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읍내 나갔더니 안산의 금메달 축하 플랑카드가 강진고 1회, 2회 동문 명의로 두 개나 시내에 걸려있었다. 엥? 안산이 강진출신이었나? 급 찾아보니 부친이 강진출신이었고 본인은 강진에서 학교를 다니진 않았다. 그렇다면 부친의 동창회에서 플랑카드를 달았을까? 마녀사냥당하는 안산을 옹호하는 플랑카드라면 단순히 금메달 축하 플랑카드일 리 없다. 이상하다. 아무튼 여기는 과장이나 중령진급해도 플랑카드가 걸린다. 아직 진급축하 마을잔치를 하기도 한다. 기쁨을 나누는 마음과 미풍양속이라 이해할 부분도 있지만, 내부식민지로서 계급과 서열에 더 민감한 것을 실감한다.
그나저나 안산을 둘러싸고 남혐여혐이 다시 불을 붙었다. 그녀가 광주출신이라는 점과 눈에 띄게 짧은 단발이라는 점이 극우를 자극했을까? 소위 극우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기에 적합한 대상으로 의도적으로 선택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분노와 혐오가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사회적 결집 에너지로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방아쇠가 당겨지니 바로 튀어나왔다. 선거철이 다가오니 당분간 각종 갈등과 혐오 미끼들이 넘치는 건 당연하다.
10대 학생을 만나며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여학생 중 남혐을 내면화한 친구들이 많고, 반대로 남학생은 여혐을 내면화한 친구들이 의외로 많았다. 10대 20대 남성보수주의자들이 반페미로 정체성을 확립하며 점차 극우가 되어가고 있다. 이준석 대표가 여가부 폐지를 이야기했던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하층으로 갈수록 남혐여혐은 더 심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고 감상문을 내는 숙제를 냈더니 한 학생은 봉준호의 인터뷰 중 봉감독이 '설국열차'의 터널을 여성의 질로 비유해 봉준호 감독을 혐오한다며 보기를 거부해 대체숙제를 냈던 적이 있다. 황지우 시인의 강연이 있기에 소개했더니 과거 한예종 시절 발언이 여성차별적이라고 거북해한 학생도 있었다. 젠더감수성이 있는 것은 좋으나 예민함이 지나치거나 성급한 판단들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문제의식은 격려할 만하지만 심히 우려가 되었다. 이렇게 계급갈등이 성갈등으로 둔갑했다. 일베와 메갈 10년이 지나면서 우리사회는 혐오사회로 진입했다.
계급갈등을 지역갈등,세대갈등,인종갈등, 성갈등으로 바꿔치기하는 것은 보수지배권력의 장기집권을 보장하는 기법이다. 이미 미국 등 세계적으로 벌어진 일이기도 하며, 이를 잘 알고 있는 보수권력과 언론이 의도적으로 조장하고 강화한 것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소위 진보도 사분오열 낭자해졌다.
하지만 혐오로는 혁명도 민주주의도 불가능하다. 혐오는 독재를 예감하게 할 뿐이다. 혐오의 방아쇠는 계속 당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