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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킹제임스성경 번역을 둘러싼 많은 혼란은 행간대역(行間對譯)과 번역(translation)을 같은 것으로 착각하는 데서 시작된다.
성경 연구에서 원문(原文)의 어순과 형태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형식은 행간대역(行間對譯)이다. 영어 단어로는 ‘인터리니어(interlinear)’라고 하는데, 단어 의미 그대로 원문 단어 아래나 위 행간(行間)에 대상 언어의 단어를 배치하여, 독자가 원문의 단어와 문법 구조를 직접 관찰하도록 돕는다.
< 그리스어 원문에 영어 단어를 배치한 행간대역>
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1장 1절 영어 본문에 한국어 단어를 행간에 배치하면 아래와 같다.
*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 에 / 처음 / 있었다 / 그 말씀 / 그리고 / 그 말씀 / 있었다 / 함께 / 하나님 / 그리고 / 그 말씀 / 이셨다 / 하나님
이처럼 원문(原文)의 언어적 배열과 문법 질서, 각 단어의 대응 관계를 가능한 한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행간대역의 목적이다.
그러나 행간대역은 완성된 번역문이 아니다.
한국어 행간대역은 넓은 의미에서 번역 정보를 제공하지만, 일반 독자가 자연스럽게 읽도록 완성된 한국어 번역과는 목적이 처음부터 다르다.
번역은 원문의 단어를 원문 언어의 틀 속에 그대로 놓아둔 채 대상 언어의 단어로 하나씩 대치하는 작업이 아니다. 번역은 원문의 어휘와 의미를 대상 언어의 문법과 통사(統辭, 문장을 엮는 순서와 규칙) 질서 속으로 옮기는 작업이다.
요한복음 1장 1절을 완성된 한국어로 옮겨 번역하면 아래와 같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인터리니어, 즉 행간대역의 특징은 원문의 ‘형태 관찰’에 있고, 완성된 번역문의 특징은 원문의 ‘정확한 내용 전달’에 있다.
성경의 행간대역은 원문의 단어와 구조를 분석하기 위한 훌륭한 연구 자료이지, 일반 대중이 자연스럽게 읽도록 만들어진 완성된 번역문은 아니다.
원문의 형태를 최대한 보여 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행간대역을 만들면 된다. 그러나 한국어 성경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반드시 한국어의 문법과 통사 질서를 따라야 한다. 번역은 그렇게 해야 한다.
행간대역은 원문 관찰을 위한 도구이고, 번역은 일반 독자가 원문의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읽고 이해하도록 옮긴 것이다. 따라서 행간대역과 번역은 서로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목적과 기준이 다른 별개의 작업이다.
직역(直譯)도 번역이다
여기서 반드시 한 가지를 더 구별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직역(直譯)을 단어 대 단어의 기계적인 대응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번역의 본질을 혼동한 것이다.
직역은 행간대역이나 인터리니어(interlinear)가 아니다. 직역은 어디까지나 번역이다. 원문의 단어와 의미, 표현 구조를 가능한 한 충실하게 보존하면서도 대상 언어의 문법과 어법에 맞추어 표현하는 번역 방식이다.
따라서 직역도 엄연한 번역이며, 좋은 직역일수록 원문의 어휘와 의미 그리고 대상 언어의 질서를 동시에 존중한다.
성경 번역은 원문의 어휘와 의미를 충실하게 보존하는 직역을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직역이라는 이름으로 원문의 단어 배열을 한국어에 기계적으로 복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행간대역에 가까울 뿐이다.
직역의 결과물도 반드시 완성된 한국어 문장으로 성립해야 한다.
한국어의 문법과 통사(統辭) 질서를 파괴하면서 원문의 단어를 한국어 단어로 하나씩 바꾸어 놓았다면, 그것은 완성된 번역이 아니라 행간대역식으로 나열한 대응문이다. 겉으로는 한국어 단어를 나열했으나, 실제로는 원문 언어의 문법 질서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직역은 원문의 어휘와 표현 구조를 가능한 한 보존하되, 그 의미가 한국어의 문법과 통사 질서 안에서 정확히 전달되도록 옮기는 번역이다.
성경은 원문(原文) 연구자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자신의 언어로 읽고 이해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경 번역은 행간대역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번역과 인터리니어의 구분
원문의 형태와 단어 배열을 보여 주는 것은 행간대역의 역할이고, 원문의 내용을 한국어로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번역의 역할이다.
