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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신명기-073 꿈과 이적을 조심하라(신명기 13장 1-5절)
성경말씀은 신명기 13장 1절에서 5절까지 봉독합니다.
[신명기 13장]
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2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3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4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하고
5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여 취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케 하려 하며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 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여기 신명기 13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생활 해 가는 가운데 주의할 사항을 가르치고 있는데, 무슨 내용이냐 하면,
[신명기 13장]
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어떤 선지자가 나타나서 어떤 선지자 꿈꾸는 자가 나타나서 꿈을 해몽한다든지 해서 그 꿈대로 어떤 이적이 막 일어나고 표적이 일어나고 그 꿈으로 예언한 것이 막 성취가 되고 해도 그걸 따라가지 말라는 거예요. 이것 아주 위험하거든요.
대개 이 꿈이라는 것이 한 세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꿈이 있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보여주시는 그런 계시적인 꿈도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몇 번 그런 일이 있죠? 그 흔히 있지 않지만 어떤 사람에게 그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 주는 그런 계시적 꿈이 있습니다.
또 어떤 꿈은 내 자신이 어떤 생각에 너무 몰두해서 낮에 깨어 있을 때 각성된 상태에서 어떤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마음에 사무쳐가지고 자기 꿈을 자기가 꾸는 거야. 그런 꿈도 있어요. 특히 어릴 때 그런 꿈을 많이 꾸죠.
그 다음에 마귀가 갖다 주는 꿈이 있는 거야. 마귀가 우리 마음속에 이상한 생각을 집어넣어 그래서 그 꿈이 마귀가 주는 꿈도 그대로 이루어지는 수가 있죠.
그런데 그 이루어진다고 해서 따라 가면 안 되는 거야.
우리는 그저 ‘아. 꿈이 맞다.’ 그러면서 또 따라가면 안 돼. 꿈이 맞아도 그 꿈 너무 따라 가면 안 된다는 거야. 그야말로 그 꿈같은 소리 그 잠꼬대 같은 소리야.
그래서 아예 일단 대부분의 꿈들은 다 일단 무시해 놓고 보세요. 무시해.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고 그것이 내 양심을 각성하게 하고 내 잘못을 아주 참 섬세한 그런 방법으로 깨닫게 할 때 우리가 참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하는 것은 좋아요.
그런데 그 어떤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다 해 가지고 그걸 따라가면 안 된다는 거야. 그 위험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나중에 예레미야서에서 보면 어떤 거짓선지자가 ‘내가 몽사를 얻었다. 몽사를 얻었다.’ 그런다는 거야. ‘몽사를 받은 자는 몽사를 말할 것이고 내 말을 받은 사람은 성실히 내 말을 전할 것이 아니냐? 겨와 밀을 어떻게 비교하겠느냐?’ 그런 말씀도 있어요.
그러니까 대부분 성도님들이 이 꿈을 전부 계시인줄 알고 이렇게 혼란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 저녁에 말씀을 들은 후에는 다시는 꿈을 너무 따라가지 말도록..
꼭 꿈이 계시적 그런 꿈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런 꿈을 잘 꾸느냐 하면 좀 시원찮은 사람이 잘 꾸어요. 무슨 말이냐 성경도 안 보고 봐도 모르겠고 그런 사람이 꿈을 잘 꾸어요.
반면에 옛날에 신약이나 구약이나 성경이 없을 때는 아브라함에게도 여러분 꿈으로 나타나는 거야. 솔로몬에게도 꿈으로 나타나시고 요셉에게도 꿈으로 나타나시고 성경이 없을 때에는 방법이 없으니까 거의 꿈으로 나타나요.
하지만 여기는 하나님의 뜻이 명백하게 나타나는데 맨날 꿈을 꾸고 잠꼬대 같은 소리 하고 그러면 안 돼요. 그러면 힘들어요.
