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전생 혹은 대승 보살들의 위대하고도 수많은 그 행적을 쫓다 보면 유독 저마다 더 깊이 다가오는 특별한 이야기를 만나곤 할 것이다. 내게도 그런 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 예컨대, 메추라기 경과 같은 자타카(부처님의 전생담)와 대승 보살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 등은 내 불교 공부의 계기이자, 용기와 지혜를 주는 도반들이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나의 세상은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늘 화가나 만화가가 되기를 꿈꿔온 내게 어느 날 갑자기 이와 같은 의문이 튀어 나왔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왜 이리 고통 받는 존재들이 많을까, 어째서 우리는 서로 고통을 주고 받는 걸까, 왜 내게는 이 무한하고 무량해 보이는 고통이 보이기만 할 뿐 해결할 방도는 없는 걸까.' 처음엔 하나의 충격적인 자문으로 시작된 이 의구심은 쉼 없이 자라났고 이윽고 내가 견딜 수 있는 역량 이상으로 무거워졌다.
그 시작은 이와 같다. 그림의 영감이 될 이야기 소재를 찾아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인디언 플룻’에 매료되었다. 아름다운 선율을 가진 그 음악의 세계는 나를 북미원주민의 문화와 역사로 이끌었다. 자연을 어머니로, 동물을 형제로 여기고 사랑하는 그들의 사상은 내가 여태껏 보아온 어떤 삶의 형태들보다도 아름답고 숭고했다. 가치관에 이에 젖어 들게 되자 이제까지 보아온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상호연결 되어있고, 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절감되었다. 시나브로 나는 형제인 동물의 살을 도저히 먹을 수 없어 채식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메이플라워 호’ 이후로 그들이 겪어온 참상은 이전의 찬란함에 선명하게 대비되는 지옥도였다. 내가 북미원주민의 사상을 존경한 만큼 마음에는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좋은 인디언은 모두 죽었다.'고 말한 필립 셰리던과 같은 이에 대한 증오로 들끓고, 그와 같은 사람이 세상엔 무수할 것이라는데 대한 충격을 받다가도 그들 역시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있음이 분명하기에 안타깝고 슬펐다.
그렇게 아메리카 대륙에서 펼쳐진, 숭고한 정신이 물질적 욕망에 의해 무자비하게 파괴되는 그 장면은 일종의 화두가 되어 머릿속에 강렬하게 자리잡았다. 그 뒤로는 일상 생활에서도 그 이전에는 미처 보이지 않던 부조리와 불평등이 눈에 강하게 비쳐오기 시작했다. 예컨대, ADHD 아동과 부모의 갈등은 ADHD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논하며 전제적 약물치료를 권하는 제약회사에 의해 가중되어 그들의 일생을 뒤흔들어왔다. 많은 ADHD 부모들이 '배후의 큰 손'이 말하는 바에 의지하였고, 뛰어난 창의성과 열정을 지닌 아이들의 자존감은 무너져간 것이다. 일련의 충격과 함께 내 가치관과 사고방식은 완전히 재정립 되었다. 고통과 무지, 욕망은 도처에 있었다.
불변하는 행복이란 없다면, 내가 사랑하는 이들도 고통을 겪거나 목전에 두고 있다면 세상이 장밋빛일 수 있을까? 괴로움으로 점철된 세상 속에서 이미 사라진 아름다운 이들을 그리워했다. '나는 왜 여기, 지금 태어나 당신들을 애도하며 나약하게 서 있어야 할까?' 그리고 한편으로는 세상 도처에 계속해서 존재하는 고통의 장면들을 방관할 수 밖에 없는 것에 대한 자괴감과 무기력함에 분노했다. 점차 더해가는 이런 의문의 무게를 견딜 수 없게 되자 백일몽과 같은 나날이 시작되었다. 살고 있다는 현실감이 들지 않아 여러 번 허벅지나 팔을 칼로 그어대기도 했다. 생각이 많아지는 반면 이에 대해 주위와의 소통이 어렵자 자연스레 내성적이게 되고 말수는 적어졌다. 욕심으로 식사를 많이 한 날이면 혼자만 배부르다는 죄책감에 구토를 하곤 했다. 물론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정상'은 아니었다. 갈수록 여위어가고 우울해지는 딸(필자)은 늘 대안학교에 보내달라거나 자퇴를 시켜달라고 하며 속을 썩였다.
가톨릭 집안의 막내딸로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딱 하나 부족했던 것은 영적인, 종교적인 소통이었다. 내가 고민하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과 인연이 없었다. 다만 윤회를 믿지 않았음에도 전생이 전제되지 않고서야 설명할 수 없는 이런 치열한 애달픔을 느끼며, 그리고 동물이나 자연을 사람의 도구로 여기는 인간 중심적인 가르침과 천국과 지옥의 심판에 대한 회의감으로 내가 가지고 있던 종교를 부인하게 되었다. 아주 다독한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서적들에서부터 종교 및 영성에 관한 책들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위로 받았다. 오이예사 작가의 인디언 숲으로 가다에 등의 북미원주민 관련 서적에 나를 대입하여 읽곤 하였다. 신영복 작가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여름 징역살이' 편과 같이 세상에 대한 통찰이 담긴 글들은 두고두고 위안이 되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읽게 된 티벳 불교 서적은, 북미원주민과의 만남 이래로 두 번 째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부끄럽게도 불교란 수능 성적, 고시 합격, 만사 형통 등 복을 기원하는 기성 기복종교라고 생각해왔기에 불교 서적은 유독 읽기를 꺼려했으나 티벳 불교 회화 전시, 한국 불교 탱화 전시,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을 여러 차례 찾아가면서 지고의 정성과 헌신이 깃든 불교에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책을 통해 '보살 사상'을 만나게 되었다.
