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왕조가 무너지면서 파라오도 추락했다.
고왕조가 망쪼가 들어서 세력이 약해지자 팔아오의 권위도 추락했다. 여기서 보여주는 조각상은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페피 2세는 그의 형들이 일찍 죽으므로 6세에 왕위(파라오)에 오른다. 그의 어머니이고, 페피 1세의 왕비인 메리안크네가 아들인 파라오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왕이 비록 어리다고 해도 왕을 상징하는 두건을 쓰고 있다.
고위 관료는 파라오와 피를 나눈 최측근 혈통이다. 그들은 왕에게 충성을 바치고, 파라오를 엄호했다. 그러나 6왕조 쯤에 이르면, 고위 귀족은 파라오로부터 하사 받은 땅을 자기의 영지로 삼아서, 파라오를 돌보지 않고, 자기의 영지를 넓히면서 권력을 쌓아나갔다. 파라오는 점점 힘을 잃고, 귀족은 하시받은 토지를 세습하여 새로운 권력을 만들었다. 이들은 파라오를 보호하지 않고, 독립 세력으로 나아갔다. 일종의 봉건제도처럼 되어 갔다. 중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주의 제후국이 나라로, 다시 진시황에 의해서 통일되듯이, 이집트도 이와같형국이 되었다. 파라오의 권위는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페피 2세 조각상은 그와 같은 사실을 보여주는 조각상이다.
권위가 약해진 파라오들은 자신의 권력을 지킬 목적으로 세력이 강한 영주 세력과 혼인관계를 맺었다.(예전에는 신의 혈통을 가진 파랑로 가계가 귀족 가계와의 혼인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제는 파라오가 먼저 청혼하는 처지였다. 6왕조이의 페피 1세도 이렇게 결혼하였으므로, 페피 1세의 왕비는 혈통으로 한 계층 낮은 신분이었다.
이제 미술로 눈을 돌리면 전체적인 조각 기법은 전통 기법을 따르고 있다. 어리더라도 왕인 파라오는 신격이었는 데 파라오 가문의 혈통도 아닌 어머니는 크게 조각한 것은 ---, 이미 이때는 파라오의 권위가 많이 줄어 들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파라오는 왕비를 지역의 세력가의 딸을 맞아들였다. 어머니인 페비1세의 왕비도 상당한 세력가의 딸로서 (꼭히 왕가가 아니더라도 지방 호족의 딸로서 왕비를 맞아들였다. 왕가의 위상이 추락했음을 뜻한다.)
어머니가 페피 2세를 수렴청정 하였다.
이 조각상 하나는 그때의 시대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