그래서 전에 우리 집사람도 가끔 꿈을 꿔 가지고 자꾸 속을 썩이는 거야. 그렇다고 꿈꾸지 마라. 할 수도 없고 그래가지고 그 꿈을 가지고 자꾸 소리하고 하는데, 그게 자기 마음속에 잔뜩 부담이 돼 가지고 그 스트레스가 되고 그래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일단 그 꿈으로부터 자유하고 그 애매하고 몽롱하고 그런 걸 중시하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읽은 성경이 더 중요한 거예요.
꼭 한국 사람들은 막 비몽사몽간에 해롱해롱해 가지고 그런 걸 더 막 신령한 것으로 아는데 그건 전혀 신령한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 믿을 때는 그런 게 신비하고 신기해 가지고 그걸 따라 가기 쉬운데 조금 있다가 보면 그게 잘못된 거야.
그래서 그 너희 꿈과 그 꿈도 신청하지 말며 이적을 행하는 자가 나타나서 그 이적이 말하는 데로 이루어질지라도 따라가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 말을 듣는지 그 기적을 믿는지 그걸 보려고 딱 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거짓 이적을 일으키는 선지자를 역사하게 하사 어느 것을 믿는지 한 번 보자. 하고 시험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 데살로니가후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단 사이비를 없이 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사람들이 진리 좇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냥 이단에 폭 빠져버리라고 유혹을 역사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는 것은,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니까 그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이단에 폭 빠져가지고 ‘거기 가만히 있어 그냥. 그 왔다 갔다 하지 말고..’
그래서 그냥 유혹을 역사하게 하사 거기 빠지게 한다는 거야.
특히 우리 한국 교회가 참 아쉬운 것은 여러분 예배시간에 예배라는 것은 그야말로 우리가 한 주간 연장되는 삶을 감사하면서 또 한 주간 우리에게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하고 하나님께 잠깐 인사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 그게 신앙생활의 다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인사하러오니까 하나님께서 종을 세워서 참 하나님 말씀을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씀 진리가 되는 말씀 은혜가 되는 말씀을 베풀어 주시는 거야.
그걸 가지고 자기 신앙 전부를 삼으면 안 돼. 그것은 그야말로 할아버지에게 세배하러 갔더니 덕담 한마디 해 주는 그 정도 밖에 안 된다니까.. 예배의 설교 가지고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이냐? 정말 우리가 믿음의 삶을 제대로 살려면 예배는 그 예배고 성경 자체를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 시간이 따로 있어야 돼요.
그래서 이런 게 있습니다. 그 설교학에서 나오는 얘기인데 보통 신대원 마지막 3학년 학기 때 그 설교학을 배우게 될 겁니다. 설교 중에서 ‘케르구마(kerguma)’라고 하는 것이 있어요. 케르구마라는 것은 선포한다는 거죠.
여러분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로 다 사함 받았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우리 주님께 있다. 하는 그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그리고 승천과 중보와 재림과 심판. 이런 것을 기본 교리를 선포하는 선포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호밀리아(homilia)’라는 설교가 있어. 이 호밀리아는 권면하는 거예요. 권면..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저렇게 해야 되겠지요.’ 하면서 이 권면하는 스타일이 있고,
그 다음에는 가르치는 것이 있어요. 그 가르치는 것을 ‘기다케’라고 해요. 기다케.
그래서 그 케르구마하는 것은 선포하는 것이고, 그 기독교의 구속의 진리를 그 하나님의 주권을 막 이렇게 선포하는 것이 케르구마고, 그 다음에 권면한다고 할 때 호밀리아 하는 것이 있고, 가르친다고 하는 것은 기다케인데, 제가 볼 때에는 그 우리가 지금 신학교에서 예배학을 배우는데 예배학이 잘못된 것이 있고 설교학도 문제가 많아요.
설교학도 지금 하는 식으로 하면 전부 재검증이 필요합니다. 제가 볼 때는..
물론 선포도 있어야 되겠고 기다케도 있어야 하는데 그 예배시간에 설교라는 것은 제가 전에도 얘기 했죠? 설교 시간에 성도를 책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가..
하나님께서 선한 말씀, 은혜가 되는 말씀, 진리가 되는 말씀, 덕이 되는 말씀 이런 말씀 이런 것을 베풀어주시는 것이고, 책망이라든지 어떤 교정이라든지 이런 가르치고 하는 것은 기다케라는 것이 따로 있어야 돼요. 예배시간 말고 기다케..
