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문 풍경>>
<해찰에 대하여> 外 47편
도서출판 북인
작가의 말
제일 먼저 가을이 오는 것을 알리는 것은 잣나무다. 낙엽이라 하기에는 조금 저어되지만 낙엽 중에 첫 번째고 가장 정갈한 것이 잣나무 가리비다. 황금빛 융단처럼 떨어져 누운 가리비는 온유하고 의젓하고 가지런하다. 세상에 평화가 있다면 잣나무 가리비가 쌓인 곳일 거라는 생각은 가을이 알려준 것이다. 키가 크고 잎이 너른 신갈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가 잎이 지고 나서야 아이들 키만 한, 크고 작은 단풍나무들이 비로소 햇볕 속에 노랗게 물든다는 것도, 하룻밤 사이에 빨갛게 변한다는 것도 이 가을이 알려주었다. 떨어진 낙엽들은 바람에 별 수 없이 이리저리 날린다. 두 번째 수필집을 내기로 했다.
등단한 지 십 년이 지나갔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4년쯤의 언저리에서다. 문학이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 그런 어려운 건 전혀 모르는,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했던 때다. 문득 문득 이렇게 글을 써도 되는 건가 하는 허기가 가끔 스쳤다. 그러고는 끝이었다. 그해 봄 광주에 조문을 가야 해서 용산역을 갔다. 시간이 조금 남아 코너에 있는 간이서점에 들렀다.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라는 단행본이다. 강렬한 붉은 표지와 김수영이란 이름에 끌려 기차 안에서 읽을 생각으로 책을 샀다.
버릇처럼 책을 읽다 한 구절에 멈췄다. "현실에 대한 비관적 감각. 이상을 꿈꾸는 집요한 이성. 타인을 감동시킬 수 있는 새로운 표현"이라는 김수영의 시를 평하는 문구다. 어떤 한숨이 책을 덮게 했다. 그 후로 이 글귀는 문득문득 나를 성가시게 했다. 그해 겨울이었다. 우연하게 평론가 신형철의 글에서 똑같은 성가심을 받았다. "산문에는 두 종류가 있다. 시가 된 산문과 그냥 산문, 시를 꿈꾼 흔적이 없는 산문은 시시하다. 예술은 먼저 예술 자체를 혁신하면서 우선 인간을 바꾸고, 멀게는 제도의 변혁에 기여하겠다는 가망 없는 희망에 헌신해야 한다." 그의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에서다.
그냥 저냥 시간은 흘렀다. 가끔 위의 두 글귀가 나를 휘청거리게 했다. 그래 생각했다. 사람으로 생긴 슬픔을 돌아보자. 누군가 한 사람 아파하고 외로워지거나 위로될 수 있다면, 넋두리가 될망정 사람으로 된 슬픔을 적겠다. 그것만 생각하자. 턱도 없는 교만인 줄 안다. 일도 없는 희망인 줄 안다. 실패할 것이다.
얼떨결에 첫번째 수필집을 내고 많이 부끄러웠다. 두 번째인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누구는 세상을 떠날 때 글을 전부 없애달라고 했다지만 미련한 나는 글을 남기려고 한다. 무엇엔가 쫓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두해 전 짧은 시간 기억을 잃은 사태(?)를 당한 후부터다. 이런저런 것들에 버틸 수 있었던 건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생생함 때문이었다. 최소한 그것이 가치 없는 일은 아니라는 위안이다. 엇나가기만 한 이 미련한 아들을 내색하지 않으신 아버님 영전에 엎드려 울며 이 책을 올린다.
2026년 4월
박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