기타소리 울려나올 듯한 시칠리아 사진으로 만나는 양현모. 늘 새로운 시작을 계획하는 박경일, 가장 드라마틱한 앵글을 빚어내고야 마는 순수한 열정의 소유자 조정환. 차가우면서도 지적인 북유럽의 감성으로 사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김현성, 서울의 101가지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최민호, 하루하루 살맛나게 다큐멘타리 작업을 펼치는 박기호, 외면과 내면 사이에 얽힌 일상적 모순을 기록하는 문형민, 느긋한 목소리와 어눌한 웃음으로 한없이 자연스럽고 여유로운 사진을 길어내는 박지혁.
넌지시, 사진을 보다
김윤수가 이런 사진가들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하는 방식은 참으로 은근하다. 사진을 사진으로 보는 게 아니라 생활로 보고 감각으로 본다. 김윤수는 사진을 ‘넌지시’ 읽어주는 여자이다. 그렇게 은근하게, 크고 작은 발견의 재미들을 만끽하다 보면, 어느 순간 사진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는 것.
17명의 사진가들을 17가지 테마와 짝짓고서는 각 테마에 대한 에세이 한 편을 통해 사진과 대화하는 법을 소개한다. 각 장 말미에는 사진가의 프로필과 짤막한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이를테면, 배병우 선생이 22년 간 찍은 소나무 사진이 왜 요리와 같다고 생각하는지, 구부정하게 걸어 다니면서도 모든 미세한 호흡을 다 주워 담을 듯한 예리한 감성을 뿜어내는 사진가는 누구인지(정답: 윤석무), 천경우의 ‘나를 찾는 시간 여행’ 그 야간 고공비행에 함께 하는 음악은 어떤 것들인지 일러주는 기사들이다.
김윤수, 그이가 등장시키는 발견의 조연자들 또한 다채롭기 그지없다. ‘안녕! 스파이더 릴리’를 외치는 사랑스런 딸 정후, 천리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을 일군 벽안의 미국인 민병갈 원장, 8살짜리 아들의 야광시계를 차고 풍요로워 보이던 불문학과 지도교수 최윤 선생, 조선 백자와 만나게 된 인연을 갈무리한 구본창 선생의 작업 노트,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20대의 뒤태를 보여주는 디자이너 진태옥, 왁자지껄 연기가 마구 피어나는 고깃집에서 “이곳이 바로 천국”이라고 외치던 아버지 등등….
사진의 발견, 제목 붙이기 논란
이처럼 책이 담고 있는 내용으로 보자면 이 책의 제목은 <사진 읽어주는 여자>여야 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제목을 끔찍이도 얄팍하게 여겼고, 출판사 사장 또한 차마 그 정도로 염치가 좋진 못했다. 그래서 떠오른 갖가지 제목이 <사진, 생활의 멋을 담는 그릇>부터 해서 <사진의 정원>, <불멸의 앨범>, <빛과 그림자의 사이에서>, <따뜻한 사진, 뜨거운 대화>, <칼날같은 플래쉬가 터지는 순간>까지 허다했다(참, 한때 <안녕, 스파이더 릴리>까지 물망에 올랐다).
기존 책 제목을 패러디하는 데는 주저하던 출판사 사장이 냉큼 영화제목을 패러디해 만들어낸 <사진의 발견>은 막판에 ‘17+i’라는 접두사를 붙이는 정도의 마무리 손질 끝에 결국 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 작가는 끝까지 다른 대안을 찾으려 발버둥 쳤으나, 나홀로출판 사장의 외고집을 꺾기에는 역부족. 어찌되었든 요즘 ‘머머 읽어주는 여자’가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을 보면 진작부터 다른 제목을 찾길 잘 했다싶다.
발견, 그것은 호기심 기울이는 자들에게 베푸는 생의 선물 같은 것. 칼날 같은 플래쉬가 터지는 순간 사진 속에 고정된 128가지 이미지들. 김윤수의 톡톡 튀는 에세이들을 똑똑이 삼아(아, 그녀의 동그란 목소리는 우리의 호기심을 무지개빛으로 물들인다~) 이 풍성한 사진의 정원 열일곱 마당을 거니노라면, 놀라운 한국 사진의 테마파크 속에서 발견의 재미는 끝이 없다.
---------------------------------------- 저자소개 김윤수는 1969년생으로 서강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행복이 가득한집>, <마리 끌레르>, <마담 휘가로>의 기자를 거쳐 <오뜨 젠느>와 롯데호텔 버십 매거진 <프리빌리지>의 편집장을 지냈다. “(…) 기자로 지낸 4천 5백여 일 동안 나는 공적인 사생활 침입자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내 주변에는 희한한 사람도, 재미난 사람도, 대단한 사람도, 특이한 사람도 많다고 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사람만이 가장 흥미롭고 가슴 진한 감동을 전해 주는 유일한 주제였기 때문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