그래서 제가 다른 말로 하는 것 보다는 그냥 강좌 하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샤론 강좌 이렇게 하는 겁니다.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거예요.
예배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예배는 그야말로 하나님께 인사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그 배우고 가르치는 시간 이 기다케가 반드시 있어야 돼.
그래서 호밀리아라고 하는 이런 그 권하고 위로하고 권면하고 하는 일은 권사님들도 하고 또 심방이나 상담이라든지 이런 것을 통해서 또 권하고 이런 일이 있는 거죠.
그래서 이 성경 말씀을 빠른 시간 내에 성도들이 다 완전히 66권을 다 숙지해 가지고 이것이 삶이 되게끔 이렇게 교육을 해야 하는데, 한국 교회는 뭐 큰 교회 작은 교회 뭐 거의 이것을 못하고 있거든요. 마치 설교 거기에다 다 목을 걸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설교 잘하면 막 부흥이 되고 설교 잘 못하면 막 부흥이 안 되고 이렇게 되는 것이 참 문제라는 거야.
한국 교회가 원래 이 예배시간에 설교라는 것은 그게 교육하는 시간하고 그게 다릅니다. 이것은 이 경배 하나님께 인사 예를 갖춰서 경배하는데 하나님께서 길지 않게 그저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복이 되는 그런 말씀을 베풀어 주신다. 그렇게 보면 돼요.
그래서 정말 우리교회처럼 그렇게 하려면 주일날 점심 먹고 오후에 전부 다 반 별로 가서 성경을 공부하고 또 다른 날도 공부하고 하는 시간이 있어서 교회 나온 지 그저 2, 3년 3, 4년 되면 성경 66권이 환하게 이렇게 돼야 되요.
제가 이렇게 딴 데 가서 보면 뭐 제대로 하는 교회가 한국 교회 뭐 거의 잘 없습니다. 성경을 잘 안 가르치는 거야.
그러니까 사실은 성경 말씀을 알고 싶은데 안 가르치니까 그걸 배우려고 막 신천지로 가고 뭐 흩어지고 막 이단까지 가고 그러는 것 아닙니까?
저 지금 여수, 순천 막 그 근방에는 뭐 얼마나 그 신천지 이단들이 설쳐 가지고 온 그 성도들이 주일날 막 천명 이 천명이 신천지 앞에서 데모를 하고 우리 딸을 돌려보내라 하면서 막 피켓을 들고 그게 할 짓입니까?
여러분 거기 가기 전에 성경을 제대로 가르쳐야지.. 참 안타까운 일이야.
그래서 그 성경 말씀 전체를 원만하게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꿈이나 이런 계시가 별로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사람이 너무 둔하거나, 미련하거나, 고집이 세거나, 성경을 안 보거나 그러면 또 지금도 대책이 없어 꿈을 보여주던지 환상을 보여주던지 어떤 사건이 나게 하던지 그렇게라도 깨우쳐 줘야 하는 일이 있는 거죠.
항상 그저 하나님 말씀하고 잘 통하고 있고 그러면 또 꿈을 꾸거나 할 필요가 없는 거죠. 맑은 정신으로 또 인격적으로 말씀을 받아 들여 가지고 그 우리 신앙양심에 세밀하게 들리는 또 인도하심을 따라서 이렇게 속에서는 양심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밖에서는 말씀을 통해서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데 이것이 우리 마음에서 우리 맑은 정신 속에 일치가 되고 합치가 되면 그걸 따라 살아가면 하나님을 따라 살아가는 거예요.
뭐 성경도 안 보고 양심도 흐리멍텅 하고 고집도 세고, 바쁘고, 정신없고 그러면 뭐 어떡합니까? 뭐 꿈이라도 꾸게 할 수 없이 방법이 없으니까 그런 계시적인 꿈은 지금은 거의 흔하지 않고 구약시대 성경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그런 꿈을 많이 꾸었어요.