행간대역은 원문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유익하다. 그러나 성경 번역은 교회에서 모두가 함께 읽고 이해하기에 유익하다. 그러므로 한국어 성경 번역은 행간대역과 구분되어야 한다.
행간대역의 기준으로 번역을 평가하면 자연스러운 번역은 모두 오역처럼 보이고, 번역문의 기준으로 행간대역을 평가하면 행간대역은 모두 부자연스러운 문장이 된다. 행간대역과 번역은 서로 목적과 기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좋은 한국어 번역을 가르는 최종 기준은 명확하다. 원문의 단어와 의미에 대한 철저한 충실성과 한국어가 지닌 고유한 언어 질서의 존중이다.
한국어에는 한국어만의 위대한 질서가 있다.
한국어는 주어-목적어-서술어를 기본으로 하는 어순, 조사의 기능, 연결어미, 문맥에 따른 주어 생략, 높임법, 불필요한 반복의 회피, 단복수 처리, 소유 표현의 생략 등 고유한 문법적 질서를 갖고 있다.
번역자의 임무는 원문의 어휘와 의미를 이러한 한국어의 질서 속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원문의 표면 형태를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원문에 담긴 어휘와 정확한 의미를 한국어 문장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것이 번역이다.
이 원칙을 잃는 순간 번역은 완성된 한국어 문장이 아니라 행간대역식 대응문으로 되돌아간다.
한국어의 높임법
한국어는 높임법이 매우 발달한 언어이다. 같은 행동이라도 주체와 대상, 말을 듣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서술어와 어미, 어휘 자체가 달라진다. 영어에도 존칭과 공손한 표현은 있지만, 한국어처럼 주체 높임과 객체 높임, 상대 높임이 조사와 종결어미와 특수 어휘를 통해 폭넓게 문법화 되어 있지는 않다.
예를 들어 영어는 단순히 He said라고 기록하지만, 한국어에서는 문맥과 대상에 따라 ‘말했다’, ‘말씀하셨다’, ‘이르셨다’처럼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특히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때 높임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한국어의 일반적인 문체와 독자의 언어 감각에 자연스럽다.
만약 원문에 문자로 표시되지 않은 것은 번역문에도 절대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고집스럽게 적용한다면, 하나님께서 하신 일조차 ‘말했다’, ‘먹었다’, ‘갔다’라고 옮겨야 한다.
이런 문장들이 문법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높여 표현해 온 한국어의 일반적인 문체와 독자의 언어 감각에는 매우 부자연스럽다.
이는 중요한 번역 원리를 보여 준다. 번역자가 원문에 없는 새로운 의미나 교리를 보태서는 안 된다. 그러나 원문의 의미와 관계를 한국어 문장으로 정확하게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조사, 어미, 높임 표현 같은 문법 형식은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높임법은 원문을 왜곡하는 요소가 아니다. 원문에 나타난 인물과 관계를 한국어로 자연스럽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한국어가 요구하는 정당한 문법 형식이다. 좋은 번역은 이처럼 정당한 한국어 문법 질서를 존중한다.
한국어는 불필요한 반복을 줄이는 언어이다
번역은 원문의 철자나 활자 개수를 기계적으로 세어 대상 언어에 그대로 채워 넣는 작업이 아니다. 원문의 의미를 대상 언어의 정당한 법칙과 질서 속에 안착시키는 일이다.
영어는 한국어보다 주어와 대명사, 소유격, 접속사, 복수 표시를 문장 표면에 명시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어는 문맥에서 이미 충분히 확인되는 정보라면 이를 생략하거나 연결어미 안에 흡수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영어의 and는 우리말에서 언제나 독립된 접속사 ‘그리고, 그런데, 또’로 번역되는 것이 아니다. 문맥에 따라 ‘-고’, ‘-며’, ‘-아서’, ‘-하니’와 같은 연결어미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이것이 한국어이다.
킹제임스성경에서 사도행전 6장 12-13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and came upon him, and caught him, and brought him to the council, And set up false witnesses...
이 문장의 연결 어미를 살려 한국어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그에게 왔고 그를 잡아서 공회로 데려간 뒤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 번역문에서 영어 단어 and는 사라지거나 누락되지 않았다.
만약 영어의 and를 모두 독립된 ‘그리고’로 옮겨 “그에게 왔다. 그리고 그를 잡았다. 그리고 공회로 데려갔다. 그리고 거짓 증인들을 세웠다”라고 ‘번역’한다면 (이런 식의 성경 번역은 본 적이 없다) 영어의 단어 배열은 눈에 보일지 몰라도, 한국어의 자연스러운 문장 호흡은 무너진다.