손이 가 닿는 대로 도서관에서 골라온 몇 권의 책 가운데서, '보살이란 다른 사람들의 깨달음을 위해 자신의 깨달음을 뒤로 하는 존재'라는 정의를 읽게 되곤 나는 너무나 놀랐다. 내가 이제껏 바라온 의문의 해답은 바로 대승의 보살에 있었다. 대승의 보살은 '일체중생'의 고통에 책임을 지는 자비, 그리고 그 고통을 멎게 할 지혜를 지닌 자들이다. 더군다나 세세생생 중생을 위해 고군분투 한다. 책을 읽자마자 나는 이들에 대한 끝없을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막막하게 바라만 봐 온 도처의 고통과 무지, 욕망의 근원을 해결하는 방법은 여기에 있었다. 그런 불교의 자취를 따라 내가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과에 입학하기까지의 과정은 좌충우돌이었다. 간단히 줄여 말하자면, 2010년 1월에 보살 사상을 접한 이후 그 해 7월 6일 달라이라마 존자의 생신 법회(부산 광성사)를 처음으로 다녀온 지 얼마 안되어, 잠시 불교미술학과를 입시 준비하다가 홀연히 한국티벳불교사원 광성사 근처에 고시원 방을 얻어 약 5 개월을 봉사하며 지냈다. 돌이켜보자면 처음으로 삼배를 올렸던 그 기쁜 생신 법회 날, 불교가 내 종교라는 확신과 드디어 이 종교에 몸을 담게 된 것에 대한 행복감에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림을 그리는 미래만을 꿈꿔왔던 나는 한때 불교미술학과에 진학하는 것을 고려했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불교학을 배우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한 번도 예상해본 적 없는 공부로의 결심을 하면서 미술학원에다 그만두겠다는 전화를 걸었을 땐 손이 떨려왔는데, 자타카의 메추라기 경을 읽으며 어린 마음을 스스로 다독였다.
물론 불국토일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입학한 대학교에서도 한참 우왕좌왕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래도 불교를 배워가면서 그리고 여러 신실한 불자 분들과의 인연에 천천히, 점진적으로 내 생각과 열정은 다듬어져 나갔다. 이 '속세'에서 절감해온 불안정은 승화되어 희망의 전조로 읽히고 들려와 내게 영감을 주었다. 불교를 배움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내 가치관은 바뀌어가고 그렇게 나의 세상 또한 달라져 갔다. 대승 불교가 말하는 보살의 삶에 대한 지표를 따르고 싶기에, 불교에 대해 더욱 알아야 하기에 불교 공부를 멈출 수 없다.
보살이란 어떤 전지전능한 신이나 조물주가 아니다. 우리와 같은 윤회계 속에서 싹튼 보리심으로 일체 유정에게 지고의 행복을 선사하려 고군분투하는 중생이다. 그래서 그런 원대한 마음을 품고 행하는, 보살을 이상향으로 두는 대승은 사실상 지극히 소수를 위한 불교라고 했다. 내게 대승의 보살들과 수많은 경전들이 어디서 기원되었는가 그 유래에 관한 교계와 학계의 논쟁은 중요치 않다. 나는 '보살'들이 세상에 수많이 존재할 것이라고 분명 믿으나, 그 진위는 막론하고도 그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는 충분히 강렬하다.
예컨대,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이 지옥 중생을 구하고 또 구하다 못해 퇴보하는 마음을 내어 천 갈래로 몸이 찢어진 이야기와 보현보살이 자비심으로 택한 돼지로의 삶에서 새끼들에게 애착하여 스스로 혀를 깨물고 죽은 일화들은 얼마나 중생적(인간적)인가. 심지어 많은 이들의 기도의 대상이 되는 관세음보살이 처음 보리심을 내어 보살의 서원을 하였을 때의 이야기는 어떤 불자가 읽더라도 눈물이 쏟아질 만큼 슬프고 고독하며 처절하다.
그러나 이 일화들은 내게 고통을 어떻게 자비와 지혜로 변화시키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제 아무리 처한 상황이 열악하고 그 자신이 나약하다 한들, 그것에 자신을 한계 짓지 않고 육바라밀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도록 선례를 제시하며 독려한다. 나는 이 놀라운 자비와 지혜의 가르침을 방방곡곡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바른 방법으로 전해주고, 후대에도 온전히 남기고 싶다. 세세생생 그 일을 완수해 나아가기를 발원하며 삼보전진 이보후퇴 일지라도 작은 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