그러니까 ‘이상 중에’ 라는 말은 거의 꿈입니다. 구약시대 구약성경 읽으면서 아브라함이 ‘이상 중에’ 할 때 그게 다 꿈이고 ‘이상 중에’ 해 놓고 나중에 쭉 나가서 끄트머리에 보면 ‘깨어보니까 꿈이더라.’ 그렇게 되어 있죠.
그러니까 맑은 정신으로 있을 때는 많은 눈앞에 있는 일들로 바빠 정신이 없고 잠이 완전히 폭 들어 버리면 뭐 잠에 빠지면 또 꿈도 못 꾸니까 거의 뭐 비몽사몽간에 이렇게 또 계시 될 수 있고 뭐 이랬다 말이예요.
그런 것은 성경이 완성되고 우리가 지각을 사용해서 하나님 말씀 알아들을 만하면 그런 꿈들은 점점점점 줄어드는 거야.
그래 부단히 하나님 말씀을 갈고 닦아서 그 하나님 뜻을 분별하도록, 그리고 예수님께서 ‘주야 장천 꿈을 꾸도록 하라.’ 이렇게 한 것이 아니고 ‘앉아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든지 항상 이 말씀을 강론해라.’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서 내가 네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 다음에 2절,
2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3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그런 꿈꾸는 자, 거짓선지자를 없앨 수 없어서 가 아니라 일부러 시험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4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하고
5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
지금은 뭐 좀 덜합니다만 옛날에는 별을 보고 점을 쳤어요.
점성술사. 뭐 이런 사람들이 있고, 그리고 새를 가지고 점을 치고 물방개를 가지고 점을 쳐봐. 사람이 돼 가지고 물방개에게 물어. 내가 어떻게 해야 될지..
그 시장에 가면 고무 바게스 같은 그 양철 바게스에 해서 캄캄하게 해 놓고 종이 하나 딱 또 물고 나오죠. 또 새가 또 물고 나오는 것도 있어 새가 또 물고 나와.
그러니까 그걸 보고 또 어찌할 바를 찾는 거야.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말이야.
그래서 맑은 정신으로 그리고 마음을 다 닦아내고 욕심을 내려놓고 맑은 심령이 될 때 양심의 비쳐지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 그 양심이라는 법이 내재율(內在律). 태어날 때부터 내장되어 있는 그 율법인데 그것을 통해서 성령이 말씀 하실 때 그 양심에 거리끼면 안 돼. 거리끼는 일을 하면 안 돼는 거야. 거리낀다는 것은 우리 양심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누구든지 거리낌으로 먹으면 죄가 된다는 거야. 거리낌으로 먹으면 또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이 다 죄가 된다는 거야.
그런 말은 우리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는 거야. 성령이..
그리고 그 말씀하고 그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는 것 하고 성경하고 일치가 되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거야.
또 뭐 ‘꿈으로 보여 주시옵소서.’ 맑은 정신으로 봐. 그냥.. 무슨 꿈이야? 꿈은..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은 참 애 먹는 거야. 그냥 중요한 게 우리 이 신앙 양심이야. 거듭난 사람의 신앙 양심에 비춰 보는데 내가 아는 성경 말씀하고 딱 맞아 떨어지면 그냥 아멘하고 순종하면 됩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야. 오죽하면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를 죽이라 하겠습니까?
.. 이는 그가 너희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여 취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케 하려 하며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 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이런 게 결국 악입니다.