이것은 번역이 아니고 인터리니어에 가깝다. 영어 문법에 맞춰 한국어 단어를 나열했기 때문이다.
한국어 단복수 표시
영어의 복수 표시도 마찬가지다. 영어에서는 수사 뒤의 명사에도 복수형을 표시하지만, 일반적인 한국어에서는 수량이 이미 드러난 경우 명사에 복수 표시를 다시 붙이지 않는다. 영어의 two hands를 한국어에서는 ‘두 손’이라고 한다. ‘두 손들’이라고 하지 않는다.
영어로 복수 명사이니 반드시 한국어로도 복수 명사로 옮겨야 한다고 우긴다면 그것은 번역과 행간대역을 구분하지 못해서 나오는 주장이다.
주어의 생략과 유지
한국어에서는 반복되는 주어 역시 문맥이 분명하다면 생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주체가 바뀌거나 혼동될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주어를 밝혀야 한다. 그렇다고 한국어 번역에서 원문의 모든 반복을 무조건 제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원문이 강조와 대조, 운율과 병행을 위해 의도적으로 반복한 표현까지 일률적으로 삭제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성경 번역에는 고도의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원문 언어 실력과 함께 한국어 실력까지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어가 회피하는 것은 반복 자체가 아니라 “문맥상 불필요한 반복”이다.
원문의 반복이 의미를 형성한다면 보존해야 하고, 영어 문법이 요구할 뿐 한국어에서는 아무 기능이 없는 반복이라면 한국어의 질서에 따라 정리해야 한다. 이 구분이 중요하다.
l when they had seen it, they made known abroad the saying which was told them concerning this child.
l 그들이 그것을 보자 그들이…
이런 문장을 한국어 번역에서 이렇게 옮기지는 않는다. 문맥상 주어가 생략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어 문법 질서를 존중해야
단어의 개수와 문법 표지를 일대일로 대치하는 것은 원문 단어를 관찰하기 위한 행간대역식 도구이다. 대중이 읽고 즉각 진리를 이해해야 할 진정한 번역은 원문에 있는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철저히 수호하되, 한국어의 정당한 문법 규칙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번역이다.
행간대역과 번역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으면서 ‘직역’만을 강조하는 크리스천들이 있다. 그들은 영어의 주어와 대명사, 접속사와 단복수, 소유격 표현을 한국어 본문에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좋은 번역이라고 오해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한국어의 생략과 연결어미, 문맥에 따른 반복 처리 원칙을 무시한 채 영어의 표면 구조만을 그대로 옮기면, 원문에 충실한 직역이 아니라 한국어 문장으로 완성되지 못한 행간대역식 대응문이 될 수 있다.
그러한 문장은 성경을 읽는 대중의 호흡을 막고, 원문의 내용을 한국어로 분명하게 전달해야 할 번역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
정확한 번역과 자연스러운 번역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자국어의 위대한 통사 질서와 문장 호흡을 지킬 때 원문의 진리는 독자의 마음에 더욱 정확하게 살아 움직인다.
한국어 성경 독자는 영어의 어순으로 생각한 뒤 한국어 단어를 끼워 맞추는 사람이 아니다. 한국어로 생각하고 한국어로 진리를 이해하는 사람이다.
결론
성경 번역은 원문(原文)의 문자 배열을 한국어로 복사하는 작업이 아니다. 성경 번역은 원문의 내용을 한국어의 문법과 질서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작업이다.
행간대역(行間對譯)은 원문의 단어와 어순, 문법 구조를 직접 관찰하도록 돕는 연구 도구이다. 그러나 일반 독자를 위한 완성된 성경 번역은 행간대역과 달라야 한다.
성경 번역은 원문의 권위를 존중하는 동시에, 그 내용을 한국어 독자에게 가장 정확하고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는 한국어의 질서와 틀을 존중해야 한다. 한국어의 문법을 지키는 것은 원문을 배반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원문의 내용을 가장 충실하게 전달하기 위한 번역의 기본 원칙이다.
좋은 직역은 원문의 단어와 의미를 버리지 않는다. 동시에 한국어의 조사와 어미, 높임법과 생략, 연결과 반복의 질서도 파괴하지 않는다. 좋은 번역은 원문의 권위와 한국어의 질서를 함께 존중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출처 : 킹제임스흠정역 성경 번역위원 김재근 목사
전주소망침례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