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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은 한국 퓨전 요리의 원조격이다. 중국에도 자장면이라는 이름의 요리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만드는 법이 다르다. 면 위에 자글자글하게 볶은 갈색의 춘장을 조금 얹어 먹을 뿐이다.
한국 자장면처럼 검은색의 캐러멜 소스와 설탕을 넣어 달게 만들지 않는다. 또 반찬으로 단무지와 양파를 주지 않는다. 베이징의 한인 밀집 지역이나 유학생이 많은 동네에서는 한국식 자장면을 판다. 드디어 한국 자장면이 본토를 공략(?)했다고나 할까.
한국에서는 하루에 800만 그릇의 자장면이 팔린다고 한다. 엄청난 양이다. 자장면의 어원은 두 가지로 본다. ‘초(炒)장면’ 또는 ‘작(炸)장면’이라고 한다. 둘 다 볶는다는 뜻으로 후자가 맞는다. 베이징에 가면 작장면을 파는데, 이게 자장면의 원조인 셈이다.
‘작’은 ‘약한 불에 오래 볶는다’는 조리 용어다. 그래서 자장면은 ‘장을 볶아서 얹어 먹는 면’이란 말이다. 자장면은 1883년 인천 개항 후 산둥 출신 노동자들의 간이식으로 한국에 들어왔다는 것을 정설로 본다.
중국에서 한국, 다시 중국으로 간 춘장 춘장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춘장은 메주콩과 밀가루를 섞어 발효시켜 만든다. 지금도 중국 산둥 지방에 가면 이런 장을 가정식에 많이 쓴다. 장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거의 모든 요리에 쓰고 있으니 매우 대중화한 소스다. 된장과 크게 다를 게 없는데, 발효 시간이 대체로 짧다는 것이 특징이다(서너 달의 속성 발효도 한다).
이 춘장이 공장 생산된 것은 전후 영화장유라는 회사를 통해서였다. 그냥 ‘사자표 춘장’이라고 한다. 영등포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본사만 있고 공장은 대부분 중국으로 옮겼다. 중국에서 건너와 한국식으로 개량된 춘장이 다시 중국 땅에서 생산되는 아이러니가 재미있다. 물론 이 춘장으로 만든 한국식 자장면이 중국 땅에서 팔리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이 춘장에 캐러멜을 넣어 점도와 단맛을 높이면서 크게 히트하기 시작했다. 그렇더라도 지금처럼 까맣게 요리하지는 않았다. 전통 춘장과 반씩 섞거나 전분을 많이 넣어 갈색을 띠었다. 바로 옛날자장이다. 그러다가 1970년대 들어 색깔이 진해지더니 1980년대에는 지금처럼 까만색의 춘장이 일반화되었다.
자장면 값은 자장면-간자장면-삼선자장면 순으로 높아진다. 옛날에 삼선자장면은 큰마음 먹고 시키는 ‘요리급’ 식사였다. 새우·해삼·오징어를 쓰는데, 삼선의 어원은 두 가지가 있다. ‘바다에 사는 삼선(三鮮, 세 가지 신선한 해산물)’이라는 뜻도 있고, ‘바다의 세 신선(三仙)’이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삼선자장면은 주문이 들어오면 재료마다 따로 볶아야 하기 때문에 공이 좀 든다. 더러 일반 자장면처럼 전분을 넣어 한소끔 끓여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스타일의 차이인데, 아무래도 간자장처럼 전분 없이 볶아 내오는 것이 진한 맛이 강해서 선호한다.
이번에는 돌아다니면서 가슴 아픈 일도 많았다. 동숭동의 유명한 삼선자장집은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구석으로 쫓겨났고, 단성사 앞의 또 한 곳의 유명 업소는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찾아갔다가 헛걸음을 하고 말았다.
이제 그럴듯한 중식당은 사라져 가고, 아예 고급 집을 표방하거나 뒷골목 배달 전문집으로나 명맥을 유지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으니, 세월의 변화는 입맛까지 바꾸어놓고 있는 모양이다.
평범 또는 그 이하 신승관과 진보 피맛골에 있는 신승관(5,000원)은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화상(華商) 중식당이다. 만두류가 맛있고, 요리도 잘하는 집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삼선자장면은 기대에 못 미쳤다. 재료가 뜨겁고 기름진 맛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어떤 재료는 씹으니 속이 차갑다. 평범한 면에 평범한 맛이다. 다행히 물만두와 요리는 제 맛을 가지고 있다.
아쉬운 것은 빤히 보이는 주방 안에서 오갈 데 없는 직원인지 가족인지 제복도 입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자주 보인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깔끔한 분위기를 강조하는 시대에 이래서야 옛 추억을 되살려주는 것 말고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연남동과 연희동의 중식당은 한때 큰 인기를 끌고 성업했다. 요즘은 한풀 죽은 모습이다. 그래도 맛깔스러운 집들이 여전히 장사를 잘하고 있다. 진보는 이 지역에서 알아준다. 요리도 잘하고, 특히 면 요리가 다양하고 맛있다는 평이다. 실제 다른 집에서 잘 하지 않는 중국 전통의 우육탕면이나 팔진면 같은 생소한 면 요리가 훌륭하다.
그러나 삼선자장면은 그 격에 못 미쳤다. 가격은 아주 싸서 좋았다. 그 가격(4,000원)에 말린 해삼을 물에 불려 넣어 입맛을 돋웠다. 하지만 전분을 넣어 소스가 엉기는 맛이 최고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친절한 서비스와 깔끔한 홀은 인상적이다.
아낌없는 재료 사용, 오구반점과 송죽장 을지로3가의 오구반점(5,500원)은 이 일대에서 최고로 쳐주는 화상 중식당이다. 연탄 난로가 놓여 있는 낡은 홀 분위기가 입맛을 돋워준다. 삼선자장면은 정말 최고다. 뜨거운 기름에 갓 볶은 재료가 살아 있고, 탱탱한 오징어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간이 좀 세다고 느낄 만큼 진한 맛이다. 면도 아주 탄력이 있지만, 소다를 지나치게 넣어 질긴 것과는 다르다. 다만, 해삼 같은 비싼 재료를 너무 아낀 것 같다.
영등포 송죽장(5,500원)은 한번 언급한 집이다. 짬뽕을 취재했는데, 이보다 덜 유명한 삼선자장면이 낫다는 생각이다. 간도 딱 좋고, 해삼을 아낌없이 듬뿍 넣었다. 새우는 잘 볶아서 탱탱한 맛이 살아 있다. 양파와 오징어, 해삼이 어우러져 진한 맛을 낸다.
소스의 양도 면보다 더 많을 만큼 푸짐하다. 그러나 채소에서 나온 물이 지나치게 많아 흥건한 국물이 보이는 게 단점. 소스가 흥건하면 입 안에서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은 있지만, 빡빡하고 다부지게 씹히는 맛으로는 마이너스 요인이다.
대학로의 한 집에서 더 먹어봤지만, 빼기로 했다. 수준 차이가 심해서 비교하기 어려운 탓이다. 한때는 날리던 요릿집이었는데, 매출 부진으로 배달로 매출을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이래저래 가슴 아픈 취재였다. |