6 네 동복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이르기를 너와 네 열조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7 곧 네 사방에 둘러 있는 민족 혹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있는 민족의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
8 너는 그를 좇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보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9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
10 그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 한 자니 너는 돌로 쳐죽이라
11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같은 악을 다시는 너희 중에서 행하지 못하리라
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거하게 하시는 한 성읍에 대하여 네게 소문이 들리기를
13 너희 중 어떤 잡류가 일어나서 그 성읍 거민을 유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한다 하거든
14 너는 자세히 묻고 살펴보아서 이런 가증한 일이 참 사실로 너희 중에 있으면
15 너는 마땅히 그 성읍 거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중에 거하는 모든 것과 그 생축을 칼날로 진멸하고
16 또 그 속에서 빼앗아 얻은 물건을 다 거리에 모아 놓고 그 성읍과 그 탈취물 전부를 불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지니 그 성읍은 영영히 무더기가 되어 다시는 건축됨이 없을 것이니라
17 너는 이 진멸할 물건을 조금도 네 손에 대지 말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그 진노를 그치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더하사 너의 열조에게 맹세하심같이 네 수효를 번성케 하실 것이라
18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정직을 행하면 이같이 되리라
바르게 하고 곧게 하고. 여러분 신앙생활을 아주 바르게 하고 곧게 정직하게 해야지, 자꾸 이상한 것을 가지고 그 끌어대거나 그 끌고 들어오거나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야.
14장은 우리가 레위기 11장에서 보던 음식물 규정 이야기죠.
그런데 여기는 좀 더 짧게 얘기 합니다.
[신명기 14장]
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이게 고대 중근동 족속들이 하던 그런 풍속인데, 그런 이방 사람들이 하던 풍속을 흉내 내지 말라는 거야.
그래서 저는 그 장례식 같은 것도 참 우리 기독교인들은 좀 더 아름답게 좀 더 거룩하게 이렇게 할 필요가 있어요.
용어도 ‘발인예배’ 그런 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못쓰게 돼 있어. 총회에서 못쓰게 합니다. ‘발인예배’ 이런 것 하는 것 아냐. 그게 ‘장례식 예배’야 그냥.. ‘발인’ 이런 것은 옛날에 유교식 장례에서 하는 말이예요. 그것은 하지 말고 그리고 세상 풍속을 따라가지 말라는 거예요.
2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
3 너는 가증한 물건은 무엇이든지 먹지 말라
4 너희의 먹을 만한 짐승은 이러하니 곧 소와 양과 염소와
5 사슴과 노루와 불그스럼한 사슴과 산 염소와 볼기 흰 노루와 뿔 긴 사슴과 산양들
6 무릇 짐승 중에 굽이 갈라져 쪽발도 되고 새김질도 하는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라
7 다만 새김질을 하거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것이니 곧 약대와 토끼와 사반, 그것들은 새김질은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니 너희에게 부정하고
8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런 것의 고기를 먹지 말 것이며 그 사체도 만지지 말 것이니라
9 물에 있는 어족 중에 이런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무릇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요
10 무릇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너희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11 무릇 정한 새는 너희가 먹으려니와
12 이런 것은 먹지 못할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어응과
13 매와 새매와 매의 종류와
14 까마귀 종류와
15 타조와 다호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다호마스’는 쏙독새라는 새입니다.
그리고 갈매기. 우리 이 마산 앞바다의 갈매기가 깨끗해 보여도 먹으면 안 됩니다.
16 올빼미와 부엉이와 따오기와
17 당아와 올응과 노자와
‘당아’는 펠리컨이라는 새죠. 올응은 독수리의 일종인데 12절의 어응도 독수리 종류예요.
'노자'는 가마우찌라는 새고요.
18 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과 박쥐며
‘대승’은 물떼새를 말하고,
19 또 무릇 날기도 하고 기어 다니기도 하는 것은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먹지 말 것이나
날기도 하고 기어 다니기는 것은 대개 오리 종류 뭐 이런 것들입니다.
여러분 ‘목사님 오리 탕 먹으러 갑시다.’ 이렇게 하지 말고, 오리는 괜찮죠. 괜찮기는 뭐 괜찮아? 온갖 잡식을 해 가지고 환경 호르몬 덩어리야. 그게 다..
물고기 잡아먹는 새는 일절 안 돼. 물고기 속에 그 환경호르몬이 결국은 오리 속에 축적되니까..
그래서 오리 먹으로 가자고 하는데, 하여튼 밀양에 부임하자마자 맨 먼저 가는 게 오리 탕 집에 가는 거야. 그냥.. 오리고 십리고 그런 것은 안 돼.
그리고 닭도 지금 위험해요. 닭도 너무 항생물질을 많이 먹여가지고 그 아주 위험해요.
그러니까 그냥 채소 곡식 과일들을 먹는 게 아주 중요하고, 일절 뭐 고기가 먹을 게 없어. 미국산 쇠고기 그 엊그저께 가져 왔다가 뼈가 섞여가지고 그 돌려보낸다고 그러죠.
그게 글쎄 대개 그 쇠고기에다가 소 뼈다귀, 소 내장, 소가죽, 소머리, 소 족발, 꼬리 이걸 다 갈아가지고 풀 사료 곡식사료하고 분말 하고 으깨가지고 그래가지고 소가 먹었죠.
뭔지 모르고 그래 쫌 맛이 이상하다 하면서 그 먹었겠죠.
그래서 그 광우병 걸리게 되면 소의 척수라든지 이 두개골 안에 구멍이 숭숭숭숭 뚫리는 것인데 그걸 그 큰 톱을 가지고 톱 두께가 이만 한 거야. 그 톱이..
그걸로 딱 쪼개면 그 쪼갤 때 그 프리온 단백질 가루가 그 부스러기가 막 여기저기 묻는 거란 말이야. 그 조금 먹었다손 치더라도 그 나중에 사람이 병 걸려 보세요.
그래서 또 한국에서 그 수입한다고 할 때 보면 그 뼈가 안 붙어 있는 것 우리 살코기 수입하겠다.. 아이고 그만 둬 그만 둬 그냥. 그게 안전할 리가 없습니다.
역시 그 소를 막 한군데서 8만 마리 막 25만 마리 막 이렇게 먹이니까 거기도 역시 그 병 안 걸리게 하려면 역시 또 항생물질 집어넣는 거야.
그래서 어지간하면 육식은 정말 절제를 하고 뉴질랜드 산이 좀 괜찮다는 말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그 광우병 같은 프리온 단백질이 먹으면 바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잠복기간이 그 한 5년에서 10년까지 가는 거야. 이게 지금은 안 나타나도 언제 그게 터질지 모르니까 늘 그런 음식은 조심을 해야 돼요.
제가 이번에도 목포지방에 집회를 갔는데 처음에는 서로 막 이걸 대접해야 되겠다, 저걸 대접해야 되겠다. 이렇게 했는데, 목포에 오셨으니까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지나가면서 그냥 한 말씀 했더니, ‘아이고 큰일 났다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갈까’ 그러면서 아무데도 갈 때가 없다고 아무데도 그러니까 빙빙 돌다가 한식집에 그 먹으러 가는 거죠. 한식집에..
그래서 횟집을 먹으러 갔는데 다 차려 놨어. 또 어떡합니까?
그런데 그 목포 가니까 횟집이라는 것이 뭐 여기 마산, 부산하고는 비교가 안 돼요.
어떻게나 많이 주는지 그것 먹고 죽으라는 건지, 막 정신없이 나와 그냥.. 갔다가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하는 것을 가지고 보니까 꾸므럭 꾸므럭 하는 것도 있고, 자기들이 딴 사람이 음식물을 가지고 이야기 했으면 막 또 반발하고 막 그저 의심하고 했을 텐데 그래도 제가 말하면 그 먹혀 들어가요.
제가 그 음식물 이야기를 하면 대체로 수용을 하고 ‘아 이게 잘못 되었었다.’ 거의 그 일반 사람들은 그 뭐 인식이 없거든. 그 아무거나 먹으려고 하고 그래서 아마 그쪽 그 목포에도 아마 새 바람이 불어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새 중에는 그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습니다.
20절에 보면,
20 무릇 정한 새는 너희가 먹을지니라
그런데 정한 새가 있어야 말이지.. 정한 새가 뭐 참새, 비둘기, 꿩 정도 이런 것들인데, 꿩도 사육하면 안 되고 참새 뭐 먹을 수 있는데 그 뭐 이빨 사이에 다 끼고 뭐 먹을 수 있어야지.. 비둘기는 제가 어릴 때 청년 때 한번 잡아가지고 먹어 봤는데 아 그게 맛있어요. 소금구이 해 가지고 그 먹으면 그렇게 맛이 있는 거야.
21절,
2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무릇 스스로 죽은 것은 먹지 말 것이니 그것을 성중에 우거하는 객에게 주어 먹게 하거나 이방인에게 팔아도 가하니라,
하나님께서 그 자기 백성들은 뭐 좋은 것 먹이려고 일절 뭐 팔든지 그런 것은 마음대로 하고 너희 자신은 먹지 마라는 거죠.
..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
그 우유에다가 고기를 삶거나 하지 못한다. 이 한마디 때문에 이스라엘 땅에는 치즈버거가 안 되는 거야. 하나도 안 팔리니까..
그 다음에,
22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23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4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서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으로 가서
그렇게 드릴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저 갈릴리 쪽에 살고 있는데 소 몇 마리 양 몇 마리 막 십일조를 챙겨보니까 1년분 십일조가 너무 많아 가져 갈 수가 없어. 그걸 다 떼로 몰고 가다가 잊어버리고 하지 말고 팔아가지고 돈으로 환산해서 가져가도 괜찮다. 그런 말이죠.
26절,
26 무릇 네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우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무릇 네 마음에 원하는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27 네 성읍에 거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28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그래서 일반적으로 해마다 하는 십일조 말고 삼년마다 한 번씩은 십의 이조를 하는 거야.
십에 이조를 해 가지고 그 삼년마다 한 그 십일조는 먹어치우지 말고, 성전 어딘가 저장을 해 놓고 혹시 객이나 고아나 과부나 갑자기 어려움 당해서 어떤 빈민이나 대책이 없는 사람이나 이런 사람들을 구제를 해 가지고 네 땅에서 굶어서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거야.
최소한도 그렇게 해서 그 생명을 중시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자비가 베풀어져서 역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생명을 소중히 여겨서 자기들 것을 다 이렇게 모아 가지고 구제를 하는 구나.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교회가 해야 된다는 거야.
그래서 지금 우리 교회가 이건 지금 안 하고 있죠.
일반 그저 십일조는 다 하는데 삼년에 한 번씩은 십의 이조를 하는 거야. 그해에는..
그래서 그걸 다 모아가지고 갈라 먹어치우는 것이 아니라, 적치해 뒀다가 갑자기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돕도록 그렇게 그런 장치를 했다는 거야.
그래서 이 정신은 ‘가난한 사람들을 저버리지 말라. 또 항상 그저 어려움 당한 사람들을 교회가 배려하라.’ 이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문자대로 사실 말씀 하셨는데 우리가 항상 이보다 더 해야 돼요. 율법은 이 최소한입니다. 원래가..
율법이라는 것은 최소한을 말한 것이고, 잘 한다는 것은 그것보다 더 하는 것이 잘 하는 거야. 그래 우리가 뭐 최소한도 못해 놓고 잘 믿는다. 그리 생각하면 안 돼. 바르게 하는 것
그리고 최소한을 규정한 율법을 즐거워하면서 순종하면 복이 된다는 거야.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서 잘 되게 하는 것과 안 되게 하는 것의 차이는 큰 차이가 날 수 있어요.
제가 늘 이야기 하는데, 여러분 한반도가 남북이 바로 이렇게 붙어 있지만 남한은 전부 그 살 빼는데 정신이 없고, 이북은 지금 굶어가지고 정신이 없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우리도 뭐 잘하는 것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우리 남한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고, 정치인들이 뭐 그리 잘 하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이북보다는 열배나 낫지 않습니까?
그 나호연 장로님이 국가 정보원에 있으면서 공안요원으로 금강산 관광팀을 인솔해 가지고 갔는데 길 가다가 물도 못 마시게 한다는 거야.
이북 그 돼먹지 않은 것들이 말이야. 담배도 한 대 못 피게 하고 뭐 사람들에 막 이러니까 전부 가는 사람들이 경치 좋은 것도 눈에 안 보이는 거야. 기분 나빠 가지고 얼마나 까다롭게 돈은 돈대로 다 받아먹고 그렇게 까다롭게 하니까, 그 금강산 갔다 오면 그 금강산 좋다는 소리는 안 하고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고 이렇게 자유로운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그래서 단지 우리가 이렇게 받은 복을 우리가 막 사치하고 너무 잘 먹고 이렇게 하면 안 되고, 다 적치했다가 어려운 사람을 돕는 교회, 객과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이런 사람들을 배려하는 교회,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이 된다는 거야.
그래서 저는 전에 무안에서는 교회가 뭐 너무 작으니까 뭐 마음은 있어도 뭐 되는 게 없어요. 그래도 최소한도 그래도 우리가 마산 시내에서 어느 한 교회 두 교회쯤은 뭐 동부하나 서부하나 한다든지 신마산 하나 구마산 하나 한다든지, 그래도 한 도시에 그래도 올 데 갈 데 없는 사람들이 그 교회에 가면 그래도 밥은 먹여 준다 하는 어떤 장치가 있어야 돼.
그래서 길에서 그 마산에는 그 교회가 있기 때문에 노숙자는 없다 하는 어떤 그런 게 있어야 돼 교회가..
그래 절에 가면 누가 가도 그 밥은 먹여 줍니다. 어느 스님이 어느 절에서 왔던지 간에 밥은 먹여주는데, 교회는 그게 안 돼.
그래서 좀 우리 교회가 좀 커지면 언제 누가 가도 잠잘 수 있고 언제 누가 가도 밥은 정말 굶는 사람이 없이 밥은 먹을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돼야 되지 않겠나..
지금은 당장 어렵지만 그래서 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교회로 말미암아서 전파되지 않으면 어디서 되겠어요?
만약에 우리가 교회 가서는 도저히 머리 둘 곳이 없는데 절에 가니까 재워 주더라. 해봐. 그러면 곤란하거든요.
그래서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우리가 먼 미래의 우리 교회 모습을 그릴 때 항상 그 방이 있어야 돼. 사람이 와서 길에서 자지 않도록 길에서 사람이 자고 있다면 이것은 우리 교회 책임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런 정도의 그 여유가 있어야죠.
예수님의 탄생이 이르렀는데 빈방이 없어가지고 쩔쩔매고 그런 교회가 되면 안 되죠. 그 빈방 있습니까? 항상 방이 있어야 되는데 ‘빈방 있습니까?’ 하는 연극이 있죠. 오랫동안 한 그런 연극이 있어요. 서울에 가면 해 마다 11년째인가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집에 어리숙한 한 아이가 집에 빈방이 있는데 없다고 한다.. 그런 연극인데 그 참 재미난 연극이죠.
우리 교회가 언젠가는 누구든지 길에서 자지 않도록, 마산 시내에서는 역에서 자는 사람들이 없도록 지금부터 마음속으로 우리가 준비를 해야 될 것 같아요. 설계할 때부터 최소한도 거기 뭐 전기장판이 깔려 있다든지 아니면 먹을 게 최소한도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그런 장치가 있다든지 해서, 길에서 사람이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은 사람이 있다 할 때는 우리 교회 책임이다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여기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런 자비와 긍휼이 베풀어지기를 바라는 거죠.
자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15장은 다음에 보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 들어갔을 때에 혹 또 하나님을 떠나게 하려고 꿈꾸는 자나 거짓 선지자가 와서 사람들 꾀일 때에 거기 따라 가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고, 꿈을 꾸거나 점쟁이가 무슨 거짓 선지자가 무슨 말을 해서 이적과 표적이 그대로 말한 대로 이루어 질 지라도 따라가지 말 것을 경계하여 말씀하시고, 또 우리가 거룩한 백성 성민이 되었기 때문에 먹는 것도 구별해서 먹을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지만 이제 와서 볼 때 이게 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어 하셨고 해로운 것을 먹지 못하게 하시려고 이 귀한 말씀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이 어려울지라도 항상 매 십년마다 항상 십일조를 모아서 객이나 고아나 과부가 굶어죽거나 거리에서 얼어 죽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주의 이름으로 자비와 긍휼이 베풀어지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정말 이런 좋은 일을 해서 아름다운 교회로 성장하는 그런 샤론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